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70화 (70/430)

# 70화

스태프들이 바쁘게 기존 소품을 치우고 새 소품을 준비하는 동안, 재민과 윤환, 다봄은 모여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본격적으로 뭔가 시작하려고 할 때 윤환은 탈퇴하고 말았기에 그와 함께 일한 기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래서 윤환의 성격은 잘 몰라 걱정이었는데 저런 모습을 보면 다행히도 친화성 있는 편인 듯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때로 진지하게 듣기도 하고, 때때로 웃기도 하며 대화에 집중한 모습.

멀리서 보면 정말 예전부터 자주 만나온 사이처럼 보였다.

‘저렇게 급격히 친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야.’

모노크롬의 사교성 만렙을 꼽자면 한이였는데, 재민의 사교성은 한이 못지않았던 모양이다.

의외로 촬영이 잘 풀리는 모습을 보니, 아예 재민의 팀이 1위를 해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게임은 그 목표를 이루기엔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게임이었다.

“두 번째 게임은, 집중력 게임!”

MC 나윤철이 말하자 세트 뒤편에 마련된 전광판에 ‘집중력’이라는 단어가 크게 떴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게임 설명.

“이 앞에 준비된 모니터를 보시면, 화면이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모니터 화면의 오른쪽과 왼쪽 구역에는 시선을 이끌 만한 여러 사진이 차례대로 뜬다.

하지만 그 사진들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가운데 구역에 집중하며 시선을 유지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그 시선 유지를 측정하는 방법이 굉장히 신식이었는데, 무려 아이 트래커가 동원되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을 포인터로 나타내고, 그 포인터가 가운데 구역에 머문 시간을 측정하는 시스템.

‘이런 최신 기술까지 게임에 동원될 줄이야.’

역시 공중파는 공중파였다.

첫 번째로 진행된 기억력 게임은 우연히도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는 재민에게 유리한 게임이었다면, 이번 게임은 재민에게는 불리한 게임이었다.

“조금 전 치트키의 모습은 어디 간 거죠?!”

“어찌 보면 놀라울 정도예요.”

직전의 게임에서 활약하여 이번에도 호기롭게 나선 재민.

그러나 그가 이런 게임에 약할 줄은 본인도 상상하지 못했던 듯했다.

“저기요. 이건 얼마나 빨리 고르는지 보는 게임이 아니에요!”

“허헝. 제 눈이 마음대로 제어가 안 돼요.”

가운데 가만히 있어야 할 재민의 시선은…… 양옆에 뜨는 사진의 모든 요소를 재빠르게 훑으며 지나갔다.

게다가 영화나 드라마를 자주 본다는 그의 멘트를 의식한 것인지, 제작진은 양옆에 작품 포스터를 띄우기도 하였다.

거기엔 재민이 오프닝 때 언급한 드라마 포스터도 섞여 있었다.

“아. 재밌게 봤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봐요. 포스터에서 형운 씨 얼굴을 바로 찾았어요.”

“아하하하! 재민 씨, 고마워요. 너무 뿌듯하네요.”

“형운 씨가 굉장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게임 점수는 못 따고 있지만 함께 출연한 게스트의 호감 점수를 딴 재민.

제일 장관이었던 것은, 방송용 카메라 여러 개가 찍힌 사진이 양쪽에 떴을 때였다.

무대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카메라 위치를 파악해야 하는 아이돌.

그리고 재민도 역시 아이돌이었다.

그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사진 내의 모든 카메라를 한 번씩 찍고 돌아오며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돌로서는 프로페셔널다운 모습이었지만 그러면 안 되는 게임이었다.

‘동체 시력이 좋으면 이런 문제가 있다니.’

이게 동체 시력 게임이었다면 단연 1위를 노릴 법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집중력 게임.

결국 재민은 처참한 기록을 남기며 제한 시간 종료를 맞이했다.

안타깝게도 동체 시력이 뛰어난 것은 다음 타자인 윤환도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시작된 카메라 사진 공격에 윤환의 시선 또한 본능적으로 빠르게 카메라 불빛을 찾으며 움직였다.

“에이. 아이돌에게 이건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재민이 장난스레 제작진에게 항의했지만, 재민의 팀을 제외한 모두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재밌어했다.

다른 팀의 난관은 우리 팀의 기회니까.

그리고 다음으로 뜬 사진은, 지금보다 조금 앳되어 보이는 윤환의 모습이었다.

“이건 언제 적 사진이죠?”

“아! 윤환 씨 데뷔 전 사진이랍니다.”

나는 서류로만 봤던 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 그곳에 출연한 비연예인 시절 윤환을 캡처한 것이었다.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사진을 찾아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방심하다가 자신의 과거 사진을 접한 윤환의 시선 추적 포인터가 흔들렸다.

“아……. 제발 다른 사진으로 넘겨주세요.”

“고개 숙이지 마! 당당해! 멋있어!”

윤환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괴로워하고, 뒤에서는 재민 특유의 오히려 듣는 사람 부끄럽게 하는 칭찬이 이어졌다.

예전에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나르시시스트의 오명을 쓰게 된 우형에게 멋있다며, 좀 더 자신감을 가지라며 도움이 안 되는 칭찬을 내뱉던 재민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가 얼마나 친근하게 윤환을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윤환도 마찬가지로 처참한 기록을 남기며 제한 시간 종료. 이 팀의 유일한 희망은 서다봄이었다.

마지막 타자로 나선 다봄. 양날개 역할을 맡은 윤환과 재민은 그녀를 응원하며 용기를 북돋았지만, 그 상대는 제작진.

제작진은 이번에도 그녀를 위한 사진을 준비해두었다.

“이건 거의 이상형 월드컵이네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그녀를 겨냥했는지, 화면 양쪽에는 남자 아이돌의 사진이 떴다.

다만 각기 다른 아이돌을 대결 구도로 맞붙였다간 줄 세우기 하는 거냐며 괜히 욕먹을 수 있었다.

그런 점까지 고려했는지 제작진은 한 아이돌의 다른 컨셉 사진을 동시에 띄웠다.

이런 배려가 가능하면서 게스트 구성은 왜 이런 식으로 짰는지 모르겠지만.

“아아. 시선이 저절로 움직이죠.”

“복근은 반칙이잖아요!”

“다봄 씨. 지금은 구경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건 자기도 어쩔 수 없다며 다급하게 말하는 다봄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깔려 있었다.

그녀는 아이돌의 섹시 컨셉을 좋아한다는 TMI까지 알게 된 시간.

그러나 내게도 다른 의미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다른 소속사가 돈 들여 찍은 사진은 어떻게 나오나 하고 참고할 수 있었으니까.

다른 쪽으로 집중하며 방심한 순간. 마지막 사진은 모두의 허를 찔러왔다.

‘……역시 제작진은 악마야.’

오른쪽엔 윤환의 프로필 사진. 왼쪽엔 재민의 프로필 사진.

이것이야말로 정말 본질적인 의미의 이상형 월드컵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먼저 향한 곳은.

“누나……?”

“미안해, 재민아! 내 의지가 아니었어!”

막간에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양날개 팀의 순서는 끝이 났다.

***

<최고의 팀메이트>에는 다양한 종목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작가가 미리 말해 주었던 체력전도 포함되었다.

체력 게임의 내용은 온갖 방해 공작 사이에서 철봉에 오래 매달려 있기.

집중력 게임에서 어쩌다 보니 집중력 최하위로 뽑힌 재민은 체력전을 설욕의 기회로 삼았다.

그렇게 의욕을 불태운 덕분인지 멋지게 최고 기록을 경신해냈다.

모든 출연진이 체력전으로 기진맥진할 타이밍에 곧바로 시작된 지구력 게임은 또 특이한 방식의 게임이었다.

“아악!”

바로 발 마사지 오래 참아내기.

재민은 마사지가 시작되자마자 몸을 파닥거리며 윤환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다친 쪽 다리를 남이 건드는 건 싫은지 반대쪽 다리를 내민 재민이었다.

따라서 특별히 아픈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이런 자극에 약한 듯했다.

잘 참는 사람에겐 체력전에 지친 피로를 해소할 휴식 타임이었지만 재민 같은 타입에겐 휴식이 아니었다.

예능답게 이름에 맞춰 적당히 끼워 맞춘 듯한 게임이지만 보는 재미가 있었다.

‘……역시 전문가가 기획한 예능이 재밌긴 재밌어.’

오랫동안 방송된 프로그램답게 모든 코너가 밸런스 맞게 잘 짜여 있었다.

이 모든 게임에서 재민 개인의 성적은 모 아니면 도였다.

1위거나, 꼴찌거나.

다행히 팀전이었기에 재민이 분발하지 못한 부분도 다봄과 윤환 덕에 어느 정도 상쇄되곤 했다.

물론 다른 팀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재민이 캐리하기도 했고.

‘처음엔 촬영이 대체 어떻게 흘러가려나 걱정이 많았는데.’

최악으로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건가.

반대로 이런 예상 밖의 사태는 앞으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아득하기도 했다.

이번엔 윤환을 포함해 호의적인 게스트들이 많아서 좋게 좋게 넘어갔을 뿐, 언제까지 이런 우연에 기댈 수는 없으니까.

“잠시 끊고 가겠습니다!”

또다시 세트가 바뀌고 촬영은 이제 막바지에 들어섰다.

제작진이 준비한 마지막 코너는 바로 순발력 게임.

앞에 체력 게임도 있었지만, 사실 이게 정말 몸을 써야 하는 게임이었다.

마치 놀이터를 축소한 듯한 새로운 세트는 안전을 위해 푹신한 재질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붙잡거나 올라서기엔 안정감이 없었다.

징검다리처럼 일정 간격으로 놓인 좁은 발판이나 균형대 등의 장애물을 차근차근 지나 정상까지 올라가 버저를 누르면 골인.

팀원 세 명 전원이 버저를 누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재는 게임이었다.

재민의 팀은 아이돌 두 명이 포함되어서인지 마지막 순서였다.

앞 순서의 다른 팀이 게임을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던 재민은 자신의 순서가 오자 세트를 찬찬히 살폈다.

“꼭 이걸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야 하나요?”

“거길 발판을 안 밟고 그냥 올라가시려고요?”

“설마 양날개 팀이라 날아서 가나요?”

재민이 묻자 MC는 그런 질문은 상상도 못 했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 옆에선 방송 내내 오디오를 채우던 코미디언 이국태가 팀명을 언급하며 멘트를 얹었다.

재민도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듯이 정확한 대답은 내놓지 않았다.

다만 그 표정에선 어쩐지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양날개 팀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재민은 몸을 풀듯이 제자리에서 콩콩 뛰었다.

“정말 하려고?”

“직접 보세요.”

같은 팀인 다봄도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재민은 자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순식간에 도움닫기 하더니 2m가 훌쩍 넘는 높이의 중간 지점까지 한 번에 뛰어 올라갔다.

그 모습에 출연진들은 물론이고 제작진까지 놀랐다.

“와! 지금까지 이렇게 올라간 사람은 없었어요!”

“저건 거의 날아서 간 거 아닙니까?!”

“저거 그거 같아요, 그거. 맨몸으로 벽 타고 올라가고 뛰어다니고. 그거 뭐였죠?”

“파쿠르!”

주목을 받으며 당당히 선 재민은 출발선 방향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채윤환! 너도 올라와.”

재민은 윤환을 내려다보며 자신만만한 말투로 그를 도발했다.

그 도발을 마주한 윤환은 약이 오른 건지 못 말리겠다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같이 웃어 보였다.

“설마 윤환 씨도 날아서 가나요!”

“오!”

재민과 똑같은 방식으로 도움닫기를 하며 점프한 윤환.

메인 댄서인 재민보다 점프력이 조금은 부족했지만, 재민이 자연스러운 타이밍에 손을 붙잡아 당기며 그를 위에 안전히 착지시켰다.

“제작진도 이 그림은 예상 못 했을 거예요.”

“이거 방송 신기록 나오겠는데요?”

“저기, 양날개에 전 포함이 안 되는데요.”

신기한 구경을 하듯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게스트들 옆에서 다봄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미 올라간 상태에서 나머지 한 사람을 끌어올리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내민 손을 각각 붙잡고 올라간 다봄은 뿌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저희 팀명 너무 잘 정한 것 같아요!”

촬영 내내 서다봄과 양날개라는 팀명을 만끽하는 그녀였다.

***

“수고하셨습니다!”

엔딩 인사까지 마치며 모든 촬영이 종료되었다.

재민에게는 제법 만족스러운 촬영이었다. 자기가 이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을 만한 것은 전부 다 보여준 것 같아서.

다들 옷에 고정했던 마이크를 빼고 인사를 나누며 곧바로 해산하는 분위기였다.

재민도 오늘 촬영에서 얼굴을 익힌 다른 출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촬영장에서 나오려던 참이었다.

“야.”

뒤에서 그를 작게 부르며 붙잡은 것은 윤환이었다.

재민도 윤환임을 확인하자 악수를 청하며 손을 뻗었다.

“너도 오늘 수고했다.”

“아니. 악수 말고.”

인사할 거 아니면 왜 부른 거지?

윤환의 표정은 촬영 때와는 달리 진지해져 있었다. 재민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갑자기 왜 정색하면서 부르지. 아까까지 친한 척한 건 방송용이었나. 자기는 재밌었는데 혼자만 진심이었나.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너 혹시 그거 들었어?”

그러나 윤환은 정말 인사하자고 부른 것은 아니었다.

지금 재민에게 묻지 않으면 따로 물어볼 사람이 없는 질문이 있었다.

윤환은 매니저가 들으면 곤란하다는 듯이 옆을 흘끔 쳐다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랑이 형 동생, 뉴레인 들어온 거.”

“뭐……?”

윤환이 예상치도 못한 인물을 언급하자 재민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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