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그러면 첫 번째로, ‘양날개’ 팀!”
“서다봄과 양날개, 라고 불러 주실래요?!”
‘양날개’라고만 하면 재민과 윤환만을 칭하는 것이었기에 다봄이 툴툴거리며 대꾸했다.
앞 팀이 최종적으로 고른 제품은 테이블에서 아예 빠지기 때문에 뒤의 팀이 고를 수 없었다.
뒤로 갈수록 고를 수 있는 제품은 줄어들지만 외울 가격도 함께 줄어들기에 진행 순서에 따른 밸런스 패치는 마련되어 있었다.
“자, 그럼 양날개 팀. 앞으로 나가주세요.”
각 팀은 게임에 앞서 제품의 판매가가 적힌 패널을 3초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순서인 다른 팀에게 보이지 않도록 세 사람은 세트 앞으로 나가 가려진 패널 앞으로 섰다.
“알지? 우린 양날개 포지션이야.”
“양날개 포지션이 뭐예요?”
다봄은 오른쪽에 윤환, 왼쪽에 재민을 세우고 그 사이에 자신이 가서 섰다.
“3분의 1로 나눠서, 자기 담당 구역만 외워.”
예능 베테랑인 다봄은 게임마다 어떤 방식이 효율적인지 바로바로 알아챘다.
예능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두 사람, 특히 재민에게는 그녀가 한 팀이라 다행이었다.
스태프는 패널을 3초 동안 공개하고 곧바로 다시 가렸다.
패널이 가려지자마자 다봄과 윤환은 동시에 재민을 쳐다봤다.
재민은 그 시선의 의미를 파악하고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 못 봤구나.
“양날개 팀의 미션은 열 가지 물품 이내로 29,000원 이상 30,000원 이하 채우기입니다!”
10가지로 3만 원이라면 대충 3천 원짜리 제품 10개를 찾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리 쉽게 계산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준비된 제품의 가격대가 다양했고, 평소에 자주 접하는 음료나 간식들은 대개 천 원, 이천 원 대가 많았으니까.
다봄과 윤환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제품들을 살펴보기 시작하고, 재민은 그 옆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마치 상황을 관망하듯이 그 두 사람을 지켜봤다.
“재민 씨는 포기하시는 건가요?”
“전 치트키입니다.”
MC 나윤철이 그런 재민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재민은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제가…… 얼마 전에 편의점 먹방을 했거든요!”
사실은 약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경력이 있어서 제품의 가격대를 대략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대로 말했다간 반강제로 아이돌 활동을 쉬어야 했던 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생길 터였다.
그래서 바로 얼마 전 준해와 함께 뷰이라이브로 진행했던 편의점 먹방을 은근슬쩍 언급하며 재치 있게 넘겼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정답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방송의 재미를 위해서 잠시 물러나 있겠다는 소리였다.
“저도 정확히 다 아는 건 아니라, 우선 두 분이 하는 거 보고 옆에서 도움만 주려고요.”
“네. 과연 근거 있는 자신감일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방송 분량을 채우겠다는 솔직한 이야기는 편집을 불러올 수 있으니 다른 이유를 덧붙였다.
재민이 MC와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윤환과 다봄은 고민에 빠졌다.
“일단 아는 것부터 골라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이거 맛있는데.”
“얼만지 알아요?”
“치트키 씨. 이거 얼마죠?”
다봄이 과일맛 젤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 윤환이 가격을 묻자 다봄은 재민에게 질문을 돌렸다.
“어……. 제가 신제품에는 약해서요.”
“치트키가 조금 옛날 치트키네요.”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재민은 머쓱하게 웃으며 두 사람 옆으로 합류했다.
“옛날 치트키라뇨. 들어보세요. 이거랑 이게 같은 회사에서 나온 건데 이건 가격이 1,300원이에요.”
“그럼 이 신제품도 1,300원이다?”
“그럴 수도 있다, 는 거죠!”
“그런데 이건 무가당에 100% 과즙이래요.”
“……그럼 한 1,600원?”
“아~. 설득력은 있는데 귀가 얇아요.”
정말 가격에 집중하기보다는, 제품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덧붙이며 가격을 추정하는 것이 이 게임의 주요 재미 요소였다.
시청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이란 점에서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의 음료나 간식 취향 TMI까지 알 수 있는 코너.
사업적인 부분으로는 방송에 제품이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광고, 협찬이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했다.
“윤환 씨는 자주 사 먹는 거 있어요?”
재민이 ‘윤환 씨’라고 칭하며 윤환을 콕 집어 지목했다.
동갑인 두 사람이었지만 일단 방송이었기에 일대일 대화가 아닌 진행용 멘트는 대개 존댓말로 이루어졌다.
지목당한 윤환은 “저는…….” 하며 곰곰이 생각하더니, 음료 하나를 집었다.
“이거.”
그가 집어 든 것은 한 브랜드의 커피 우유.
‘알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에게 재민도 웃음으로 답했다.
“맛잘알이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통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모노크롬 숙소 냉장고에 꼭 하나씩은 들어 있던 것이 바로 그 커피 우유였기 때문이다.
한이가 자주 마시던 덕분에 자연스레 멤버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유행 아닌 유행을 탄 제품.
모노크롬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재민과 윤환은 알 수밖에 없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저흰 좀 더 비싼 걸 찾아야 해요.”
이게 맛있니, 유행이니 하는 소소한 토크를 해 가며 가격을 아는 상품을 모아봤지만 대개 음료나 간식류.
가격이 천 원, 이천 원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불확실한 것까지 다 모아봐도 기껏해야 이만 원이 넘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한 팀으로 묶인 다봄과 윤환은 막힐 때면 스스로 치트키를 자칭한 재민을 쳐다봤다.
“자. 여기서 제가 나섭니다.”
재민은 제품들이 놓인 테이블을 전체적으로 스캔하더니 고민 없이 팔을 뻗었다.
그리고 딱 한 제품을 집어 들었다. 바로 아무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했던 와인병을.
“딱 이것만 추가하면 돼요.”
“여기에 와인을 더한다고요?”
나머지 두 사람은 미심쩍은 얼굴로 변했다.
저가 와인도 있다지만 와인이란 워낙 병이 비슷비슷하게 생긴 데다가 가격은 천차만별.
잘못하면 예상 금액보다 두 배, 세 배가 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점을 꼬집으며 다른 팀에서 곧바로 멘트를 얹기 시작했다.
“제가 보기에는, 한 5만 원 이상은 갑니다. 로고에서 150년 전통이 느껴져요.”
“아. 딱 보면 그런 게 느껴져요?”
“예. 제가 디자인 전공이에요.”
“국태 씨 연극과 나오셨잖아요.”
상품명이 금색으로 적혀 있어서 더 비쌀 것 같다느니, 150만 원은 한다느니, 근거 없는 온갖 방해 공작이 들어왔지만 재민은 확고했다.
와인을 사러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한참을 팔리지도 않고 그대로 매대에 놓여 있었기에 눈에는 확실히 익은 제품이었다.
원해서 편의점에 온 건 아닐 텐데 어울리지 않는 곳에 놓이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도 못 받고 먼지만 쌓여가는 와인병.
감정 이입을 하니 왠지 초라해 보여서 병이라도 반짝이라고 먼지를 닦았던 기억이 있었으니까.
“정확히 만오천 원이에요. 여기까지 합치면 이만…….”
“구천오백 원.”
“네. 이만 구천오백 원.”
다른 두 사람이 고른 제품의 가격까지 합쳐서 암산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재민 옆에서 윤환이 먼저 계산을 마치고 정답을 내놓았다.
“양날개 팀은 최종 선택을 마치신 건가요?”
“두 분 저 믿죠?”
“가자!”
두 사람도 재민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서로를 잘 모르고 함께한 시간도 부족했지만 팀으로 묶인 이상 일단 신뢰하는 모습.
이것도 어쩌면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는 모습이었다.
***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된 듯한 재민을 그렇게 촬영장에 들여보내긴 했는데, 여전히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이어지는 촬영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예스!”
재민은 첫 번째로 진행된 기억력 게임에서 미션을 성공하고서 주먹을 쥐고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팀원인 두 사람과 하이파이브까지.
‘일단…… 촬영은 문제없을 것 같아.’
내 시선은 내내 재민과 윤환, 두 사람을 따라다녔지만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로는 보이지 않았다.
윤환은 아무래도 재민의 계획에 따라가기로 한 듯했다.
잘 통할 것 같다는 재민의 그 긍정적인 믿음이 보답받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문제는 PD지.’
PD는 마치 문제의 두 사람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겠다는 듯이 카메라 옆에 가만히 앉아 촬영을 지켜보았다.
때때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흘끔흘끔 쳐다봤으나 대체 무슨 표정으로 보고 있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내 심사가 꼬여서 그런가.
재민의 팀은 게임을 마치고 대기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다음 팀이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그제야 촬영장에서 시선을 떼고 업무용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회사에서 근무 중일 윤희에게 연락하기 위해.
[신주인: 윤희씨. 요새 윤환이 팬덤쪽은 분위기 어떤지 혹시 아세요?]
[이윤희: 대충 본 바로는 별일은 없는 것 같은데. 그쪽은 무슨 일로 물어보세요?]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메신저로 말할 일은 아니었지만 촬영장에서 전화를 할 순 없었기에 일단 있는 그대로 알려주기로 했다.
[신주인: 재민이랑 윤환이가 같이 촬영중이에요.]
예고편, 혹은 누가 촬영을 진행했다는 기사라도 나갔다간 팬들의 반응이 난리 날 것이 예상되어서 그녀에게는 먼저 알려주기로 하였다.
팬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는 팬매니저로서 마음의 준비가 가장 필요할 테니까.
내가 그 메시지를 보내자 윤희에게서는 2분 정도 지나서 대답이 도착했다.
[이윤희: 제정신이래요?]
제정신이냐고 묻는 대상은 아마 PD를 포함한 제작진이겠지.
이 짧은 답장을 보내는 데 2분이나 걸린 것을 보면, 웬만한 상황엔 면역력이 있는 윤희도 이 난관을 받아들이기에 시간이 걸린 듯했다.
‘그런데 어쩌겠어…….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걸.’
일단 촬영은 무난하게 진행 중이라고 알려주니 그녀도 진정된 말투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어서인지 내가 처음 했던 질문에 더 자세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이윤희: 사실 앨범 소식이 늦어져서 조금 예민해져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윤희: 탈퇴한 후로 어그로들도 조금 붙은 것 같고…]
그룹 탈퇴까지 하며 솔로 아티스트로 독립한 것 때문에 원래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괜히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듯했다.
마치 조금이라도 부족해 보이면 헐뜯으려고 대기하는 것처럼.
‘안 그래도 힘든 애를 왜 몰아세우는 거야…….’
거기에 뉴레인이 뉴마의 레이블이라 윤환 팬덤은 애초에 소속사에 별로 신뢰가 없다고 했다.
아이리스 팬덤이면 이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그들은 한때 한 처먹은 팬덤, 컬러즈였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그로는 붙고, 소속사가 잘해줄 거란 기대도 안 들고. 그런 상황에 단지 윤환만 믿고 컴백을 기다려야 했으니 예민할 법도.
‘이건 팬덤 싸움을 걱정할 게 아니라 활동에도 영향이 갈 수가 있겠네.’
안 그래도 솔로로서 새로운 첫 시작이라 힘을 많이 쏟아부었을 텐데, 잡음이 나오면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으니까.
다행히도 촬영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편집될지가 걱정될 뿐.
지금은 그냥 재민과 윤환이 잘하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윤희와 함께 머리를 굴리며, 방송일에 맞춰 다른 떡밥을 올려 관심이 방송에 집중되지 않도록 흩트려 놓을 계획을 짰다.
그리고 다음 코너가 시작되려 하기에 다시 촬영장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