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67화 (67/430)

# 67화

일곱 번째 순서였던 재민이 세트 중앙으로 나갈 때부터 공을 뽑을 때까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시시각각으로 표정이 바뀌는 몇몇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윤환과 재민은 표정 관리에 신경을 집중한 덕인지 카메라에 잡힐 만한 이상한 리액션은 하지 않았다.

카메라 뒤에 있던 난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랜덤이라면서! 이럴 수가 있어? 무슨 장치 해 둔 거 아냐?!’

그러나 이미 녹화까지 되며 빼도 박도 못 하게 결정된 사항. 무를 수는 없었다.

지금 내가 이건 좀 아니라고 항의해 봤자 두 사람만 더 곤란해질 것이다.

설마 걱정할 상황이 펼쳐지진 않겠지, 괜찮겠지 하면서 내내 마음을 졸였건만 결국 PD가 노리던 그림대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주인 님, 어떡해요!”

오프닝 촬영이 끝나고 본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이 세트에 소품을 준비하는 동안, 출연진들은 의상에 팀 식별표를 붙이기 위해 각자 정비 시간을 가졌다.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후다닥 달려온 재민. 흘끔 옆을 보니 윤환 쪽도 긴급회의 분위기였다.

‘방송국이 원하는 그림을 맞춰줘야 하는 건가, 이건?’

어색하고 불편할 사이를 굳이 붙여놓은 건 시청률을 위해 조금이라도 애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뜻인데.

돌대회와 음악 방송으로 공중파의 영향력은 이미 실감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함으로써 재민, 더 나아가서 모노크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늘어나겠지.

하지만 동시에 멤버 탈퇴와 교체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늘어날 터였다.

인지도가 생기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런 화제로 이름을 알리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인지도는 양날의 검이란 말이지.’

마이 엔터 게임 내에는 인지도와 팬 지수란 항목이 나뉘어 있었다.

게임을 플레이할 땐 비슷한 항목이라고 생각해서 딱히 신경 쓰지 않았는데, 확연히 다른 항목이란 게 지금 와서 이해가 되었다.

인지도란 좋은 시선과 나쁜 시선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니까.

‘오늘 촬영에서 자칫 잘못하면 난리가 날 텐데…….’

둘 사이 분위기가 싸해도 안 되고, 표정이 어두워도 안 되고, 의견 충돌 안 되고, 멘트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고.

이 모든 걸 신경 써야 했다. 아주 사소한 요소로도 온갖 억측이 발생할 수 있으니.

더욱이나 윤환의 모노크롬 탈퇴 당시를 생각해 보면 팬덤 간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이 다분해서 문제였다.

컬러즈와 윤환의 팬덤은 하나로 뭉쳐 있다가 갈라지면서 신경전을 펼쳤던 전적이 있지 않던가.

밖에서 보면 분명 같은 팬덤이었는데, 실상은 물과 기름처럼 은근히 나뉘어 있던 그들.

서로를 잘 알기에 더욱 서로에 대해 예민한 사이였다.

게다가 지금 이 상황에선 재민과 윤환뿐만 아니라 출연진 누구든 둘과 관련해서 말을 잘못했다가 비난의 화살을 받을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몰랐더라도 말이다.

‘……정말 광범위 민폐잖아.’

어디에서 뭐가 터질지 모른다니. 이런 지뢰밭 한가운데에 놓이다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없는 상황에 나는 손가락으로 이마만 툭툭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보던 재민이 똑같이 자신의 이마를 두드리며 물었다.

“이러면 좋은 생각 나요?”

“……아니.”

마땅히 좋은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괜한 불안감만 가중시키는 것 같아서 나는 손을 얼른 내렸다.

제일 심란한 건 재민일 텐데 내가 더 심각한 표정이면 안 되지.

“넌 촬영 괜찮겠어?”

“사실 상황만 빼고 보면 다른 분들이랑 비슷해요. 잘 모르는 사이인데요.”

지금 상황이 제일 문제인데 그걸 빼고 생각할 수가 있나. 하지만 그 말도 맞긴 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뉴마에 속해 있던 시기는 짧았으니까.

뉴마가 워낙 팀별로 교류가 없는데 당시 윤환은 연습생 신분이었으니 그것도 한몫했을 테고.

내가 배우 쪽 직원들과 평소에 얼굴 마주할 일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모노크롬과 아이리스의 어색한 사이만 봐도 대충 알 만했다.

“사실…… 좀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미안해?”

재민은 뒷머리를 긁으며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마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듯한 속내.

“회사에 들어올 때 원래 있던 그룹에 합류한단 생각은 못 했을 거 아니에요.”

그렇지. 누가 기존 그룹에 영입되길 노리고 연습생으로 들어오겠는가.

애초에 그런 시스템이 있는 그룹도 아닐뿐더러, 당시 모노크롬은 신인도 아니고 3년 차였는데.

“어쩌면 처음부터 다른 길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저 때문에 휘말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 상황에 제가…… 도망가기 급급해서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어요.”

도망. 그렇게 표현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가 품은 걱정은 어쩌면 내가 재민을 데려오고 나서 했던 고민과 비슷했다.

다른 쪽으로 잘됐을 수도 있는데 혹시나 자기의 선택으로 발목이 잡혔을까 봐.

처음부터 그룹에 영입되는 게 아니라 솔로로 데뷔했으면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미안함.

윤환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잘 풀린 상태였다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새 길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안 된 불안정한 상태에서 만나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서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윤환이도 모노크롬에 있었던 걸 후회하거나 하진 않을 거야.”

더 확실히 케어해 줄 소속사로 옮겨서 솔로 활동을 지원해 준다는 것은 그에겐 좋은 제안이었다.

그의 부모님까지 마음을 정한 상태였는데도 윤환만은 멤버들 생각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 그만큼 정을 많이 붙였기 때문일 터였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경력은 있지만, 연예인으로서는 처음 내딛는 발걸음을 모노크롬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어쩌면 혼자 시작하는 것보다 조금은 의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

먼저 데뷔한 연예계 선배들과 같이 붙어서 활동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인 것보다는 여러모로 도움도 받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고민할 필요 없이 모노크롬으로 잘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재민은 오히려 다른 쪽으로 과거의 불안이 자극되었는지 바닥을 내려다봤다.

나도 궁금하긴 했다. 윤환이가 모노크롬에 남는 것을 선택했을 확률은 얼마나 되었을까.

‘……윤환이는 하필 가장 힘든 시기만 같이했으니까.’

4인조가 되어버린 위태로운 모노크롬에 합류했는데 대표의 관심은 아이리스로 옮겨간 상태였고, 내가 적극적으로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하기 전에 소속을 옮겨 버렸고.

다른 멤버들보다 개인 활동을 더 지원받았다고 해서 뉴마에 좋을 대로 이용당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처음엔 그와 함께 가는 미래를 구상했었는데.

“만일 그랬으면 저는…….”

지금 여기 없었을까요?

재민은 자기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다 멈췄지만, 내게는 그 뒤의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힘든 시기를 떠맡겼다는 미안함과, 자기에게는 다시 자리가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불안함.

복귀를 발표해도 팬들에게 환영받을지는 모르는 일이라며 걱정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분이 위축되면 몸도 같이 쪼그라드는 것이 버릇인지 재민은 또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일일 뿐이고 지금 걱정한다고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재민은 그게 마음속 한구석에 내내 걸렸던 모양이다.

‘오히려 윤환이와 잘 모르는 사이라는 게 더 걱정을 심화시켰을지도.’

아마 다들 재민을 배려하여 윤환의 탈퇴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재민은 그가 왜, 어떻게 그룹과 회사를 나가게 됐는지 겉핥기로만 들었을 테고.

단편적인 사실만 안다는 것은 그 사이에 괜한 불안함이 개입할 여지도 크다는 것.

나는 세트 준비가 마저 될 동안 그에게 윤환이 탈퇴했을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이건 윤환이도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거야. 그룹으로 남고 싶었다면 남았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솔로가 자기한테 더 맞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거고.”

“그래도 조금 더 있었으면 생각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주인 님 오시고 하고 싶은 건 다 시켜 줬는데.”

재민은 내가 그룹 활동을 ‘시켜줬다’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과거에 모노크롬이 활동을 제대로 못 했던 게 비정상적인 상황이지, 지금 내가 유별나게 잘해서 안정되는 것은 아닐 터였다.

‘애초에 내가 하드캐리할 정도로 이 일에 빠삭한 것도 아니었고.’

나는 그저 주어진 위치를 이용해서 계기만 줬을 뿐.

조금씩 나아져 가는 것은 오로지 멤버들 덕이라고 생각했다.

“……난 윤환이가 나가는 이유도 정당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본인도, 주변인들도 다 비슷하게 생각해서 의견이 모였던 거고.”

그 선택에 모노크롬이 앞으로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 목표는 모노크롬에게 대상을 안겨주는 것이지, 수익을 늘리거나 개개인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아마 윤환이 남아 있었더라도 그의 솔로 활동을 지원하기보다는 지금처럼 모노크롬 단체 활동 지원에 집중했을 것이다.

오히려 전보다 솔로 활동에 소홀해졌을 텐데, 과연 그는 만족했을까?

‘그룹과 솔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은 언젠가 결국 찾아왔을지도 모르지.’

재민과 대화하다 보니 내 머릿속도 조금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나간다고 했을 때, 주인 님은 말렸어요?”

“못 말렸지. 윤환이가 있을 자리가 모노크롬인지 확신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모노크롬은 재민과 함께 데뷔한 그룹.

윤환을 포함한 5인조로 잘되었더라도 팬들과 멤버들의 마음속엔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아픈 부분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룹의 팬덤과 윤환의 개인 팬덤 또한 생성 과정부터 달랐기에 결국은 완전히 섞이지 못했었다.

어쩌면 윤환과 함께하는 것이 모노크롬에겐, 그리고 나에겐 조금 더 어려운 길이었을 수도 있었다.

“윤환이가 있던 모노크롬도 모노크롬의 한 형태였고, 그게 잘못되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널 다시 복귀시킨 건 정답이었다고 확신해.”

반대로, 다시 비어버린 자리에는 재민이 적격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데려온 것이었다.

모노크롬이라는 그룹에게는 이게 아마 최선이지 않았을까.

내가 그 얘기를 하자 재민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더니, 조금은 가벼워진 표정으로 일어났다.

“그럼 편하게 할까요?”

“응?”

“나름 잘 통할지도 모르잖아요. 채윤환도…… 모노크롬이었으니까.”

제법 길게 멤버들과 같이해왔으면 안 맞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다고 판단한 듯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믿음이 강한 재민다운 결론이었다.

‘가장 불편할 관계를 편하게……. 그런 역발상은 안 해 봤는데.’

이 상황에서 제일 나은 방법일지도 몰랐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라는 가정이 붙겠지만.

윤환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재민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난 그에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뭐든 괜찮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제작진이 원했던 그림은 아닐 것 같지만.

편집될 것을 고려하더라도 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면, 그거면 좋았다.

내 허락을 받은 재민은 믿음직한 표정으로 다시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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