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66화 (66/430)

# 66화

“급하게 출연 요청 드렸는데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건…… 미리 알려주시지 그러셨어요.”

이미 카메라는 돌아가기 시작했고 되돌릴 수 없는 상황.

복잡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PD란 사람이 뻔뻔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비즈니스 미소를 지어보려 했지만 얼굴은 이미 굳어버렸는지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공중파 예능국 PD님이다. 공중파, 공중파…….’

내 머릿속에선 ‘공중파가 대수냐?!’ 하는 자아와, ‘응. 대수지.’ 하는 자아가 티격태격하며 충돌했다.

대체 어느 방송이 탈퇴 멤버와 복귀 멤버를 한 방송에 같이 출연시키겠다는 발상을 하냐고!

분명 내 표정이 붉으락푸르락할 텐데도 촬영장 뒤편이라 어두워서 안 보이는 건지, 보여도 무시하는 건지, PD는 가벼운 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많이 걱정되시나 봐요. 저는 마침 딱 두 사람을 위한 자리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하하……. 불러주신 거야 감사하지만 팬들이 얼마나 놀라겠어요.”

“뭐, 같은 팀이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그걸 말이라고.

나는 냉큼 튀어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목 뒤로 삼켰다.

한결같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니까 오히려 대꾸할 의지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설마 뉴레인도 같이 당했을 줄이야.’

시선을 돌리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윤환의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불안하게 촬영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뉴마가 중소 규모 소속사다 보니, 뉴마 출신 뉴레인도 어쩔 수 없이 중소였다.

윤환도 아예 솔로로 새로 시작하는 불안정한 단계라 급한 섭외에도 응한 듯했다.

‘아, 머리야…….’

PD는 팀이 안 될 수도 있다느니 뭐라느니 했지만, 분명 두 사람이 붙어 있는 그림을 노리고 함께 불렀을 터. 적어도 예고편은 붙여서 내보내겠지.

그럼 또 난리 날 테고.

뉴마는 왜 이런 스케줄을 잡았냐며 컬러즈한테 욕먹을 테고.

윤환이 팬덤한테까지 두 배로 욕먹을 테고!

‘아직 욕먹을 일은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표가 아니라 정말 내 행동으로 욕먹는 건 사절이란 말이야.

그런데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니. 이런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니!

정말 이 세계의 신주인으로서 욕먹을까 봐 머리가 시끄러웠지만, 사실은 당사자들이 제일 걱정이었다.

‘재민이는 일단 잘해 보겠다고 했지만…….’

촬영이 바로 시작되는 바람에 재민은 그 말을 남기고는 세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카메라 뒤편에서 촬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한 명의 MC와 아홉 명의 게스트. 세트 내엔 총 열 명의 출연진이 모였다.

그리고 모노크롬의 인지도가 낮기 때문인지, 두 사람의 복잡한 사정을 아는 사람은 당사자인 재민과 윤환, MC 나윤철, 게스트 서다봄, 이렇게 네 명뿐이었다.

다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눈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부디 둘이 한 팀이 되지는 않기를.’

그렇게 일부에게만 살얼음 같은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최고의 팀메이트! 오늘도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시작합니다!”

카메라가 돌아가자 노련하게 곧바로 평상시의 MC 모드로 들어간 25년 차 예능인 나윤철. 역시 프로는 프로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정신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현장 분위기를 살피던 그는 유쾌한 분위기로 멘트를 이어나갔다.

“오늘도 다양한 게스트분을 모셨는데요. 한 분 한 분 소개해 볼까요?”

곧바로 게스트 소개 시간이 찾아왔다.

가장 왼쪽 끝에 서 있던 윤환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솔로 아티스트로 소개되었다.

“안녕하세요! 새 미니 앨범 <한마디의 고백>으로 돌아온 채윤환입니다.”

이미 모노크롬에 속해있던 시절 솔로 데뷔를 마친 윤환이었기에 새 출발이 아닌 컴백이란 말이 맞았다.

급한 스케줄이었지만 섭외에 응한 이유. 그것은 뉴레인에 들어오고 처음 내는 앨범의 홍보 활동이기 때문이었다.

기존에 구축된 팬덤이 있다고 해도, 소속을 옮겨 아예 새 환경에서 새로 시작하면 아무래도 전보다는 불안정하기 마련이니까.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듯이 짧은 주기로 음원을 연달아 냈던 모노크롬과 달리, 윤환은 신중하게 준비 기간을 두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한 솔로 아티스트로서 대중들에게 새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 때문에 뉴레인에게 이 프로그램의 출연 요청은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윤환의 이번 신곡은 풋풋한 감성이 돋보이는 밝은 분위기의 사랑 노래였다.

그는 미리 준비해 온 기타를 들고 노래의 후렴 부분을 가볍게 부르며 신곡을 소개했다.

‘역시 메인 보컬…….’

윤환이 있을 적부터 모노크롬을 담당했던 주인이었지만 그와 함께한 스케줄은 프로필 사진 촬영이 전부였다.

따라서 윤환이 라이브로 노래 부르는 모습은 오늘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한이와 함께 모노크롬의 메인 보컬이었던 윤환.

한이가 정석적인 보컬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면 윤환은 조금은 독특한 그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은 윤환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그가 아이돌 연습생으로 바로 들어온 게 아니라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공식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것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룹보다는 솔로여야 돋보이는 음색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계약을 해지하며 멤버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해하던 모습. 그게 주인이 기억하는 윤환의 가장 최근 모습이었다.

실제로 만난 건 아니었지만 그가 <기다림의 끝>의 발매 소식에 ‘좋아요’를 눌렀던 적도 있었고.

그런 일들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모노크롬에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이 주인에게도 느껴졌다.

‘……윤환이도 너무 부담 느끼지 말고 잘됐으면 좋겠는데.’

확실히 솔로 활동을 꾸준히 했을 법한 실력이었다.

주인은 연습생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높았던 그의 레벨 정보를 떠올렸다.

기존 멤버였던 재민과 교체했을 만큼 높았던 레벨.

재민은 다른 출연자들 사이에서 딱히 튀지 않는 반응으로 그의 소개를 지켜보았다.

모르는 사이에서도 보일 법한 무난한 반응. 지금은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왼편 끝에 서 있었던 윤환과 달리 재민은 오른편에 서 있었다.

시작부터 대놓고 붙여놓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는지 제작진이 정한 위치였다.

윤환으로 시작된 자기소개 시간은 게스트 몇 명을 더 거친 후에 재민에게로 순서가 돌아왔다.

“모노크롬의 메인 댄서, 명재민입니다!”

코미디언들은 먼저 생각해 온 재치 있는 멘트로 자신을 소개하고, 배우들은 이름과 최근 출연작 정도로 소개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아이돌 게스트에게는 장기를 한 번씩은 꼭 시키는 듯했다.

메인 댄서인 재민의 장기는 물론 춤이었다.

급한 섭외라 여유롭게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이 또한 촬영 직전에 급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왜 그렇게 친절한가 했더니 이런 상황을 다 내다보고 그런 거였어…….’

PD는 뻔뻔했지만 작가는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재민을 대할 때마다 아주 상냥했다.

그렇게 상냥했던 작가가 ‘댄스에 어떤 곡을 쓰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왜 미리 하지 않았을까.

주인은 그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윤환을 마주치기 전에 물어봤다면 100퍼센트 모노크롬 노래를 부탁했을 테니까.

전 멤버인 윤환이 함께 있는 지금 이 현장에서 모노크롬 노래를 틀고 춤을 출 수는 없었다.

재민은 “아무 노래나 괜찮아요.”라는 자신감 넘치는 답변을 남겼다.

결국 결정된 것은 영어로 된 댄스곡.

‘재민이한테 춤이면 걱정할 것 없이 안심이지.’

재민은 갑자기 추게 된 프리 댄스도 마치 준비한 것처럼 여유롭게 해냈다.

가벼워 보이지만 일반인들은 쉽게 따라 하지 못할 만한 발놀림. 임팩트 넘치는 백덤블링으로 마무리까지.

게스트들의 호응을 받으며 재민이 짧은 프리 댄스를 끝냈다.

그리고 본 게임 시작 전에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역시나 코미디언 게스트들이었다.

“국태 씨, 국태 씨! 아직 국태 씨 순서 아니에요.”

“훠오! 아, 지금 아니에요? 제 몸이 음악에 반응해서 그만.”

남성 코미디언이 댄스를 마치고 들어오는 재민과 배턴 터치를 하듯이 세트 중앙에 나와 댄스를 펼치자 MC인 나윤철이 그를 말리며 자리로 복귀시켰다.

그 분위기를 틈타 윤환도 적당히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지나갈 때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위태로운 눈치 싸움이 이어졌다.

시작부터 줄타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다행히 자기소개 시간은 무사히 지나갔다.

이후에 곧바로 이어지는 팀 결정은 랜덤 공 뽑기로 이루어졌다.

같은 숫자가 적힌 공을 뽑은 세 사람이 한 팀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같이 팀을 이루고 싶은 게스트는 다들 있으신가요?”

MC 나윤철이 게스트를 전체적으로 둘러보며 말했다.

재민과 윤환은 어쩐지 모든 멘트가 자신들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처럼 들려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여기서 잘못 걸려 대답했다간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 재민은 바로 옆에 서 있던 남배우의 뒤로 슬쩍 숨었다.

“재민 씨는 형운 씨와 같이 팀을 하고 싶으신가 봐요.”

그런 행동이 오히려 눈에 들어왔는지 MC는 바로 재민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재민은 갑자기 지목당해 자기도 모르게 “앗.” 소리를 내 버렸다.

윤환이 아닌 다른 사람과 팀을 하고 싶다고 어필해 버린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재빠르게 대응했다.

“제가 드라마를 자주 보는데 신기해서요. 예전에 주연 맡으신 <행복한 이별을 위한 세 가지 방법> 엄청 재밌게 봤거든요.”

실제로 영화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재민이었기에 배우들의 이름은 잘 아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것도 마침 이 Q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제목이었다.

배우 김형운은 자신이 2년 전 출연했던 드라마 제목을 재민이 정확히 말하자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재민에게 붙었다.

“제 생각에도 역시 아이돌 친구들이 잘할 것 같습니다!”

“아, 형운 씨는 재민 씨, 윤환 씨와 함께하고 싶다?”

나윤철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PD가 좋아할 만한 멘트를 뱉었다.

재민과 윤환이 무슨 사이인지 알지 못하던 김형운은 그저 해맑게 대답했다.

“제가 몸치라서요. 춤추고 운동 잘할 것 같은 친구들한테 좀 묻어가려고요.”

“춤이라면 제가 또 한 춤 하는데.”

재민과 같은 음악으로 우스꽝스러운 댄스 신고식을 펼치며 재미를 줬던 코미디언 이국태가 끼어들었다.

웃음이 터지는 현장 속, 함께 웃던 서다봄만이 ‘아니에요. 거긴 폭탄 제거반이에요!’라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팀 배정은 자기소개와 동일한 순서로 이루어졌다. 가장 먼저 소개된 윤환이 첫 번째로 공을 뽑았다.

“저는…… 1번입니다.”

윤환이 뽑은 공엔 1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저도 1번입니다!”

다섯 번째로 공을 뽑은 다봄은 윤환과 같은 숫자를 뽑았다.

코미디언 경력 10년 차에 가까워진 서다봄은 원래 아이돌에 빠삭하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재민과 윤환의 이름을 보자마자 알아챈 것이었고.

그녀로서는 둘 중 한 명과 같은 팀이라면 환영이었다.

단지 두 사람 사이에 끼고 싶지는 않았을 뿐.

이로써 남은 사람은 네 명. 재민이 윤환과 같이 1번을 뽑을 확률은 4분의 1.

여섯 번째로 서 있던 배우 김형운이 3번이 적힌 공을 뽑으며 확률은 3분의 1로 높아졌다.

일곱 번째 순서인 재민이 앞으로 나가 신중하게 손끝의 감각으로 공을 고르고, 다봄은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제발!’

재민이 공을 뽑아 번호를 확인한 순간, 제작진까지 포함하여 현장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속으로 ‘큰일 났다’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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