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64화 (64/430)

# 64화

진짜였다.

그러니까 가출했다는 말이 정말이었다.

통화할 땐 정말 준해의 여동생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나는 그녀의 이름과 번호를 받아서 본인에게 전해주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처럼 회사에 나와 있는 준해에게 확인을 하자 그는.

“현유나요? 걔가 회사에 전화를 왜요?!”

“진짜 동생 맞아?”

“……네.”

이름을 듣자마자 반응을 보였다.

여동생의 말로는, 뉴마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한 것이라고 했다.

그게 돌고 돌아 모노크롬 담당인 나에게까지 온 것이었다.

‘이러면 회사에 직접 전화한 것도 이해가 가잖아…….’

준해 본인과는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듯했다. 그녀가 했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가출했다는 것도 진짜야?”

“네?! 가출…….”

준해는 ‘가출’이란 단어에 기가 찬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그냥 잠깐 집에 안 들어간 것뿐이에요. 전화는…… 따로 용건 있지 않으면 원래 잘 안 받아서.”

집에 안 들어가고 가족 연락도 안 받고. 응. 가출이네. 아니, 이건 출가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가족들과 상의한 일은 아닌 듯했다.

‘미성년자도 아니고, 숙소에서 지내는 건 가족들도 알 테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겠지만.’

성인이 집을 나와 독립하는 거야 평범한 일이라고 해도, 연락까지 끊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제가 연락해 볼게요. 죄송해요. 이상한 전화 받으시게 해서…….”

“아니. 미안할 일은 아닌데.”

준해의 여동생은 연락이 안 돼서 전화한 것이었으니, 준해가 알아서 연락한다면야 이번 일은 해결이었다.

그러나 정황상 가족들과 무슨 일이 있는 건 확실해서 이번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집엔 왜 안 들어간 거야?”

“그건…….”

내 질문에 준해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된다는 듯한 표정이더니 결국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아……. 사실 부모님이 학업에 더 집중하라고 예전부터 들들 볶으셔서요.”

‘학업에 더’라는 것은, ‘아이돌 활동보다 더’라는 뜻일 터였다.

그러니까 준해의 부모님은 그가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에 가깝다는 뜻.

‘휴학도 안 하고 빨리 졸업하려던 이유가 그거였어?’

졸업하면 학업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아이돌 활동과 학업의 비중을 계산하며 눈치 보지 않아도 되니까.

이번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험공부를 하기에 ‘참 열심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남몰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모노크롬을 아이돌로서 성장시켜야 하는 나였기에, 준해가 아이돌 활동을 위해 가출이란 선택을 한 것에는 내가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집에 안 들어갔는데……?”

“재계약 때부터요…….”

아깐 잠깐이라며…….

재계약 기간은 올해부터 시작이었으니 계약서에 사인한 것은 아마 작년일 텐데.

몇 달째 집에도 안 들어오고 연락도 안 되는데 아이돌 활동은 멀쩡히 하고 있으니 가족이 결국 회사로 전화할 법도 했다.

그런데 재계약 때부터 가족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것은.

‘준해 부모님은 재계약을 반대하셨단 얘기겠지.’

작년까지 모노크롬은 회사에서도 방치되어 있었고 그간 이뤘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준해는 좋은 대학에 진학했으니 부모님으로서는 학업 쪽에 더 욕심이 났을 수도.

자칫하면 현재의 모노크롬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중대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는 아찔해졌다.

“그, 그래.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음. 잘 말씀드리고.”

“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마음은 부모님을 잘 설득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사람이 염치가 있지. 자진해서 험난한 길을 택한 그에게 또 무슨 부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집에 안 들어가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뭐라고 안 했어?”

한 소리 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궁금해서 물었다.

멤버들끼리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숙소 내에서도 기준을 정해놓고 잔소리도 제법 하던 모양이던데.

애가 가출 아닌 가출을 한 데다가 가족들이랑 연락까지 끊고 살았는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조금은 설득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안 통한 거라면 제법 강한 의지로 마음을 먹었던 모양이다.

“그게…… 어…….”

그러나 준해는 ‘뭐라고 하긴 했다’, 혹은 ‘아니다’라는 대답을 꺼내기보다는 얼버무렸다.

뭐지, 이 모호한 반응은. 어느 쪽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인가.

‘아니. 잠깐.’

순간, 휴가인데도 멤버들 전원이 어디에도 안 가고 숙소에 모여 있던 것이 떠올랐다.

얘네는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이 뭉쳐 다닐 수가 있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다들……?”

***

멤버들은 모두 경제 활동을 자의로 할 수 있는 성인.

하지만, 담임선생님으로서……가 아니지. 담당자로서. 그러니까 협업 파트너로서.

활동과 관련해 무슨 트러블이 있는지, 없는지는 대충이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저 스케줄만 띡 던져주는 게 아니라……. 아니, 과거에 내가 그랬지. 아무튼, 이제는 같이 미래를 도모하는 입장에서 나는 아직도 멤버들에 대해서 너무 몰랐으니까.

그런 결론에 도달한 나는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면담 시간을 가졌다.

“어어……. 제가 아이돌 일 하는 걸 딱히 반대하진 않으세요. ……최근에는요.”

우형은 뭔가 말하기 어려운 얘기를 할 때의 버릇처럼 또 눈을 굴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덧붙인 한마디가 아프게 다가왔다.

그가 말하는 ‘최근’은 아마도 모노크롬이 제대로 활동하기 시작한 요즘을 뜻할 것이다.

‘이전에는 상황이 달랐다는 뜻이겠지?’

하긴 가족이 회사에서 그딴 취급을 몇 년이나 받고 있으면 나라도 반대하겠어.

다들 상황은 마찬가지겠거니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의외로 멤버들에게선 다양한 대답이 돌아왔다.

“별로 터치는 없으셔서.”

해랑의 대답은 담백하게 그게 끝이었다.

이건 좋은 의미인가, 나쁜 의미인가. 그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적어도 반대까진 아니란 점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냥 가풍이 자유로운 편인가?’

자기가 하려는 일에만 집중하는 해랑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가족들도 비슷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들고.

그러나 진짜 자유로운 영혼은 또 따로 있었다.

“아~. 별로 신경 쓸 일 아니에요.”

응?

한이는 웃으면서 가볍게 얘기했지만, 가장 수상하게 들리는 대답이었다.

‘그 ‘별로 신경 쓸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제일 신경 쓰이는데.’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야. 진짜 신경 쓰여.

“저희 부모님은 전적으로 제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셔서요.”

재민의 경우는 예상대로였다.

아들이 활동하면서 다치고 다니는데 걱정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재민이 너무 하고 싶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지지하신다는 느낌이었다.

‘계약서를 바로 다음 날 들고 온 것도 그렇고.’

재민은 부모님도 확인하셨다고 했지만, 그 짧은 시간 내에 심사숙고하기는 불가능했다. 아마도 재민의 의지가 강해서 허락해 주셨을 뿐이겠지.

‘어째 하나같이 응원받는 느낌은 아니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굳이 캐내서 확인 사살 받은 기분이었다.

하긴 나조차도 멤버 전원이 재계약한 게 기적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다들 가끔씩 본가에 들르긴 하지?”

준해는 아예 집에도 안 들어갔다기에 한 질문이었다.

“그렇죠…….”

“네, 뭐. 일 있으면…….”

자주 집에 다녀오는 멤버는 없는 듯, 모두 대강 말끝을 흐렸다.

‘으음. 나도 이해는 가. 이해는 가는데 말이지.’

나도 본가를 떠나 자취해 본 적이 있으니 어떤 심정일지는 이해가 갔다.

사회생활에 시달리다 보니 내가 봐도 내 낯빛이 어두워서, 괜히 얼굴 비치겠다고 들렀다가 괜한 걱정이나 시켜드릴까 봐 바쁜 척, 혼자서도 잘 지내는 척하며 본가 방문을 미루던 기억.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부모님 걱정하시는 얼굴을 보기가 좀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한번 그러기 시작하면 습관이 되는 건 금방이고.

성인이 되면 금방 부모님과 데면데면해진다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이 상황에서 부모님에게 더 이입되었다.

‘가족이 보고 싶은데 못 보면 너무 슬플 것 같아…….’

바로 얼마 전, 아픈데 집에 혼자 있으니 서러웠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 지내시는 듯하지만, 엄마도 어느 날 내가 보고 싶은데 못 봐서 서러워하신다면.

상상해 보니 또 울적해졌다.

“시간 되면 자주 연락드리고 그래…….”

“네, 네!”

내가 침울해져서 말하자 다들 재깍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노크롬을 키운답시고 멤버들을 불 속성 효자로 만들 순 없지.

예전처럼 케어를 못 받아서 부모님 걱정을 사는 게 아니라,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도록 나도 회사 차원에서 같이 노력할 테니까…….

그래도 걱정했던 것만큼 극심한 반대가 있던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괜히 나만 조금 더 우울해졌을 뿐.

그렇게 갑자기 마련된 면담 시간을 마치고 나는 침울한 기분을 다스리며 이사실로 돌아왔다.

***

주인이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나가고, 남겨진 멤버들은 닫힌 문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준해의 가출이 들키고 갑자기 잡힌 면담 시간.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혼나는 게 아닌가, 였다. 멤버들끼리 사적인 일을 알아서 관리하지 못하고 회사까지 말이 들어오게 했다고.

주인이 그런 일로 한 소리 할 성격은 아니었지만, 예전에는 회사가 멤버들에게 보였던 태도가 대개 그런 식이었기에.

그런데 주인의 면담은 정말 멤버들의 얘기만 듣고 끝이었다.

“……혹시 안 좋은 일 있으신가……?”

이 상황의 발단이 되었던 준해가 슬쩍 입을 열었다.

분명 면담을 시작할 때는 주인이 멤버들을 걱정했는데, 면담이 끝나고 나니 이젠 멤버들 눈에 주인이 걱정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활동을 마치고 며칠 휴가 시간을 가진 동안 주인이 쓰러졌었다는 얘기는 뒤늦게 들었다. 그 이후로 이따금 그녀는 기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저 감기가 아직 다 안 나아서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에 주인 님이 나한테 그런 얘기 한 적 있었거든? 자기는 쓰러져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라고.”

재민이 갑자기 그런 얘기를 꺼내자 멤버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주인이 멤버들 가족 얘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니 어쩐지 재민은 그 얘기가 다시 생각났다. 마치 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얘기해서.

“외국에서 오셨다는 것도 그렇고. 혹시 가족이랑 좀 떨어져 계신가 해서.”

“대표님이랑? 지금 해외에 계시잖아.”

“대표님도 그렇고. 잘 모르겠지만 원래 계시던 곳에 가족은 남아 있고 혼자 오신 거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뉴마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인 신대표.

그는 이 회사의 대표지만 가족 관계를 포함하여 자세한 신상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회사 내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얼굴을 잘 비치지 않던 인물이었다.

멤버들조차 얼굴을 마주한 적이 거의 없어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그런데 갑자기 그의 딸이라는 주인이 이사로 오게 된다는 얘기에 회사 사람들이 모두 놀랐던 것을 멤버들도 기억하고 있었다.

대표가 해외 출장을 나간 것이나, 주인이 이사로 온 것. 전부 급하게 결정된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냥…… 느낌이야.”

“으음…….”

우형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엔터 업계를 잘 모른다는 주인이 모노크롬을 담당한 게 그녀의 의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막상 적응되니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동 지원에 나선 그녀였지만…….

“우리가 이렇게 얘기할 건 아니고.”

정작 그녀가 하는 아티스트 관련 업무는 아티스트 레이블인 뉴레인에 걸맞지 않은가. 그런 생각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굳이 모노크롬밖에 남지 않은 뉴마에 들어오길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어쩐지 주인이 아이리스 앨범을 세상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것이 머리에 둥둥 떠올랐으나 우형은 작게 머리를 흔들어 떨쳐냈다.

“다들 이사님 이런 일로 신경 안 쓰시게 적당히 잘하자.”

리더의 정리에 멤버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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