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감기 걸리셨어요?”
“응. 그러니까 가까이 오지 마, 옮으니까. 너는 특히.”
“언제까지요?”
멤버들을 최대한 안 마주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회사 안에 있다 보니 안 마주칠 수가 없었다.
다들 사람이 좋아서인지 1m 이내 접근 금지령이 떨어졌는데도 꼭 이렇게 안부를 물으며 다가오곤 했다.
‘특히 이 수다쟁이.’
한이는 예전부터 말은 잘 들었기에 1m 거리를 착실히 유지했다.
거리만 1m일 뿐, 쪼잘쪼잘하면서 따라오는 게 문제였지만.
게임에는 없는 능력치지만 딱 봐도 사교성 만렙인 그는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요새 환절기라 많이 건조하더라고요. 요즘 감기는 엄청 독하다던데.”
“너도 감기 조심해. 건조하니까 특히 목 조심하고.”
“저 또 목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니죠? 그건 좀 봐주세요. 애들이 놀리는 거 보셨잖아요.”
‘애들’이란 재민과 준해를 말하는 것이었다.
한이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크면 볼륨 줄이라며 잔소리하는 모습을 그간 나도 많이 봐 왔으니까.
활동기 종료를 맞이하여 체중 관리 제한에 이어서 볼륨 조절 제한까지 풀린 그는 요즘 살판난 표정이었다.
“너 어디 가던 길 아냐?”
“그냥 점심 먹고 좀 움직이려고 걷던 중이었는데요.”
어쩐지 어디 가려는 기색도 없고 내 보폭에 맞춰서 걷는다 싶더니만.
그냥 돌아다니기엔 심심해서 마침 지나가던 나를 대화 상대로 삼았던 모양이다.
이 정도로 따라다니면 접근 금지가 의미 없는 수준인데.
좀 더 위기감을 심어주고자 내가 몸을 확 틀어서 그가 있는 방향으로 한 발짝 크게 내딛자 한이는 큰소리로 “왁!” 하고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어후. 전에 귀신의 집 촬영할 때도 안 놀랐는데.”
“자꾸 따라다니지 말고 가서 할 일 해.”
한이의 이상한 비명을 들었는지 근처 연습실에서 해랑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역시 방음벽도 뚫는 우리 팀 메인 보컬의 성량.
내가 해랑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는 곧바로 알아들었는지 끄덕하고는 한이를 끌고 갔다.
‘정신이 없네, 정신이 없어.’
어제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던 집과는 180도 다른 환경이었다. 확실히 우울할 틈이 없다고 할까.
정신은 없어도 활기찬 분위기인 편이 훨씬 좋았다. 내가 이 회사에 와서 처음 느꼈던 그 철수 직전 같은 분위기를 떠올려보면 특히나 더욱.
‘그나저나 다들 이 정도 쉬면 쌩쌩하구나……. 나만 비실비실했구나.’
정말 재민의 말대로 운동을 안 한 탓이었을까.
하긴 백수 상태로 집 밖에도 안 나가고 있다가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바쁜 회사 생활을 하게 됐으니 몸이 적응을 못 할 법도 하지.
정말이지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느끼는 요즘이었다.
‘진짜 내가 게임 캐릭터가 된 기분으로 관리해야 할까 봐.’
마이 엔터에서도 멤버들의 체력이 바닥나지 않도록 관리해 가며 플레이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체력 소모가 큰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그만큼 길게 쉬어줘야 했건만, 나는 기본이 주5일 근무. 거기에 자진해서 주말 근무, 새벽 근무, 추가 근무까지 했으니 휴일에 아무리 쉬어도 소진된 체력이 충전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게임에서야 체력 한계까지 스케줄을 돌리고 체력 회복 아이템을 먹이는 방법도 있었지만…….
‘잠깐. 설마 나도 그런 식으로 플레이했던 건 아니겠지?’
아이리스를 그 정도까지 굴린 기억은 없었다. 그러나 내 관심 밖이었던 모노크롬은 어땠던가.
지금껏 과거의 기억을 헤집어서 좋았던 적이 없어서 두려웠지만 그래도 난 머릿속을 열심히 뒤져보았다.
‘아냐. 체력 회복 아이템이 꽤 비싸서 그걸 산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난 방치 중인 모노크롬에게는 조금의 투자, 지출도 안 하려던 대표였으니까.
회복 아이템을 사야 할 정도로 굴리지는 않았다는 뜻이었다.
‘휴, 다행……이 아니라, 이건 또 다른 쪽으로 죄책감이 들잖아…….’
피로회복제를 마시고 회복된 체력이 다시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내 몸은 게임 캐릭터가 아니니 멘탈까지 체력에 영향을 주곤 했다.
진짜 게임처럼 체력 회복 포션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 필요한 건 그건가. 직장인의 포션…….’
그러나 감기약을 먹고 있어서 지금은 커피도 못 마시는 몸이었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어!
나는 한숨을 쉬며 대신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자 회사 건물 아래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나만큼이나 비실비실한 상태인 멤버가 또 있었다.
“아메리카노에 샷 두 개 추가해 주세요.”
“속 버리겠다.”
“아, 안녕하세요.”
우연히 먼저 와 있던 준해는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아메리카노를 주문 중이었다.
내가 카드를 내밀면서 대신 결제하자 그는 “잘 마시겠습니다.” 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작게 꾸벅 숙였다가 드는 그의 얼굴을 보니 과연 커피가 필요한 얼굴.
‘다크서클 봐라…….’
쓰러졌던 나보다 준해가 더 수척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제 뷰이라이브에선 그렇게 신나 보이더니만. 방에서 시들시들하던 것을 재민이 데리고 나왔다더니, 정말 잠깐의 일탈을 즐기느라 활기찼던 것뿐이었나 보다.
나는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그와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1m 거리를 두고.
“시험 언제 끝나?”
“이번 주면 끝나요.”
대학생들은 보통 저학년일 때 학점을 많이 채워놓고, 졸업 학년엔 학교를 덜 나가는 대신 그 여유 시간에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준해는 학생이면서 가수라는 특수한 케이스.
그룹의 공백이 길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가 저학년일 때는 학점을 미리 채워둘 정도로 학업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계절학기까지 들을 정도면 남은 학점이 적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 졸업반이면 휴학은 한 번도 안 한 거야?”
그의 나이가 스물셋이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학해서 휴학 없이 쭉 학교에 다녀야 4학년이었다.
일정하지 않은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도 그는 한 번도 안 쉬고 그렇게 학교를 다녀왔던 거고.
“그게……, 학교를 쉬기 어려운 이유가 좀 있어서요.”
“음. 그래?”
개인적인 이유가 있는 건가.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마는 것을 보니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 듯해서 나도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좀 도움 될 만한 게 없으려나?’
나는 몇 년 동안 꺼낼 일이 없어서 묻혀있었던 대학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졸업반 분위기가 어땠더라. 아마 반 정도는 학교를 잘 안 나왔던 것 같은…….
“아! 졸업반이면 취업계 같은 거 있지 않아?”
“아마 받아주시는 교수님은 계실걸요? 그런데 제가 취업한 상태는 아니라…….”
지금 뉴마와 모노크롬이 엮인 계약은 근로 계약이 아니라 전속 계약. 일반적인 취업계에 필요한 ‘재직’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누군가. 이 회사의 낙하산 이사 아닌가!
모노크롬 전담팀을 만들기 위해 직원을 몇 명 데려온 입장에서 뭐가 안 되겠는가.
“우리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왔다고 하면?”
“위장 취업 같은 거로 걸리지 않을까요……?”
“위장 말고. 진짜로 업무 시간 내내 인턴 직원으로 굴리면 되지.”
“우와…….”
대놓고 굴리겠다는 발언에 준해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작게 웃었다.
수척한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좋긴 하지만, 웃음 주려고 농담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진짜로. 필요하면 할 수 있어.”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자 준해도 이번엔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진짜 힘들면 말씀드릴게요.”
우선은 혼자서 해 볼 만큼 해 보겠다는 말이었다.
멤버들이 다들 알아서 잘하니까 든든하긴 한데, 무슨 일이든 혼자서 감당하려고 할까 봐 걱정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뭐든 회사에 의지하라고 하는 것도 좀 뻔뻔한 생각이지만.’
혼자 알아서 커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지금 내가 할 일은 회사 차원에서 최대한 지원해줄 수 있다는 것을 계속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그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주문한 음료가 나와서 각자 한 잔씩 받아들었다.
“몸 챙기면서 해.”
“이사님도요.”
응. 내가 건강 얘기할 처지는 아니었구나.
준해는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꾸벅 인사하고는 먼저 카페를 나섰다.
준해는 시험공부와 트레이닝을 병행하기 위해서인지 회사의 빈 회의실을 독서실 삼아 멤버들과 같이 출퇴근하고 있었다.
‘준해가 제일 고생이네.’
이미 대학은 졸업한 다른 멤버들과 달리 특이하게 명문대에 사회 계열 학과로 진학한 그.
졸업 학년이라는 중요한 시기인데 소속사에는 대뜸 나라는 존재가 나타나 뜻하지 않게 두 배로 바쁜 생활 중이었다.
‘다른 멤버들한테 잘 챙겨주라고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도 카페를 나섰다.
***
멤버들은 트레이닝 받으면서 작업도 하고, 우리는 회의하고, 준해는 시험 보고. 각자 바쁜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이사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대답하니 최 비서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이사님. 외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지금 바쁘지 않으시면 통화 가능하십니까?”
“누구한테 온 전환데?”
외부 전화가 나한테까지 올라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내가 받아야 할 전화면 모노크롬과 관련된 전화일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용건을 묻자 최 비서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준해 군의 가족이라고 하는데, 정말 맞는지는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준해?”
아무래도 자기 선에선 신상 확인이 안 되기에 모노크롬 담당인 내게 먼저 말하러 온 듯했다.
가족이라면…… 부모님인가? 멤버의 부모님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윤환이 부모님이 계약 해지를 요청하셨었는데.’
그런데 또 멤버의 부모님이 굳이 회사로 연락한 거라면……. 설마, 아니겠지?
나는 심각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일단 내 자리로 전화 돌려봐.”
최 비서가 이사실 문을 닫고 나가자 곧바로 내 자리에 놓인 전화가 울렸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네. 뉴마 엔터테인먼트 신주인 이사입니다.”
[아, 여보세요. 저는 모노크롬 멤버, 현준해 씨 여동생인데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예상외로 어린 목소리였다. 어린 티는 나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
부모님이 아니란 점에서 조금은 안심이었다.
‘손위 형제면 몰라도 여동생이 계약 얘기로 전화했을 리 없으니까.’
그러나 완전히 안도하기는 일렀다. 그녀가 회사로 직접 전화한 이유가 전혀 짐작이 안 갔으니까.
“무슨 용건으로 전화하셨죠?”
[저희 오빠, 그러니까 현준해 씨랑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회사가 아니라 준해랑 통화하고 싶다고?
여동생이면 왜 회사를 통해서 연락하려는 건지 이해가 안 되고, 진짜 여동생이 아니면 그건 또 문제였다.
‘여동생 사칭해서 멤버 연락처 알아내려는 거 아냐?!’
불안하게 전화를 받았던 나는 이번엔 의심을 품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동생분이시면 왜 직접 통화하지 않으시고요?”
[그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거 진짜로 수상한 사람 아냐?
수상한 기미가 조금이라도 더 보이면 끊을 기세로 답변을 기다리는데.
[저희 오빠가 가출해서 연락이 안 돼서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