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뷰이라이브 알림을 본 컬러즈들은 곧바로 라이브 방송으로 모여들었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재민과 준해가 핸드폰을 들고 신나게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는 장면.
뛰느라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어떻게든 채팅을 읽었는지 재민이 대답했다.
“여우 형이 뷰이라이브 핸드폰 놓고 나갔길래 몰래 들고 나왔지~.”
“다들 비밀이에요!”
[우리 비밀 몇개얔ㅋㅋ]
[막내들 숙소 탈출ㅋㅋㅋㅋㅋ]
일단 비밀이라고 하면 컬러즈들은 무슨 상황이든지 납득하는 게 모노크롬 뷰이라이브의 특징이었다. 컬러즈가 우형에게 직접 연락할 길은 없지만 두 사람의 말대로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다.
신나게 숙소를 뛰쳐나온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골목에 있는 편의점.
“오늘 저희가 할 것은 편의점 먹방입니다!”
“저희 숙소에 인스턴트 많이 먹으면 잔소리하시는 분이 한 분 계시거든요.”
“난 다 먹을 거야.”
준해가 ‘잔소리하는 한 분’이라고만 언급했지만 컬러즈는 그간의 일화를 떠올리며 그게 우형을 지칭하는 것임을 금방 알아챘다.
몰래 한다면서 굳이 증거 영상으로 남기는 대담함.
완전 범죄를 꾀할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 소소한 일탈을 컬러즈와 함께 즐기고 싶었던 듯했다.
모두에게 친숙한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컬러즈도 신나서 빠르게 채팅을 쳤다.
“이거 맛있다고요? 이거?”
“지금 진열대 하나 돌았는데 다 맛있다고 했잖아요, 여러분.”
[아 돼지 들킴ㅎ]
[ㅋㅋㅋㅋㅋ다 먹자]
맛있는 걸 먹여야겠다는 일념으로 추천을 쏟아내는 컬러즈.
채팅을 보며 하나둘 담다 보니 두 사람의 장바구니는 어느새 가득 찼다.
“이거 다 먹을 수 있어?”
“바로 먹어야 되는 것부터 먹고 나머지는 네 방에다가 숨기자.”
나름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운 두 사람은 계산 후에 야외 테이블 구석에 자리 잡았다.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준해는 채팅창을 보며 소통을 시작했다.
“여러분, 저 내일 시험인데 잘 보라고 응원 한마디 해 주세요.”
[시험 빌런ㄷㄷ]
[아니 그 문구를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준해는 시험 잘봐야지]
뷰이라이브 3대 단골 채팅 패턴인 이름 불러주세요, 생일 축하해주세요, 시험 잘 보라고 해주세요. 그중 하나가 멤버 입에서 나오자 컬러즈는 [ㅋㅋㅋㅋㅋ]를 연발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안물안궁이었을 화제지만 그 주체가 멤버라면 또 달랐다.
“머리가 칼로리를 많이 소모하거든요. 그래서 많이 먹어줘야 합니다.”
“맞아요. 준해는 많이 먹고 쑥쑥 커서 팀 내 최장신이 될 거랍니다.”
“근데 해랑이 형 보면 키가 너무 큰 것도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그 형 다리 뻗으면 사람들이 지나가다 걸려서 맨날 다리 접고 있잖아.”
그런 소소한 얘기를 나누며 두 사람이 사 온 음식들을 하나하나 처리해나가기 시작했을 때, 재민이 테이블에 놓인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말했다.
“헛. 해랑이 형 전화 왔다.”
“컬러즈 쉿.”
[타이밍 뭐야ㅋㅋㅋㅋ]
[갑분스릴러]
[얘기하는거 들었나봐ㄷㄷㄷ]
[해랑이도 제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재민은 통화 내용이 들리지 않도록 조금 떨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컬러즈의 채팅이 소리가 날 리는 없었지만 준해는 채팅창을 보며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통화가 끝난 재민이 화면에 대고 통화 내용을 전했다.
“하아. 해랑이 형이 감시하러 온대요.”
기껏 둘이서 일탈을 즐기고 있는데 외출 중인 우형 대신 지켜보러 온다는 해랑.
시무룩해진 둘의 표정과 달리 컬러즈는 멤버가 또 온다는 소리에 환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해랑이 한이와 함께 등장했다.
“갑자기 나가서 뭐 하나 했더니.”
“하핫. 보고 있었어? 전화하지 말고 채팅으로 하지.”
해랑은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화면 속에는 지금 이 현장을 중계하는 뷰이라이브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함께 등장한 한이는 자연스럽게 재민과 준해의 옆에 앉아 과자 봉지를 뜯었다.
“먹방 할 거면 나를 불렀어야지.”
“형 나중에 또 관리한다고 힘들어할까 봐 배려한 거야.”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거고.”
해랑이 너는 뭐 하러 따라왔느냐는 듯한 시선을 보냈지만 한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해랑까지도 공범으로 만들며 네 사람으로 늘어난 먹방 멤버가 후식 타임을 가지고 있을 때.
“아까 준해가 방에서 혼자 공부한다고 시들시들해져 있길래 데리고 나온 건데…… 헉.”
재민은 얘기하다 갑자기 무언가를 보며 놀라고, 멤버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기에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컬러즈만 연신 물음표를 치며 궁금함을 표했다.
“주인공이 등장하셨습니다.”
한이가 핸드폰 각도를 틀어 재민이 본 무언가의 정체를 비췄다. 그것은 바로, 외출했다가 곧장 이쪽으로 향한 건지 가방을 메고 있는 우형.
다가오는 그를 본 재민과 준해는 도망가고, 우형은 쫓아가고, 그 장면을 해랑이 찍고, 한이는 커피를 마시며 구경했다.
한바탕 추격전을 벌이고 우형에게 붙들려 온 재민과 준해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말 안 하고 핸드폰 가져와서 죄송합니다.”
“불량식품 아니에요. 건강에 좋은 김치 라면 먹고 있었어요.”
“너흰 안 말리고 뭐 했어.”
“지켜보라고 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뒷정리 하고 있었습니다, 형님.”
[먹어서 정리ㅋㅋㅋㅋ]
[한국인이니까 김치는 용서해주자]
[해랑이 진짜 지켜보고만 있었음]
[완전체먹방해줘요]
“어어. 지금 찍고 있어요. 눈으로 욕하면 안 돼요.”
한이가 급히 카메라를 돌려 우형을 비추자 우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여러분. 저희는 들어갈게요.”
“인사하지 말아요. 끄지 마!”
장바구니 가득 찼던 간식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고 있었으니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긴 했다.
우형이 컬러즈에게 인사를 하려 하자 다른 멤버들은 서둘러 말렸다. 끄면 우형이 무슨 잔소리 폭탄을 날릴지도 모른다면서.
양쪽으로 갈린 의견에 컬러즈 또한 아쉬워하는 사람과 아쉽지만 보내준다는 사람이 반반 갈려서 열심히 채팅을 올려나갔다.
그리고 “아악!” 하는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뷰이라이브가 종료되었다.
***
[ - 뷰이라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 ]
나는 누운 채로 그 문구를 보며 눈만 깜빡거렸다.
분명 휴가라고 했는데 왜 다들 아무 데도 안 가고 평소처럼 모여 있는 거지.
뷰이라이브가 일상화된 멤버들. 덕분에 눈앞에 없어도 뭘 하고 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나도 밥이나 먹자.’
뷰이라이브가 종료된 후 어두워진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 침대 밖으로 나왔다.
멤버들이 먹방을 펼치는 것을 보고 내가 밥도 안 먹고 내내 누워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다른 데 집중하니 울적한 기분은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이럴 때 마이 엔터를 했었는데.
‘지금은 집중할 게임이 없어서 이렇게 축축 처졌나?’
팬들이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멤버들을 보면 힘이 난다고 하는 게 이런 비슷한 기분일까. 현생은 잠시 잊고 친구를 만나서 수다 떨며 무거운 생각을 털어낸 느낌.
다섯 명이 뭉쳐 있으면 오디오가 빌 틈도 없이 자기들끼리 잘 놀아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했다.
활동을 거칠수록 메이킹 필름과도 같은 비하인드 영상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 빨리 기운 차리고 회사 가서 비하인드 영상을 더 뽑아내야 해!’
비하인드 최고. 컨텐츠 최고. 이것이야말로 엔터계의 빛과 소금.
역시 의욕을 끌어올리는 것은 뚜렷한 목표의식이었다.
하루를 푹 쉰 덕분에 다음 날은 몸도 어느 정도 괜찮아져서 다시 평소처럼 출근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달랐던 것은 아침에 재민에게서 동물 캐릭터가 손수건을 물어뜯는 알 수 없는 이모티콘이 도착해 있었다는 점 정도.
‘얘는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회사에 도착하여 이사실로 올라가기 위해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먼저 회사에 와 있던 우형과 마주쳤다.
그는 내가 쓰러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인사했다.
“이사님, 몸은 좀 괜찮으시…….”
“자, 잠깐! 가까이 오지 마!”
“예?!”
내가 손을 들어 그의 접근을 막자 우형은 깜짝 놀라서 걸어오던 포즈 그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최 비서를 흘끔 보더니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자기가 뭐 잘못했냐는 듯한 혼란스러운 표정.
최 비서는 옆에 있는데 자기는 멀리 있으라고 하니 당황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급하게 막은 이유가 있었다.
“아니, 좀 독한 감기 걸렸었대. 옮을지도 모르니까 좀 떨어져 있어.”
“아…….”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일단 가까이 있는 건 안 좋겠다고 판단했다.
“잠깐 1m 반경 접근 금지로 하자. 다른 애들도.”
“그, 그렇게까지……. 네.”
전부터 그렇게 몸조심, 감기 조심하라고 강조했는데, 정작 나 때문에 감기가 옮으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신호음이 울리고 나는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먼저 탈래?”
“아뇨. 전 계단으로 가도 돼요.”
우형은 “몸조심하세요.” 하며 꾸벅 인사하고는 내 말대로 1m 거리를 유지한 채 빙글 돌아 계단으로 향했다.
나야말로 앞으로 감기 조심해야겠어. 이렇게 괜히 수고스럽게 만들지 않으려면.
다음으로 마주친 멤버는 재민이었다.
먼저 처리할 일을 마치고 프로듀스팀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어딘지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님…….”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쀼루퉁해 보이기도 하고, 시무룩해 보이기도 한 표정.
‘얘 무슨 일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참에, 그가 부스럭거리더니 외투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약국에서 파는 마시는 피로회복제.
“……나 주려고?”
“네.”
내가 피로회복제를 받아들자 재민은 1m 이내 접근 금지령을 들었는지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
“주인 님이 전에 쓰러져도 누가 신경 안 쓴다 그러셨잖아요.”
“내가 그랬나?”
“전에 병원에서.”
재민과 병원에서 대화했던 적이라면…… 예전에 그가 발목을 다쳤을 때다.
한없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재민을 달래주고자 별생각 없이 꺼냈던 말을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진짜로 아무도 안 챙겨줬을까 봐 자기가 이거라도 챙겨주겠단 얘기……?’
내가 그때 뭐라고 했더라. 난 연예인도 아니고 누가 신경 안 쓰니까 아프면 혼자 쉬다 일어나면 된다고 했던가.
호기롭게 그런 말을 해놓고서는, 정작 아프니까 혼자 있어서 서럽기까지 하다면서 종일 우울함에 빠져 있었지. 지금 생각해보니 머쓱한 일이다.
“어제까지 쓰러져 계셨다면서요.”
“아니, 쓰러진 건 두 시간 남짓인데. 음.”
아마 멤버들은 다들 오늘 출근해서 직원들에게 내가 쓰러졌던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뭐라고 전해 들어서 그의 머릿속에선 이틀이나 쓰러져 있었다고 과장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마워. 잘 마실게.”
“……운동하세요.”
“응…….”
그 말을 남기고 재민은 다시 터덜터덜 돌아갔다.
나는 괜찮아졌는데 왜 재민이 더 기분이 처져 보이는 거지.
‘……재민이도 아팠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다쳐서 병원에 실려 갔던 경험이 있으니 남이 아픈 것도 잘 못 보는 것일지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신경 쓰게 만들었단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새삼스럽기도 했다.
나는 재민이 건네준 피로회복제로 다시 시선을 내렸다.
이곳에 와서 지금까지 못 해줬던 만큼 멤버들을 챙겨주는 게 내 낙이었는데.
‘설마 날 생각해서 이런 걸 가져올 줄이야.’
역으로 뭔가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밥 챙겨주는 길고양이가 보답하겠다고 예쁜 나뭇잎이라도 물어온 것을 본 기분이었다.
‘그래도 인복은 좀 쌓았나 봐.’
지금껏 업보만 쌓아댔는데 난 다른 것도 쌓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받은 피로회복제를 원샷하고 조금 더 좋아진 기분으로 복도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