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낯선 천장이었다.
……라는 판타지 소설 도입부와도 같은 문장이 떠올랐지만 눈을 떠 보니 정말로 낯선 천장이었다.
‘뭐야, 여긴……?’
전등 불빛에 눈이 부셔서 인상을 찌푸리고 눈동자만 굴렸다. 정신은 서서히 돌아오는데 몸은 아직도 덜 깼는지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 지금 누워있는 건가?’
머리 뒤엔 베개가 있는 것 같고, 몸 위엔 얇은 이불이 덮여있는 것 같고.
이불 속에서 부스럭대자 그 소리를 듣고 내가 깬 것을 알아챘는지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이사님?”
가만히 눈만 끔뻑거리고 있으니 침침하던 시야가 뚜렷해지면서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수액도 걸려 있고.
‘아. 병원이구나.’
잠이 마저 깨고 정신이 현실로 돌아오니 맥이 턱 빠졌다. 이상하게도 처음 든 생각은 ‘그럼 그렇지.’였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무슨 꿈을 꾼 건지.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가 이 세상에 들어온 첫날의 기억이었다.
잠들었다가 깼는데 모르는 공간에 와 있는 건 두 번째 경험이었으니까.
혹시나 또 비현실적인 현상이 일어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예를 들면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 있다거나.’
……그게 아니라도 혹시 내가 또 다른 게임을 했었나 싶어서 빠르게 기억을 더듬어봤다.
다행히도 하나에만 집중하는 타입인 덕에 마이 엔터 외의 다른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업보를 쌓은 적은 없었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며 온갖 잡생각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최 비서는 가만히 기다렸다.
“……회사는?”
그저 잠깐 잠들었다 일어난 건 아닌 모양인지 내 목소리는 완전히 잠겨있었다.
일어난 내가 첫마디로 회사 얘기를 꺼내자 최 비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바로 확인하실 일은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대신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처리해 두었고요.”
“지금 몇 시야?”
“오후 3시 반 정도 되었습니다.”
내가 이사실에서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을 때가 점심시간 조금 지났을 때였으니. 다행히 두 시간하고 조금밖에 안 지나 있었다.
그냥 소파에서 잠깐 낮잠 자려고 누웠던 기억밖에 안 나는데.
‘하긴, 그냥 평범하게 자다가 멀쩡히 일어났으면 내가 병원에 있을 리 없겠지.’
아마 최 비서가 깨웠는데도 내가 못 일어났던 모양이다.
소파에 엎어져 있던 걸 발견해서 병원까지 데리고 온 건가. 거울은 못 봤지만 아마 몰골도 정상이 아니겠지?
몸은 아직 무거워도 계속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상체를 일으켰다.
힘들어 보였는지 최 비서가 부축해 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나도 모르게 놀라서 몸을 틀어 피해 버렸다.
그와 내 행동이 동시에 멈추고 순간 눈이 마주쳤다.
“어, 음……. 혼자 일어날 수 있어.”
이상하게 보일까 봐 어지러워서 휘청거린 척하며 넘겼다. 오늘 별별 짓을 다 하는구나, 신주인.
가벼운 단발인 덕에 머리는 한 10시간은 푹 자다 일어난 것처럼 붕 떠 있고. 상사로서 좋은 면모만 보여주기에도 부족할 판에 이게 무슨 추태람.
손으로 대충 머리를 빗어서 가라앉히고 있는데 최 비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설마 쓰러지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아……. 괜히 고생시켰네. 안 좋은 꼴만 보이고.”
“아뇨.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저도 모르게 다른 존재처럼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응?”
아직 머리가 핑핑 돌아 무슨 의미인지 잘 해석이 되지 않았다.
뭔가 다른 생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라는 건가. 하긴 내가 일하는 것을 보며 가끔 특이하다는 눈을 했던 것 같은데.
평소에 각 잡고 일하는 그로선 나 같은 타입은 처음 봤을지도 모르지.
‘그야 나는 회사에 좀 다른 목적으로 들어온 거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부여된 설정처럼 혈연 때문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저 퀘스트 수행하러…….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이 근무 시간 중이라는 게 다시금 떠올랐다.
여기서 이렇게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고 회사로 돌아가야겠어.
“간호사 선생님 좀 불러줘.”
“좀 더 누워계시는 게…….”
나는 몸을 조금 더 일으키며 링거 바늘을 가리켰다.
보니까 수액도 얼마 안 남은 것 같고, 멍하니 누워 있으니 더 축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휴식을 권하던 최 비서도 내가 계속 일어나려고 하자 결국 손을 들었다.
내가 갑자기 쓰러진 이유는 과로에 감기몸살이었다.
‘어쩐지 나른하더라니.’
단순한 춘곤증인 줄 알았는데.
처방전을 받아 퇴원하고 약을 타 올 때까지도 최 비서는 일정 거리 안에 계속 붙어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걷다가 별안간 우뚝 멈추자 또 휘청이는 줄 알았는지 그는 손을 뻗으려다 거뒀다.
이제 막 처음 걸음마 떼는 애 보는 듯한 시선이라니. 느닷없이 쓰러져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도 적잖이 놀랐던 모양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나 안 쓰러져.”
방금 쓰러졌다 일어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신뢰가 안 가겠지만.
링거를 맞아서인지, 좀 움직여서 혈액순환이 되어서인지 아까만큼 몸이 무겁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는 대로 지내면 쓰러진다는 교훈은 얻었으니 조심하면 재차 쓰러질 일은 없을 것이다.
‘기운 차리고 다시 일해야지.’
그러나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타자, 운전석에 앉은 최 비서는 회사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댁으로 바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집으로 간다고?”
아직 날이 이렇게 밝은데. 이제 또 중요한 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인데?
“내 가방이랑 핸드폰 다 회사에 있어. 그냥 회사로 가.”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몇 시간만 있으면 퇴근 시간인데 뭘 그리 번거롭게 해.”
“몇 시간이라도 좀 더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항상 내가 하는 대로 따르던 최 비서였는데. 이렇게 안 된다고 하는 건 처음이었다.
집으로 간다는 그의 말에 내가 계속 토를 달자 백미러로 표정을 봤는지 그가 다시 말했다.
“……감기가 옮으면 안 좋지 않겠습니까. 소속사니까.”
아, 그렇지. 회사에 가수가 있었지.
활동이 끝나고 가장 잘 쉬어야 할 멤버들은 휴가 중이라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 일단은 다음 일정을 위해 쉬면서 체력을 비축해 두기 위해서였다.
다만, 전에도 얼마 쉬지 않고 바로 회사에 나오던 것을 보면 이번에도 그리 오래 쉬지는 않으리라 예상되었다.
그런데 나로 시작해서 회사에 감기가 유행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아티스트 보호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 알았어.”
지금도 밀폐된 공간인데 자꾸 말하면 옮는 거 아닌가. 아까 약국에서 마스크라도 사 올걸.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해서 나는 숨도 작게 쉬면서 최대한 감기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잠시 조용해진 차 안. 눈치 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나와 달리 호흡을 신경 쓸 필요 없는 최 비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좀 더 쉬엄쉬엄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최 비서는 이전에도 내가 모노크롬 스케줄에 매번 동행하는 것을 보며 뭐라 말하려다 말았었는데, 아마 이 말을 계속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도 의욕이 앞서서 움직였던 게 이렇게 과로로 쓰러질 정도인 줄은 몰랐지. 그의 말처럼 무리하다 또 쓰러지면 오히려 내 발목을 스스로 붙잡는 일이다.
그래도.
“시간이 없다면?”
“…….”
아무도 모르겠지만 내겐 기한이 있었다. 그래서 더 조급하게 행동했던 것도 있고.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그가 이해할 리는 없었기에 나는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냥 가정이었어. 이런 일 없게 좀 더 조심할게.”
나의 모호한 말을 끝으로, 차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
이렇게 이른 시간에 퇴근하는 것은 생소한 기분이었다.
나를 내려주고 다시 회사로 돌아간 최 비서는 이사실에 있던 내 가방을 가져오면서 죽까지 사 왔다.
“내일은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내일도? 하루를 통째로 쉬라고?”
“지금은 약 기운이 있어서 괜찮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 병원에서도 좀 더 휴식하면서 상태를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래도…….”
내가 계속 미련 남은 듯이 포기하지 않으니 그는 아까 꺼낸 카드를 또 꺼냈다.
“감기…….”
“…….”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단호했다. 단호박죽이라도 사 왔나.
현관문 앞에서 내일은 쉬느니 안 쉬느니 하면서 실랑이를 벌였으나 결국 내 항복으로 끝났다.
‘고집 있네.’
최 비서가 이렇게까지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일 줄이야. 내가 자꾸 고집을 부리니 덩달아 똑같이 대하는 건가.
다시 혼자가 된 나는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회사로 복귀해서 일하겠다고 했건만, 내 몸은 솔직하게도 절로 푹신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시간은 취침에 포함이 안 되는지, 금세 또 졸음이 몰려왔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창문으로 빼꼼 밖을 쳐다보았다.
‘진짜로 데리러 안 왔네.’
출근하는 날이면 최 비서가 매번 시간 맞춰 차를 대기시켜 놨는데 오늘은 역시나 없었다.
출근이야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감기가 독한 놈인지, 아니면 약 기운 때문인지 아직도 몸이 나른하긴 했다.
“하아. 예정에 없던 휴일이라니.”
평소 출근하지 않는 주말엔 쉴 만큼 쉬고, 쌓아둔 집안일을 처리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료 수집을 하든 TV를 보며 분석을 하든 최대한 뭔가에 집중하며 보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딱히 쌓인 집안일도 없고. 뭔가 하기에는 몸도 무겁고 의욕도 안 나고.
‘이래서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나았는데.’
조용한 집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몸이 더 축 늘어졌다.
그리고 이런 환경은 잠시 잊고 있던 우울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아플 때 혼자인 게 제일 서럽다더니.
나는 괜히 엄마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신주인: 오늘 날씨 되게 좋다]
[(알 수 없음): 서울도 구름 한점없이 맑더라]
응? 나도 서울인데……라고 적으려던 나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글자들을 지웠다.
나 지금 타지로 출장 온 설정이었지.
[(알 수 없음): 주말에 친구들이랑 꽃 보러 다녀왔어~]
엄마는 꽃밭에서 찍은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나는 그 사진을 저장하며 피식 웃었다.
‘잘 지내고 계시네.’
통화는 안 되지만 이렇게라도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어디가 요즘 꽃이 만개해서 이쁘더라 하는 얘기를 나눴다.
‘나도 쉬는 날에 기분 전환 삼아 꽃이나 보러 갈까.’
내가 원래 있던 세상과 이 세상은 게임으로 치면 같은 서버인데 채널이 다른 것과 비슷했다.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같은 공간에는 갈 수 있었다.
근데 혼자 가야 하나. 오히려 더 기분이 처질 것 같은데.
‘……모노크롬 사진 찍는다고 하고 데려갈까.’
이거야말로 권력 행사 같아서 난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촬영 목적으로 방문하려면 관리처에 미리 허락도 구해야 하고.
일 때문에 엮인 사람들을 제외하면 진짜 혼자구나 싶어서 또 우울해졌다.
[(알 수 없음): 오늘은 안 바쁜가보네?]
평소와 다르게 낮 시간대에 대화를 오래 붙잡고 있으니 엄마는 그 점을 콕 집어냈다.
나는 괜히 아픈 것을 들켜서 걱정시킬까 봐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신주인: 아니 바쁘지. 나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간다니까. 잠깐 쉬는시간이었어.]
약 시간 알림 외에 최 비서에게 따로 연락이 없는 것을 봐선 오늘은 나 없어도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직장인이 자주 하는 착각이지. 자기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
회사란 보통 누가 없어도 어떻게든 돌아가기 마련이다.
“에휴.”
대화를 마친 나는 스마트폰을 다시 내려놓았다.
울적한 나는 내내 침대에만 있었다.
약 기운 때문에 피곤하고, 너무 자니까 머리 아파서 일어나기 싫고, 몸도 무겁고.
마치 사람이 어디까지 나태해질 수 있나 실험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로 날이 저물기 시작했을 때,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얘넨 뭐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