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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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남자친구가 데이트에 이렇게 입고 나온다면
용납 가능?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헤어져
└미안 현대예술은 나한테 좀 어려워서..
└이렇게 옷 사진만 올려놓고 얼굴 까면 존잘인 패턴이잖아 안 속아
└그래서 누군데? 얼굴을 보여줘야지
└원본 이거 아니냐 (이미지) (링크: 모노크롬의 이상한 패션쇼)
└아니미친 방금 얘네 출근길 사진보고 옷 잘입는다 생각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지하게 스트라이프 네겹은 선넘은거 아니냐 마주보고있다가 최면걸릴듯
└쌉가능
└여보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애 학부모 설명회 가는데 그 옷은 좀
└아 ㅁㅊ 벌써 진도 어디까지 나간거냐고ㅋㅋㅋㅋㅋㅋ
└우리 애들이 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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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자기만족으로 멤버들의 옷을 입히던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모노크롬의 의상과 관련된 언급이 많아졌다.
봄이다 보니 현재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 중, 청량 컨셉을 내세운 그룹은 당연히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평타는 치고 있다는 건 괄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무대 의상이라면 눈에 띄는 스타일이 좋겠지만, 내가 주로 담당하여 입히는 건 사복이었으니 눈에 띄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크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옷 중에는 계절에 맞는 무난한 아이템이 많아서인지, 컬러즈들이 운영하는 SNS 계정 중에 이런 것도 생겨났다.
[모노크롬 20xxxx 착장 정보 1. U*** T-shirts \129,000 2. …]
그날 멤버들이 무슨 브랜드의 무슨 옷을 입었고 가격이 얼마인지까지 찾아와 나열하는 정보 계정.
게다가 컬러즈는 이 정보글 아래에 ‘이러저러해서 잘 어울린다’, ‘우리 애는 무슨 색이 잘 받는다’ 하면서 일일이 코멘트까지 남겼다.
‘이거 아무거나 입히면 안 되겠는데…….’
지난 뉴마의 행태로 팬덤 유입길이 막히고 남아 있는 팬들은 모노크롬이 6년 차가 될 동안 성실히 진학하고 취업하며 현생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컬러즈 중에는 직장인의 비율이 제법 높아 보였다.
내 돈 벌어 내가 쓰는 직장인이 되었기에, 돈 쓸 만한 일이 생기면 일단 쓰고 보는 컬러즈!
성별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은 따라 사는 팬들도 생겨나 있었다.
‘일부 컬러즈의 패션까지 책임져야 해!’
책임감을 느낀 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스타일링을 연구하며 더욱더 공을 들였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일까. 관련 스케줄 문의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남성 패션 전문 잡지 ‘멘즈 서클’ 편집부입니다.]
활동하며 방송국 쪽에 열심히 미끼를 뿌리고 다녔는데, 문의가 들어온 것은 예상치 못하게 패션 잡지 화보 촬영!
[앨범명처럼 ‘컬러’를 강조한 다양한 의상 또한 다음 무대를 기다리게 되는 요소인 것 같습니다! 패션돌이란 수식어에 걸맞은 활동을 보여주고 계시는 모노크롬을 저희 잡지에 초대할 수 있을까 하여…….]
패션돌이란 말은 처음 듣지만, 아이돌에게 ‘단어+돌’이란 대체로 칭찬하는 말이었다.
패션 전문 잡지답게 의상 관련 얘기를 꺼내며 이어가는 섭외 요청.
난 뿌듯한 마음에 ‘그렇지,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메일을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갔다.
[또한, 모노크롬 공식 채널에 올라온 패션쇼 영상을 정말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패션 잡지 에디터로 일하면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패션의 세계였다고 할까요.]
담당자는 모노크롬의 이번 신곡 무대나 사복 패션뿐만 아니라, LA에서 멤버들이 촬영한 패션 영상도 인상에 깊게 남은 듯했다.
‘패션 관련 직종 종사자로서 충격이었을지도…….’
어느 쪽이든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면 잘된 일이겠지?
우리가 촬영하게 된다면 예정된 촬영 컨셉은 F/W 시즌의 오피스룩.
협찬 패션 브랜드의 제품을 노출하는 것이 목적이고, 멤버들에게 각기 다른 스타일의 의상을 개성에 맞춰 입히고 싶다는 듯, 가능하다면 모노크롬과 함께 일하는 스타일 팀의 의견도 받아보고 싶다고 한다.
‘오피스룩은 또 내가 잘 알지!’
물론 잘 아는 건 내가 자주 입는 여자 오피스룩이지만! 뭐, 남자 의상도 본 경험은 많고. 회사원 경험도 그리 짧은 건 아니지 않은가.
잡지사와 연계된 스타일리스트도 있으니 이런 추가 요청은 부담 없이 넘겨도 된다고 하지만.
‘지금 모노크롬 담당 스타일리스트 조합이 괜찮은 것 같단 말이지.’
현재 모노크롬과 계약된 스타일리스트 팀이 내 의견을 잘 받아주고 다듬어 줬기에 만족하며 꾸준히 함께 일하는 중이었다.
양쪽에서 의견을 내면 같이 상의하고, 틀을 잡거나 적절한 의상을 찾아다 주면 거기에 또 내가 조금씩 보조로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식이었다.
‘팬들 반응도 나쁘지 않았고……. 좀 욕심내 볼까?’
왠지 내게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컨셉이었다. 한 번도 안 입혀본 스타일이라서 궁금하기도 했고.
옷 하나를 입히는 데도 수십 수백 번을 시뮬레이션하곤 했던지라 멤버들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건 아마 본인들을 제외하면 나일 터였다.
그래서 나는 섭외를 수락하며, 우리 스타일리스트 팀과 같이 촬영을 진행하기로 전해 두었다.
‘이건 또 재밌는 촬영이 되겠어.’
내 머릿속에는 또 무궁무진한 스타일들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가상 스타일링 경력 n년 차. 이번에야말로 스타일리스트 신주인이 나설 차례였다.
***
모노크롬은 이제 컴백 2주 차에 들어섰다. 2주 차의 음악 방송은 사전 녹화 없이 본방송 스케줄만이 잡혀 있었다.
생방송으로만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생겼지만, 시간은 좀 더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리 연락이 온 잡지 촬영은 2주 차의 어느 오프 날 진행하게 되었다.
“준해, 이 안경 써 볼래?”
이미 기본 의상으로 갈아입은 멤버들은 포인트를 줄 액세서리를 고르는 중이었다.
내가 안경 케이스에서 뿔테 안경을 하나 집어 들자 준해는 슬쩍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앗. 저, 안경 잘 안 어울려서요…….”
“그래?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이런 짙은 안경테면 동그란 눈이 가려져서 별로이려나?
오피스룩을 입은 회사원이라기엔 얼굴이 조금 어린 티가 나니 아예 모범생 이미지 같은 느낌으로 가 보려고 했는데.
아쉽지만 나는 뿔테 안경은 내려놓고 다른 얇은 테 안경을 집어 들었다. 안경을 씌워보고 싶은 멤버는 또 있었으니까.
“재민…….”
그를 찾으러 뒤돌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모자 위에 모자 위에 모자…….
재민은 한이와 함께 머리 위에 모자로 탑을 쌓고 있었다. 균형 감각이 좋아서 그런지 높이도 쌓았구나.
“여기서 LA 패션쇼를 재현하고 싶은 건 아니지?”
“앗. 아뇨.”
내가 부르자 재민 머리 위의 모자 위의 모자들이 기우뚱하면서 쓰러지고, 앞에 있던 한이가 모자 기둥을 받아 그대로 다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재민은 내가 내민 안경알 없는 안경을 받아 곧바로 착용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더니 만족스럽게 안경을 추켜올렸다.
“오. 나 좀 똑똑해 보이는 것 같아.”
아니. 너희가 아까 하던 장난을 생각해 보면……. 아니, 똑똑해 보인다고 만족스러워하니까 그냥 그런 거로 치자.
그러나 피어싱과 같이 반짝이는 얇은 금테 안경은 지적인 이미지보단 화려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저 금발에 완전한 회사원 이미지는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재민은 오히려 상반되는 인상의 조화를 강조하기로 했다. 화려한 외모에 단정한 셔츠. 거기에 서스펜더까지.
오피스룩이 컨셉인 거지, 진짜 어디 가도 있을 법한 평범한 회사원처럼 꾸미자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해랑이.”
나는 입술 메이크업 중이라 고개를 고정한 해랑에게 다른 안경을 씌웠다. 이번엔 조금 각진 메탈 프레임의 안경.
‘크으. 느낌 나는구나!’
한이가 풋풋한 로맨스 드라마 남주 같은 멜로 눈빛을 가지고 있다면, 반깐머리에 안경을 더한 해랑은 그야말로 오피스물 드라마의 냉철한 으른 남주 타입이었다.
얼굴에 개연성이 있고 서사가 담겨있다더니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키는 말인가.
인사법의 ‘블랙 앤 화이트’에서 화이트를 맡은 해랑과 재민, 일명 화이트조는 이렇게 안경 스타일로 결정.
반지에 시계에 모자에, 한차례 액세서리를 고른 멤버들은 사진 촬영을 위한 세트로 들어갔다.
세트는 80, 90년대가 떠오르는 빈티지한 스타일로 꾸며진 사무실이었다. 모니터와 파티션으로 벽이 세워진 요즘 사무실처럼 꾸며졌다면 촬영 시야에 방해가 될 테니까.
준해는 세트에 가장 먼저 들어서더니, 상사가 앉을 법한 따로 떨어진 자리에 먼저 앉았다.
“내가 팀장! 다들 빨리빨리 안 앉고 뭐 해.”
막내여서 윗자리에 욕심이 나는 걸까. 팀장 자리를 선점한 준해는 들어오는 멤버들을 마치 아랫사람 대하듯 재촉했다.
“그럼 나 이사님 할래.”
그러나 뒤이어 들어온 재민의 역할 설정은 갑자기 임원급으로 올라갔다.
‘회사에서 겪어본 높은 사람이 이사, 그러니까 나라서 그런 건가.’
일단 높은 사람을 떠올리려다 보니 이사란 직함이 먼저 생각났던 모양이다.
갑자기 시작된 권력 쟁탈전에는 동생 라인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까지 동참하기 시작했다.
“난 사장님.”
“그럼 난 회장님.”
다들 드라마를 많이 봤구나.
우형과 한이가 차례대로 들어오고, 언급되는 직위는 점점 하늘 높이 높아져만 갔다.
뭔지 몰라도 일단 이기고 보려는 본능!
그렇게 하나씩 역할을 맡은 멤버들의 시선은,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해랑에게 모여들었다.
“난…… 최대 주주.”
“…….”
어이없지만 확실한 권력에 멤버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결국, 다른 멤버들은 일반 사원일 줄 알고 팀장을 선점한 준해가 제일 아랫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건 아니니, 맞니, 되니, 안 되니 하며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 멤버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끼어드는 내 목소리에 권력 다툼 중인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팬들, 아니, 구독자분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물론 권력 좋지. 권력 최고.
하지만 구독자분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가 사장이니 회장이니 하는 게 아니었다. 오늘의 스타일도 최대 주주 패션 같은 게 아니었고.
이번에 촬영을 진행하는 잡지 ‘멘즈 서클’은 20, 30대 남성을 겨냥한 패션 잡지였으니까.
‘무엇보다 모노크롬이 나온다면 팬들이 구매하는 비율도 낮지 않을 테고.’
좀 더 보는 사람에게 와 닿을 만한 캐릭터성이 필요했다.
그냥 ‘사장보다 윗사람인 회장’이 무슨 재미겠는가! ‘젊은 나이에 다른 임원들을 제치고 올라가 견제받는 회장님’ 정도는 되어야지.
자, 회사엔 어떤 인간 군상이 있던가. 내가 겪어 온 회사 생활을 떠올려 보자. 아니, 그런 안 좋은 기억 떠올리지 말자.
나는 과거 기억 대신 지금까지 봐온 멤버들의 다양한 표정을 떠올리며 사진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될 시추에이션을 구상해나갔다.
잠시 고민한 나는 멤버들이 정한 직위는 전부 무시하고 한 명씩 정리에 나섰다.
“재민이는 온종일 진상 거래처 전화 응대하느라 피곤한 영업 사원!”
“영업 사원은 뭐 하는 건데요?”
뭔지 몰라도 사원으로 정해진 재민은 앞에 있는 아무 자리에나 앉았다.
“준해는 유능한 바람에 일이 너무 많아져서 신경이 예민해진 3년 차 대리……. 승진을 앞둔 사원.”
“앗, 내 자리…….”
역시나 일반 사원으로 정해진 준해는 아쉬운 얼굴로 팀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랑이는 일밖에 모르고 인간미 없는 무서운 팀장님.”
“오.”
“안 돼!”
해랑은 준해가 방금까지 앉아 있던 의자에 냉큼 가서 앉았다. ‘인간미 없는’이란 수식어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저 팀장이란 게 중요했을 뿐.
하나밖에 없는 팀장 자리를 놓친 멤버들은 좌절했다. 아직도 권력을 놓지 못했구나.
“한이는 사장 조카로 회사에 들어와서 빈둥거리는 낙하산 사원.”
“오예.”
혈연 낙하산도 일단 권력이라 좋은 거니.
한이도 사원이지만 설정에 만족한 듯 기뻐하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우형이는…….”
한 사람씩 설정을 부여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우형. 내 역할 분담을 기다리는 그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간절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