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JEM. 재민이 팀 미로에서 활동할 때의 활동명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활동할 정도였으니 본명을 쓰지 않던 것도 당연한 일.
‘로아 씨가 재민이보고 쩨미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었지.’
처음엔 그냥 재민이란 이름을 귀엽게 부르는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활동명에 조금 억양을 넣어서 부른 것이었다.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팀이어서인지 외국인들도 부르기 쉽도록 지은 듯했다. 거기에 한국 이름과 비슷하기도 하니 기억하기도 쉬웠고.
그리고 JEM이냐며 묻는 이 SNS 글의 주인공은 바로 제이케인이었다. 저번에 팀 미로가 나갔던 댄스 대회 우승팀의 일원이자, 멤버들이 알아봤던 그 사람!
‘재민이랑 아는 사이인가?’
그는 재민의 쇼케이스 팬미팅 개인 무대 영상을 공유하며 재민이 아이돌인 줄 몰랐다는 멘트를 남겼다.
내용을 보니 미로 팀원으로 알았던 듯하지만 이렇게 콕 집어서 언급할 줄이야.
“재민이 너 이거 봤어?”
“저희도 지금 들어서 그 얘기 하고 있었는데.”
마침 쇼케이스 팬미팅 이후로 활동을 위해 주구장창 멤버들과 소통하며 같이 움직이는 시기라 곧바로 재민과 마주칠 수 있었다. 물어보니 멤버들도 이미 그 얘기 중이라며 반응했다.
“아는 사이야?”
“저랑 안다기보단 단장 형이랑 아는 거죠. 전 뒤에서 인사만 몇 번.”
“와. 월드 클래스~.”
옆에서 한이가 치켜세우자 재민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자기도 이렇게 언급될지 몰랐다는 듯한 반응을 보니, 그의 말대로 친분이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냥 서로 얼굴은 아는 사이?
“그래도 영상까지 공유해준 거 보면 인상 깊었나 봐. 하긴 무대 엄청났지.”
“주인 님이 봐도 저 잘한 것 같아요?”
“그걸 말이라고 하니.”
팬들의 그 ‘무대 위에 한 마리의 나비가 날아다녔다.’ 하는 식의 주접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반응이 좋았는지 모를 법도 하지.
그래도 그 무대가 그냥 무대던가. 무려 레벨 10짜리……. 아니, 이런 세속적인 단위는 그만두자.
“팬들은 지금도 다시 보기로 종일 보고 있다더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인터넷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토해내는 건지 컬러즈들이 있는 공간에는 24시간 내내 반응이 끊이지 않았다.
밥 먹다가도 실실 웃음이 나오고, 출퇴근하면서도 가슴이 찡하고. 그런 컬러즈가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껏 호평에 박한 대우를 받아왔던 멤버들에게 나는 ‘잘했다. 너도 잘했다. 너도. 너도.’ 하며 한차례 광범위 칭찬을 날렸다.
한 단계 성장을 이뤄낸 만큼 재민 본인에게도 만족스러운 무대였는지 칭찬을 듣고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나 팬들뿐만 아니라 프로 댄서 눈에도 띌 만큼 잘한 거겠지.’
댄스 대회 현장 반응을 보고 제이케인이 얼마나 유명한지는 체감할 수 있었다. 바다 건너 국적이 다른 모노크롬 멤버들도 한눈에 알아보던 사람이었으니.
그런 사람이 언급해 주면 모노크롬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지고 볼 터였다. 실제로도 재민의 개인 무대 클립 영상엔 외국어 댓글들이 많이 늘어나 있었다.
‘댄스 무대인 것도 한몫했을 테고.’
한국어 가사가 들어간 다른 멤버들의 개인 무대와 달리, 댄스 무대는 한국어를 몰라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제이케인을 통해 모노크롬의 영상에 유입된 사람들과는 반대로, 컬러즈는 모노크롬을 통해 제이케인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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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이 영상 올린 사람 누군데..? 유명한 사람이야??
└되게 유명한 프로 댄서래
└채널 구독자 200만명 넘는다는디
└허류ㅠㅠ 왜 조회수 갑자기 늘어나나 했네. 울 몬클이들 해외로 뻗어나가는 거야?
└대표가 못 다 이룬 꿈 몬클은 가능하다
└춤알못인 내가 봐도 재민이 무대 보통은 아니다 싶었지ㅠㅠㅠ
└내가 다 뿌듯해 진짜루ㅜㅜㅜ 우리 자랑거리야
└댓글에 한국인 발견해서 들어가봤는데 이거 우리 재민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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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가 발견했다는 댓글의 한국인. 그건 바로 팀 미로의 단장, 정민후였다.
제이케인이 미로 팀원이었던 재민을 알아보자 그와 아는 사이인 민후가 대신 답변을 한 듯했다.
‘이 사람이 진짜 월드 클래스 아냐?’
오프에선 재민의 아는 동네 형 같은 친숙한 분위기였는데, 이렇게 유명인과 영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세상 사람 같기도 했다.
그리고 컬러즈는 그 댓글을 타고 민후의 SNS로 들어가서 발견했는지 한 사진을 첨부해 올렸다.
바로, 댄스 대회의 준우승 트로피를 들고 찍은 팀 미로의 단체 사진.
재민은 그 사진에서도 역시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선명한 금발은 내 눈에도, 컬러즈의 눈에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번 앨범 활동을 위해 재민은 다시 그때의 금발 염색 머리로 돌아왔으니까.
얼굴은 가렸어도 같은 헤어임을 확인했으니 팬들이 알아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지금껏 재민의 댄스팀 시절을 알지 못했던 컬러즈는 바로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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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저 사진 재민이 돌아오기 전인가???
└사진 올라온 날짜 보면 다시 돌아오고 난 다음 아니야?
└검색해보니까 대회가 저때 있었던 건 맞는 것 같다?!
└허러럴 맞다맞아
└복귀 공지 올라왔을 때랑 날짜 얼마 차이 안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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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설마 전에 미국이 그건가?????
그때 멤버들 다같이 미국 가있었잖아
└미쳣다 맞나봐ㅠㅠㅠ
└ㅁㅈ 뷰이라이브한거 저날 직후였잖아
└그래서 비밀이라고 한거? 허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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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때 멤버들 이번 뮤비 찍으러 미국 갔었고 거기에 재민이는 대회까지 하고 온 거 맞아?
└ㅇㅇㅇ 그래서 재민이 금발인듯ㅠㅠㅠㅠㅠㅠ
└그럼 멤버들도 재민이 대회 나간거 봤을까?
└출국 날짜가 달랐을 수도 있고.. 어쨌든 재민이 일정에 맞췄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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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뉴마는? 왜? 이걸?? 숨기고 있었대??
└그러게;;;;;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녀도 모자랄 것을
└여윽씨 수납 전문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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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들은 날짜를 보고 여러모로 아귀가 맞아떨어지니 금세 추측을 이어나갔다.
멤버들이 다 같이 출국하여 재민이 대회를 보러 간 것까지는 추측하지 못했지만. 슬프게도 출국일에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지 못한 탓에.
그리고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뉴마도 한 소리를 들었다.
‘으음……. 이걸 숨겼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재민의 일정 중 반은 모노크롬 멤버로서가 아니라 미로 팀원으로 한 활동이라 뉴마가 마음대로 공개하기는 어려웠다.
모노크롬뿐만 아니라 팀 미로의 활동 일정까지 연관되어 있었으니까.
‘그래도 다른 엔터사였으면 동네방네 자랑했으려나?’
물론 나도 자랑하고 싶었지! 그래도 그 상황이라는 게 말이다.
복귀 직후에 시끌시끌할 때라, 뷰이라이브도 쉬다가 미국 갔을 때쯤에야 겨우 하기 시작한 거였고.
그 이후로 활동도 한 번 마치고 시일이 지나 모두의 기억에서도 슬슬 흐릿해져 가는 듯하지만, 당시엔 여러모로 모든 활동이 조심스러웠다.
‘그때는 재민이가 돌아온 모노크롬을 어색해하는 팬들도 좀 있었고.’
지금 이런 반응들을 보니 이제 팬덤도 많이 안정되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어느새 다른 멤버들을 부르던 것처럼 자연스레 ‘우리 재민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컬러즈의 입을 통해 사진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그 사진을 올린 당사자인 민후에게서 연락이 왔다.
[팬분들이 보신 것 같은데…… 혹시 문제 되는 건 아니겠죠?]
“아뇨, 아뇨! 전혀요.”
꽤 전에 올린 사진인데 뒤늦게 반응이 늘어나자 걱정이 되었나 보다.
재민이 스트릿댄스 팀에서 활동했던 것을 뉴마에선 공개하지 않았는데 자신 때문에 의도치 않게 밝혀진 게 아닐까 하고.
‘우린 그냥 염치없어서 그런 거였지만.’
그룹에서 방출된 후에 일반인 신분으로 활동한 것을 뉴마가 무슨 염치로 밝히겠는가. 밝히고 안 밝히고는 뉴마가 결정할 게 아니라 재민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민후도 그 당사자인 재민의 반응이 궁금했는지 내게 물었다.
[혹시 재민이는 별말 안 하던가요?]
“아까 봤는데 크게 신경 안 쓰더라고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이전엔 그룹에 영향을 줄까 봐 얼굴도 이름도 숨겼지만, 이제는 다시 멤버니까.
재민과 JEM을 연관 지어 부르는데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얹혀 있었을 돌이 이제는 사라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괜찮아져 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이참에 저도 허락받을 게 있는데…….”
기왕 밝혀진 김에 미국에서 찍은 비하인드, 그중에 특히 연습실과 대회장 앞에서 찍은 영상 등을 공개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했다.
연습실에선 다른 팀원들이 같이 찍혀있었고, 공개하면 재민이 속했던 팀에 관한 얘기가 늘어날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당연히 괜찮죠. 저희도 활동하는 팀인데 덕분에 인지도 생기면 좋은 일이고.]
애초에 댄스 쪽에선 세계적으로 인지도 있는 팀 미로가 모노크롬 덕분에 인지도가 생긴다고 할 건 아닌 듯하지만…….
‘뭐, 대충 서로 윈윈이라고 치자.’
컬러즈가 모노크롬의 4인 활동에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국에서 재민 없이 네 명이 찍은 영상들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이제 컬러즈도 재민이 대회 일정으로 빠진 것까지 이해할 수 있을 테니 그 영상을 전부 올릴 때가 되었다.
“후후…… 후후후…….”
통화를 마친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유례없던 컨텐츠 풍년! 무려 저번 앨범 준비 기간부터 묵혀 온 떡밥까지 끌어 모아 우르르 쏟아낼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모노크롬 공식 채널의 과거 업로드 빈도를 살펴보고는 또 얼마나 죄책감이 들었던가.
컬러즈도 밀려드는 떡밥의 홍수에 쓸려나가는 경험을 한번 해 봐야지.
‘이런 걸 하드 털이라고 하던가.’
팬들이 소속사에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 바로 소속사 컴퓨터 하드 속에 잠들어 있던 컨텐츠들을 푸는 것.
이전 LA에서 찍은 영상들도 바빠서 확인을 미루고 있던 차라 많은 것들이 하드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영상을 어떻게 편집할지 등의 기획은 담당 직원들이 하겠지만 나도 일단 확인에 나섰다.
멤버들이 내내 셀프캠을 들고 다녔으니 예상대로 제법 많은 양. 일정을 같이했기 때문에 대부분 나도 봤던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모르는 배경으로 찍힌 영상이 하나 있었다.
‘이건 뭐야. 멤버들이 찍은 건가?’
잘 보니 호텔 객실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멤버들이 말했던 그 ‘옷 연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옷 가지고 이런 재밌는 걸 하고 있었단 말이야……?’
이 녀석들…… 돈쭐을 내줘야겠는걸.
영상 속에서 멤버들이 입고 있는 저 옷들을 쇼핑하며 얼마나 즐거웠던가. 그 기억이 떠오르니 또 의욕이 솟아올랐다.
두꺼운 외투로 둘둘 싸매고 다녀야 하는 겨울과 달리, 이제 날이 따뜻해져서 비교적 다양한 패션을 구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 앨범이 청량 컨셉이니 그에 맞춰서 사복도 화사한 스타일로 입혀 보면 좋을 테고.
내 머릿속엔 스타일리스트와 의견을 나눠 볼 여러 의상 조합들이 착착 쌓여갔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이젠 안 봐도 대충 어떻게 완성될지 예상이 간단 말이지.’
멤버들의 옷 연구에 이어서 덩달아 패션에 대한 학구열에 불타올라 나는 한동안 쇼핑몰 사진을 뒤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