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쟨 원래 겁 없어요.”
매니저로 붙은 민형이 옆에서 같이 모니터를 지켜보며 말했다. 짧은 기간이었어도 내내 붙어 다녔던 매니저답게 그는 멤버들을 잘 알고 있었다.
‘뭐야. 그럼 아까 물어본 건…….’
그냥 맘대로 소리 지르고 싶어서 물어본 거였나.
앨범 제작이 텀을 두지 않고 이어지다 보니 계속 작은 소리로 말해야 하는 게 그간 답답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멤버들은 한이라는 방해물을 하나 더 얻었다. 방송은 분량을 더 얻게 되었고.
해랑을 방패 삼아 바짝 붙어 다니던 준해는 이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으으……. 귀신은 무서운 게 아냐. 귀신은 무섭지 않다.”
“아냐. 귀신은 무서워.”
그 옆에서 찬물을 뿌리는 재민. 그러나 준해는 꿋꿋하게 자기세뇌를 이어나갔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했, 으아아악!”
이번엔 그들 앞에 정말로 연기자가 나타났다. 멤버들은 혼비백산하며 반대 방향으로 도망갔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면서 결국은 귀신에 놀라는구나.’
하지만 저렇게 놀라는 것도 이해는 갔다. 나는 밝은 데서 봤는데도 정말 귀신인 줄 알고 심장이 덜컹했다고.
그 핏기 없는 얼굴을 저런 공간에서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
방금까지만 해도 네가 앞에 서라느니 뒤에 서라느니 하면서 똘똘 뭉쳐 다니던 멤버들은 결국 도망치느라 여러 갈래로 갈라져 버렸다.
“악! 길 잘못 골랐어! 해랑 형 따라갔어야 했는데.”
준해는 우형과 단둘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잘못 골랐다며 후회했다.
“야. 걔는 너무 인간미가 없어서 오히려 옆에 있으면 무서워.”
“그런가?”
항상 멤버를 먼저 생각하던 리더도, 생존이 걸리니 멤버 평에 박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해랑은…….’
나는 그 옆 모니터에 비친 다른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 무슨 말 좀 하면서 걸어.”
“…….”
“형? 형 맞는 거지? 귀신 아니지?”
긴장한 것인지, 게임에 몰입한 것인지 심각한 표정으로 열쇠 찾기에 열중한 해랑.
그 뒤에 붙은 재민은 무슨 영화를 봤는지 혼자 괴담 설정을 덧붙이고 있었다.
“네 명은 저기 따로 있고. 한이가 안 보이네요.”
내 말에 제작진도 모니터를 전환하며 한이를 비추는 카메라를 찾았다.
“앗. 찾았어요. 한이 씨 이쪽에 계시네요.”
“……그런데 왜 저기도 두 사람이죠……?”
“네?!”
한이는 찾았는데, 어째서인지 이쪽도 두 사람이었다.
멤버가 다섯 명이고, 나머지 네 명은 각자 둘씩 모여 있는데 혼자 있어야 할 한이가 또 누군가와 함께 있다……?
순간 섬뜩한 기분이 엄습하려던 때.
“아. 저희 연기자분이시네요.”
“하아. 깜짝이야.”
뭐야. 무서울 뻔했잖아.
김이 빠져서 소름이 돋으려다 들어가 버렸다.
‘근데…… 쟤는 귀신 붙잡고 뭐 하는 거야……?’
겁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한이가 귀신 분장 연기자를 붙잡고 뭔가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워낙 낯을 안 가리는 건 알고 있었는데 특유의 사교성을 여기서 발휘한다고?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모종의 대화가 끝났는지 곧바로 상황실로 연기자의 무전이 들려왔다.
[저……. 한이 씨가 딜을 요청하셨는데요.]
응……?
뜬금없는 내용을 담은 무전에 작가가 곧바로 응답했다.
“무슨 딜을요?”
[한이 씨가 전원 탈출 열쇠를 벌써 찾으셨다고…….]
“아, 앗.”
“그러면 게임 금방 끝나는 거 아니에요?”
“전원 합류해서 바로 탈출하신다면요…….”
내가 분량을 걱정하자 작가도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사실 저희가 걱정하던 점이 그거였거든요. 준비된 함정이 공포 요소뿐이라 담력이 강한 분이 계시면 열쇠를 찾기 쉬워서 촬영이 빨리 끝난단 점이요…….”
아. 촬영 전에 미숙할 수 있다고 했던 게 아직 그런 점이 보완되지 않아서였나.
그리고 하필 한이가 제작진이 가장 바라지 않았던 일을 그대로 실현해버린 상황이었다.
“그래서 한이 씨는 무슨 딜을……?”
[바로 탈출 안 하는 대신 함정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면 멤버들을 몰아넣겠다고…….]
“저희랑 손을 잡겠다는 거네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한이는 멤버들을 배신하고 엑스맨이 되겠다고 자청한 것이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이던 작가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녀석. 방송을 생각할 줄 아는데?’
사실 얼굴 비치러 나온 건데 금방 끝나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녹화가 금방 끝나버리면 제작진은 그걸 어떻게든 분량 채워 편집해야 하니 고생할 테고.
한이의 딜을 전해 들은 제작진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괜찮지 않나요? 대신 한이 씨에게 상품을 몰아드리는 거로.”
“당장은 괜찮은데, 그럼 이게 탈출 게임이 아니라 나머지 멤버를 속이는 깜짝카메라 컨텐츠가 되어버린단 말이지. 깜짝카메라는 패턴이 읽히면 무용지물이라 매번 똑같은 패턴으로 이어갈 수가 없고.”
“음……. 한 번은 어찌어찌 잘 넘겨도 다음엔 못 넘긴다는 말씀이시죠?”
제작진은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장기간 제작할 컨텐츠로 기획했는데 이 문제를 보완하지 못하면 일회성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고민.
한이가 열쇠를 금방 찾은 게 잘못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닥쳤을 고민이 너무 빨리 찾아와버려서 당황한 모습이었다.
‘저러다가 한이가 귀신을 붙잡고 대화하는 걸 다른 멤버들한테 들키면 게임 끝인데.’
모노크롬으로 시작한 컨텐츠가 금방 끝나버리는 건 원치 않았기에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지켜봤다.
멤버들의 경로가 겹치기 전에 무전을 하면 일단 한이가 도망칠 수라도 있으니까.
내가 잡은 첫 예능 스케줄이 성패의 갈림길에 서는 바람에 별별 잡생각이 드는 와중에, 어두운 화면에서 시작된 내 사고는 뜬금없는 방향으로 튀어 나갔다.
“마피아 게임이란 거 있잖아요……?”
밤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거.
귀신도 어두운 밤에 나타나고. 마피아도 밤에 고개를 들고.
“멤버들한테도 마피아를 잡을 기회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요?”
그러면 깜짝카메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적어도 게임 형식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지금 생각난 건 딱 여기까지인데…….”
제작진은 내 발언에 뭔가 희망을 얻은 듯 몸을 이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발상만 떠올랐을 뿐, 자세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일단 한이부터 다시 출발시키죠.”
모니터를 확인하니 상황실에서 회의가 이어지는 동안 한이는 연기자와 분장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놀라운 사교성.
함정 및 열쇠 위치와 몇 가지 지시 사항을 전달받은 한이는 다시 홀로 멤버들을 찾으러 떠났다.
***
“한이 잃어버렸나 봐.”
어느새 한이를 제외한 네 명이 모두 합류한 상태였다. 다 같이 돌아다녀 봐도 한이는 보이지를 않았다.
“붙잡혀서 못 움직이고 있는 거 아냐?”
“으……. 끔찍해.”
합류하면서도 귀신을 몇 번 더 마주쳤던 멤버들. 그 리얼한 분장을 떠올리며 준해가 자신의 팔을 문질렀다.
“열쇠 찾아야 하는데 멤버까지 잃어버려서 어떡하냐?”
“우리 한이 형 빼고 컴백하는 거야?”
오싹한 분위기에 내내 긴장 상태를 유지한 멤버들의 사고는 극단적인 가정으로까지 발전했다.
“누구 한이 형 보셨어요……?”
“제발 아무도 없는 데에 대고 말 걸지 마…….”
재민이 한 문을 열면서 한이를 찾자 우형이 거의 울상이 되어 말렸다. 허공에 말 걸다가 진짜 뭔가 나타날 것 같다면서.
“유한이 어린이를 찾습니다. 키 180 언저리……. 귀 두 개, 입 하나…….”
“아닌 사람 찾는 게 더 무서우니까 그만해.”
“그냥 한이 버리고…….”
기어이 한이를 버리고 가자는 의견이 해랑의 입에서 나오려던 찰나.
“아, 겨우 찾았네! 다들 어디 있었어!”
“크흠.”
한이가 복도 건너편에서 큰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해랑은 아무 말도 안 한 척 헛기침을 내뱉으며 멤버들과 함께 그를 반겼다.
“너야말로 어디 있었어!”
“나 이거 열쇠.”
“네가 영웅이다.”
열쇠와 함께 한이까지 찾아다니느라 정신적으로 고생했던 멤버들은 그가 열쇠를 꺼내 들자 전 뒤집듯이 태도가 돌변했다.
한이가 꺼낸 것은 먼저 찾았던 전원 탈출 열쇠가 아니라, 제작진에게 위치를 전해 듣고 찾아온 1인 탈출 열쇠.
[잠시 후, 탈출구가 5분간 열립니다.]
타이밍 좋게 1차 출구 오픈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세트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 먼저 나가게 해 주면 안 돼?”
“너 혼자 출구로 가야 돼.”
“그건 싫어.”
재민이 먼저 나가겠다고 손을 들었지만 혼자 떨어져 움직이긴 싫었는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열쇠를 찾았다고 바로 탈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출구로 가는 길에도 귀신들이 포진되어 있었으니까.
“누구 나갈 사람 있어?”
우형과 준해는 재민과 같은 이유로 1인 탈출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 기껏 열쇠를 찾았건만 탈출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해랑이는?”
“해랑 형 방패로 써야 하니까 안 돼.”
“내가 방패였다고?”
“한이는?”
“나 먼저 나가면 너무 분량 없잖아.”
혼자 나가긴 무섭고, 해랑은 방패로 써야 해서 안 되고, 분량도 뽑아야겠고.
“그래. 다섯 명이 한 몸처럼 간다.”
우형은 이 이기적인 사정들을 의리로 포장해냈다. 그렇게 1차 출구 오픈은 넘어가기로 멤버들의 의견이 통일되었다.
“그리고 오면서 찾았는데 다른 열쇠 있는 곳 힌트 같거든?”
한이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펴들었다.
이것은 혹여나 열쇠를 못 찾고 끝나는 일이 없도록 제작진이 원래 비치해 두었던 힌트 종이였다.
한이의 손에 들어가 교란 작전을 펼칠 좋은 미끼가 되어버렸지만.
“뭐야, 이게? 불빛을 등지고 세 개의 흔적을 지날 때까지 직진…….”
“비상구 등 말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때부터 엑스맨 한이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기 맞아? 들어가 보자.”
“안에 뭐 있으면 어떡해.”
“그럼 내가 열 테니까 거기서 안에 뭐 있는지만 확인해 봐.”
멤버들은 문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으면 안심이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이가 “하나, 둘.” 하고 작은 신호와 함께 문을 열자.
“와아아악!”
“아악!”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연기자가 튀어나오고 멤버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떨어지지 마! 잡혀도 풀어줄 수 있으니까!”
그나마 이성적인 해랑이 그 와중에 멤버들을 결집시켰다.
다섯 명이 모여 있다는 것은 한이라는 폭탄을 함께 안고 있다는 뜻이란 건 꿈에도 모른 채로.
그렇게 멤버들은 제작진이 준비해 둔 온갖 함정을 다 밟으며 전원 탈출 열쇠가 있던 그곳에 도착했다.
“힌트에 적힌 데 여기 아냐? 왜 없어?”
그야 열쇠는 진즉에 한이의 주머니 속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열쇠가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갑자기 세트장 내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긴급 안내입니다. 멤버 중 한 명의 몸에 귀신이 빙의했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멤버가 전원 탈출 열쇠를 먼저 훔쳐 갔다는데요!]
“네……?”
갑작스러운 판타지 설정 추가에 멤버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그 와중에 재민은 혼자 입을 막으며 해랑을 쳐다봤다. 해랑과 단둘이 떨어졌을 때 귀신이 아니냐며 의심했던 게 실현되어버린 것이다.
“형, 설마 아까……?”
“왜? 해랑이 무슨 일 있었어?!”
그저 열쇠 찾기에 집중했을 뿐인 해랑은 모여드는 시선에 당황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마지막 출구 오픈 전까지 빙의자를 찾아내시면 됩니다. 현관 중앙에 퇴마 의자가 설치되어 있으니, 다수결로 지목한 멤버를 그곳에 앉혀 빙의자인지를 가려내주세요!]
“찾으면 나갈 수 있나요?”
[퇴마에 성공하면 열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만 주의하실 점은, 빙의자로 잘못 지목돼 퇴마 의자에 앉으면 이곳 귀신들의 제물이 됩니다.]
“제물?!”
한마디로 탈락이란 소리지만 상당히 꺼림칙한 명칭이었다.
“마피아다.”
준해가 추가된 규칙도 한 줄 요약으로 정확히 집어냈다.
안내 방송이 끝나자마자 멤버들 사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바로 이 순간 한 명이 나머지 네 명을 속이고 있었다.
“누구야.”
방금까지 서로 의지하던 멤버들은 의심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동료였는데 순간 모두가 적으로 보였다.
“언제? 언제부터 빙의했단 건데? 처음부터?”
“그러면 소름.”
“한이 너 아까 혼자 돌아다녔지!”
멤버들의 의심은 혼자 떨어져 다녔던 한이에게 향했다.
방금까지 아이디어에 살을 덧붙이는 회의가 이어졌기 때문에 한이도 미리 듣지 못했던 규칙. 그러나 그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다시 멤버들과 합류하기 위해 출발하기 전, 주인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이야. 너…… 연기할 수 있지?]
한이는 멤버들의 의심 어린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나 진짜 고생하면서 열쇠 찾아왔는데…….”
그리고 진심으로 억울하단 표정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