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유아이 레코드의 컨텐츠 제작 부서.
시대에 맞춰 나가야 한다는 윗선의 요구로 급하게 신설된 이 부서는 채널 오픈이 바로 앞으로 닥쳐와 고민이 많았다.
“SPID는 스케줄을 맞추기 어렵다고 하네요.”
“음. 급하게 섭외 요청을 넣었으니 어쩔 수 없지…….”
활동을 앞둔 아이돌 그룹 중 가장 대형인 SPID는 섭외 실패.
시일에 맞춰 컨텐츠 기틀은 어떻게든 잡아놨건만, 이들은 출연자 섭외 단계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은 컴백 예정일이 잡혀있거나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 목록을 뽑아놓고 고민에 빠졌다.
“아이리스가 마침 컴백일을 조금 앞당겨서 시기는 제일 알맞지 않나요?”
“솔직히 처음은 좀 더 팬덤 성향이 강한 남자 아이돌로 갔으면 좋겠단 말이야.”
PD의 의견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같은 아이돌 그룹이라도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분명히 차이점이 있었다.
평균적으로 걸그룹은 보이그룹보다 대중적인 성향이 강했고, 보이그룹은 걸그룹보다 팬덤 성향이 강했다.
보이그룹 팬덤이 사소한 컨텐츠까지 전부 챙겨 보는 비율이 높았고, 아직 아무 기반도 없는 신생 채널에는 그런 팬덤의 조회 수가 필요했다.
“남자 아이돌이라면…….”
목록을 훑어보던 작가가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사실 모험일 수 있는데…… 모노크롬은 어떨까요?”
“모노크롬? 아. 그 멤버 바뀐…….”
시일이 꽤 지났건만 아직도 모노크롬은 멤버 교체된 그룹으로 칭하는 게 가장 빨랐다.
멤버 교체 떡밥은 지나간 지 오래지만, 돌대회와 스캔들 건이 연달아 터지며 그나마 이름이 조금 알려진 상태.
작가는 그런 점을 꼽으며 왜 자신이 모노크롬을 추천하는지 길게 설명했다.
“인지도가 조금 부족하단 점이 걸리긴 하는데 신인보다는 코어 팬덤 확실하고, 이미지가 안 좋은 것도 아니고요.”
자신들도 이제야 처음 발을 내딛는 신생 채널인데 인기 그룹만 찾다가는 오픈이 차일피일 미뤄질 수도 있었다. 그랬다간 아마 회사에서 또 눈치를 줄 테고.
논리적인 이유에 PD도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경청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혹시 팬이야?”
“제가 아니고, 사실 친구 언니가 엄청 팬이라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친구 언니지만 자주 만나 정말 친구와도 같은 사이였다.
작가는 그녀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 같이 술을 마셨을 때.
[뉴마 개XX들 홍보를 해야 앨범도 팔리고 사람들이 관심 가지고 볼 거 아냐. 아니, 앨범도 제대로 안 내는 XX할 새X들. 수납만 하는 XX들.]
다른 아이돌 팬 친구들은 ‘우리 애 신곡 나왔다! 밥 살 테니까 티켓팅 좀 도와줘! 콘서트 다녀왔는데 바로 내 앞으로…….’ 하며 원하지 않아도 소식을 들고 오고는 했다.
그러나 모노크롬은 그간 영업하기에도 고민되는 연이은 자가복제곡 발매에, 눈에 띌 만한 활동도 없던 상황.
그런 이유로 모노크롬 활동 소식을 전혀 전해 들어 본 적이 없던 작가는 이 술주정으로 그녀가 컬러즈란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돌 예능 컨텐츠 작가로 들어오게 된 후에도 그 강렬한 리얼 팬반응이 자꾸 머리에 맴돌았던 것이다.
“사실 저희도 이제 시작이라 파일럿 느낌이 강하잖아요?”
다른 곳에서는 여름 납량 특집으로 제작할 만한 컨텐츠를 봄에 시작하는 이유.
지금은 일종의 테스트 기간이고, 조금씩 보완하며 계속 제작하다 보면 여름에 빵 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탓이었다.
그런 사정을 고려해 보면 시기상 모노크롬과 함께하는 것이 굉장히 좋은 선택지일지도 몰랐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누구 다른 의견 있어?”
회의실에 모인 직원들은 다들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며 회의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제작팀은 곧바로 뉴마 엔터테인먼트에 출연 요청을 보냈고,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
촬영장에 도착한 나는 준비하는 스태프들과 먼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제 친구 언니가 컬러즈인데, 모노크롬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력 추천하더라구요.”
작가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딱 그렇게까지만 말했지만, 어쩐지 생략된 내용이 예상이 갔다.
‘뒤에서 또 얼마나 욕을 먹었을지…….’
아마도 ‘뉴마는 아이돌 사업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 아닐까.
윤희가 커뮤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컬러즈의 반응을 자주 지켜봤더니 이제는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아무튼 뉴마가 욕먹는 건 내가 잘못한 거라 인정.
“촬영은 여기 건물에서 진행될 예정이고요. 저희가 세팅해서 허름해 보일 뿐이지, 얼마 전까지 실제로 사용하던 공간이라 안전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나는 스태프와 함께 멤버들이 촬영하게 될 세트를 먼저 견학했다.
폐건물처럼 꾸며놨지만 원래는 녹음실이 있던 곳이라는 듯, 실제로 작은 방으로 이어진 문이 제법 많았다.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내게 작가가 활발한 목소리로 포부를 밝혔다.
“저희도 처음이라 준비가 조금 미숙할 수는 있는데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미숙하기는요. 불 끄면 분위기는 제대로 날 것 같은데요?”
일단 세트를 봐서는 굉장히 본격적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전등을 전부 켜놔서 그리 무섭지는 않…….
“엄마야!”
설명을 들으며 복도를 걷고 있는데, 옆에서 특수분장을 한 연기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날 놀래려고 튀어나온 건 아니고 그냥 촬영 준비 중이었던 듯했다. 이런 일이 제법 익숙한 경력자였는지 그는 내 놀라는 반응을 보고 만족스러워하며 지나갔다.
“방금 미숙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하하. 좀 리얼하죠?”
‘좀 리얼’ 정도가 아니라 완전 제대로인 것 같은데.
‘……애들 괜찮을까?’
기획안을 보고 어떤 컨텐츠인지는 미리 알고 있었고, 멤버들에게도 대략 어떤 촬영인지 이미 알려준 상태였다.
무서운 걸 잘 보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잘 보고 못 보고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마음의 준비를 하란 의미였지.
‘마음의 준비를 더 해두라고 해야 하나.’
한차례 세트를 돌아본 나는 멤버들이 준비 중인 대기실로 향했다.
의 앨범 홍보 활동이기 때문에 오늘 멤버들 의상은 청량 컨셉에 맞춘 사복 스타일.
스케줄이 생겨 기뻐하던 멤버들은 촬영장으로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정작 촬영 시간이 다가오자 몇 명의 표정엔 점점 불안함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형,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신대?”
준해가 메이크업 받는 우형을 보면서 말하자 옆에서 한이가 끼어들었다.
“아니, 화장 번지잖아.”
“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무서운 거 봤다고 울진 않아.”
“여우 형 메이크업 방수로 해주세요.”
우형이 뭐라 하든 재민은 꿋꿋하게 메이크업 스태프에게 워터프루프를 요청했다.
그렇게 말하는 준해와 재민도 아까부터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팔걸이를 딱딱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인가.
그 옆에서 해랑은 스트레칭하면서 몸을 풀고 있었고.
‘오. 역시 돌대회 금메달 출신.’
피지컬로 뚫고 가려는 건가? 이게 그런 게임은 아닐 텐데……. 아무튼 이쪽은 그나마 여유로운 듯 보였다.
대기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한이가 내게로 다가왔다.
“저 촬영하면서 소리 질러도 돼요?”
앨범 준비 중이라 여전히 목 보호를 위해 볼륨을 낮추고 있는 한이.
이런 걸 묻는다는 건 소리를 지르게 될 거란 얘긴데.
“너도 무서운 거에 약해?”
“음……. 네.”
왜 고민하면서 말하지.
어쨌건 이런 컨텐츠를 찍으면서 큰 소리를 내지 말라는 건 벌칙에 가까웠다. 리액션이 큰 편이 방송엔 좋기도 하고.
“촬영이니까 어쩔 수 없지. 목 아파지지는 않게 조심하고.”
“옙!”
한이는 내 대답을 받고는 어쩐지 후련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자 곧장 진행 순서 설명과 함께 촬영이 시작되었다.
***
“블랙 앤 화이트! 모노크롬입니다!”
오프닝 세트에 일렬로 선 멤버들은 그룹 구호를 외치며 인사했다.
이 뒤로는 앨범에 관한 정보가 짧게 편집되어 들어갈 예정이라, 제작진은 바로 예정된 토크에 들어갔다.
“오늘 뭘 하는지는 알고 계시죠?”
“담력 체험…….”
“아니지. 방 탈출?”
멤버들이 할 것은 열쇠를 찾아 시간 내에 탈출하는 게임. 거기에 공포 추가.
본격적인 게임을 앞두고 분위기 조성을 위한 사전 토크가 이어졌다.
“녹음실이나 공연장에서 귀신이 많이 목격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혹시 모노크롬도 목격한 적이 있나요?”
“저희 회사 녹음실에도 나타나는 귀신이 있어요.”
“그런 게 있어?!”
한이가 말하자 옆에 서 있던 우형이 깜짝 놀라 반응했다.
“형 무서워할까 봐 얘기 안 했는데, 예전에 제가 녹음 순서가 마지막이라…….”
한이는 녹음실에서 본 정체 모를 무언가에 관한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누구보다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 듣는 멤버들.
‘회사에 그런 게 있었다고?’
심각한 표정이 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수맥이라도 흐르는 거 아냐? 땅값 내려가는 거 아냐?
“녹음실에 귀신이 나오면 잘된다는 속설이 있던데, 이번 앨범이 잘되려는 신호가 아니었을까요?”
“네~. 시청자분들이 저희 를 많이 들어주시면 속설이 사실이 되겠죠?”
제작진과 한이가 쿵짝 맞춰 얘기를 마무리하는 동안에도 멤버들은 벌써 긴장 모드에 돌입했다.
제작진은 이 분위기를 타 설명에 들어갔다.
“사실 촬영하는 이곳도 녹음실로 쓰이던 곳인데요.”
“오. 정말요?”
“네. 그러나 보시다시피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데……. 사실은 귀신에게 저주받아 폐쇄되었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랍니다.”
아깐 녹음실에 귀신이 나오면 잘된다고 해놓고 말이 다르잖아!
미리 듣지 못한 배경 설정에 순간 태클을 걸 뻔했지만 나는 묵묵히 촬영을 지켜보았다.
“세트 곳곳에 숨겨진 열쇠에는 각각 탈출할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고, 출구는 총 세 번 열립니다!”
“귀신도 나오는 건가요?”
“네. 도중에 귀신에게 잡히면 1분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대신 다른 멤버가 터치해주면 바로 움직일 수 있어요.”
촬영 전부터 가장 불안해하던 멤버 셋은 잡히는 상황이 벌써 머릿속에 그려지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뭐가 나올지 모르는 어두운 곳에 혼자 서 있어야 하면 질색할 법도.
“규칙은 잘 외우셨나요?”
“준해만 알면 오케이.”
“열쇠, 탈출, 얼음땡!”
“오~. 3줄 요약.”
그리 어려운 규칙은 아니었지만 머리 쓰는 일은 일단 준해에게 전부 맡기는 멤버들.
해랑이 준해를 쳐다보자 준해는 확실히 숙지했는지 짤막하고 확실하게 요약을 해냈다.
“시간 내 전원 탈출에 성공하면, 소정의 상품과 특별 안무 영상 제작 기회를 드립니다! 실패하면? 동물탈과 동물옷을 입고 벌칙 안무 영상으로 대체합니다!”
어쨌든 안무 영상은 찍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과연 거치적거리는 동물탈을 쓰고 군무를 맞출 수 있을 것인가는 별개로 치고. 홍보할 기회는 준다는 점에서 후하다고 할 수 있었다.
“동물옷 정도면…….”
“……이라고 생각하셨죠?”
벌칙 강도에 안심하는 멤버들 앞에서 제작진이 곧바로 멘트를 날렸다.
“동물옷에 핫팩 포함입니다!”
“아. 지옥이다.”
예전에 입어본 적이 있는 걸까. 곧바로 질색하는 멤버들.
규칙 설명이 끝나자 다섯 명은 셀프캠을 들고 곧바로 준비된 세트로 입장하고, 나는 제작진과 함께 상황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악!”
“으아악! 뭐야! 뭔데!”
“와아아악!”
들어가자마자 한이가 소리를 지른 탓에 다른 멤버들도 덩달아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채자 곧바로 그를 향해 원성이 쏟아졌다.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래!”
“뭐 있는 줄 알았지.”
“아! 형 때문에 더 놀란다고오!”
어두컴컴한 공간에 갇혀 마음에 여유가 없는 멤버들은 입장과 동시에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어쨌든 나가긴 해야 하니 다섯 명은 똘똘 뭉쳐 흠칫거리는 발걸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며 열쇠가 있을 만한 곳을 뒤졌다.
“와악! 아하핰!”
“악! 아, 진짜 아무 때나 소리 지르지 마!”
아직 귀신의 그림자, 아니 귀신은 원래 그림자가 없지.
귀신 분장한 연기자의 그림자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또 큰 소리를 낸 한이는 결국 우형에게 등짝을 맞았다.
모니터로 그들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확실히 눈에 보였다. 한이는 소리부터 지른 것치고는 무서워하는 멤버들에 비해 확연히 긴장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쟤는…… 왜 즐거워하는 것 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