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44화 (44/430)

# 44화

“푸핫. 왜 그런 표정이야.”

해랑이 복잡한 얼굴로 변하자 우형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메인 래퍼인 해랑이 멤버 중 가장 보컬 레벨이 낮긴 해도 현재 3이었다. 재민이 복귀했을 때 보컬 레벨이 3이었고. 금방 레벨 4로 올라갔지만.

“걱정되면 보컬 쪽은 한이한테 도움을 받아 봐.”

한이의 디렉팅 덕분인지 재민이 녹음하는 사이에 레벨이 오른 것이 떠올라 말하자 우형이 같이 나섰다.

“그래. 노래 파트 추가할 거면 가사는 준해랑 모여서 얘기해 보면 되겠다.”

좋은 생각. 그러면 편곡에 우형, 보컬 조언에 한이, 작사에 준해.

“그럼 재민이는 뭐 하지?”

“어…… 응원해 달라고 하죠.”

우형의 대답에 어쩐지 심각한 표정이던 해랑도 피식 웃었다.

“아니, 농담이고요. 가장 밝은 애니까 어두운 분위기를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과학적인 이유가.”

실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었지만 벌써 그 효과를 증명하듯이 방금까지만 해도 다 같이 걱정하던 분위기가 한결 편해졌다.

사실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 가장 바빠진 재민을 고려한 것 같았다. 타이틀곡의 완성본이 나온 이후로 재민은 팀 미로와 함께 한창 안무 구상 중이었으니까.

‘갑자기 멤버들한테 각자 임무가 생겨 버렸네.’

나는 들고 있던 업무 다이어리에 메모를 추가했다.

모노크롬 조별과제. 발표자 백해랑.

작업실 회의는 그렇게 마무리하려는데,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해랑이 입을 열었다.

“개인 무대 순서는 저희가 정해도 되는 거죠?”

“그렇지.”

단체곡 무대는 오프닝 엔딩에 위치할 예정이었고, 그 중간에 들어갈 개인 무대 순서는 아직 비어 있는 상황.

내 대답에 해랑은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면 큐시트는 맡겨주시면 안 될까요.”

뭔가 또 다른 쪽의 천재성을 발휘하려는 듯했다.

***

저번 1차 예고 티저에 이어서, 2차 티저가 떴다.

이번엔 사진이 아니라 무려 5초가량의 짧은 영상.

다섯 명이 거리를 걸어가는 것을 조금 멀리서 찍은 장면으로, 비슷한 구도의 다른 장면을 뮤직비디오에 넣게 되어서 이건 티저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여전히 세피아 필터 베이스에, 빛 망울처럼 중간중간 색깔이 아롱아롱 들어간 연출.

느리게 재생되는 영상 뒤로 살짝 깔린 이번 타이틀곡의 반주까지.

짧은 티저지만 이번 앨범의 분위기만은 확실히 전해졌을 터이다. 바로 그 청량한 분위기 말이다.

‘드디어 제대로 된 청량을 보여줄 수 있어!’

하는 마음으로 기세등등하게 티저를 업로드한 후에, 나는 곧바로 컬러즈의 반응이 어떤지 확인에 나섰다.

그리고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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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나 지금 회의 중이라 못봐 스포 좀

혹시.. 악동이야?

└나도 못 보고있는데 청량??악동? 무슨 소리야

└악동이라고????

└내가 봤을 땐 아닌 것 같았는데..아닌가??

└너네가 그렇게 물어보니까 나도 불안하잖아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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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 분위기가 악동은 아닌 것 같은데..?

└티저는 원래 inst 애매하게 깔아서 어떨지는 까봐야지 앎 ㅠㅠㅠㅠ

└이래놓고 찐청량이 아니라고? 설마

└뉴마 사전에 청량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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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줄 알고 확대하려고 눌렀다가 애들 움직이길래 깜짝 놀라서 폰 떨굼

액정깨졌다 ㅅX ㅠㅠㅠㅠ 내가 액땜했으니까 악동 아닐거야 ㅠㅠㅠㅠ!!!

└모두 이 컬러즈의 희생을 기려라

└너의 희생 잊지 않을게…

└그래 아닐거야 ㅠㅠㅠㅠㅠㅠ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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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우리의 컬러즈는 아직 제대로 된 청량을 맛보지 못해서 청량(을 가장한 악동) 컨셉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 티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아닌지 토론의 장이 열려 있던 것이다.

‘왜 불안에 떠는 거야!’

좋아하는 반응을 볼 생각에 한껏 기대에 부풀었건만 의외의 상황을 마주한 나는 푸시시 식어버렸다.

기껏 준비한 청량인데 왜 맛보질 못하니…….

‘그건가. 먹어본 사람이어야 먹을 줄 안다는.’

컬러즈는 처음 보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갈팡질팡하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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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저 비주얼이면 악동이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만 그래..?

└계속 보니까 악동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그래 컨셉이 뭐가 중요해 몬클인데

└ㅁㅈ 이번엔 스타일도 찰떡이야 이 정도면 대만족ㅠㅠ

└몰라 애들 너무 이뻐 헠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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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악동을 받아들이는 팬들까지.

‘악동 아니야!’

답답하지만 내가 나서서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떡밥은 좋지만 설마 또?’ 하는 모습들을 나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건 티저 공개의 시작에 불과했다.

하루걸러 순차적으로 뜨는 멤버별 티저 사진에 컬러즈의 의문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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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찐이다.

이건 진짜 리얼청량이다 정황상 100%

└아 ㅁㅊ 찐청량인가봐 세상에

└저 아련한 눈빛에 악동이다? 그건 있을 수가 없다.

└저게 악동이면 뉴마가 미친거지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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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티저 흑백인데 색깔 하나씩 포인트 있는거 컬러즈라서 그런거냐고 ㅠㅠㅠㅠㅠ

사소한거에 감동먹었잖아.. 앨범명부터 눈물 줄줄이야ㅠㅠㅠ

└컬러즈라 행복해ㅠㅠ

└모노크롬이랑 컬러즈 둘 다 표현한거ㅜㅜㅜ천잰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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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내가 미래에서 보고왔어

악동 아니고 청량 맞아. 알려주려고 타임머신 타고왔다

지금 시간관리국에 쫓기고 있는데 이것만 스포하고 갈게 노래 엄청 좋고 노벨음악상 받았@#&%@%

└성지순례하고 갑니다

└그래서 로또번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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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즈가 드디어 청량을 받아들임과 함께 점점 축제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그래. 이 반응이지!’

만족할 만한 반응을 얻은 나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마치 컬러즈와 동기화하듯 똑같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날 지켜보던 윤희는 날카로운 한마디를 남겼다.

“조금…… 커뮤 중독이신 것 같아요.”

“크흠.”

티저 뜨는 며칠 내내 반응을 확인하겠다고 계속 새로고침을 연타하던 걸 들켰나.

좋아지는 반응에 헤실헤실하던 내가 찔려서 표정을 갈무리하자 윤희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처럼 분위기 좋을 때야 괜찮은데, 혹시 나중에 상처 받으실까 봐요.”

“음. 그렇기도 하겠네요…….”

팬들의 반응을 지금까지 가장 많이 지켜봐 온 윤희의 말이니까 일리가 있었다.

멤버들도 직접적인 소통 외에는 일부러라도 전부 보지 않는 듯했고. 그걸 대신하는 것이 윤희의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좋은 글 많으니까 좀 더 보셔도 될 거예요.”

“그쵸?”

조금 더 놀아도 된다고 허락받은 기분으로 난 다시 표정을 풀었다. 이 축제 분위기를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고.

윤희도 좋은 반응이 많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분위기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네요.”

이, 이건 죄책감 공격인가? 칭찬인가?

‘어쨌든 지금 잘하고 있다는 얘기겠지?’

저번 앨범도 반응은 좋았지만 컬러즈의 불신이 지금보다 좀 더 짙었으니까. 팬덤의 분위기도 점점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활동이 있냐, 없냐.’로 싸우기보다는 ‘컨셉이 악동이냐, 아니냐.’로 토론하고 있는 게 더 보기 좋았다.

뭔가 하나씩 해결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나는 또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순조롭게만 가자!’

따뜻해지는 날씨처럼 모노크롬의 활동에도 정말로 봄이 오고 있었다.

***

모노크롬 뷰이라이브 알림이 뜨자 곧바로 시청자 수가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멤버 다섯 명은 컬러즈들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올라오는 채팅을 확인했다.

[몬클이 안녕!!]

[헐 이 시간에 아직 연습실?]

[모노크롬 칼퇴해]

뉴마가 모노크롬을 소처럼 굴려 먹는 게 아닌가 하고 커뮤니티에서 소소하게 말이 나왔던 직후.

배경으로 멤버들이 있는 곳이 연습실이란 것을 알아챈 컬러즈는 멤버들의 퇴근부터 걱정했다.

“안녕~. 티저 뜬 거 봤어요?”

[봤지ㅠㅠㅠㅠ너무 좋아]

[i love u♡♡]

[발매일 빨리 왔으면 좋겠다!]

[스포좀요ㅠㅠㅠㅠㅠㅠ]

“스포? 스포 할 게 뭐가 있지?”

우형이 뒤돌자 눈이 마주친 재민이 “따라라란.” 하면서 시작 반주의 멜로디를 대충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바로 한이가 옆에서 브릿지 부분의 멜로디를 부르며 음을 덮어 버렸다.

거기에 준해까지 동참하여 다른 멜로디를 얹었다.

“준해 너는 다른 노래 같은데?”

“아냐. 잘 들어봐.”

준해는 다시 들어보라며 같은 부분을 한 번 더 불렀지만, 셋이 동시에 각기 다른 부분을 부르니 무슨 노래인지도 알 수 없게 섞여 버렸다.

“들으셨죠?”

[와 이 정도로 스포해줘도 돼요?]

[환상의 화음]

[오늘부터 이게 내 모닝콜이다]

적당히 “따라란. 뜨르른.”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만 듣고도 벌써 노래 칭찬부터 하는 팬들.

멤버들의 드립을 가장 잘 받아주는 것이 그들이었다.

“이번에 뮤비 찍을 때도 재밌었는데. 아. 뮤비 티저 떴나?”

“아직 안 떴지.”

[뮤비도 빨리 보고싶다ㅠㅠ]

[혹시 전에 미국?]

LA에서 한 뷰이라이브에선 야간 촬영용 의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티저에 나온 의상과는 달랐다.

그러나 시기와 컨셉을 보고 알아보는 팬들이 있었던 모양.

“미국?”

“미국이 무슨 소리지.”

사실 정말 비밀 유지 중이었으면 채팅을 넘겨도 될 일이었지만, 멤버들은 어색하게 모르는 척하며 장난스러운 반응을 남겼다.

[헉 아직 비밀이야?]

[누가 말했냐]

[전 아님]

[자수해]

[쟤가 그랬어요 선생님]

티저를 보고 추측하던 컬러즈들은 또 동전 뒤집듯 금세 태도를 바꿨다. 능숙하게 장난을 주고받는 상황에 멤버들도 즐거워하며 웃었다.

“티저 의상 예쁘다는 채팅도 많아요.”

의상도 있었지만 옷 관련해서 또 보여줄 것이 많았다. 호텔에서 쇼핑백을 풀어놓고 멤버들끼리 자체 촬영한 영상도 있었으니까.

발매일 이후에 풀릴 예정이라 이거야말로 정말 비밀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멤버들은 유쾌한 기분이 되어 말했다.

“옷 하면 할 얘기가 많지.”

[뭔데뭔데]

[오]

[해주세요]

“기대해 주세요. 이번에 옷에 좀 신경 썼어요.”

“그렇지. 주인 님이…… 헙.”

“…….”

한이가 무심코 멘트를 얹으려다, 자신의 입에서 나간 소리에 스스로 깜짝 놀라선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옆에 있던 재민이 덩달아 “헙.” 하고 입을 막았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우형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려다가 카메라를 향한 고개를 겨우 고정했다.

“그…… 회사! 회사에서 특별히 신경 써주셨어요.”

[엉?]

[아]

[?]

[글쿠나]

컬러즈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분위기를 흐리고 싶진 않았는지 모호한 말들만 남기면서 채팅을 위로 흘려보냈다.

화면 속에서 시차를 두고 한이가 자세를 낮춰 화면 밖으로 슬쩍 나가는 것이 보였기에 우형은 들고 있던 스마트폰 각도를 살짝 틀었다.

카메라에 비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선 준해가 여전히 입을 막고 있는 한이를 짤짤 흔들었다.

아무 소리도 안 나지만 혼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린 라이브 현장.

‘뭐지. 어떻게 넘어가지, 이 상황?’

우형은 의식의 흐름대로 끊기지 않게 말하며 아직 화면에 남아있는 재민을 슬쩍 돌아봤다.

“하핫.”

그게 끝이냐!

‘주인 님’ 창시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어색한 웃음을 남겼다.

‘이렇게 된 이상.’

우형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해랑의 얼굴에 들이대며 수동 클로즈업했다.

“뭐야.”

“가까이서 보고 싶대서.”

동생 얼굴을 편리한 분위기 전환 수단으로 사용하는 건 미안하게 됐지만, 그런 채팅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해랑의 얼굴 공격은 확실했다.

[콧대ㄷㄷㄷ]

[허헉 가까워]

[앞으로 이 거리감 유지해요]

[앗 제 심장이 아직 준비가]

“나도, 나도.”

재밌어 보이니 곧바로 동참하는 재민에 이어 한 명씩 수동 클로즈업을 거치고, 컬러즈들의 핸드폰 갤러리엔 캡처 이미지가 쌓여갔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넘어가 무사히 라이브를 종료할 수 있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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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플일 수 있는데 미안)오늘 뷰이라이브에서.. 혹시 나만 들었어?

ㅈㅇㄴ이라고..

└그게 뭔데?

└ㅈㅜㅇㅣㄴ님?

└헐 내가 잘못 들은줄

└ㅈㅇㄴ이 누구 말한 건데? 설마 뉴마?

└회사보고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한 거야? 변태ㅅㄲ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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