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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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쇼케는 뭐 하는 거야?
다른 데는 사회자도 있고 기자랑 질답하고 그러던데??
└컬러즈도 쇼케이스 처음이라 몰라ㅠㅠㅠㅠ
└팬미팅이라고 붙은 거 보면 뭔가 더 할 것 같지?
└일단 신곡 첫무대라는 점에서 갈 이유 300퍼 충족…
└뭔진 몰라도 애들 얼굴 볼 거 생각하면 벌써 유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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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해 노래. 한이 형도 노래.”
“응.”
재민이 멤버들을 한 명씩 가리키며 정리에 나섰다.
각자 어떤 개인 무대를 할지 고민할 시간을 가진 멤버들은 이제 얼추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메인 보컬인 한이와 리드 보컬인 준해는 예상대로 노래 무대.
“여우 형도 노래?”
“응. 아마?”
모노크롬의 리드 래퍼이자 서브 보컬인 우형.
자작곡 공개로 탄력을 받은 그는 이번엔 노래를 택했다. 보컬이라기보다는 작곡가로서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다른 가수들이 공연에서 자작곡 공개하는 거 부러웠는데.’
자신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기다니.
공식 음원으로 발매하게 되면 좀 더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그만큼 걱정거리도 생겨나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팬들을 위한 특별 무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들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었다. 주인 또한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제안했던 바였고.
“해랑 형은?”
“음. 아직.”
재민이 묻자 해랑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멤버들이 어떤 무대를 할지 하나둘씩 결정을 내리고 있는데 해랑은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메인 래퍼로 갈 것인가. 메인 댄서로 갈 것인가.
“형. 걸그룹 댄스 해.”
“웬 걸그룹 댄스?”
“아. 형은 못 봤지.”
준해가 갑자기 꺼낸 얘기에 우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팀 미로의 단장 부부가 찾아왔을 때 우형만 혼자 작업실에 있었으니까.
“이 형 특기 생겼어. 엄청 잘해.”
“뭐야. 나도 보여줘.”
“…….”
해랑은 침묵으로 대신 거절했다.
“형 댄스 하면 내가 랩 해야겠다.”
구시렁거리는 우형 옆에서 재민이 대뜸 랩을 하겠다고 나섰다.
메인 댄서인 그는 전부터 장난식으로 해랑의 메인 래퍼 자리를 탐내곤 했다.
이번에도 또 그런 장난인 듯했지만 우형이 그 뜬금없는 이야기에 편승했다.
“이사님한테 말씀드려. 다 시켜주실걸.”
“……아니. 안 할래.”
정작 정말로 하라고 판을 짜주니까 빼는 것을 보고 다들 피식 웃었다.
장난에 장난으로 받아친 것이었지만, 말한 내용은 사실이었다.
주인은 멤버들에게 이번 공연에 개인 무대 시간을 둔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시켜주겠다고 단언했다.
물론 5분간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겠다는 둥, 말도 안 되는 것을 하겠다고 하면 기각당하겠지만…….
‘……아니. 그것도 시켜주실지도.’
상상해 보니, 한다고 하면 정말 무대 위에 이불이라도 깔아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진짜 눕겠다고 할 멤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들 지금껏 못 했던 만큼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으니까.
‘예전 생각나네.’
새로 부임한 주인과 모노크롬 멤버들이 처음 만난 날.
자신감 없이 자작곡을 내고 싶다고 했던 자신에게, 하고 싶은 건 다 하라고 말하던 주인이 생각났다.
그때 자신은 어떤 생각으로 그 말을 마주했던가.
‘……사실 그땐 좀 무서웠던 게 컸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인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억눌린 목소리로 말하기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득한 옛날 같았다.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났는데 여러모로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각자 하고 싶은 것을 정해가는 모습을 보니 리더로서 뿌듯하기도 했다.
랩 무대를 하겠다고 나섰던 재민은 당연히 댄스 무대를 할 테고.
‘해랑이는…….’
리드 래퍼인 우형이 노래 무대를 하게 되면 랩을 선보일 사람은 해랑뿐이었다.
실력이야 확실하니 댄스 무대도 잘할 테고, 랩 무대가 꼭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인과 대화하다 보니, 또 그녀가 진지하게 들어주던 것을 보니. 욕심이 생겼다.
“넌 랩으로 가자.”
“나도 계속 생각해 봤는데 어떻게 무대로 해야 할지 생각나는 게 별로 없어서.”
노래와 다르게 랩으로 무대 하나를 다 채우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개성이 중요한 분야라 다른 사람의 힙합곡을 커버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해랑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형은 눈을 반짝이며 어딘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해 줬으면 하는 거 있어.”
***
이전에 우형이 꺼냈던 해랑의 작곡 얘기.
그땐 공개하기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후에 우형의 설득이 성공한 모양이었다.
이전에 대화를 나눈 뒤 며칠이 지나고 나는 해랑이 작업했다는 곡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작곡을 두 명이나 할 줄 알면 좋은 거 아냐?’
작곡비를 아낄 생각은 없지만…… 자체 제작으로 절약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만큼 다른 데에 돈을 더 바르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룰루랄라 작업실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당사자인 해랑, 그리고 우형과 송준오 피디도 미리 와 있었다.
“별로 들려드릴 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그렇게 생각해도 일단 들어봐야 판단할 수 있으니까.”
해랑 입에서 우형 같은 소리가 나올 줄이야.
우형에게 설득당해 들려주겠다고는 했는데 아직도 해랑은 확신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우형이 천재적이라고 했으니 뭔가 있긴 있는 거겠지.’
지금은 마이 엔터 속 작곡 레벨 숫자보다 경력자의 안목을 믿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나는 머릿속의 능력 수치들을 일부러라도 털어냈다.
곡별로 폴더 안에 넣어 최종, 진짜최종, 진짜진짜최종 같은 멘트를 붙이며 버전별로 정리하던 우형과 달리, 해랑의 폴더 속에는 작업 파일들이 한 군데에 모여 있었다.
숫자와 남들은 알아보지 못할 키워드로 심플하게 정리된 파일명. 이런 데서도 성격이 갈리는구나.
우형과 해랑은 모니터를 보며 몇몇 파일들을 추려냈다. 나름대로 뭘 들려줄지 사전에 상의했던 모양이었다.
작곡 프로그램 화면이 뜨고 곧바로 스피커를 통해 음이 흘러나왔다.
여러 악기로 꾸며지지 않은 심플한 배경 멜로디. 기존에 듣던 곡들과는 달리 어딘가 특색이 있어서 저절로 주의가 집중되었다.
그리고 녹음된 해랑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
마치 중얼거림과도 같은 랩이 이어지고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난 항상 그림자를 향해 서 있어. 눈을 뜨면 밤이기를 기다리며 수없이 마주선 그늘과……)
이어지는 가사 내용은 그러했다. 밝은 빛에 섞이지 못하고 항상 새까만 그림자만 내려다보다 밤이 와야 그나마 안심된다는.
밑도 끝도 없이 어둡게 흘러가는 내용에 나는 왜 해랑이 공개하기 꺼리는지를 알 수 있었다.
‘너무 딥다크하잖아……!’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쳐다본다는 유명한 문구가 떠오르는 다크함이었다.
해랑의 목소리가 유달리 낮아서, 그 목소리 높이만큼이나 더욱더 깊숙이 파고들어 가는 느낌.
아이돌이라고 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돌이 내기엔 확실히 너무나도 어두웠다.
‘이게 그나마 고른 거란 말이지…….’
잔뜩 쌓여있던 다른 작업물들은 더 어둡다는 얘기였다.
작곡을 한다기에 처음 우형의 자작곡을 들었을 때가 생각나서 가볍게 들으러 온 건데. 힙합이란 장르는 잘 몰랐기에 이런 작업물을 마주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치 영화를 보러 왔는데 다큐멘터리가 나온 기분.
모노크롬 단체곡에서 해랑이 랩을 할 땐 미처 못 느꼈던 부분인데, 단독으로 있으니 그의 특색이 확실히 느껴지긴 했다.
곡이 끝나고 나서도 내가 뭐라고 표현을 못 하고 있자 해랑이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개인 무대는 댄스로 가는 게…….”
“근데 이건 진짜 묵혀두기엔 아깝다.”
우형이 왜 천재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껏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숨이 턱 막힌 경험이 있었던가. 그만큼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곡이었다.
아마 공개할 생각이 없어서 더 가감 없이 표현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우형에겐 더 예술성으로 느껴졌던 거고.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 팬들한테 들려줄 만한 곡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음…….”
해랑이 팬 얘기를 꺼내니 더욱더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모노크롬이 고생했던 것을 제일 잘 아는 팬들이니 이런 어두운 감정이 들어간 곡을 내보이면 걱정부터 하게 될 것 같아서.
<기다림의 끝> 또한 결국 그대로 발매하긴 했지만, 가사를 수정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기회를 만들지?’
나중에 모노크롬이 안정되고, 힘든 시기도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나는 입술을 작게 잘근거리며 고민하다가 마음을 정했다.
“하자.”
기회란 건 찾아오길 기다리기보다는 만들다 보면 어떻게든 되더라.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그대로는 어려울 것 같고, 조금 편곡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
내가 송 피디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는 사전 차단하듯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솔직히 전 대중가요파라 제가 직접 맡으면 아마 멜로디 말고 싹 다 뜯어고칠 것 같네요. 제가 손대기엔 무리예요.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이전에 그가 뉴레인에선 할 일이 없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자신도 음악 하던 사람이니 좀 더 아티스트에 맞는 기획을 하고 싶다고.
그러니 개성을 죽이는 쪽으로 가야 한다면 손대고 싶지 않단 의미였다.
자신의 커버리지를 확실히 알고 말하니 신뢰감이 갔다. 문제는 해랑이 그 커버리지에서 벗어났단 점이지만.
“여우형이라면 모를까.”
“저요?”
송 피디가 반대로 우형을 지목하자 우형이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가 가르쳤잖냐.”
“가르친 게 아니라 기본만 알려준 건데요…….”
우형이 송 피디에게 작곡을 배웠다길래 해랑도 그런 줄 알았는데, 해랑은 우형에게 기본기를 배웠다는 듯했다.
똑같이 대중적인 가요를 작곡하는 송 피디와 우형, 그리고 대중성과는 조금…… 아니, 꽤 먼 해랑.
‘해랑이 작곡 스타일은 둘 중에선 우형이한테 더 가깝단 얘기지?’
송 피디는 바로 손을 들었지만 전부터 계속 아쉬워하며 포기하지 못하던 것은 우형이었다.
아마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건 우형일 터.
“우형아. 너밖에 없다.”
“제, 제가요?”
송 피디에 이어 나의 지목까지 받자 우형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해랑까지 그에게 시선을 보내자, 우형은 내가 아까 그랬던 것처럼 입술을 작게 잘근잘근 씹으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편곡 방향성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처럼.
‘이거 진짜 소처럼 굴리는 것 같네.’
뉴마가 모노크롬을 소처럼 굴리는 게 아니냐며 컬러즈들이 걱정하던데.
타이틀곡이 좀 마무리되려나 싶더니 이제 또 다른 과제까지 추가될 판이었다.
“저도 좀…… 머리를 굴려봐야 할 것 같은데요.”
당장 정답을 찾기는 어려운지 우형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래도 일단 자기가 해야 한다면 맡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역시 모노크롬 일로 찾아온 기회는 놓치지 않는 리더.
“단체곡에서 랩 파트 만들 땐 어떻게 하는데?”
똑같은 목소리로 랩을 해도, 단체곡에서 랩을 할 때는 지금처럼 어두운 느낌은 아니지 않던가. 그래서 자작곡을 만들며 직접 해랑이 들어갈 랩 파트까지 작곡했을 우형에게 질문했다.
“기본 멜로디에서 멜로디를 낮추고 비트를 살리고……”
“음. 그럼 반대로 여기에 노래를 넣으면 어떨까.”
우형은 그런 의견을 낸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확실히 노래가 들어가면 듣기는 편해지죠. 그럼 유닛 무대로 하거나, 아니면 해랑이가…….”
이번엔 모두의 시선이 해랑에게 향했다.
“……제가 부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