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40화 (40/430)

# 40화

“연습실에 계셔?”

“네.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한 바퀴 돌고 연습실에서 멤버들이랑 만났다가…….”

만났다가 뭐?

재민은 말을 줄였다. 그 대답을 대신하듯, 연습실에 가까워지자 작게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팀 미로의 단장 부부와 모노크롬 멤버들이 함께 있다는 연습실인데 들려오는 것은 높은 목소리의 노래.

‘일단 모노크롬 노래는 아닌데.’

사실 난 아직 모노크롬과 아이리스 노래 외엔 잘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걸그룹 노래였다.

“이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들어가 보니 문 옆에서 시들시들한 인사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한이와 준해가 지친 표정으로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연습이라도 격하게 했는지 나가떨어진 듯한 모습.

그 옆에 서 있던 팀 미로의 단장, 정민후도 들어온 나를 보고 가볍게 인사하며 머쓱하게 말했다.

“제가 말릴 수도 없어서.”

연습실 중앙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연습실 중앙에는 해랑만 남아 미로의 또 다른 단장인 이로아에게 걸그룹 댄스를 배우고 있었다.

……갑자기 왜?

180이 훌쩍 넘는 해랑과 걸그룹 댄스라니. 일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근데…… 왜 잘하지?’

이게 기존 메댄의 실력인가.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선입견이 앞섰지만, 오히려 그 선입견 때문에 더 신선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다.

바로 옆의 로아가 정석적인 걸그룹 댄스를 보여주고 있어서 대비가 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달까.

둘 다 집중하고 있길래 나와 재민도 방해할 수는 없어서 그대로 옆에 자리를 잡고 구경했다.

‘팔다리가 길쭉하니까 뭘 해도 선이 사네.’

그의 파워풀한 댄스 스타일이 가미되면서 강약이 강조되어 색다른 느낌이 있었다.

음악이 끝나자 한이와 준해가 아무렇게나 기대 있던 자세 그대로 박수를 쳤다.

“잘한다.”

“형, 걸그룹 댄스에 재능 있었네.”

방금 우형과 해랑의 재능에 관해 얘기하다 왔는데. 이렇게 금방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아니, 저게 아까 말한 예체능적 재능인가?

두 사람은 그제야 재민이 나를 데리고 연습실로 돌아온 것을 알아챘다.

“앗. 재밌어서 저도 모르게.”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 로아는 인사 대신 쾌활하게 악수를 청했다.

민후는 이제야 끝났다는 것에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쪽도 참 캐릭터 확실한 부부라니까.

“시간이 남아서 구경하고 있는데, 마침 안무를 짜고 있다지 뭐예요.”

안무 시안은 외부 댄스팀에 맡기고 있지만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논의 후에 조금씩 수정하거나 포인트 안무를 추가하기도 했다.

멤버들은 1차로 나온 곡을 미리 들었으니, 거기에 맞춰 여러모로 생각해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밝은 컨셉이라길래. 걸그룹 노래 중에 밝은 게 많으니까 제가 아는 안무들 알려주다 보니 집중하는 바람에. 하핫.”

“와. 완전 스파르타였어요.”

쉬면서 체력을 회복했는지 그새 쌩쌩해진 준해가 로아의 얘기를 거들었다.

갑자기 시작된 그녀의 스파르타 교육에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해랑만 살아남은 거군. 대충 예상이 가는 그림이었다.

“가르침 잘 받았습니다.”

“아유. 무슨 말씀을.”

한이가 정중하게 배꼽 인사를 건네자 로아가 똑같이 맞받아쳤다.

만난 횟수는 손에 꼽지만 의외로 결이 맞는다고 해야 하나. 저번부터 생각했지만 참 에너지 넘치는 단장들이었다.

***

단장 부부는 주로 프로듀스팀과 연락하게 될 예정이었기에 프로듀스팀에 잠깐 들러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그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빈 회의실을 찾았다.

아직 새 앨범의 타이틀곡은 완성 전이지만, 이 둘에게 미리 연락한 이유가 있었다.

새 활동 준비와 동시에 맡길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댄스 트레이닝에 신곡 안무에.

‘거기에 기존 안무 수정까지.’

내가 뉴마에 없을 때, 그러니까 내가 이 세계에 없을 때의 이야기지만, 윤환이 있을 때는 재민이 있을 때의 곡을 쓰지 못했다.

기존 멤버의 자리를 그대로 다른 멤버가 차지해 버리면 팬들의 반발이 있었을 테니까. 그런 리스크를 져가면서까지 기존 곡을 쓸 이유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재민이 다시 들어왔으니, 윤환이 있을 때의 곡을 쓰기 어려웠다.

게다가 윤환이 있을 땐 모노크롬 방치 시기라 주로 자가복제 곡들이 많았다.

‘윤환이 팬들이 왜 그룹 활동에 회의적이었는지 좀 알 것 같아…….’

그나마 솔로 활동을 할 땐 한 명만 케어하면 되니까, 앨범 제작 비용에서 곡에 투자할 비율을 더 늘릴 수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룹곡보다 솔로곡의 퀄리티가 괜찮았단 뜻이다.

‘6년 차인데 쓸 만한 곡이 이렇게 적다니.’

현재 이 다섯 명으로 할 수 있는 무대는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더군다나 그나마 제대로 활동했던 신인 시절 곡들은 컨셉이 대개 중구난방.

데뷔 멤버로 다시 돌아왔으니 살릴 곡은 되살려야겠다는 마음에 그 안무들을 팀 미로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미리 얘기한 사항이지만, 직접 만나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하니 민후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직 잘 맞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막 맡기셔도 괜찮을까요? 저희도 이렇게 아이돌 안무를 대량으로 맡은 건 처음이라…….”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서 연락드린 거니까 걱정하진 마세요.”

“재민이요?”

재민이 적극 추천했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구나.

내가 이렇게 무한 신뢰감을 보내는 이유는 재민이 맞긴 하지만, 정확히는 그의 레벨이었다.

그대로 말할 수 없었던 나는 대충 웃음으로 무마하며 좀 더 현실적인 이유를 나열했다.

“프로듀스팀이랑 멤버들도 잘 맞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대회도 직접 봤는데 무슨 걱정이 필요하겠어요.”

“그래. 할 수 있다니까.”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는 민후 옆에서 로아가 지원에 나섰다. 그녀는 재민의 동료인 멤버들이 마음에 든 듯 적극적으로 나왔다.

현실을 생각하는 민후와 미래를 생각하는 로아. 두 사람이 단장 포지션이어서 아마 팀이 무탈하게 잘 운영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생각보다 더 자연스레 멤버들과 섞여 있던 모습을 보니 신뢰감이 더욱 상승한 상태였다.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저도 그렇게 믿어요.”

“저희가 잘 안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쉽게 믿으셔도 되나 싶은 건 사실이네요.”

“그거 재민이한테도 말해 주세요.”

사실 사람을 제일 잘 믿어서 걱정되는 건 재민이었으니까.

내가 그렇게 받아치자 두 사람은 파하 웃었다.

“재민이 아무나 잘 믿는 편인 거 알고 계셨어요?”

“조금요……?”

“사기꾼이라도 만날까 봐 걱정이라니까요.”

“에이. 쩨미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지.”

회사가 거의 사기꾼 수준이었는데……. 나는 뜨끔하는 마음에 헛기침으로 표정을 숨겼다.

다행히 두 사람은 나의 그런 수상한 반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예전 기억이 떠올랐는지 금방 화제를 옮겼다.

그렇게 나는 두 사람이 재민과 처음 만났을 때, 그러니까 재민이 그룹에서 퇴출당한 직후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팀원의 건너건너 아는 동생이 춤춘다길래, 어쩌다 우연히 한번 같이 만난 게 처음 본 거였거든요. 댄스팀 하는데 혹시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었어요. 사실 반 정도는 그냥 빈말이었는데.”

“쩨미가 그때 바로 따라왔지.”

“그땐 얘 뭐지? 하고 생각했어요. 사실.”

“누군지도 모르면서 아무나 따라오고 그러니까. 진짜 무슨 집 잃은 강아지 같았다니까요.”

얘기를 듣던 나는 재민의 얼굴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짠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집중하여 듣는 것을 봤는지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고, 처음 봤는데 팀에 당장 들어오라고 하기도 좀 그래서 일단은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재민이가 하는 말이…….”

내 반대편에 앉아 있던 민후는 그 당시를 생각하는 듯이 아무것도 없는 벽을 올려다보더니 크게 숨을 내쉬었다.

“춤은 추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

죄책감 공격. 죄책감 공격!

나는 또 책상 아래로 주먹을 꾹 쥐며 표정 관리를 했다.

‘그렇겠지. 학생 때부터 회사 소속 연습생에 그룹으로 활동하던 애가 갑자기 밖에 내버려졌으니.’

재민은 댄스팀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얼굴을 가렸다. 아마 팀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정체를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는 인맥이라곤 아마 학생 시절 다녔을 댄스 학원이나 같은 연습생, 아이돌 등 전부 이쪽과 관련된 사람들일 터였으니 막막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몇 년 만에 회사로 돌아온 재민이 멤버들과 근황을 얘기하며 ‘좋은 형, 누나를 만났다.’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진짜 구세주를 만났구나.’

회사가 버린 그를 하늘은 버리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안타까운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두 사람도 내게 시선을 건넸다.

“재민이한텐 비밀인데, 다시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솔직히 걱정이 더 컸어요.”

“걱정이요?”

재민에게는 댄스팀이 흔쾌히 보내줬다고만 전해 들었는데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민후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저희가 보호자는 아니지만…… 정말 제대로 재능을 펼치기를 바랐거든요.”

그리고 이 회사가 그럴 만한 환경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아니, 오히려 못 믿을 곳이라서.’

단장 부부는 우리가 불러서 오기도 했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서 온 것이기도 했다.

정말 이 회사가 잘해 줄 수 있을지.

그런 염려를 마주하고 덜컥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회사에 있을 땐 재능을 펼치지 못했다가 나가 있는 동안 훌쩍 성장해서 돌아온 재민.

‘어쩌면, 재민이가 댄스팀에 계속 있었다면 더 재능을 펼쳤을 수도 있는데…….’

두 자릿수를 목전에 두고 있던 재민의 레벨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가 성장해 가는 길에 혹여나 내가 끼어들어 버린 게 아닐까?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자 로아가 책상에 기대듯이 가볍게 상체를 내밀고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들으실 얘긴 아니고요. 그만큼 제대로 잘해보자고요. 저희랑, 애들이랑, 이사님이랑. 같이.”

“같이…….”

그제야 난 상념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회사를 탓하려 한 말은 아니었다. 협업할 파트너로서 솔직하게 털어내고 새롭게 시작해 보자는 의미였다.

같이 응원하고 지켜봐 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제대로 잘해보자. 그 말에 조금 더 책임감을 느낀 나는 진중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

단장 부부는 개인적으로 재민과 더 나눌 이야기가 있던 모양이라 배웅은 재민에게 맡기고 나는 이사실로 돌아왔다.

나올 때와 들어올 때의 마음가짐은 한결 달라져 있었다.

‘완전 멋있어.’

지금껏 모노크롬이나 다른 아이돌이나 연습생이나 다들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팀 미로의 단장 부부는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데도 어른스러움이 느껴졌다.

한 팀의 리더란 그런 걸까. 모노크롬의 리더인 우형도 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긴 하지만 리더로서 행동할 땐 제대로 했었지.

회사의 중요 직책에 있는 나도 좀 더 윗사람다운 면모를 보여야 할 텐데.

그런 생각에 의욕을 가득 충전해서 돌아온 나를 또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이번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저희 일이기도 한데요.”

이전에 뉴레인에서 만났던 그 기획팀장.

어찌 보면 날카로운 인상인 그녀의 눈 아래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아이고. 이쪽도 레드 일로 꽤 고생했나 보네.’

이제는 동업자로서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탈진할 것 같은 그 기분, 나도 느꼈으니까.

“아이리스가 일본 투어를 앞두고 있어서 잘못하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 뻔했거든요.”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요.”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해외 순방 중이라는 대표가 생각났다. 역시 아이리스는 해외 활동도 활발히 하는구나.

모노크롬은 일단 국내 활동에만 전념하는 게 맞겠지……?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일 생각에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 내 앞에서 기획팀장은 말을 이어갔다.

“네. 덕분에요. 감사하다는 말씀도 전해드리고, 사실은 또 드릴 말씀이 있는데…….”

***

버엉.

다시 혼자 남겨진 나는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뭐였지?’

기획팀장이 드릴 말씀이 있다며 꺼낸 이야기는 그것이었다.

사정이 있어 아이리스 컴백일을 앞당기려는데 모노크롬 컴백 예정일과 겹친다고.

예상치도 못했던 얘기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우리도 변경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고 어버버 대답하던 내게, 그녀는 그렇게 꼭 부탁한다는 말만 계속 남기고 돌아갔다. 짙은 다크서클 탓에 어쩐지 더 간절해 보이기도 했다.

잠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자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최 비서를 불러 물었다.

“……컴백일이 겹치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지?”

“같은 소속사끼리 같은 날에 컴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뉴레인은 같은 소속사라고 하기엔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산하 레이블이라 완전히 다른 회사도 아니었다.

그래서 굳이 나한테 미리 사정을 알리며 부탁하러 온 거고.

“디자인팀에서도 1차 공개 티저는 거의 작업 끝냈을 텐데.”

“네. 1차는 이미 완성되었을…….”

“티저 바로 내버려.”

중간 단계를 많이 건너뛴 내 말에 최 비서는 잠시 버퍼링에 걸렸다.

“……네?”

“우리가 선수 친다.”

미안하지만 한껏 의욕이 고양돼서 돌아온 내 눈엔 지금 우리 앞길밖엔 안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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