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7화 (37/430)

# 37화

정적이 내려앉은 와중에 해랑이 헛기침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 어…… 음…….”

이 무슨 당사자 없는 고백현장이란 말인가.

왜 바로 말하지 않으려 했는지 이해가 돼서 난 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말문이 막혀버렸다.

정확히 확인해야 할 게 내 일이긴 하지만 어쩐지 한 소녀의 마음을 괜히 헤집어버린 기분…….

‘기자가 완전히 헛발 짚은 건 또 아닌…… 건가?’

이번 스캔들이 사실이 아니란 건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핀트가 어긋났을 뿐, 자칫 잘못했으면 정말 예전 같은 연례행사 기사가 뜰 뻔했다.

‘그런데 해랑이는 왜 엮인 거지?’

수연은 뭔가 해탈한 듯이 본인의 사정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돌대회 때마다 기자들이 기삿거리 없나 하고 눈에 불 켜고 따라다녀서……. 그래도 이번엔 진짜 조심했거든요. 진짜 남들하고 눈도 안 마주치려고 했는데…….”

조심한 덕분에 이번엔 진짜 호감만큼은 기자에게 들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만 그녀가 참각막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기자도 알고 있어서 이번엔 해랑이라고 착각한 게 아닐까.

‘좀 부주의했던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얘도 나름대로 고생이 많았구나.’

뭐라고 할 상황도 아니라 나는 “아이고. 아이고…….” 하고 맞장구치면서 듣기만 했다.

어쨌든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면 돌대회 촬영 현장 얘기는 혹시?

“돌대회 때 둘이 인사했다는 건?”

내 질문에 둘 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수연이 뉴마에 온 것은 맞고, 돌대회에서 인사한 적은 없고.

어쨌든 돌대회 시즌이라고 어디서 떡밥 하나 물어와서는 옳다구나 소설을 썼다 이거야?

“음. 그럼 해랑이는 먼저 가봐도 되겠다.”

일단 해랑과는 상관없는 일이 되었으니 그를 더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해명 기사 관련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기로 하고 나는 그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이사실을 나가려는 해랑의 뒤로 수연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한이 선배님한테 말하진 말아 주세요! 저 원래 아무한테나 마음 잘 줬다 식었다 그러거든요?!”

본인도 알고 있었구나. 그보다 아무한테나라니…….

해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갔다.

‘에휴. 다음은 얘인데…….’

수연은 마치 망했다는 듯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너…….”

내가 나지막이 운을 떼자 수연은 몸을 흠칫 떨었다.

왜 저렇게 겁먹은 거야?

“회사에는 이런 것들도 다 말했어?”

회사란 현재 아이리스의 소속사인 뉴레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치 내게 처음으로 털어놓는 듯이 말하니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상대로 수연은 여기 와서 처음 말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왜?”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라서…… 회사에는 말해도 안 들어주실 것 같아서요…….”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가 올해 새로 온 이사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전적이 있어서 신뢰받지 못하리라 생각했다는 게 참 씁쓸한 일이었다.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사실 별거 아닌 일인데, 어린 나이에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휴. 이렇게 예쁜 애가 보는 눈이 많아서 마음대로 좋아하지도 못하고.”

연애가 죄에 가까운 아이돌계라지만 마음이 가는 건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수연은 사소한 눈길조차 이곳저곳에서 감시당하고 있었고.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연애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그럼?”

“그냥 친해지고 싶었던 건데……. 같은 걸그룹이면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아니면 기사가 나서…….”

……나도 남들처럼 그렇게 생각했다. 유독 이성에게 관심이 많은 거라고.

‘그냥 성별 상관없이 단순히 친해지고만 싶었던 거라고……?’

마치 골든리트리버가 산책하다 지나가던 여성한테 꼬리를 흔들면 ‘얘가 남자애라 여자분을 좋아해요~.’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가? 그냥 사람을 좋아한 건데.

그렇다면 억울할 법도 했다.

“이전에 기사 났던 것들도 다?”

“제가 어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학교 친구가 많이 없어서…….”

“그, 그렇구나.”

아까부터 얘기를 들으며 계속 오락가락 바뀌던 내 감정은 다시 짠한 기분으로 변했다.

청소년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평범하게 보내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던 건가.

이전에 뉴레인에 들렀을 때 그녀가 최 비서를 빤히 쳐다보던 것이 생각났다. 나도 ‘얘가 또…….’ 하고 생각했었는데.

‘누군가와 사귀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랬을지도.’

본인은 의식하는지 모르겠지만 얼굴에 티가 많이 나는 타입이라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 듯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금사빠가 아니라 그냥 얼빠…… 크흠.’

괜히 마음 주고 상처받고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연예계에선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로 고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한이한테 조금 관심 있었단 건 뭐고?”

말하기 힘들어했던 내용이라 또 건드리고 싶진 않았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이건 조금 다른 케이스인 것 같아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스캔들이 난 아이돌들은 그런 쪽의 호감이 아니었는데 한이한테는 관심 있었다고 표현한 건 또 뭐란 말인가.

수연은 말하기 부끄러운 듯이 볼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그건…… 기자 때문에 회사에 못 들어가고 있다가 한이 선배님이랑 우연히 마주쳤는데, 기자 있는 거 알고 자기 이름 대고 뉴마에 들어와 있어도 된다고 해주셨거든요.”

음. 착한 일 했네.

어차피 회사 로비의 경비 시스템은 외부인을 거르기 위해 있는 것이었다. 원래 뉴마 소속이었고 직원 대부분이 아는 수연이 들어온다고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 후로 몇 번 피해 있었는데, 아무 데나 있으면 직원들이 보니까……. 연습실 있는 쪽은 저한테도 익숙한 곳이고 다른 직원들이 잘 안 오니까요.”

“응.”

“그래서 저번에 제대로 인사 못 드렸으니까, 간 김에 혹시…… 계신가 하고 슬쩍 보다가 해랑 선배님한테 들켜서…… 준오 피디님 이름 댔던 건데…….”

“음…….”

‘들여보내 줬다’에서 호감으로 가는 그 중간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워서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들여보내 준 것 때문에?”

금사빠가 아니고 그냥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애라고 머릿속 이미지를 수정하고 있었는데, 역시 금사빠였던 것인가?

“그런 상황에 그렇게 상냥하게 대해준 사람 처음이라…….”

“…….”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이마로 올라가려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아까 수연이 ‘회사에서는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던 것이 순간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거 설마…… 내 업보가 아직도 끝이 안 난 거야?’

사소한 거라도 챙겨주면 처음 받아보는 것처럼 반응하던 모노크롬.

어딜 가든 잘할 거라고 했더니 지금껏 그런 칭찬 들어본 적 없었다던 6년 차 연습생.

이번엔 상냥하게 대해 준 사람이 없었다던 수연까지.

그룹이 잘나가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리스도 바로 얼마 전까지 ‘그’ 뉴마 소속이었단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인간미 없게 플레이하던 바로 그 뉴마.

팬도 많고 사랑받는 이미지여서 그녀 개인이 뒤에서 어떤 마음으로 지냈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게임 플레이할 때 아이리스는 잘 챙겨줬다고만 생각했지…….’

아이리스도 모노크롬과 마찬가지였다. 그녀들의 의견 또한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회사 차원에선 잘해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가 대표 입장이어서 그렇게 생각한 것뿐일지도 몰랐다.

사실은 작은 배려에도 마음이 갈 정도로 각박하게 살아왔던 것일까.

‘일단 그 원흉인 대표가 설정상 해외 순방으로 없는 건 다행이긴 한데, 뉴레인은 어떻게 하려나?’

이전에 방문했을 땐 분위기도 좋았고 내게 의견도 구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그쪽 직원들도 대부분 ‘그 뉴마’에서 일하던 사람들 아닌가.

“혹시 회사에선 어떻게 한다고 얘기 들었어?”

“아뇨. 아직 그쪽도 정신없어 보여서……. 예전처럼 똑같이 하지 않을까요? 처음도 아니라…….”

“예전처럼…….”

예전처럼. 예전에 뉴마는 어떻게 했던가.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면서 무마하기에 급급했지.’

내가 게임으로 직접 고른 선택지였다.

그냥 돈 들여서 상투적인 부인 기사 뿌리고 대충 무마하는 거.

그게 대중들에게도 먹혔을까? 사람들은 사건이 터진 것만 강렬하게 기억하지, 어떻게 결론이 나고 어떤 해명이 있었는지까지는 관심을 잘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성의까지 없었다면.

일말의 기대감도 없는 수연의 표정을 보니 회사의 그런 태도가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도 최대한 막아줄게.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한테도 중요한 일이고.

내가 많은 감정을 추스르며 그렇게 말하자 수연은 무슨 표정인지 모를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번 같은 일 있으면 내 이름 대고 들어와도 돼.”

나는 이번에 업무용 핸드폰을 개통하자마자 새로 뽑은 명함을 한 장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회사 사람 외엔 거의 처음 주는 건데.

수연은 여전히 같은 얼굴로 명함을 받아들더니 마치 글자 하나하나 세듯이 한참을 바라봤다.

“이사님 뵈러 와도 돼요?”

“응? 나를?”

“아, 아니에요. 바쁘실 텐데…….”

내가 놀란 반응을 보이자 수연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나야 환영이지.”

진짜 완전 진심으로.

내게 아이리스는 여전히 화면 속의 아이돌 이미지가 강했는데, 일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

내 대답에 수연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사람 좋아한다는 그 표정으로.

***

이번 일에 해랑이 엮이긴 했는데, 사실 가만히 있다가 휘말린 것이라 그가 할 말은 딱히 없었다.

‘본명도 모를 정도로 남한테 관심이 없는 줄은 몰랐지만…….’

어쩐지 그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멤버들이 워낙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있어서 그룹 전체를 볼 땐 잘 느껴지지 않는데, 해랑은 특히 친분의 경계가 확실하다고 해야 하나. 낯을 가린다고 해야 하나.

나도 모노크롬의 활동에 항상 붙어 다니지만 이제 좀 익숙해진 정도지, 아마 친분이 있다고 말할 사이는 아니지 않을까.

표정을 읽기 어려워서 실제로 날 어떻게 생각하는진 몰라도.

‘같이 일하는 직원 중에 대빵 정도려나.’

아무튼 뉴마가 낼 공식 입장은 해랑 개인보다는 뉴마의 입장에 가까웠다.

남한테 온전히 맡기기에는 불안해서 내가 직접 작성에 나섰는데, 내가 쓴 글을 먼저 확인한 최 비서의 반응은 오묘했다.

“음…….”

“왜? 이상한가?”

“이상하다기보다는…….”

적절한 어휘를 찾는 듯한 최 비서 옆에서, 함께 확인한 윤희가 대신 대답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날것 느낌이 있네요.”

그런가?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적었는데.

나는 내가 적은 글을 다시 훑으며 머리를 굴렸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었기에 여기서 뺀다면 뭘 빼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걸 그대로 내면 이상할까요?”

“정말 개인적으로, 솔직한 마음으로는 내용을 덜어내면 좀 아쉬울 것 같긴 해요.”

나도 동감.

용기를 얻은 나는 몸 사릴 게 뭐가 있나 싶어서 바로 회사에서 연락처를 가지고 있는 연예부 기자들에게 뿌리도록 지시했다.

공식 입장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팬들은 입장이 뜨자마자 기사를 나르며 해명에 나서기 바빴다. 역시 우리 마케팅팀보다 열일하는 팬들.

컬러즈뿐만 아니라 아이리스의 팬덤인 무지개까지 합세하니 확산 속도는 더욱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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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마 스캔들 입장문 웃긴 점

해명은 한 줄로 땡인데 기자한테 뭐라 하는 글만 한바닥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해명이 한 줄로 확실하게 끝난단 점도 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

└내용이 어떻길래 웃김? 어디서 보는데.

└걍 모노크롬 검색해서 최근 기사 아무거나 봐봐

└스타토픽에 찌라시 난 적 있는 돌 파는데 저 입장문=내마음

└저 정도로 대놓고 욕먹으면 스타토픽도 이제 더러워서 안 건드릴듯;;ㅋㅋㅋㅋㅋ

└그럼 개이득 아니냐

└이거 모든 소속사에 입장문 교과서로 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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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상외였던 것은 팬들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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