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4화 (34/430)

# 34화

━━━━━━━━━━━━

헐헐 뮤더라 본방 신청공지 봤어??

본방 기다림의끝이랑 모노필름이래!!

└헐 미친

└사녹 본방 중복 신청 안 되지?ㅜㅜㅜ 으어ㅓㅇ 둘 다 보고싶은데

└15명 누구 코에 붙이냐ㅠ 그래도 수록곡 무대라니 감지덕지하다ㅠㅠㅠㅠㅠ

└뮤더라 사랑해

━━━━━━━━━━━━

<뮤직더라이브> 본방송 방청 공지가 나가자 팬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또 떠들썩해졌다.

입장 인원은 몇 명 안 되지만, 그래도 <기다림의 끝>을 팬들과 마주하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의미가 깊었다.

팬들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었던 노래였고 그래서 맨 처음으로 작업했던 곡.

다 떠나서 굉장히 좋은 노래인데 재민 복귀 건이 워낙 시끄러웠던 탓에 좀 묻힌 느낌이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서라도 팬들에게 다시 들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컬러즈가 멤버들 외에 사랑한다고 하는 거 처음 봤어…….’

일단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컬러즈에겐 당연히 모노크롬이 제일이었고, <뮤직더라이브>는 사랑하고, 해랑의 친구인 하범에게 나름 호의적이었고, 뉴마는 가장 끝이었다.

남보다 못한 뉴마.

이전에 한 컬러즈가 뉴마vs돌대회 대결을 붙였던 것이 생각났다. 뉴마는 돌대회보다 더 아래였다.

‘내가 돌대회 탓할 게 아니었네.’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생각해 보니 내가 그 꼴이었다. 난 팬들의 반응을 보고 왠지 머쓱해져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가야 할 입장에선 참 씁쓸한 일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바뀌는 모습을 차차 알아봐 주겠지. ……알아봐 주겠지?

***

“오랜만에 돌아온 모노크롬이 벌써 오늘로 마지막 무대라고 해요.”

“어어~. 아~쉬~워~요~. 오래 기다린 저를 봐서 조금만 더 만나볼 수 없을까요?”

“네에! 그런 여러분을 위해 모노크롬이 특별한 무대를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저번엔 병원에 있느라 보지 못했던 <뮤직더라이브>의 본방송 현장.

진행을 맡은 MC 두 명 역시 아이돌이었다.

‘세상에 아이돌은 참 많구나…….’

나도 나름 엔터사 직원이니 같은 분야에 몸담은 동업자들의 얼굴은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얼굴과 이름에 집중하면서 봤다.

그러나 돌대회에 이어서 너무 많은 아이돌을 봤더니 머리가 핑글 도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모노크롬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세상에 기억할 아이돌은 많고, 더불어 잘나가는 아이돌도 많아서.

곧바로 모노크롬의 무대가 시작하려 했기에 나는 침침한 눈을 비비며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한 건지 모노크롬의 순서가 되자 선착순을 뚫고 들어온 열다섯 명의 컬러즈는 관객들이 있는 스탠딩 구역 맨 앞으로 나가 있었다.

“와아아아악!”

반주가 흘러나오기 전에 모노크롬을 비추는 카메라가 돌아가자마자, 컬러즈는 일당백의 기세로 환호했다.

‘잘한다. 컬러즈!’

소수정예일 때 특히 빛을 발하는 그들이었다.

잔잔한 곡이라 중간엔 크게 환호할 만한 타이밍이 없으니 아예 시작 전을 놓치지 않는 저 노련함까지.

잠시 팬들과 시선을 맞춘 멤버들은 곧바로 무대에 집중했다.

라이브 클립 촬영 이후로 처음 듣는 라이브.

처음 작업실에서 가이드본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고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곡이었는데, 이렇게 무대 위에서 팬들을 앞에 두고 부르는 건 무슨 기분일까.

그룹이 가장 불안정했을 때의 감정이 담긴, 동시에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함께했던 곡이었다.

<기다림의 끝>의 엔딩을 장식한 우형도 마찬가지로 많은 감정이 담긴 얼굴로 마이크를 내리며 카메라를 직시했다.

이 곡의 작곡가이며 모노크롬의 리더인 그에게는 더 특별하겠지.

……아니. 그보다 생방송 중인데 눈이 그렁그렁하잖아!

‘화면. 화면 빨리 넘겨줘요!’

다행히 엔딩 클로즈업은 3초 남짓이었기 때문에 생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기다림의 끝 무대가 끝나고 뮤비를 아주 짧게 편집한 영상이 방송으로 나가는 동안 무대 위에 선 멤버들은 의자를 치우고 대형을 갖춰 섰다.

“사랑해! 모노크롬!”

“우와. 익룡…….”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컬러즈의 함성이 타이밍 맞춰 현장에 울려 퍼지고 다른 관객들이 신기하단 반응을 보이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저 익룡들이 응원하는 그룹은 과연 어떤 그룹인가 하는 눈으로 무대에 시선을 두었다.

본방송이라 방송에 나가는 건 아니지만, 덕분에 무대 위에 있는 멤버들은 힘을 얻었을 것이다.

프로 컬러즈 덕분에 든든한 기분으로 본방송이 마무리되었다.

━━━━━━━━━━━━

오늘 뮤더라 우형이 눈물 고인 거 봤어?ㅠㅠㅠㅠ

나도 보면서 울컥ㅠㅠㅠㅠ 몬클이들 행복해라 진짜ㅠㅠㅠㅠㅠㅠ

└첫 자작곡에다가 재결합 완전체 첫곡이니까ㅠㅠㅠ 나였으면 통곡했다

└처음 음원 떴을 때 생각나서 나도 울뻔ㅠㅠㅠ

└너무 이뻤는데 너무 짠해ㅜㅜㅜㅜ울지마 리더..

└우형이 눈물 나게 하는 인간 있으면 내가 다 죽일 거야ㅠㅠㅠㅠ

━━━━━━━━━━━━

‘……저거 나도 해당하는 건가?’

우형이 우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던 나였다.

내가 울린 건 아니었지만…… 내가 한 말 때문에 운 적이 있었으니 그게 그건가?

팬들의 반응을 본 나는 조금 뜨끔했지만, 아무튼 TV로 지켜본 컬러즈에게도 멤버들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졌던 듯했다.

활동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지금껏 많은 일이 있었지만, 우리의 첫 활동은 적어도 나쁘지 않게 마무리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1년에 한 번 방송되는 대규모 아이돌 예능이어서 그런지, 돌대회의 여운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

━━━━━━━━━━━━

그 검은후드선배 요즘 활동하더라.

무대 꽤 볼만함ㅇㅇ

└오 그룹 이름 뭔데?

└모노크롬

━━━━━━━━━━━━

돌대회 방영 후, 언젠가부터 해랑은 ‘검은후드선배’로 불리기 시작했다.

원인은 사람이 좀 모여 있다 싶은 커뮤니티마다 퍼져나가는 이 글.

[~올해의 돌대회 체대선배상~]

제목 그대로 그냥 왠지 가상의 체대 선배로 있을 법한 출연진의 모습을 모아둔 것.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르겠고 퍼져나가면서 조금씩 변형도 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기본 베이스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방송 당일엔 방송 캡처 이미지와 움짤들이 주로 올라왔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다들 어디선가 팬들이 찍고 보정까지 해서 올리는 사진들을 구해와서 올리고 있었다.

이 체대 선배 글도 그런 사진들을 선정해 모아 올린 글이었다.

‘대체 이런 건 다들 언제 찍은 거지.’

물론 현장은 사진 촬영 불가였다. 현장에 있던 나도 보지 못했는데 어디서 많이 찍고 있었던 모양.

그리고 그 사진들 사이에 해랑이 당당히 껴있었다.

━━━━━━━━━━━━

하범 옆에 누구냐

└모노크롬 백해랑

└ㅇㅎ ㄳ

────────────

검은후드 이름 뭐야?

└위에서 세 번째 말하는 거면 모노크롬 백해랑

└몬클 해랑

────────────

모노크롬 첨 듣네ㅋ 대존잘인데 왜 못 떴대

└아 뭐 어쩌라고

────────────

검은후드가 그 돌대회 촬영때 난리났던 그 그룹이야?

└ㅇㅇ몬클

└오 걔네였어?

└난리 왜 났는데??

└돌대회에서 다친 멤버땜에

────────────

저 중에 몬클이 누군데? 검색해도 안 나와.

└검은 후드

└이름이 몬클이야?

└모노크롬 해랑

└모노크롬하라고?

└아니 이름이 백해랑

└혼란하다 혼란해

────────────

세번째짤 누구임?

└모백

└제대로 답변해주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노크롬 백해랑

━━━━━━━━━━━━

‘쟤는 누구냐. 모노크롬 백해랑입니다. 오, 존잘이네. 근데 누구냐. 모노크롬 백해랑입니다.’의 무한 반복.

아직 관심을 가지고 알아볼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닌지 그냥 툭 물어보고 가는 느낌이었지만.

‘탈퇴멤 걔네?’에 지쳐 있던 컬러즈들은 다른 류의 관심을 받자 다시 신나서 답변에 나섰다.

‘우리 마케팅팀도 이 정도는 못 하겠다…….’

24시간 언제든지 어디선가 모노크롬이 언급되면 가서 답변해 주는 컬러즈들.

마케팅팀 직원들은 월급이라도 받지, 그들은 보상받는 것도 없이 그저 그룹에 도움 될 만한 것이라면 뭐든 나섰다.

이래서 아이돌계가 팬덤과 함께 굴러가는 건가.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다들 이름은 그렇게 묻더니, 결국 해랑은 이름이 아니라 검은후드선배로 정착해 버렸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아이돌도 무슨 색 머리, 무슨 후드, 무슨 안경, 이런 식이었다.

아마 아이돌 팬이 아닌 사람들도 있으니 기억하기 쉽도록 그런 명칭을 붙인 게 아닐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이돌을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도 조금은 얼굴이 알려졌단 것!

‘정말로 공중파는 다르구나.’

활동을 이어나가다 보니 최근 들어 공중파 출연이 절실하게 느껴지던 참이었다.

그래도 조금씩 관심을 얻어가니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

돌대회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이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리스 멤버 중에서도 특히나 리더인 레드, 본명 홍수연에게는 그 영향이 더욱 컸다.

‘이씨. 저거 작년에 그 기자 아냐?’

잠깐 외출했다가 회사로 돌아가려던 그녀는 뉴레인 건물 앞에 서 있는 기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곧장 화단 옆으로 숨었다.

데뷔 3년 차가 지나고 4년 차에 돌입한 아이리스.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한 데뷔를 마친 그녀들이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있었다. 다른 쪽으로 그룹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

‘내가 무슨 기삿거리야?!’

4년 차에 흐지부지 넘어간 스캔들만 벌써 세 건.

실제로 사귀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저 관심만 잠시 가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기자들은 어떻게 알아챘는지 스캔들이란 이름으로 무작정 기사를 터뜨렸다.

증거라고 내놓는 것들이 자신이 봐도 그럴싸해 보일 정도였다.

자기가 언제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시선을 보냈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한번 터진 기사는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부인 기사까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괜히 힘들게 쌓은 이미지만 깎였을 뿐.

회사에선 해명 또한 세 번이나 해야 했다.

[휴우. 수연아……. 리더니까 조금만 더 주의하자.]

피곤한 듯이 한숨을 쉬며 말하는 기획팀장님 앞에서 억울하단 얼굴을 할 순 없었다.

‘나 이번엔 진짜 조심했는데…….’

이제는 아예 돌대회 방영 시즌이면 마치 건수라도 잡는 듯이 소속사 앞으로 찾아오는 기자가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여러 아이돌이 모이다 보니 어쩌다 누군가와 눈 마주치는 순간이라도 잡힐까 봐, 촬영 시간 내내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며 무던히도 노력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번엔 대체 뭘 보고 온 거지? 아니면 그냥 뭐라도 떠보러 온 건가?

어쨌든 당당하게 회사 정문으로 들어가긴 글렀다고 생각한 그녀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언니. 혹시 차 타고 나와줄 수 있어? 회사 앞에 기자 있는 것 같거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 지금 회사 아니고……. 오늘 보라 화보 촬영 있었잖아.]

“아, 맞다.”

[지금 끝나서 돌아가는 중이야. 우린 30분 정도 더 걸릴 것 같은데. 매니저 팀에 대신 말해서 나와달라고 할까?]

아이리스의 매니저는 여러 명이었고, 그중에서도 친언니처럼 멤버들을 가장 잘 챙겨주는 매니저가 있었다.

기자가 회사 앞에 와 있는 걸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지 않아서 그녀에게 따로 전화한 거였는데.

매니저 팀에 연락했다가 다른 직원이 사정을 듣게 되면 또 뭔가 건수가 잡혔다고 소문이 돌지도 몰랐다.

“……아냐. 차 타고 오는 거지? 나 옆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추우니까 어디 들어가 있어. 최대한 빨리 가 볼게.]

“응.”

전화를 끊은 수연은 몸을 숙여 화단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상황을 지켜봤다.

‘누가 보면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다.’

숨어서 연예인 소속사 건물을 몰래 훔쳐보는 수상한 여자.

내가 그 연예인인데. 수상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인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수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날도 추운데 저 사람은 언제까지 저러고 기다릴 생각인 거야. 그냥 돌아가면 좋을 텐…….’

톡톡.

“엄마야!”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감각에 수연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서 그녀를 부른 사람 또한 덩달아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기자인가?! 한 사람이 아니었어?’

놀란 와중에도 그녀는 사진이라도 찍힐까 봐 외투 옷깃을 올려 입가부터 가렸다.

그러나 역광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부른 사람은 바로 얼마 전까지 그녀의 소속사 직속 선배였던, 한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