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거실 소파에 누워있던 재민은 현관 도어록을 푸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외투도 벗기 전에 재민부터 찾았다.
“지금은 아프진 않고?”
“응.”
발목에 감긴 압박 붕대가 눈에 들어왔다. 하필이면 또 그때와 같은 왼쪽 다리.
재민은 무표정했지만 멤버들은 그가 시무룩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긍정적인 쪽으로 표정이 다양한 재민이었다. 지금 저건 미안해하는 얼굴이다.
그 얼굴을 본 우형의 눈썹 끝이 내려갔다.
‘왜…… 네가 그 표정이지.’
자꾸만 3년 전이 오버랩되었다.
당시 재민이 병원으로 실려 가는 모습을 멤버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야 했다.
그는 그때 회복을 위해 숙소가 아니라 주로 본가에 있었기에 멤버들이 챙겨줄 일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누구를 챙기기엔 본인들의 앞가림도 하기 어려운 어설픈 성인이었기에.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방에 짐이 빠져 반이 텅 비어 있는 걸 보고, 네 명이 얼마나 당황하고 허망해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알아채지 못해 내내 미안했던 건 자신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눈앞에 재민이 있었다.
회사에서도 그의 걱정부터 하니까, 예전과는 다른 상황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다행히 이번엔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다만 주인에게 미리 들었던 대로 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이 더 문제였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니, 확실히 불안을 미처 다 감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그나마 괜찮은 척하고 있는데도 멤버들 눈엔 티가 날 정도로.
“죽 먹어야 하는 거 아냐? 들어오면서 사 올걸.”
“먹는 건 상관없고…… 술만 마시지 말라던데.”
“유한이 맥주 압수.”
“헛.”
데뷔 때야 미성년자인 멤버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성인.
그래도 술은 별로 즐기지 않는 멤버들이었다. 그간 그런 걸 여유롭게 즐길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완전히 금주하는 것도 아닌지라 숙소 냉장고에 맥주가 딱 두 캔이 들어있었다.
누가 사놨는지는 뻔했다. 유한이.
한이까지 금주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형은 곧장 눈앞에서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그가 단호하게 말하자 한이는 냉장고에서 그 맥주 두 캔을 슬쩍 꺼내 자신의 방에다 가져다 놓았다.
“따로 또 조심해야 할 거 있어?”
“그냥 움직이는 것만 조심하래.”
“그럼 업고 다녀야 하는 건가?”
해랑이 혼잣말처럼 내뱉은 소리가 재민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나 그렇게 많이 아파 보여?”
주인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아까 주인이 한 말은 농담이었다지만 해랑은 말하는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농담 같지도 않았다.
혹시 남들 눈에는 걸어 다니지도 못할 것처럼 보이는 건가.
두 번째 부상이어서 더 심각해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욱 팬들에게 티 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재민이 그런 마음으로 자신의 발목을 쳐다보자, 멤버들은 옆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그런 건 아닌데 의사 선생님이 조심하라고 했다면서. 형한테 말해. 방까지 옮겨다 줄게.”
“그래. 세수도 시켜주고 양치도 대신 해줄게.”
“잘 때 자장가도 불러줄게.”
“그리고…….”
다 같이 나서서 거의 재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대신 해줄 기세였다.
자장가는 또 뭐야. 재민은 도저히 못 들어 주겠는지 손을 들어 막았다.
“아니, 나 사지 멀쩡하다고.”
“그래. 멀쩡한데 왜 그래.”
왜 그렇게 걱정해.
재민이 발목에서 눈을 떼 고개를 들자 웃는 눈의 우형과 눈이 마주쳤다.
멤버들이 그에게 원하는 대답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
재민은 그런 멤버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싱겁게 웃었다.
주인도 그랬고 멤버들도 그랬다.
장난스러운 말로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마치 이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대해 주니까 정말 그들 말대로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계속 뚱해 있기만 하던 재민의 표정이 풀어졌다.
“나 방까지 옮겨다 줘.”
“아깐 멀쩡하다며.”
“그렇다고 방금 말한 걸 무르냐.”
상체를 일으키고 있던 재민이 소파에 다시 풀썩 누우며 말하자 준해가 등을 찰싹 때렸다.
“형 그러다 소 된다.”
외투만 벗고 재민 주위에 몰려 있던 멤버들은 그가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오자 그제야 각자 옷을 갈아입으러, 씻으러, 할 일을 하러 흩어지기 시작했다.
“여우 형…….”
재민이 옆에 있던 우형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니 우형은 팔을 붙잡힌 채로 말없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바닥을 쓸며 질질 끌려온 그를 발로 적당히 방에 밀어 넣었다.
“괜찮으면 잠이나 자라.”
“취급 좀.”
멤버들이 올 때까지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거실 소파에서 멀뚱히 기다리던 그였다.
그랬던 재민이 자신의 침대에 풀썩 올라가 눕자 한이가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자장가도 불러줘?”
“아니. 그건 됐어.”
“아니. 난 불러줄 건데.”
“아, 제발.”
***
주말이 지나고 두 번째 음악 방송 스케줄인 <픽스테이지> 출연일이 다가왔다.
재민의 바뀐 안무 숙지야 걱정할 것이 없었다.
‘애 레벨이 있으니까 안심이 되긴 하네.’
안정을 위해 연습실에 오래 있진 못했지만, 그래도 재민은 눈으로 보고 몇 번 따라 움직이니 금방 수정된 안무를 외웠다.
내가 레벨을 높여주진 못하더라도, 얼마나 잘하는지 확실한 지표로 알고 있으니 필요 없는 걱정은 덜 수 있었다.
여전히 조심은 해야 하지만 별다른 무리 없이 회복에 전념한 덕분에 발목 상태도 양호.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모노크롬 리허설 들어갈게요!”
스태프의 부름에 무대로 올라가려던 재민이 주춤했다.
아무리 몸이 회복되었어도 한번 모습을 드러낸 트라우마란 그리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멤버들은 그가 주춤하는 것을 보고 멈춰 서고, 나는 재민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지금 무대까지 업어주긴 어려워.”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이사님이 형을 업어요?”
재민의 뒤에 서 있던 준해가 무슨 대화를 하는 거냐는 시선을 보냈다.
“가벼우니까 뭐, 업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아니, 중요한 얘긴 아니었어.”
팬들과 제작진들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앞에 서 있던 세 명이 먼저 무대 위로 올라갔다.
벽 하나 너머에서 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재민은 또 올라가려다가 다시 주춤하고, 심호흡하면서 괜히 손목을 털었다.
계속 긴장을 풀려고 노력은 하는데 선뜻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떡하지…….’
우리 뒤에 녹화를 기다리는 다른 팀이 또 있으니 여유 있게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긴장을 풀어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방금 대화 이후로 뭔가 곰곰이 생각하던 준해가 입을 열었다.
“형. 내 어깨에 팔 둘러봐.”
부축해서 올라가려는 건가?
어느 정도 회복도 됐고 부상은 숨기고 있는데 부축받는 모습을 보이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재민이 준해의 말대로 어깨에 팔을 두르자, 준해는 그를 번쩍 들었다.
“내가 들쳐 메려다가 머리 세팅한 거 망가질까 봐 참는다!”
갑자기 몸이 공중에 들린 재민은 깜짝 놀란 표정이더니, 그 말을 듣곤 이내 파하 웃었다.
준해는 그대로 무대로 향하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바, 박력 있다.’
난 업어주려고 운동하겠다고 했는데 젊은이의 체력은 다르구나.
무대로 올라오는 두 사람을 목격한 멤버들의 눈도 덩달아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저번 재민의 부재로 내심 걱정을 지우지 못했던 팬들은…….
“꺄아아아아!”
“뭐야? 뭐야?!”
“아, 이걸 영상으로 남겨야 하는데!”
뭐지? 왜지? 몰라. 아무튼 귀여워.
예상치 못한 등장 퍼포먼스에 걱정은 싹 날아간 모습이었다.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듯 멤버들의 작은 행동에 걱정도 슬픔도 금방 날아가는 컬러즈.
우려와 달리 좋은 분위기 속에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해랑 씨. 카메라 한 번만 봐주세요.”
감독이 카메라 모니터링을 위해 해랑을 지목하자, 대형에 맞춰 준해 뒤에 뒤돌아있던 해랑이 빙글 돌아 앞을 향해 섰다.
팬들은 방금까지 계속 본 얼굴인데도 또 “와아아!” 하면서 반겼다.
그 반응에 이미 온 모드로 들어간 해랑이 싱긋 웃었다.
“허헉.”
“방금 표정 레전드.”
들린다. 컬러즈 심장 떨어지는 소리가.
눈앞에 멤버들이 있으니, 컬러즈의 기억 속에선 걱정했던 사실조차 완전히 지워진 듯했다.
순조롭게 카메라 리허설을 마치고 들어온 멤버들은 준해에게 무대 위에서 차마 못 한 칭찬을 쏟아냈다.
팬들도 우리도 표현하진 못해도 걱정이 남아 있었는데 준해의 돌발적인 재치 덕에 분위기가 일변하였으니.
재민도 무대 위에 서 있다 내려오니 긴장은 풀린 모습이었다.
해랑이 버릇처럼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세팅한 헤어라는 것을 깨닫고 금방 손을 거뒀다.
“잘했다, 준해!”
“재민이 형 가벼우니까 들었지. 다른 형들이면 안 했어.”
“앗. 상처…….”
우형이 마음의 상처를 받은 포즈를 취하고, 다들 원래 모습대로 돌아왔다.
녹화가 길어진다면 그만큼 멤버들을 오래, 많이 볼 수 있는 현장의 컬러즈에겐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컬러즈에겐 미안하게도, 재민을 위해 녹화 테이크를 늘리지 않으려 멤버들은 좀 더 빡세게 무대를 진행했다.
그렇게 두 번째 사전 녹화가 늘어지지 않고 무난히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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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픽스테 나오는 애들 소속사 어디야?
신인인 것 같은데 3년차보다 뒤에 나오네. 소속사가 파워가 센가
└얘네가 선밴데
└6년차 모노크롬입니다.
└미안 음방 자주 보는데 얘넨 처음 봐서 몰랏음;
└미안하면 노래나 한번 더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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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가 거기?
그 탈퇴멤
└ㅇㅇ
└아 걔네야?ㅋㅋ 무대는 첨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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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탈퇴했다더니 다섯명이네. 전엔 여섯이었음?
└이건 관심이 있는거냐 없는거냐
└정보 업데이트 좀 해라
└ㅎ원래 스물다섯명이었는데 다섯명 남은거
└개극단적이넼ㅋ
└사실 지금까지 데뷔 서바이벌이었던 거임 이제 데뷔한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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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 음악 방송까지 챙겨 보는 시청자는 아이돌 그룹의 팬들이 많았다.
대중들은 잘 모르는 아이돌계의 소식도 어느 한 팬덤에 몸담고 있으면 자연스레 들려오기도 하는 법.
그래서인지 인터넷 커뮤니티엔 종종 모노크롬을 알아보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지금 아이돌 팬덤계에서 모노크롬은 대개 ‘탈퇴멤 있는 걔네’로 통했다.
‘하. 진짜 이미지 바꾸기 힘들다.’
한번 인식된 이미지는 강렬했다.
곡도 컨셉도 무대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티스트 활동 하나로만 승부하기 어려운 아이돌의 특수성 때문일까.
나오는 반응들이 노래나 무대에 대한 감상보다는 ‘아, 예전에 그?’ 식의 언급이 많았다.
‘물론 인터넷이란 게 다 그렇다지만.’
노래를 듣는 사람은 그냥 조용히 들을 테고, 가볍게 한마디씩 하는 건 주로 커뮤니티 게시판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니 이런 반응들만 눈에 띄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친구와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팬이 아닌 이상 잘 모르는 그룹 무대를 보면서 어느 부분이 좋았고 어땠고 하면서 심도 있게 감상을 남기진 않으니까.
그래도 아예 무반응인 것보다는 이렇게 종종 언급되는 게 나은 일이었다.
이런 애매한 관심에 덩달아 고생하는 이들은 바로 우리의 컬러즈였다.
‘멤버 한 명 탈퇴한 걔네 맞고요. 탈퇴 멤버 복귀했던 걔네인 것도 맞고요. 아이리스 선배였던 그룹 맞고. 이제 6년 차고. 활동 오랜만에 한 건 소속사가 ㅈ소라서 그렇고요. 얘기 나온 김에 많관부.’를 무한 반복하던 그들도 슬슬 설명하기 지쳐가는지 이제는 아무 드립이나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활동 중인 모노크롬에게 과연 도움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이돌 대운동회’의 방영일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