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텅 빈 세트 중앙에 계단으로 이어진 동그란 단상이 놓였다.
그 앞에는 긴 전신 거울 네 개가 단상을 감싸는 형태로 곡면을 그리듯이 늘어섰다.
의도를 알아챘는진 몰라도 우형이 단상 위로 올라가서 신기한 표정으로 세트를 구경했다.
이것은 내가 우형의 버릇에서 영감을 얻어 요청한 세트였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말을 걸던 모습.
‘그리고 멤버들이랑 서로 격려하던 것도.’
이 세트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었다. 거울이 있는 버전과 없는 버전.
새까만 배경에 묻혀 잘 보이지 않지만 각 거울 뒤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 명이 중앙의 단상에 서고, 각 거울 뒤에 멤버들이 한 명씩 서는 것.
그렇게 해서 거울에 자신 대신 멤버의 모습이 비치는 듯한 연출을 노린 것이었다.
[뭔가 그, 거울을 사이에 두고…… 다섯 명이 유기체처럼 이어지는 그런 거요.]
그렇게 개떡같이 주문하니 찰떡같이 뚝딱 나온 게 이 세트.
지금은 거울 모드였기 때문에 단상에 올라선 우형은 네 명의 자신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손을 뻗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던 그때.
“왁!”
“아, 깜짝이야!”
갑자기 거울 뒤에서 재민이 거울을 밀고 나타나자 우형이 펄쩍 뛰며 물러섰다.
“너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형 세트장으로 오길래 숨었지.”
재민은 장난이 성공해서 만족스러웠는지 해맑게 헤헤 웃었다.
반대로 우형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하아. 나 뒤로 굴러떨어질 뻔했잖아.”
“그래서 잡아주려고 내가 나왔잖아.”
“내가 여기 올라올 줄은 어떻게 알고.”
“보니까 딱 각이 나오더라고. 이거 그거잖아. 형한테 맞춘 나르시시스트 세트.”
“그게 뭐야?”
이 세트를 주문한 당사자인 나도 우형과 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그게 뭐야?
“형 맨날 거울 보면서 자기 얼굴에 취해 있다고 주인 님이 그랬는데.”
우형은 그런 소릴 했냐는 듯한 눈으로 아래에 있던 날 쳐다봤다.
난 갑자기 돌아온 화살에 당황해서 사레들리고 말았다.
“콜록. 나, 나 안 그랬는데?!”
아까 이 세트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대충 설명해 준 게 어떻게 그런 의미로 변한 거야!
난 분명 제대로 설명을……. 아니, “우형이가 항상 거울을 보고 있더라고…….”라고만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내 당황한 반응이 역효과였는지 이미 우형은 상처받은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저 나르시시스트 아니에요…….”
“나도, 나도 알지.”
“아니야, 형. 멋있어. 자신을 가져.”
내가 이 세트를 구상하며 떠올렸던 ‘멤버들끼리 격려하는 모습’이 분명 이런 건 아니었을 텐데.
난 우형이 납득할 때까지 길게 해명을 해야 했다.
옆에서 재민이 자기애를 가지는 것도 나쁜 건 아니라며 자꾸 장작을 집어넣어 댔지만.
촬영 준비를 마친 다른 멤버들도 나타나자 현장은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멤버들은 먼저 나와 있던 우형 주위로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아주 소문이 저 뒤까지 파다하던데.”
“무슨 소문?”
“형이 비주얼 멤버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
“아! 아니라니까.”
무슨 소문이 벌써 바로 옆까지.
큰소리로 한이의 말을 끊은 우형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곧바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혹시나 스태프들이 싸운다고 오해할까 봐 걱정했는지 얼굴은 웃고 있는데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억눌린 발음에서 그의 마음속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만해라.’
“아니긴. 해랑 형도 벌써 소문 듣고 메이크업 빡세게 한 것 봐. 안 지려고!”
“……내가?”
해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우형은 억울한 눈으로 날 흘끔 쳐다봤다.
내가 기껏 오해를 풀어놨는데 또 불을 지피다니.
“한이야. 우형이 그만 놀려.”
“넵.”
누가 메인 보컬 아니랄까 봐 장난도 1절, 2절에 3절까지 해내려는 표정이길래 내가 대신 나섰다.
다행히도 한이는 내 한마디에 고분고분 입을 합 다물었다.
‘준해가 한이보고 입 다물었을 때가 제일 멋있다고 했던 게 이런 거였나……?’
육아의 힘겨움을 아는 사람들이 자주 그런 말을 하지 않던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이쁜 내 아이지만 조용히 잘 때가 제일 천사 같고 이쁘다는.
내가 보기엔 밝아서 좋기도 하다만 매일 붙어 지내는 멤버들이라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
“그래, 주인 님 말 들어!”
상황은 끝났는데도 재민은 또 빠지지 않고 옆에서 거들며 한이를 연행해갔다.
방금 사건은 네가 원흉이었어!
한이와 재민은 붙어있으면 1+1=2가 아니라 1+1=3이 되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이서 삼 인분의 오디오를 채우는 느낌.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금방 지나갈 장난도,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신나서 계속하게 되는 법.
그런 면에서 둘은 주거니 받거니 쿵짝이 아주 잘 맞는 사이였다.
짧은 소동이 지나가자 옆에서 준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평소에도 제일 어른스러운 건 막내인 것 같아.’
막내 위로 유독 쾌활한 두 사람이 껴 있으니 더욱 두드러지는 것도 같고.
그래도 이렇게 모여 있으니 밸런스가 적당하다고 해야 하나. 뭐, 나쁘진 않아.
세팅이 완료되고 촬영을 재개했다.
촬영장의 벽이 온통 새까만 색으로 뒤덮여 있어서 거울에는 오로지 자신의 모습만이 비쳤다.
나도 멤버들보다 먼저 세트를 확인하기 위해 위로 올라가 봤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감각이 몸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본 연극이 떠올랐다.
암전된 연극 무대. 스포트라이트가 배우 한 명만을 비추고 그는 연기하는 인물의 내면 심리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마치 내가 그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무의식 속 자아의 공간에 들어온 기분.
우형이 지금껏 거울 너머의 자신에게 격려를 받았다면, 나는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가 정말 이곳에 있을 사람이 맞나?’
여기 있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곳이 게임 속인지, 다른 차원의 평행 세계인지 나는 아직도 확실히 아는 것이 없었다.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붕 떠 있는 느낌.
이 세상엔 나의 위치가 정해져 있었고 확실한 목표 또한 설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잘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이 느끼는 감정. 그런 위화감은 이렇게 불시에 찾아오곤 했다.
계속 보고 있으려니 무서워져서 서둘러 내려왔다.
이런 불안감에 빠져 있어봤자 내게 하등 도움 될 것이 없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안주하거나 나태해지지 말라는 신호일지도 모르지.
‘멤버들도 각자 느끼는 게 다르겠지?’
그들이 쌓아온 과거가 어떤지, 무슨 마음으로 서 있을지.
한 사람 한 사람 촬영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다들 많은 길을 건너서 이 자리에 와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의지가 없는 게임 캐릭터일까 봐 걱정했던 것이 생각나서 또 얼굴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표정 관리하자. 표정 관리.’
좋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 눈치를 볼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나는 조용히 손을 올려 얼굴 근육을 풀었다.
내가 조금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멤버들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거울을 치우고 다음 촬영을 위해 잠시 준비가 이어지는 동안, 한이와 재민의 시너지가 또 발동했다.
“이거 거울이니까 형은 날 따라 해.”
거울이 있던 자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선 두 사람.
재민이 왼팔을 들어 올리자 거울처럼 한이도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팔을 움직이며 시작한 장난은 점점 고난도로 변하더니 이내 둘은 마주 보고 팔굽혀펴기까지 하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 힘이 넘치는 거야?’
아직 촬영이 초반부라 앞으로 찍을 것이 많이 남아있었다.
같은 걱정을 했는지 우형과 해랑이 그 옆으로 가서 두 사람을 말렸다.
“벌써 체력 낭비하지 마.”
“윽, 낭비가 아니라, 자존심의 싸움이다.”
진다고 자존심이 상할 것까지야. 자존심을 저런 데에 걸어도 괜찮은 건가.
“땀나면 메이크업 수정해야 해.”
“아, 그러네.”
그 말에 두 사람은 하던 행동을 곧장 멈추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옆에서 구경하던 준해가 황당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자존심은 어쩌고?”
“가끔은 굽힐 줄 아는 게 진정한 멋이지.”
자존심 싸움이라더니 장난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방금까지 서로 내가 이기니 네가 이기니 하던 한이와 재민은 어깨동무까지 하고 세트 뒤로 돌아왔다.
경쟁하며 무슨 의리라도 싹튼 건가.
어쨌든 비하인드감은 또 하나 건졌네.
거울이 없는 버전으로는 다섯 명이 좌우 반전으로 똑같이 움직이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쪽이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하면서 잠깐 혼란이 있긴 했지만 몇 번 시도한 뒤에 최종 오케이를 받아냈다.
정적인 장면으로 카메라나 거울 신이 있었다면, 동적인 장면으로는.
‘역시 안무 촬영이지!’
멤버들이 정말 체력을 쓸 곳은 여기였다.
연습하는 장면은 종종 봤지만 이렇게 의상까지 갖춰 입고 제대로 추는 건 나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도입부의 포인트는 영화 OST처럼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반주가 강렬한 사운드로 변하는 부분.
임팩트를 주기 위해 가장 먼저 센터에 있던 준해가 뒤돌아 있던 해랑과 포지션을 바꾸며 곡의 변화가 시작된다.
평소엔 표정 기복이 크지 않은 해랑이지만, 카메라 앞에 있을 땐 눈빛이 달랐다.
‘와. 천생 무대 체질이네.’
카메라를 씹어 먹을 듯한 표정도, 여유로운 표정도 자유자재.
눈빛이나 표정 외에도 저 피지컬로 수려하게 움직이니 눈길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얼굴이 너무 강렬해서 다른 부분이 조금 가려지는 감도 있었지만 그의 강점은 확실히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이 회사 연습실에 묻혀 있었다니…… 정말 전지구적 낭비야.
재민이 센터로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지켜봤다.
유독 댄스 레벨이 높은 그는 의외로 멤버들과 밸런스가 잘 맞았다.
‘독무를 잘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합이 잘 맞는 것도 레벨에 반영된 건가?’
아니면 위화감이 없도록 의식적으로 전체의 밸런스를 맞추고 있거나.
혹여나 혼자만 너무 튀는 게 아닐까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평소 오프 모습만 보고 지내왔더니 이런 온 모드의 멤버들을 보는 건 새로운 기분이었다.
부드러운 인상이던 멤버들도 메이크업에 표정 연기까지 더해지니 온오프의 경계가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사비부터 다시 갈게요.”
“방금 부분 동선이 겹쳐 보여서 조금 더 넓게 서서 다시 갈게요.”
“다시 갈게요.”
…
같은 춤을 추고, 또 추고.
처음엔 그저 신기하게 구경하던 나는 촬영 감독의 ‘다시 갈게요.’가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진짜 극한 직업이다…….’
촬영을 지켜보는 나야 앉아서 쉬고 싶을 땐 앉으면 된다지만, 멤버들은 한 번 촬영 후엔 땀 식히고 메이크업 수정하고 의상을 다듬느라 제대로 앉거나 눕지도 못했다.
중간 대기 시간에는 녹초가 되어서 쉬다가, 촬영할 때는 없는 힘도 끌어 모아 움직이다가.
마치 얼렸다 녹였다 말리기를 끝없이 반복하면서 황태를 만드는 듯한 기분?
촬영은 밤까지 이어지고 장난치며 활력 넘치던 멤버들도 눈에 띄게 기진맥진해졌다.
“조금만 더 힘내자.”
“네……. 후우.”
그래도 웃을 힘은 남아있는지 숨을 마저 고르면서도 밝게 대답했다.
리더인 우형이 손뼉을 두어 번 치면서 분위기를 환기하자 잠시 휴식을 취하던 멤버들이 다시 대형을 갖춰 섰다.
‘이렇게 의욕적인데 지금껏 못 한 거 아냐…….’
앞으로의 2년도 아득하지만, 이들이 지나온 시간은 얼마나 더 아득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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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 비 티 저 떴 다!!!!
└티저 말고 풀버전 빨리 주면 안 되나요 아ㅠㅠㅠㅠ
└아 미친 이건 미쳤다고밖에
└컨셉 뭐야ㅠㅠㅠㅠㅠㅠㅠ
└수 트 조 아
└하… 이게 어른의 맛이지 나 잠시 천국 다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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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데뷔 때 티저랑 비슷한 것 같지 않아?
타이틀 곡명도 그렇구ㅜㅜㅜ
└뮤비도 좀 이어지는 것 같지???
└나 데뷔팬인데 그때 기분 떠올라서 설렌다 헉허규ㅠ
└얘기 듣고 보니 몬클이들도 몇 부작 이런 거 했으면 좋겠다
└잘나가는 영화 시리즈 나오는 것처럼 우리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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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저 화질 왜 이렇게 흐려?
어라? 내 눈물이었네?
└시야가 흐려도 멤버들 얼굴은 4K로 보이는 거 뭔지 알지…
└티저보고 개안해서 안과 갔는데 시력 5.0 나왔다 오늘부터 양궁 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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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할 수 있었는데 왜 안했어 뉴마놈들ㅠㅠㅠㅠ
└생각해보니 더 괘씸하네
└뉴마는 한 거 없고 애들 비주얼이 다함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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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티저 30초 중에서 10초가 소품클로즈업 실화냐
카메라랑 영화필름도 우리 멤버냐고
└모노필름부터 그려온 복선ㄷㄷ
└큰그림 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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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음방 돌겠지?
제발 TV로 좀 보자ㅠㅠㅠㅠㅠㅠ
└올출석할 자신 있음 진짜 나와주기만 한다면ㅠㅠㅠㅠㅠ
└이젠 좀 실물로 보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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