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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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제 뷰이라이브에서 청춘영화 찍은 아이돌
이런저런 일 있어서 실시간 소식 뜸하던 중
오랜만에 알림와서 들어갔더니
(이미지)
?? 멤버들은 어디가고 하늘만 나옴
한 3분 정도 하늘만 보여주다가
(이미지)
리더: 저희 지금 미국이에요
?갑자기 미국이요? 채팅창에 깔린 물음표에서 팬들의 당황을 느낄 수 있음
노을 이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함 ㅠㅠ(여기서 팬들 1차 오열)
(이미지)
갑자기 기타 들고 오더니 자연스럽게 라이브ㅠㅠㅠ(팬들 2차 오열)
이건 영상으로 확인 바람
(영상)
분위기가 완전 청춘영화 한 장면 보는 줄. 여운 쩔었음
모노크롬 **일에 새 앨범 나오니까 많은 관심 부탁해
└내가 팬이었으면 진짜 행복했을듯ㅋㅋ
└근데 하늘 진짜 이쁘다 맨날 서울 하늘만 보다가 ㄷㄷ
└얘네가 그 멤버 복귀했단 그 그룹 맞나?
└그래서 미국은 왜 간거래?
└비밀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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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이쁘게 입었네.”
미국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캐리어를 끌고 호텔 로비로 내려온 멤버들을 보고 내가 제일 먼저 뱉은 감상이었다.
다시 긴 이동 시간이 기다리고 있어서 입국 때만큼 편하게 입었지만, 옷차림이 어딘가 한층 멋스러워져 있었다.
내 칭찬에 우형이 쑥스러운 듯 볼을 긁으며 대답했다.
“나중에 저희 촬영한 거 보시면 아실 거예요.”
“저희끼리 옷 연구를 좀 해서.”
“연구?”
한이의 ‘연구’라는 말에 멤버들은 재밌는 얘기라도 들은 것처럼 웃었다.
‘뭐지? 해외까지 와서 자기계발이라도 한 건가.’
쉬는 줄 알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모여서 뭔가 한 모양이었다.
뭔진 몰라도 나중에 확인하라는 것을 봐선 셀프캠으로 찍어둔 것 같고.
어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면야 나로선 환영할 일이었다. 알아서 잘 성장하는구나.
오늘 멤버들이 걸친 옷 중에는 내가 선물한 것도 섞여 있었다.
선물한 옷을 이렇게 바로 입어주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이런 출장이라면 또 오고 싶다.’
이번엔 어쩌다 서둘러서 오긴 했지만, 좋은 기회였고 좋은 시간이 되었다.
아예 관광으로만 채운 날도 있었고, 엄청난 무대도 구경했고, 일할 때도 별로 일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정말 원 없이 즐기고 가는 기분이었다.
멤버들도 표정이 밝은 것을 보면 나쁘지 않았던 듯하고.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더 제대로 준비해서 오고 싶다.’
이번엔 급하게 왔으니. 아니, 나중에 바빠지면 더 시간이 없으려나?
이동 시간이 길기도 하고 해외 일정 앞뒤로 더 바쁘게 일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해외 로케를 자주 하기는 힘들 터였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정말 귀한 경험을 하고 가는구나.
잠깐의 휴식과 귀중한 경험을 하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과는 다르게 입국할 때는 공항에 있던 몇몇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히기도 했다.
딱히 우릴 기다렸다가 찍은 건 아니고 다른 연예인을 기다리다 우연히 발견해서 찍은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에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뭔지, 입국하는 모노크롬이 아이돌이란 걸 알아봤단 점은 발전이었다.
다시 겨울 외투를 걸치고 있어서 다 보이진 않았지만, 나의 탕진 덕분에 확실히 출국 때보다는 더 삐까뻔쩍해진 멤버들.
첫 공항패션은 나름 성공이었다.
***
모노크롬의 이번 앨범명이자 타이틀곡은 .
데뷔 앨범이었던 ‘모노필름’을 그대로 차용하고 뒤에 ‘시퀄’이란 단어를 붙였다.
‘시퀄’이란 영화의 속편을 뜻하는 것으로, 이번 앨범명을 쉽게 말하자면 ‘모노필름2’라고 할 수 있었다.
송준오 피디가 모노크롬의 데뷔 앨범인 모노필름의 프로듀싱을 맡았다는 얘기를 듣고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모노크롬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었던 그 색을 다시 이어나가는 것.
그런 아이디어로 시작해 뉴마로 다시 돌아온 준오 피디와 함께 회의하여 만들어낸 타이틀명이었다.
이전에 들었던 우형의 자작곡은 2번 트랙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타이틀곡은 여러 후보가 있었다.
그중에서 멤버들의 만장일치로 선택받은 곡이 타이틀로 결정되었다.
‘드디어 저예산 자가복제에서 벗어난 제대로 된 곡!’
모노크롬의 최근 앨범들처럼 내부 작곡팀에서 대충 예산 맞춰 만든 곡이 아니라, 외부 작곡가에게 제대로 돈 들여서 받은 곡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감동이었지만 앨범이란 것이 곡 음원만 나온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이번엔 뮤비까지 정말 진짜 제대로 만들어보자.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뮤직비디오 촬영일이었다.
완성된 뮤직비디오 콘티에 따르면 곡이 시작되기 전에 몇 개의 장면이 먼저 삽입될 예정이었다.
옛날 영화처럼 필름이 촤라락 영사되는 화면, 그리고 카메라를 들여다보던 한이가 고개를 드는 장면. 마치 영화가 시작되는 듯한 연출을 노린 것이었다.
이것도 흑백 영화 같은 빈티지한 연출을 내세웠던 데뷔 앨범 뮤비와 이어지도록 구성된 것.
소품으로는 옛날 영화 촬영에 쓰일 법한 구식 카메라 모델이 준비됐다.
나는 촬영에 앞서, 대기하는 한이에게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전달했다.
“무표정에 가까운데 살짝 미소 짓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옛 필름을 돌려보다가 아련한 어떤 기억이 떠올라서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그런 표정 말이야.”
“흐음……. 밝으면서 어두운 그런 거요?”
“그래, 그거.”
“아~. 전혀 모르겠는데요.”
내 요청사항을 들은 한이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해한 것처럼 말하더니.
옆에 선 윤희에게도 같은 설명을 해 보니 똑같은 반응이었다.
“그냥…… 한마디로 복잡미묘한 표정이네요.”
“……그 말도 맞긴 한데 좀 다르단 말이에요.”
윤희는 ‘맞는데 다른 건 또 뭔가.’ 하는 표정이었다.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요구하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응. 어렵지.
항상 ‘이런 걸 원해요!’ 하고 대충 설명하면 담당 인력들이 알아서 뚝딱뚝딱 보완해 오거나 만들어 주니까 딱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직원들 입장에선 완전 전형적인 진상 클라이언트식 상사인 거 아냐……?’
내가 원하는 것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심플하면서도 화려함이 숨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고, 그 오묘한 선에 걸쳐 있는 것. 그런 거 좋잖아.
어떻게 보면 원하는 게 확실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걸 말로 표현하려니 두루뭉술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내 머릿속 이미지를 이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머리를 열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말이야.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채로 한이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한이는 내 부족한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해석했을까.
그런 마음으로 조금 걱정스레 촬영을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저거!’
아까까지만 해도 전혀 모르겠다며 아리송한 얼굴이던 한이는 내 요청사항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었으니까.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눈빛하며, 천천히 일어나는 몸짓하며, 흠잡을 것이 없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오히려 내 상상 이상으로 이 장면의 주인공으로서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다.
‘얘 완전 연기에 재능 있는 거 아냐?’
이 장면은 한 가지 버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촬영 각도를 바꾸거나, 걸어오는 데서부터 시작하거나, 동작을 조금 바꾸는 등 몇 가지 배리에이션도 있었다.
어느 버전이 최종적으로 뮤직비디오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깔린 분위기나 감정은 동일했다.
“오케이. 컷!”
오케이 사인은 금방 떨어졌다.
나름대로 연기가 필요한 부분이었는데 한이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깔끔하게 전부 잘 해냈다.
중간에 잠깐 눈에 속눈썹이 들어갔다며 NG가 난 것 외에는 별다른 지체 없이 도입부 촬영이 빠르게 끝났다.
“괜찮네요. 이 정도면 충분히 나온 것 같습니다.”
“이 장면 촬영은 끝난 건가요?”
“네. 빨리 끝났다고 해서 대충 한 건 아닌 거 아시죠? 저 친구가 참 능숙하게 잘하네요.”
콘티에 뭔가를 체크하던 감독이 촬영 종료를 고하고는 내게 말했다.
내가 돈을 지불한 클라이언트이니 비즈니스 섞인 칭찬일지도 모르겠지만 완전히 빈말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도 오케이 사인을 내리며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내 눈엔 완벽해 보여도 전문가의 눈은 또 다를까 싶어서 걱정했는데, 괜한 염려였던 모양이다.
잘한다니까 괜히 내가 흐뭇해지는 이 기분.
“수고하셨습니다~.”
밖에 나가면 아직 입김이 나올 날씨라, 촬영용 의상이었던 한이는 곧바로 매니저에게 외투를 받아 걸쳤다.
“넌 진짜 배우 해도 되겠다.”
이전에 프로필 사진 촬영을 구경하며 한이에게 했던 말이었는데.
그땐 그냥 얼굴이 배우상이라고 생각해서 말했던 거고 이번엔 진심이었다.
진짜로 배우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뉴마에 배우들도 있었지.’
나는 모노크롬을 전담하고 있어서 분야가 다르지만, 뉴마 엔터테인먼트는 배우 소속사이기도 했다.
저번에 연습생 도한 사건으로 알게 된 건데, 현재 뉴마에 소속된 연습생들이 전부 아이돌을 꿈꾸는 건 아니고 배우 지망생도 꽤 있었다.
그들은 회사 차원에서 연기 트레이닝을 받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런 연습생들처럼 한이도 회사에서 따로 배운 게 아닐까?
“너 혹시 연기 배운 적 있니?”
“아니요.”
“…….”
우리 멤버는 왜 연습생도 받는 연기 수업을 못 받은 거야…….
무방비한 상태에서 또 죄책감 공격을 받은 나는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대화 중이다. 대화 중에 또 이마 팍팍 치고 그러면 애 놀란다.’
나도 모르게 이마로 올라가려던 손. 나는 주먹을 꾹 쥐고 잠시 마음을 다스렸다.
출근 첫날에 내가 앞에서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바람에 우형이 상당히 당황했었지…….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이 상황에 집중했다.
요즘 아이돌들은 연기도 기본으로 한다던데, 제대로 배워보면 진짜로 잘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저 눈빛이 연기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뭐랬더라, 팬들이.’
그, 멜로 눈깔…… 아니, 멜로 눈빛.
있지도 않았던 대학 시절 첫사랑의 추억이 떠오른다는 기억조작 눈빛.
한이는 눈매 때문인지 부드러운 인상 때문인지 특유의 그윽한 분위기가 있었다.
평소에 장난치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게 자꾸 기억에서 지워질 뿐.
아직 촬영을 위한 세팅 전인 우형과 준해도 조금 전에 먼저 나와 한이의 촬영 후반부를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형은 진짜 입 다문 게 제일 멋있어.”
“내가 메보인데 입을 다물라고 하면 어떡하냐.”
“한이가 그래서 멋을 좀 포기한 거잖아. 우리의 메인 보컬이 되어주기 위해.”
“……칭찬이야?”
칭찬인 듯 아닌 듯 오묘한 말에 한이는 시선을 위로 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니. 형 잘생겼다고.”
그러니까 결국 칭찬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같이 듣고 있던 나도 덩달아 아리송해져서 잠시 해석을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다들 평소에 늘 하던 실없는 농담이었는지 대충 넘어갔지만.
“그럼 형들 중에 누가 제일 잘생겼냐?”
“아. 해랑이 형이지.”
준해는 뭘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이 찰나의 틈도 두지 않고 재깍 대답했다.
“내가 하루 동안 입을 다문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게.”
“너한텐 불가능한 일 아닐까?”
한이는 막내의 인정에 집착하고, 준해는 철벽을 치고, 우형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그래. 이런 캐릭터라 자꾸 잊게 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