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재민의 복귀를 공개한 이후 아직 팬덤 분위기가 안정되지 못하여 바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대신 뉴마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으로 공지만 냈다. 요지는 이러했다.
[기존 멤버였던 명재민 군과의 합의 하에 다시 멤버로서 활동하기로 했으며, 앞으로 뉴마 엔터테인먼트는 모노크롬 활동 지원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응원 부탁드립니다.]
환영하는 사람이든 불만스러운 사람이든 마음속으로 받아들일 시간을 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직도 한구석에선 시끄러운 상황인데 이 와중에 하하호호 잘 지내는 모습을 내보여도 좀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으니까.
멤버들은 뷰이라이브 같은 소통도 잠시 쉬게 되었다. 덕분에 앨범 준비에 온전히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점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대신 또 아무 떡밥 없이 그저 조용하게 넘기진 않았다.
이전 프로필 사진 촬영 비하인드는 창고행이 되었지만, 이번 라이브 클립 비하인드 영상은 공식 채널에 업로드되었다.
[얼마 만에 움직이는 몬클이들이냐ㅠㅠㅠㅠ]
[모니터 속 재민이는 웃는데 전 왜 눈물이 나죠ㅜㅜㅜㅜㅜ 저 웃는 모습 보려고 얼마나 기다렸는지ㅜㅜㅜ]
[준해 새하얀 옷 입으니까 너무 무섭다. 숨겨놨던 천사 날개 꺼내고 하늘로 돌아갈까봐..]
[해랑이 피아노 치는 거 저만 처음 보나요 아 내 심장]
[한이 자기 목 푸는 법 알려주는 거 뭔뎈ㅋㅋㅋㅋ 익룡이냐구ㅜㅜㅋㅋㅋㅋ 목 풀려다가 목 나가겄어ㅋㅋㅋㅋ]
[우형이 피아노 치는 거 무편집으로 올려주세요]
[완전체 나란히 앉았을 때 소름…ㅠㅠ]
[난 저런 의자 앉으면 발 달랑달랑하는데 다리 길이 무슨 일이야]
해랑이 피아노 치는 장면은 나중에 짠 하고 보여줄 때가 있을까 해서 킵해둘 생각도 잠깐 했는데, 떡밥에 목마른 팬들을 놔두고 꽁꽁 싸맬 필요는 없었기에 넣었다.
‘나름 회심의 장면이었지.’
예상대로 팬들이 좋아해 주니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댓글을 보다 보니 ‘ㅋㅋㅋㅋ’가 많으면 주로 한이 얘기였고, ‘ㅠㅠㅠㅠ’가 많으면 주로 재민 얘기였다.
재민 복귀 후 첫 활동 비하인드라 역시 재민에 관한 언급이 가장 많긴 했지만, 그걸 감안하고 보면 멤버들 모두 비슷비슷한 비중으로 언급되었다.
한 사람이 멤버별로 좋았던 포인트를 여러 댓글로 남기기도 했고.
여러 힘든 일을 같이 겪어와서인지 팬들 또한 멤버들처럼 다들 똘똘 뭉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윤환이 있었을 땐 어떤 분위기였을지 상상이 안 가네…….’
윤환의 팬이었다가 컬러즈가 된 사람들은 남았을까, 떠났을까.
마이 엔터 화면에선 그룹의 팬 지수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전에 잠깐 확인했을 땐.
531, 533, 530, 528…….
게임에선 스케줄이나 이벤트가 끝나면 50, 100씩 오르거나 내려가던 수치가 지금은 1단위로 수시로 바뀌고 있어 식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거 원래 이렇게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수치였냐고.’
아이리스는 3000이 넘는데도 모노크롬은 500대에 그친 이 수치.
이는 팬덤의 인원을 그대로 나타내는 게 아니라 추상적인 수치였다.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지수로 환산되어 나타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노크롬의 팬 지수와 인지도는 갓 데뷔한 신인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원래 700대였던 인지도는 실시간 트렌드에 잠깐 올랐을 때 잠시 1000을 넘더니 금세 다시 내려가 결국 오른 수치는 미미했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지 못했다는 걸 이렇게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될 줄이야.
마치 실시간으로 내려가는 주식 그래프를 보듯이 멘탈에 좋지 않았기에 나는 살포시 뒤로 가기를 눌렀다.
‘애매한 숫자보다야 팬들 반응이 직관적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스크롤을 내리는데 준해를 천사에 비유하는 코멘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니 프로필 사진 촬영 날, 준해의 촬영을 구경하던 멤버들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었다.
팬들도 좋아하는 가수를 닮는 건가.
비록 그 누구보다 회사,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나를 질타하는 사람들이지만 모노크롬에겐 정말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팬들을 위해 다음 공개할 만한 소식이 있기 전까지는, 이번 컨셉 이미지 촬영 현장 스틸컷과 스틸 영상을 뿌리며 버티기로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은 이 업계에선 통하지 않는다. 팬들이 소식 가뭄에 말라 죽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현장 비하인드 챙기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먼저 알아서 챙겨준 윤희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건넸다.
업로드할 콘텐츠도 몇 개 더 남았으니 나도 당장 뭐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옆에 두고 수시로 확인하는 스케줄러엔 재민이 회사에 나오는 날과 나오지 않는 날이 표시되어 있었다.
재민은 무리해서라도 뉴마와 댄스팀을 왔다 갔다 하며 앨범 준비와 댄스 경연 대회 준비를 함께 해나갔다.
뉴마도 댄스팀도 서로 최대한 상대방 일정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배려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당사자인 재민은 두 팀 스케줄을 함께 소화하다 보니 무리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종종 회사에서 마주치는 재민의 얼굴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하는 그를 멤버들이 도와주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법인 카드를 꺼내는 것뿐이었지만.
그렇게 바쁜 나날이 이어지고, 드디어 모노크롬의 출국일이 다가왔다.
***
“어후, 추워.”
“거긴 좀 따뜻하대.”
“그래서 한이 형 패딩 안 입고 나왔구나.”
“으, 나 바람 막아줘!”
한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호들갑을 떨며 멤버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멤버들 모두 패딩이나 겨울용 외투를 입고 있는데 한이는 혼자서 늦가을용 차림이었다.
‘바로 실내에 들어갈 거니까 짐 줄이기엔 나쁜 선택은 아니긴 한데.’
LA는 지금쯤 선선한 날씨일 것이다. 현지 일기예보를 확인해 봤을 땐 비 소식도 없었고.
맹추위를 벗어나 날씨 좋은 곳으로 떠나다니. 이게 해외여행, 아니 출장의 묘미지!
춥다며 옹기종기 모인 짙은 색의 머리 사이에서 찰랑거리는 밝은 머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뮤비 촬영 때문에 잠시 탈색하여 금발이 된 재민이었다.
돌아온 후엔 이번 앨범에 맞춰 원래대로 색을 덮고, 다음 앨범 때 다시 이 밝은 금발 머리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해랑의 새빨간 염색 머리가 떠올라 멤버들 두피는 최대한 지켜주고 싶었지만, 일정을 앞당긴 만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뭐예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쪽 출입구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엔 무슨 단체 관광객인 줄 알았으나 그들은 이동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그저 출입구 옆에 자리 잡고만 있었다.
내가 물어보자 윤희가 곧장 대답했다.
“기자랑 팬들이요. 다른 연예인도 오늘 출국하나 보네요.”
아. 공항 패션이니 뭐니 하면서 기사가 뜨던 게 그거였구나.
저렇게 마냥 기다리다가 연예인이 오면 찍는 거였다니.
엔터 업계에 강제로 발을 들인 지 얼마 안 된 신출내기인 나는 잘 모르는 세계였다.
당연히 우리가 향하는 출입구엔 기자나 모노크롬의 팬이 없었다.
‘아니, 당연하다고 하면 안 되지!’
애초에 공개된 스케줄도 아니고 갑자기 가는 거잖아. 음. 그렇지.
마음속으로 혼자 납득하려고 노력했으나, 가까이 붙은 두 출입구 사이가 참 멀게만 느껴졌다.
“저 사람들 혹시 아이돌인가?”
우리가 횡단보도를 건너자 그저 심심하게 연예인을 기다리던 몇몇이 이쪽에 시선을 두었다.
직원들과 섞여 있는 와중에도 일반인 같지 않은 남자 다섯 명이 나란히 걸으니까 눈에 띄긴 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런 금발을 휘날리면 눈길이 가는 것도 당연지사.
“몰라. 아이돌이면 팬들도 와 있지 않았을까?”
“그렇긴 하지. 근데 진짜 일반인 아니고 연예인 같다.”
“맞아.”
……그렇겠지. 일반인이 아니고 연예인이니까.
안타깝게도 그들의 추론은 이 다섯 명이 진짜 아이돌이란 사실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내 귀가 밝은 건가. 이런 뼈아픈 말은 이상하게도 잘 들렸다.
돌대회 때는 다른 팬덤도 모노크롬이나 컬러즈를 알아보고 안쓰럽게 쳐다봤었다.
다만 그땐 앞에 있는 사람은 아이돌이고 앉아있는 사람은 팬이란 걸 알기에 알아봤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 덩어리의 그룹으로 흐릿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있어도 개개인의 얼굴까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잠깐 흘끔거리던 사람들도 ‘설마 저렇게 무방비하게 다니는 게 아이돌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는지 금방 관심을 거뒀다.
그리고 곧바로 그들의 화제는 ‘빨리 우리 애들이나 보고 싶다.’로 바뀌었다.
애‘들’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니 저들이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로 아이돌 그룹으로 추정되었다.
‘우리도 아이돌인데…….’
우리도 막. 어? 경호원 데리고 벽 만들어서 이동하고. 어?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물론 그런 경호까지 사전에 준비해두진 않았다.
그걸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는 게 슬픈 일이다.
더 슬픈 건, 멤버들은 이렇게 다른 아이돌과 격차를 보이는 상황에도 별생각이 없어 보인단 것.
‘여기에 익숙해지면 안 돼, 얘들아!’
안타까운데, 또 내가 이렇게 만든 것이라 내 입으로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었다.
같이 대화하던 윤희만 내 표정을 봤는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너무 그렇게 일희일비하진 마세요.”
“네…….”
그녀는 멘탈이 강한 팬매니저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의연했다.
아니 어쩌면 무뎌진 걸지도.
***
뮤비 촬영은 재민의 댄스 경연 대회 이후로 일정이 잡혀 있었기에, 멤버들이나 우리 직원들은 재민보다 늦게 출발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같은 날 출국하여 대회 날까진 댄스팀 일정에 맞추기로 했다.
재민만 따로 왔다 갔다 하기도 좀 그렇고, 댄스팀에서도 연습을 구경해도 좋다고 했으니까.
외국에서 리프레시하면서 새로 영감을 받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회삿돈이니까!’
중간에 해외 일정을 끼워 넣느라 최근엔 곡 작업을 서두르거나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건 일종의 중간 휴식이었다. 재민에게만은 휴식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게다가 내 월급도 마땅히 쓸 데가 없었는데 이참에 사치나 부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우린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야 다른 편으로 먼저 도착한 댄스팀과 합류했다.
“쩨미~. 어서 와!”
약속 장소인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숏컷의 여성이 먼저 다가와 재민을 안으며 반겼다.
‘쩨미’라는 것은 재민의 별명인 듯하였다.
재민은 곧바로 소개에 나섰다.
“이쪽이 제가 있던 ‘팀 미로’ 팀원들이고요. 여긴 단장인 정민후 형, 여긴 실질적인 단장 이로아 누나. 두 사람은 부부고요.”
“그냥 제가 단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재민을 먼저 반긴 여성이 ‘실질적인 단장’이라 소개받은 이로아였다.
그녀가 단장이라는 정민후를 가리면서 앞으로 나서자 단장은 “그럼 내가 뭐가 되냐…….” 하면서 그녀를 잡아끌었다.
“단장도 그냥 같이 팀원 해요.”
“네. 다시 소개할게요. 이쪽은 그냥 팀원인 정민후 형.”
“으이구. 짜식들이!”
재민이 있던 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고 서로 거리낌 없이 편안하게 대하는 사이.
그렇게 쾌활한 분위기 속에 팀원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이 사람들이 재민이를 가르친 사람들…….’
재민의 댄스 레벨을 9까지 올려둔 사람들이었다.
짧은 소개 중에도 저들끼리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했지만 내 눈에는 정말 대단하게만 보였다.
하긴 굳이 레벨을 생각하지 않아도 한국 대표로 세계 대회에 나갈 정도면 실력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팀원들의 소개를 마친 재민이 이번엔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쪽은…….”
이 분위기를 보니 왠지 주인 님이라고 할 것 같아서 나는 얼른 먼저 나섰다.
“뉴마 엔터테인먼트 이사, 신주인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이사님이라고 듣기만 했지 이렇게 젊으신 분일 줄 몰랐는데.”
“아하하.”
설정상 낙하산이니까요, 라는 말은 삼켰다.
“이쪽은 저희 모노크롬 멤버들이고요.”
“안녕하세요, 모노크롬입니다!”
멤버들이 타이밍 맞춰 인사하자 미로 팀원들의 이목이 쏠렸다.
“멋있다. 우리도 저렇게 칼같이 맞춰서 인사하자.”
“너네 인사 맞추는 게 아마 안무 맞추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걸.”
그렇게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우리 멤버들과 미로 팀원들은 서로가 신기한지 뭔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고, 나는 단장 부부와 일정을 확인했다.
“그럼, 고이 빌리고 반납하겠습니다.”
단장인 민후가 재민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내게 말했다.
재민은 잠시 팀 미로의 팀원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