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5명이 하던 활동을 4명으로 지속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재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너무 미안해하지 않도록 멤버들은 더욱 힘내서 활동했다.
재민이 재활 치료를 끝낸 후 돌아올 자리를 지켜줘야 했으니까.
그러나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후에도, 재민의 복귀는 미뤄졌다.
회사가 말하는 바로는, 다리 부상은 치료가 끝났더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니, 완전히 괜찮아질 때까지 활동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재민에게 부상의 후유증이 남을지 안 남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회사에서는 그에 대한 확신을 요구했다.
본인이 의사 소견까지 들어가며 아무리 괜찮다고 주장해도 회사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활동 중에 입은 부상임에도 회사는 재민의 관리 소홀을 탓하며 완고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자신들에겐 항의할 권한조차 없었다.
[명재민. 윗선에 찍혔다며?]
[헐. 그래도 일하다 다친 건데 좀 너무했다.]
[걔 빼느라 안무 다시 짜고 편곡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잖아.]
책임은 그룹에게 돌아왔다.
그저 회사가 재민의 복귀를 허락해주기만을 기다리며, 그렇게 몇 달간 네 명만의 활동이 계속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연습생으로 윤환이 회사에 들어왔고, 얼마 후.
“재민이가 갑자기 사라졌어요.”
“사라져……?”
네 명이 지방 행사를 위해 잠시 떠나있던 동안, 숙소에 있던 재민의 짐이 모두 사라졌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멤버들과 달리, 회사는 그가 무단으로 잠적했다며 괘씸해했다.
그렇게 이유도 모르고 시일이 지났다. 멤버들은 뒤늦게야 그와 합의하에 계약이 종료됐다는 얘기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빈자리에 윤환이 새로운 멤버로 들어왔다.
“처음엔 왜 사라졌는지 몰랐는데…….”
그는 나중에야 직원들이 뒤에서 하는 얘기를 듣고 알았다.
[어떻게 교체하나 골치였는데 제 발로 나갔으니 잘됐지, 뭐. 다행히 눈치는 있네.]
[에이, 네가 너무 티 낸 거 아냐?]
[내가 뭘?]
“……그 직원 누구야?”
“지금은 나갔어요.”
우형은 이제 화조차도 사라졌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젠장. 내가 잘랐어야 했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재민은 자기 잘못으로 퇴출당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 멤버들 몰래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멤버들에게 죄책감을 지우지 않으려고.’
우연히 실상을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멤버들은 아직도 말없이 사라진 재민을 원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몇 년을 함께 지내던 멤버가 혼자 모든 책임을 지고 홀연히 사라졌다.
새로운 5인조로 활동하면서도, 멤버들의 마음 한구석에서 그는 지울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내 손으로 대체 몇 명의 인생을 망친 거야…….’
씁쓸한 표정의 멤버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내가 이들의 인생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빚을 갚아야 할 것은 모노크롬의 전 멤버, 재민도 마찬가지였다.
***
밤 9시가 넘은 시각.
나는 최 비서가 모는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그것도 우형을 대동하고.
갑자기 야근을 시키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최 비서는 “괜찮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가볍게 넘겼다.
‘진짜 최 비서 없었으면 얼마나 고생이었을까.’
오밤중에 이렇게 모인 이유. 바로 재민이 있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멤버 영입이란 게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 몰라서 며칠간 고민하고 얘기를 꺼낸 것이었는데, 멤버들은 혼란스러워하긴 해도 의견 통합이 빨랐다.
적어도 그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확고했다.
재민은 그룹 탈퇴 이후 연예계에선 완전히 모습을 감췄기 때문에, 소재지를 찾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서울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 편의점.
‘아이돌 하던 애가 지금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다니…….’
씁쓸한 마음으로 지나가는 가로등을 눈에 담았다.
조수석에 앉은 우형은 신호에 걸리면 손가락으로 자기 다리를 두드리며 혹여나 늦기라도 할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난 뒷좌석에 앉아 있어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뒤통수에서도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난다는 10시에 맞춰 늦은 시간에 이동하느라 다행히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차가 멈춰 섰다.
“어서 오세요.”
“재민아.”
손님이 없어 카운터에서 핸드폰을 보던 그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인사하며 고개를 들었다.
한겨울의 찬바람을 맞아서인지, 감정이 차올라서인지 우형이 붉어진 얼굴로 그를 불렀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형……?”
우형은 카운터 너머로 상체를 뻗어 재민을 와락 안았다.
“너 내가…… 흐윽, 얼마나…….”
우형은 재민을 놔주지 않고 엉엉 울었다.
아무래도 원래 눈물이 아주 많은 타입인 듯했다.
‘윤환이 앞에선 얼마나 참은 거야.’
얼떨떨하게 안긴 재민은 놀라서 굳어버렸다. 곧이어 눈가가 빨개지더니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감동의 재회를 바로 옆에서 보고 있자니, 나까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울 것 같다…….’
하지만 여긴 내가 감정을 표출할 자리는 아니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은 저 두 사람이니까.
나는 한참이나 재회를 만끽하는 두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걸로 내 행동으로 인한 상처가 조금이라도 기워졌으면.
***
“추운데 차 안에서 기다리지.”
“그냥 여기서 기다릴게요.”
아직 재민의 아르바이트 시간은 조금 남아있었다.
다른 두 사람이 차에 타서 기다리는 동안, 우형은 편의점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재민이 눈앞에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한 번 그를 잃은 적이 있기에 왠지 마음이 불안한 탓이었다.
우형은 이렇게 재민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최근 들어 유독 그의 생각이 나기는 했다. 그때처럼 갑자기 네 명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나 회사에서 먼저 그런 제안을 해올 줄은 몰랐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떨리는 게 추워서인지 긴장되어서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손님 몇 명이 지나가고, 다음 타임 아르바이트생과 교대한 듯 이번엔 재민이 나왔다.
우형은 말없이 그의 손목을 잡고 차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자 안에서 기다리던 둘이 나왔다.
네 사람은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로 향했다. 밤이라서 사람이 많지 않아 대화를 나누기 좋았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지. 난 올해부터 뉴마에서 이사로 일하게 된 신주인이라고 해.”
“주인…… 님?”
“…….”
주인이 자기소개를 하자 재민은 그녀의 이름을 듣곤 그렇게 말했다.
‘중고딩 때나 친구들이 부르던 별명인데.’
주인. 이름은 평범한 편인데 ‘님’을 붙이면 이상해지는 이름이었다.
우형은 옆에서 팔꿈치로 재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재민이 “아, 왜.” 하면서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이쪽도 넉살 좋은 편이네.’
그저 장난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면 다행이었다.
“다들 이사님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아니, 뭐 어떻게 부르건 자유고. 오늘 우리가 찾아온 건…….”
주인이 눈짓하자 최 비서가 서류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이건……?”
“계약서야. 너만 괜찮다면 모노크롬의 멤버로 다시 스카우트하고 싶어.”
재민은 그 이야기를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이전 계약 해지는 서로 처리하기 급급하여 끝맺음이 깔끔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자신을 찾는다면 그것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더는 관련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모노크롬의 최근 소식은 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자신이 나간 후 새 멤버로 활동하던 윤환이 탈퇴했다는 소식.
동시에 멤버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외부인이었으니까.
주인은 말없이 테이블에 올려진 서류봉투를 바라보기만 하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생각이 있다면 읽어줘. 제대로 읽고, 조정할 게 있으면 얼마든지 조정해. 너와 함께하고 싶은 거지, 널 이용하고 싶은 게 아니니까.”
마음 같아선 그에게 지금 바로 확인시켜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다.
자신과 최 비서는 내일 출근해야 했고, 우형도 숙소로 데려다줘야 했고, 재민도 퇴근 후라 피곤할 터였다.
다만 주인은 해줄 말만큼은 확실히 전했다.
“회사가 힘들게 한 건 면목 없고, 이렇게 찾아온 것도 염치없다고 생각해. 만일 복귀를 원하지 않더라도 네가 피해 본 건 어떻게든 갚을 생각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주인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재민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만일 돌아온다면, 예전이랑은 다를 거야.”
그녀의 눈에선 의지가 느껴졌다.
사실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재민은 그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우형을 데리고 직접 온 것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진심인지.
대화가 끝나고 카페를 나서며 우형은 재민의 번호를 받아냈다.
전화가 제대로 걸리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예전 재민이 알던 리더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돌아오라고 부담 주는 건 아닌데, 적어도 또 우리 모르게 어디 가지는 마.”
“형은 똑같네.”
재민이 피식 웃었다.
연장자이긴 해도 다 비슷한 나이 대인데, 그는 항상 이렇게 보호자 같은 구석이 있었다.
주인과 최 비서가 앞서가고, 우형도 뒤따라 차로 돌아가면서도 자꾸만 뒤돌아 재민을 바라봤다.
‘진짜로 똑같네.’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재민도 마찬가지였다.
***
뉴마 엔터테인먼트는 연예인이 출입하는 곳이기에, 외부인이 들어오려면 로비에서 신분 확인을 해야 했다.
그런 그곳에 ‘비서 최단우’라고 쓰인 명함을 들고 찾아온 이가 있었다.
로비를 통과한 그가 이사실로 직행하는 동안, 그의 얼굴을 본 직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 비서가 이사실 문을 두드렸다.
“이사님. 명재민 군이 찾아왔…….”
최 비서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주인이 먼저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왜, 왜 벌써 왔어?!”
그녀가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재민과 만나고 온 것이 바로 어제 일. 아직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듣고 주인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읽지도 않고 계약서를 반납하러 온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민의 손엔 계약서가 담긴 봉투가 그대로 들려 있었으니까.
“계약하러 왔는데요.”
그러나 주인의 걱정과는 반대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다음으로 주인에게 든 생각은 ‘제대로 읽은 거 맞아?!’였다.
“읽긴 한 거지……?”
“자신 있게 말씀하시던 걸 보면 믿을 만하겠죠.”
“얘가, 얘가, 큰일 날 소릴.”
그가 누구인가. 이 회사에 가장 크게 덴 전적이 있는 인물이 아니던가.
주인은 그를 데려가서 조항을 하나하나 전부 읽어 줄 기세였다.
“농담이에요. 부모님까지 다 읽어보셨어요.”
재민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게 농담할 일이야……?’
의심의 눈길을 보내거나 화내도 시원찮을 판에, 웃으며 농담까지 하다니. 보통 녀석이 아니었다.
게다가 계약서를 전달한 것은 어젯밤. 야밤에 그의 부모님에게 머리 아픈 일을 떠안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민은 환하게 웃으면서 서류 봉투를 양손으로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웃음에 주인도 동그랬던 눈이 차차 가늘어지며 이내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재민이 내민 계약서를 소중하게 받아들었다.
재민은 그런 주인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생각했다.
갑자기 자신에게 찾아와 손을 내민 그녀.
그녀가 이끄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엔 분명 생각보다 더 근사한 미래가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