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윤환은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있던 서류를 낚아챘다.
“이런 걸 왜 팀장님이 마음대로 하세요?”
“네 부모님과 합의 끝난 얘기다.”
“팀장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윤환과는 채 합의되지 않은 일인 듯했다.
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막무가내로 이러는 건 아닙니다.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윤환아, 너도 앉아 봐.”
어쩌다 보니 사자대면이 되었다.
팀장은 차분했고, 윤환은 표정이 좋지 않았고, 나는 팀장을 노려봤다. 사장은 중간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해 주시죠.”
“일단 이것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계약 조건에 관한 얘기 말입니다.”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이유는 요약하자면 그거였다.
계약 시에 개인 활동에 관해 제대로 합의되지 않았는데 무리한 솔로 활동 일정을 강행한 점.
개인 활동이 더 길었음에도 재계약 역시 그룹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점.
듣고 보니 내가 저지른 문제라 할 말은 없었다. 이게 윤환의 의견이라면 말이다.
“그걸 팀장님이 주도하시는 이유는요?”
“흐음. 다들 보는 곳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팀장은 자신의 재킷 속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낯익은 봉투. 이 회사에 와서 벌써 두 번째 보는 사직서였다.
“뉴레인으로 옮기면서 윤환이를 함께 데려갈 생각입니다. 뉴레인에서도 수락한 얘기고요.”
모르는 사이에 거기까지 생각하고 준비해둔 건가.
당당한 그의 모습에 뒷골이 당겨왔다.
“자사 레이블이니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은 없을 겁니다.”
회사의 입장이라면 몰라도, 모노크롬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내가 아니라 오로지 사장만을 보면서 얘기했다.
“크흠.”
“사장님.”
사장은 팀장과 나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내내 모호한 태도만 보였다.
나는 그런 사장을 단호한 목소리로 불렀다.
“모노크롬의 일이니까 저도 당사자와 얘기를 나누게 해주시죠.”
다행인지 사장은 내가 대표 딸이란 설정이어서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저자세로 나왔다.
내가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니, 위치를 이용해 갑질 아닌 갑질을 할 수 있었다.
이 건은 당사자와 충분히 합의가 끝난 뒤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다.
사장실을 나오고 내가 윤환을 데려가려던 때.
팀장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윤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매니지먼트팀으로 돌아갔다.
잘 생각해보면 자신 말이 옳다는 걸 알게 되리라는 듯.
일대일 면담을 하기 위해 우리는 빈 회의실로 내려왔다.
팀장에게서 뺏은 서류를 꾸깃해질 정도로 세게 쥐고 있는 윤환은 말이 없었다.
“멤버들한테는 얘기했어?”
윤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서류 뺏으러 사장실까지 온 걸 보면 자기도 이럴 줄 몰랐겠지.
“네 의사는?”
“……솔직히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바로 팀장이 통보할 줄 몰랐던 것이지, 내용에 대해 전혀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완전히 본인을 배제하고 이야기를 나눴으리라곤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팀장은 부모님과 합의가 끝났다고 했고,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 윤환 또한 본가에 있었다.
생각해보니 팀장과 뉴레인, 윤환의 부모님이 비밀리에 얘기를 나눴다기엔 너무 외부에 소문이 많이 퍼졌다.
‘……소문까지도 계획한 건 아니겠지.’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상이 어떻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리고 탈퇴라는 선택지를 받아들이는 여론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 회사를 떠나도, 남아 있어도, 분명 잡음이 나올 상황.
본인도 혼란스러워하는데 내가 어느 쪽으로 하자고 설득하거나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
윤환 역시 내가 운영하던 뉴마의 큰 피해자였으니까.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며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던 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한 얼굴들은, 모노크롬 멤버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심각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나와, 손에 서류 봉투를 쥐고 있는 윤환.
누가 봐도 소문과 같은 상황이었다.
윤환과 멤버들은 눈을 마주치고도 서로 섣불리 말을 먼저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준해였다.
“어떻게 혼자서 그래? 우리한테도 먼저 말을 했어야……!”
“준해야.”
준해가 목소리를 높이자 우형이 제지하고 나섰다.
앞을 가로막힌 준해는 조금은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윤환은 고개를 떨궜다.
“너희도 앉아.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냥 뒀다간 몇십 분이고 눈치만 보고 있든 싸움이 나든 할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나는 윤환과 대각선으로 앉아 있었고, 멤버들이 윤환의 맞은편에 앉았다.
4:1로 대치하는 듯한 자리 배치. 혼자 떨어진 윤환이 마치 죄인 같았다.
“뉴레인에서 윤환이를 데려가려고 해.”
난 상황 설명에 나섰다. 뉴레인 얘기까지는 듣지 못했는지 멤버들의 눈이 커졌다.
“윤환이 부모님이 계약해지 요청을 하셨고, 솔직히 회사에선 막을 명분이 없어.”
부모님이 아니라 윤환 본인이 나섰다면 지금쯤 바로 탈퇴 절차를 밟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윤환이 아직 망설이고 있었기에 이렇게 정리할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윤환이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미안.”
내 말에 틀린 게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윤환이 멤버들에게 사과를 했다.
나가기로 마음을 결정해서가 아니라,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모노크롬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게 내 일이었지만, 목적을 위해 붙잡기엔 윤환의 입장이 너무나도 이해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솔직히 나였으면 이런 회사 못 버티고 벌써 나갔어.’
전 회사에서도 결국 굴복하고 도망치듯이 나온 나였으니까.
멤버 다섯 명이 재계약까지 붙어있었던 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러면…… 모노크롬은요?”
이번엔 한이가 내게 물었다.
멤버 간의 불화로 벌어진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상호 의견 차이를 계기로 아예 그룹이 와해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너희가 원하지 않는 이상 모노크롬은 유지될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해.”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나도 원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멤버들의 의견이지만, 그들 또한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일이 너무 많이 커졌어. 회사도 오래 기다려주긴 어려울 거야. 윤환이는 충분히 생각하고 다시 얘기하자. 그리고 너희들도…… 생각해 둬. 의견 정도는 들어줄 수 있으니까.”
최종 결정은 윤환이 하겠지만, 다른 멤버들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윤환을 떠나보낼지, 남도록 설득할지.
나는 그렇게 멤버들을 해산시켰다.
***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아서인지, 바로 다음 날 우형은 윤환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멤버들은?”
“제가 대표로 얘기하기로 했어요. 다 같이 보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아서…….”
하긴 어제처럼 4:1로 마주하면 부담스러울 테니까.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눈가가 어두워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건 윤환도 마찬가지였고.
어제와 같은 회의실. 우형과 윤환이 마주 앉고 내가 둘 사이를 중재하듯 옆에 앉았다.
“멤버들끼리 제대로 대화 나눈 거 맞지?”
“네.”
“한 사람 의견이라도 다르다면 꼭 말해 줘야 해.”
나는 멤버 대표로 온 우형에게 말했다.
거짓은 없다는 것을 표현하듯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 명 모두 같은 의견입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윤환을 쳐다봤다.
“윤환아.”
윤환도 고개를 들어 우형과 시선을 마주쳤다.
“솔직히 네가 많이 힘들어도 우리한테 차마 다 말하지 못했을 거란 건 알아. 그래서 우리도 미안한 감정이 있었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그룹을 더 생각하면…….”
그룹에 속해있다는 것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제약이 있기도 했다.
모노크롬의 멤버인지, 한 명의 아티스트인지, 그 경계선이 모호해진 윤환의 경우라면 더욱 그랬다.
“그게 네가 행복한 길인가? 싶더라.”
“…….”
우형과 멤버들도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혹시나 자신들이 그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닌가 하는.
“네가 여기 있는 것보다 그게 낫다고 생각하면.”
우형은 천천히 아주 차분하게 자신과 멤버들의 의견을 전했다.
“네 선택을 존중한다.”
울컥. 윤환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가를 손으로 가렸다.
그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우형은 그런 모습까지도 차분하게 지켜봤다.
‘……결국 한 명이 떠나는 것까지도 감수하겠단 거네.’
이런 결론을 낼 때까지, 대체 어떤 심정으로 대화를 나눴을까.
나는 우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도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한 마음일 텐데.
“우리, 네 명이서 활동한 적도 있어. 알지?”
우형은 무거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풀려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다섯 명이 아니라 네 명이더라도 그룹 유지는 가능하니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참고 있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윤환과 달리, 우형은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데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게는 애써 웃어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준해가 화내서 미안하대.”
윤환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우형과 눈을 마주쳤다.
새빨개진 그의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도 않고 흘러나왔다.
미안함과 서러움, 지금까지 꾹꾹 참아왔던 모든 감정들이 뒤섞인 눈물일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 우형이 들려준 자작곡이 떠오른 건 왜일까.
붙잡는 게 이기심일까 봐 두렵다는 그 가사가.
***
계약 해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윤환은 본가에 있었다.
소속사와 본인, 그리고 멤버들까지 동의하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음에도, 지금까지 동고동락한 멤버들을 저버리는 것이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불확실한 미래와 안정적인 미래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 십중팔구 그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뉴레인 소속이 된 윤환이었지만, 지금은 모노크롬의 매니저와 함께였다.
기존 숙소에 남아 있는 자신의 짐을 빼야 했으니까.
“…….”
멤버들과 함께, 혹은 혼자서 숱하게 지나왔던 길.
익숙한 차창 밖의 풍경이 새삼스럽게 느껴져 윤환은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숙소 현관문 앞에 서니 복잡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문을 열자 불 하나 켜지지 않고 어두운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애들은 본가나 회사에 가 있어.”
혹여나 멤버를 마주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숙소를 보니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제법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분명 자신이 불편할까 봐 피해준 것이었다.
매니저는 윤환의 방에 있는 물건들을 박스에 담기 시작했다.
윤환 혼자서, 가끔 오전 스케줄이 있을 땐 매니저와 함께 쓰던 방이라 구분 없이 모든 짐을 정리하면 되었다.
윤환은 거실이나 부엌 등 다른 공간에 있는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것과 자신의 것을 구분하려니 모든 행동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부엌 한구석에 분리수거하려고 모아둔 빈 생수병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침마다 얼굴이 붓는 자신을 위해 항상 작은 생수병을 얼려두던 멤버들.
처음에 낯가리고 잘 적응하지 못하던 자기를 멤버들이 얼마나 배려하고 신경 썼는지 그도 알고 있었다.
“윤환아, 다 정리했어?”
“……응.”
“그럼 가자.”
딸깍.
스위치 소리와 함께 실내가 다시 어두워지고, 함께하던 그 공간에선 한 사람의 흔적이 사라졌다.
***
[뉴마 엔터테인먼트 채윤환 전속계약 해지,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길 기대해”]
[모노크롬 前멤버 채윤환, 뉴레인의 새 식구로]
[아티스트 채윤환, 뉴레인과 전속 계약…아이리스와 한솥밥]
‘벌써 인터넷 기사가 뜨네.’
난 거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포털 연예 뉴스 페이지를 뒤적였다.
탈퇴 수속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작정하고 빼돌렸다 이거지.’
아는 기자에게 바로 연락을 돌리지 않은 이상 이 정도 속도는 불가능했다.
희망찬 미래를 떠올리며 머리에 꽃밭을 그리고 있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맞았다.
그게 윤환 개인에겐 더 좋은 길이라는 게 이해가 되어 마음이 더 착잡했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회사 내의 지위 외엔 내세울 것이 없었다.
모노크롬 단체 사진이 걸려 있던 뉴마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의 메인 사진도 지금은 소속 배우의 사진으로 바뀌었다.
‘새해가 되어도 아이리스 사진 걸어놓더니 이럴 땐 엄청나게 빨라.’
팬들이 소속사를 욕하던 게 이런 느낌일까.
입이 썼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었는데.
‘앞으로 그룹은 괜찮을까…….’
우형과 윤환이 대화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우형은 자신들은 괜찮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러고 보니 당시엔 심각한 상황이라 듣고 넘겼었는데, 그 대화에서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우리, 네 명이서 활동한 적도 있어. 알지?]
내가 알기로, 모노크롬은 4인조인 적이 없었다.
데뷔 때 기사를 검색해 봐도 [5인조 보이그룹 ‘모노크롬’ 데뷔].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지?’
무언가 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