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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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레이블 분리한 거면 선배돌도 소속 같이 옮김?
거기 모노클인가 걔네들도 있잖아
└모노클 아니고 모노크롬
└아이리스 전담 레이블인데 선배돌이 왜 옮김
└전담 아니고 아티스트 레이블이라던데.
└굳이? 아이리스만 데려가고 싶었나 보지. 회사 입장에서 잘나가는 그룹에 집중하는 건 당연한 건데.
└위에 댓글 말 X나 기분 나쁘게 하네ㅋㅋㅋㅋ
└엥ㅋㅋ 맘에 안 들면 니가 뉴마에 건의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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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 씨, 요새 팀 분위기가 뒤숭숭하던데 말이죠.]
[차장님. 그 소문 말씀하시는 거라면 사실무근…….]
[어흠. 단체 생활이란 게 원하는 대로 다 되면 저 같은 사람이 필요 없겠지요? 잡음 안 나오게 잘해 봅시다.]
무시당하고 묵살당하기의 반복. 결국엔 입을 다물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하소연을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 없었다. 그저 입만 살아서 대드는 골칫거리라는 이미지만 생길 뿐.
세상엔 불합리함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주장해서 결국 인정받은 사람도 있다지만, 그런 대단한 의지가 있었으니까 미담으로 남은 거겠지.
난 그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형에게서 그런 나의 과거 모습이 비쳐 보였다.
나와 다른 점은 아직 말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일까.
‘하긴 5년 동안 이 불안정한 업계에서 살아남았으면…….’
웬만한 의지력으로는 버틸 수 없었을 터.
내가 아는 것이 5년일 뿐이지,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준비 기간을 거쳤을 것이다.
방금까지 게임 캐릭터라고 쉽게 판단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그들에게 각자의 입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누가 마이 엔터 같은 게임을 하면서 캐릭터한테 과몰입하겠냐마는!’
감정이입이 문제가 아니라, 마이 엔터는 철저하게 대표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게임이니까.
이 세상의 과거는 내 게임 플레이와 동일했다.
내가 플레이하면서 멤버들의 생각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애초에 이 회사에서 이들의 의견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단 의미였다.
그저 실권자의 의견에 따라 관리되고 구르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
그리고 그 실권자가 나였다.
‘으아악…….’
몰려오는 괴로움에 나는 손을 들어 내 머리를 팍팍 쳤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도저히 고개가 안 올라갈 것 같았다.
“으휴, 으이구…….”
“왜, 왜 그러세요.”
문 앞에 있던 우형이 당황해서 ‘저걸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듯 어정쩡하게 섰다.
아니! 말리지 마. 난 좀 맞아야 해!
***
모노크롬 멤버들은 이사실에 불려 갔다 온 뒤, 다시 연습실로 내려왔다.
새 이사와의 면담은 짧았지만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다들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각자 핸드폰을 확인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는 등 어색하게 있는데, 비서팀 직원이 다시 내려와 리더인 우형만 데리고 나갔다.
그들이 기억하기로 그 비서는 무뚝뚝하게 일만 하는 남자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조심스러웠다.
까만 정장 차림의 그를 따라 홀로 연습실을 나가는 우형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같은 연습생이었고 같은 멤버지만 이럴 때 책임을 지는 것은 항상 리더였다.
다시 정적이 흐르고, 얼마 있다가 연습실 문이 다시 열렸다.
멤버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돌아온 우형의 표정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복잡했다.
그는 무슨 말을 듣고 와도 애써 웃거나, 표정을 관리하기도 힘들면 굳은 표정이곤 했는데. 이렇게 얼빠진 표정은 처음이었다.
멤버 중 한 명, 유한이가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대?”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이 나올지도 몰랐지만, 들어야 할 얘기였기에 그는 용기를 내 물었다.
실제로, 묻고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는지 얼굴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네 명의 시선을 마주한 우형은 조금 전 이사실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새 이사는 갑자기 제 머리를 쥐어뜯더니 책상을 짚고 머리를 푹 숙였다.
처음엔 자작곡을 내고 싶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나는 아직 이런 의견을 낼 위치가 아니구나. 그런 착잡한 심경이 들어 입술을 깨물었다.
말이 좋아서 멤버의 자작곡이지, 검증되지 않은 작곡가의 곡을 쓰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이사의 입에선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내.]
[네?]
[내. 자작곡. 뭐든. 일단 하고 싶은 거 다 해.]
그녀는 굳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어쩐지 우형과는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진심일까?’
직접 대화한 우형도 그 의중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된다는 뜻인지, 그렇게 원하면 해 보고 성적이 나올지 안 나올지 직접 보라는 뜻인지.
그녀가 말했듯이 이 업계를 잘 모르기에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뭔가 업무 외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멤버들에게 곧이곧대로 전달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멤버들이 이렇게 불안해할 만큼 나쁜 반응도 아니었다. 적어도 모두가 가장 걱정하는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으니까.
“우리 의견 최대한 들어준다고 하셨어. 자작곡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하셨고.”
우형의 대답에 멤버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기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건 항상 하던 말이잖아.”
막내 현준해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힘든 상황에 지쳐있을 때 달래주기 위해 회사에서 항상 하던 말이었다.
적어도 혼나지 않았다는 점은 다행이었으나 그리 희망찬 대답도 아니었다.
그러다 예정된 행사가 취소되거나 예상 수익이 안 나면 돌변하는 것이 회사였으니까.
성적이 안 나와 앨범에 투자한 금액도 회수가 안 됐다고, 다음 앨범보다 지금을 걱정하라고 다그치던 기억이 생생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렇게 나오면 멤버들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회사도 많이 바뀌었잖아. 지금 소속 그룹은 우리뿐이고.”
“바뀌어서 인원이 반 토막인데…….”
우형이 분위기를 풀고자 했으나 채윤환이 이어 말했다.
그의 말대로 뉴마 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 담당 인원은 거의 반으로 줄어 있었다.
반은 뉴레인으로 옮겨갔고, 남은 인원 중 일부는 아티스트가 아닌 배우 담당팀으로 옮겨갔다.
옆에선 새 시작을 하고 있는데, 여기 남겨진 자신들은 무엇인가.
다섯 명만이 있는 연습실이 더욱 휑하게 느껴졌다.
“형은 믿을 거야?”
정적을 깨고 백해랑이 물었다.
리더에게 판단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그룹인 이상 하나처럼 움직여야 하니까.
그가 믿는다면 따라갈 것이다. 멤버들은 회사보다는 그를 더욱 신뢰했다.
재계약을 하긴 했지만 그룹 활동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모두가 재계약 기간인 이 2년을 모노크롬의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다.
“……믿을 수밖에 없잖아.”
동아줄이 내려왔다.
그게 튼튼한 동아줄인지, 썩은 동아줄인지 알 수 없어도.
모노크롬은 그녀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
퀘스트라는 목표 때문에 미래만 생각했다. 그러나 우형과 대화한 뒤 모노크롬의 과거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다.
혼자 이사실에 남겨진 나는 지난 5년 동안 내가 저질러놓은 것들을 확인했다.
‘악……. 으악…….’
자료는 두 눈 뜨고 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모노크롬(monochrome). 다행히 그룹명만큼은 제대로 지었다.
마이 엔터 공식 커뮤니티는 회원들의 활동이 활발한 편이었다. 게시판에 자기가 결성한 그룹을 자랑하고, 다른 유저의 그룹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 사이에 껴서 활동하며 관심받는 것으로 대리만족하는 부류였기 때문에 이름만큼은 제법 고심해서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문제는 그룹명이 아니었다.
나는 모노크롬의 뮤직비디오를 차례대로 확인했다.
우선 모노크롬이라는 이름대로 흑백을 컨셉으로 내세운 데뷔 앨범. 타이틀은 이었다.
흑백 영화처럼 회색조를 메인으로 한 영상에 적당히 빈티지한 연출이 가미되어 괜찮았다.
서류에 적힌 부연설명으로는 제법 유니크한 감성 덕분에 대중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신기하다…….’
게임에선 앨범이 나오면 성공도와 수익만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결과물로 완성된 노래와 영상을 보니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얼굴은 외우지 못했지만 아까 실제로 마주했던 그들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신기했다.
그러나 그룹 색에 충실했던 첫 앨범 이후로는 컨셉이 일관되지 않고 중구난방이었다.
섹시를 노린 듯한 컨셉도 있고 파워풀한 댄스 위주의 뮤비도 있었고.
이 지경이 된 이유는 플레이하던 내 기억에도 남아 있었다.
‘하나씩 다 눌러 봤었지…….’
당시엔 아직 게임 초보였기에 뭐가 좋을지 몰라 선택 가능한 컨셉을 한 번씩 다 눌러봤던 기억.
그 와중에 청량하고 귀여운 컨셉이 수익이 잘 나오길래 돈 없는 가상의 엔터 대표였던 난 그걸 계속 해왔더란다.
계속. 그것만을. 게임 속 시간으로 몇 년을 쭉!
‘바보야! 이런 컨셉도 신인이고 한두 번이어야 먹히지!’
딱 봐도 문제인 것이 눈에 보였으나 그때의 난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모노크롬이 3년 차일 때, 그동안 터득한 게임 노하우를 살려 새롭게 아이리스를 결성해서 그쪽에 집중해 왔으니까.
그리고 이건 뭔데!
‘앨범명이 <12345>?! 미쳤냐, 신주인?!’
나중엔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입력했던 앨범명이 디스코그래피에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한 것을 보고 나는 또 머리를 쥐어뜯었다.
의미라도 잘 부여했으면 모르겠는데 별 의미도 없었다! 연관성이라곤 그저 5인조를 뜻하는 듯한 ‘one, two, three, four, five’라는 가사뿐.
발매일이 최신일수록 더욱 가관이었다.
대부분이 CD 제작비가 들지 않는 디지털 싱글. 뮤직비디오도 없이 곡만 발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난 내 손으로 만들어낸 처참함을 끝내 다 확인하지 못하고 재생화면을 닫아버렸다.
반복되는 컨셉처럼 노래 또한 뒤로 갈수록 자기복제의 끝판왕이었다.
작곡, 편곡 스태프를 보니 어느 시점부턴 전부 회사 소속 작곡팀. 그것으로 제작에 돈도 얼마 쓰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이래놨겠냐고…….’
게임은 게임일 뿐이었기에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을 현실로 맞닥뜨리니 죄책감이 엄청났다.
5년에 걸쳐 내가 망쳐놓은 걸 2년 동안 회복하는 것도 모자라 최고로 끌어올리라니.
결자해지라지만 이건 너무 고난도 중의 최고난도 아냐?
울고 싶어졌다. 난 엔터 업계 관계자도 아니고 그냥 게임 유저일 뿐인데.
멤버들이 협조적으로 나올지는 둘째 치고 우선 직원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듯했다.
최 비서는 유능하지만 비서팀이니 아티스트 관리 부분에서 큰 도움은 받기 어려울 터였다.
뉴마 엔터테인먼트에는 아티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팀이 두 개 있었다. 프로듀스팀과 매니지먼트팀.
다른 엔터사엔 A&R팀이니, 뭔 제작팀이니 하는 부서들이 있다던데, 게임 속 회사라 그런지 대충 이 두 팀으로 합쳐놓은 듯했다.
업계를 잘 모르는 나로선 그게 직관적이어서 이해하기 쉬웠지만.
구조는 대충 알았고, 그러면 어느 쪽 직원을 먼저 만나봐야 할까.
일단 지금 알고 싶은 건…….
‘팬덤 규모와 상황이려나.’
아이돌에겐 팬덤이 필수적이다. 결과물들을 확인하고 나니 이걸 직접 접했을 팬덤 상황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분명 회사에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과연 그게 어느 팀일까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이사실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들어오라고 하자 비서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온 것은 동그란 안경을 쓰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아담한 체구의 여성.
“모노크롬 팬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는 매니지먼트팀 이윤희라고 합니다.”
“아! 마침 찾으려고 했…….”
팬매니저라는 직함을 듣고 바로 팬과 관련된 일을 담당하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 팬덤 파악에 도움이 필요했던 내게 딱 적합한 인물이었다.
반갑게 맞이하려는데 인사보다 그녀가 다가오는 것이 빨랐다.
“저. 이거.”
그녀는 책상에 흰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 손을 따라 나의 시선도 자연스레 내려갔다.
그녀가 거침없이 내민 봉투. 그것은…… 사직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