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3화 (3/430)

#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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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은 재계약했대?

뭔 소식도 없고 조용하네

└했을걸?

└공식피셜ㄴㄴ

└탈뉴마 기원

└뉴마가 양심이 있으면 이제 놔줘야지

└애초에 양심 있으면 방치했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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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도 막히지 않았고 차는 순조롭게 회사에 도착하여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다.

첫 시작으로는 괜찮은 기분이었다.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혹시…… 여기 아이리스도 있나?”

갑자기 꺼낸 얘기에 최 비서는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더니, 금방 뜻을 알아차린 듯 대답했다.

“아이리스 멤버들이라면 여기가 아니라…….”

유리로 되어 있는 엘리베이터가 지상으로 올라오자 시야가 확 밝아졌다.

최 비서는 내 뒤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쪽에 있을 겁니다.”

저쪽?

최 비서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햇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옆 건물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서 탁 트인 시야에, 건물 외벽의 큰 광고판이 들어왔다.

그 광고판에 걸려 있는 것은 아이리스의 대형 포스터.

‘으응? 여기가 회사 건물 아니었어?’

내가 최 비서를 쳐다보자, 그는 내 눈에 담긴 의문을 읽었는지 난감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더 자세히 설명 드렸어야 했는데. 올해부터 아티스트를 더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산하 레이블을 분리해서, 아이리스는 저쪽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해외로 나가신 것도 그 일 때문이고요.”

아티스트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인데 아이리스만 담당한다니. 그러면 모노크롬은?

‘……나보고 관리하란 거겠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잠시 서서 창문 너머로 옆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들어 보니 뉴마 엔터테인먼트는 현재 내가 있는 건물을 사용하다가, 얼마 전에 옆에 붙어 있는 건물을 매입했다고 한다.

그 위에는 당당하게 ‘뉴레인’이라는 레이블명이 붙어 있었다.

레인, 레인보우……. 무지개를 상징하는 ‘아이리스’와 연관 지어서 ‘뉴레인’인 건가.

이 게임 속 설정은 내게 온전히 모노크롬에게만 집중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목적을 잊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 기대하고 왔는데 약간 맥이 빠졌다.

시무룩해진 내 표정을 봤는지 옆에서 대기하던 최 비서가 입을 열었다.

“산하 레이블이라고 해서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고 연계되어 있어서 원하신다면 부를 수 있습니다만……, 인사드리라고 할까요?”

“아냐. 됐어.”

인사하라고 부른다니 너무 권력행사 같잖아.

내 덕심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정신 차리고 모노크롬에나 집중하자.

궁금하기는 해도 지금 당장 만나지 않으면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회사 내부로 주의를 돌렸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어떻게 생겼을까. 연습실도 있고 녹음실, 작업실도 있고 그렇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최 비서에게 안내받아 따라간 곳은 내 상상처럼 특이한 것은 없었고 일반 회사 사무실 같았다. 엔터사라도 역시 회사는 회사다 보니까 사무 업무를 처리하는 층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생각보다 없네?”

“레이블 설립으로 대대적인 인사개편이 이뤄져서 당분간 조금 어수선할 수 있습니다만, 최대한 빠르게 안정시키겠습니다.”

“어. 으응…….”

아니. 어수선하다고 뭐라고 한 건 아닌데…….

최 비서가 내내 나의 기분을 살피며 조심스레 말하는 것이 잘 적응되지가 않았다.

내 최종 경력은 고작 대리였는데 갑자기 임원이 되었으니. 난 아직 임원보단 사원 마인드에 가까웠다.

그보다 어수선한 건 둘째 치고 이 분위기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꼭 철수하기 직전 같은데.’

군데군데 책상이 비어있고, 짐을 챙기는 사람도 있었다.

목에 건 사원증의 색깔이 조금 다른 것을 봐선 옆 건물, 그러니까 ‘뉴레인’으로 옮겨간 사람이 자신의 짐을 챙기러 온 듯했다.

앉아서 일을 보는 사람들은 묵묵히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인사개편이 이뤄졌으니 내가 여기에 낙하산으로 들어왔단 설정이겠지만.

사람이 이렇게 비어도 괜찮은 거 마, 맞겠지?

책상들을 지나 분리된 방으로 들어서니 깔끔하게 정리된 사무용 책상과 책장이 보였다.

내가 오늘부터 일하게 될 이사실이었다.

‘오. 날 위해 준비된 건 정말 괜찮단 말이야.’

불안함도 잠시, 다시 기분이 새로워졌다. 집에 이어서 또 내게 부여된 공간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금 지나온 곳처럼 책상들 사이에 껴서 개미처럼 일했는데 개인 사무실이라니!

불투명한 창문으로 은은하게 새어 들어오는 햇살.

흐뭇하게 둘러보고 있는데, 최 비서가 자신과는 다르게 편안한 차림새의 남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바로 내 2년을 바칠 다섯 명.

“안녕하십니까! 모노크롬입니다.”

처음 프로필 사진을 봤을 땐 미묘하다고 생각했건만, 실물을 보니 확실히 일반인과는 달랐다.

그래도 쌩얼에, 모자를 썼다가 벗었는지 흐트러진 머리에, 연습실에 있다 올라왔는지 하나같이 프리한 복장이라 누가 누군지는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리더인지 가장 앞서서 들어온 청년이 자신들을 소개하며 꾸벅 인사하자 다른 멤버들도 함께 우루루 허리를 숙였다.

‘아이돌이라고…… 항상 인사법을 하는 건 아니구나.’

그, 왜. ‘Your rainbow! 아이리스입니다!’ 하는 것 있지 않은가.

아이리스 인사법을 왜 알고 있냐면, 너무 궁금해서 영상 딱 하나만 봤다. 딱 하나만.

하하호호 인사만 하자고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정적인 분위기에 나도 자연스레 비즈니스 모드로 들어갔다.

“이번에 이사로 부임한 신주인이라고 하고, 모노크롬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하게 될 거야. 잘 부탁해.”

바로 윗사람 행세를 하는 내 모습에 내가 제일 어색했지만 일단 편하게 말하기로 했다.

모노크롬에서 제일 연장자인 리더가 나보다 한 살 아래였으니까.

다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지 “잘 부탁드립니다.” 하며 또 우루루 허리를 숙였다.

이거 참 적응 안 되네.

“일단 앉자.”

내 책상 앞엔 접객용 소파와 테이블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멤버들이 더 안쪽으로 들어와 하나둘 앉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와, 비율이……. 진짜 연예인이잖아.’

연예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라 나는 앉은 멤버들의 얼굴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상대방도 힐끔힐끔 눈치 보며 쳐다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너무 빤히 쳐다봤단 것을 깨닫고 나는 서둘러 시선을 책상으로 내렸다.

책상엔 모노크롬 관련 서류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업 계획서 같은 것.

“보니까 그룹 활동은 아직 계획이 잡힌 게 없던데.”

“…….”

……뭐지. 이 분위기?

아! 혹시 내가 불평하는 것처럼 들렸나?

아까 최 비서가 내 반응을 보고는 얼른 회사를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상사가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해도 아랫사람은 그게 무슨 뜻인지 온종일 신경 쓰며 고민하는 법이지.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크흠. 계획은 짜라고 있는 거니까. 혹시 하고 싶은 것 있나?”

“…….”

아니, 왜 대답을 안 해?

다들 내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눈을 굴리며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고 싶은 거 없어?”

“…….”

“……활동 안 할 거야?”

“……아닙니다.”

내내 묵묵부답이더니 리더로 보이는 멤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닌데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답답함이 울컥 밀려왔다.

2년. 2년 동안 모노크롬을 대상감으로 만들어야 했다.

조금 전까지 희망찼던 기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조바심이 들어찼다.

(알 수 없음)으로 바뀌어버린 엄마와의 대화창이 떠올랐다.

내가 퀘스트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엄마는? 나는?

이젠 같은 배를 탄 운명이다. 그런데 같은 배의 사공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흰 활동에 관한 의견이 없다는 거지?”

여전히 묵묵부답.

내 목소리에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 들어갔는지 분위기는 한층 더 가라앉았다.

눈치를 보던 멤버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치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듯이…….

‘설마…… 게임 캐릭터라 그런가?’

이곳이 마이 엔터에 기반한 세상이란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하긴 게임 내에서는 내가 넣은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던 그룹이었으니.

“……알았어. 다들 나가 봐.”

내 말에 멤버들은 일어서서 또 꾸벅 인사하고 우루루 나갔다.

입을 꾹 다물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도저히 내가 원하는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게임 플레이 경력만 있지, 엔터 업계 경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사자들이 협조해 주지 않으면 퀘스트를 진행하기 어려운데.

잠시 머리를 짚고 고민하던 나는 최 비서에게 리더를 다시 데려오라고 명했다.

그나마 입을 열던 멤버가 아마도 리더인 것 같으니까. 일대일이라면 뭔가 말을 할지도 모른다.

똑. 똑.

잠시 기다리자 노크 소리와 함께 리더가 다시 들어왔다.

예상했던 멤버가 들어온 것을 보니 이 사람이 리더가 맞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여우형?”

“네.”

여우형. 27세. 리더.

나는 머릿속으로 그의 이름을 되뇌며 얼굴을 익혔다.

아까 안 좋은 분위기로 회의가 파해서 그런지 우형은 다시 들어와서도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하아. 미안한데 너희를 이끌어야 하는 게 내 일이거든. 그런데 아직 내가 이 일을 잘 몰라. 그러니까 생각해둔 게 있다면 최대한 말해 줬으면 좋겠어.”

게임 캐릭터라고 내 질문에 멍하니 로봇처럼 있었던 게 아니라, 눈치 보던 모습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었다.

만일 정말로 이들이 아무 의견도 없고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존재라면 아마 생고생 길이 펼쳐질 것이다.

멤버들은 그저 허수아비고, 난 다른 직원들과 고군분투해야겠지.

“정말 하고 싶은 거 없어?”

제발. 있다고 해 줘.

“……저…….”

내 바람이 통했는지, 우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 제발 의지가 있는 존재라고 해 줘!

“……자작곡을 내고 싶습니다.”

“자작곡?”

너무나도 예상 밖의 대답이 나와서 무심코 되물었다.

그러니까 게임을 생각해 보자면, 어떤 앨범을 내고 싶다, 언제 공연을 하고 싶다, 뭐 이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자작곡이라고? 게임에 자작곡 같은 시스템이 있었나?’

없었다. 마이 엔터에서는 그냥 앨범에 투자할 비용을 결정하면 알아서 작곡가, 작사가 섭외하고 앨범이 뚝딱하고 나왔으니까.

멤버 능력치에 작곡 스킬 항목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형은 고개를 들었다가 내 멍한 표정을 봤는지 서둘러 손을 저었다.

“아니, 자작곡으로 앨범까지 내고 싶단 건 아니고요. 앨범이 나온다면 수록곡이라든가, 그냥 온라인 음원 발매라도……. 아니, 영상만 올려도 괜찮습니다.”

내 대답이 없는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했는지 말하면서도 점점 목표가 작아졌다.

놔뒀다간 아예 없는 일로 만들 기세라 나는 서둘러 손을 들어 막았다.

우형은 내가 손을 들자 곧바로 ‘합!’ 하고 입을 다물었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어…….”

우형은 내 질문에 눈을 굴렸다. 눈동자와 함께 머리도 굴리는 모양이었다.

딱 보니 어떻게 대답할지 말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순간 생각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서둘러 다시 손을 들어 우형의 대답을 막았다.

“아니. 잠깐. 혹시…… 이전에도 회사에 말했었나……요?”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최대한 사근사근하고 조곤조곤하게 꺼낸 새 질문에, 우형은 또 눈을 굴렸다.

‘으악!’

그 모습을 보니 대충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원 시절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하기 어려운 말일수록, 그리고 말하기 어려운 상대일수록, 더 신중하게 말을 골라야 한다는 것을 나도 잘 알았다.

우형이 머뭇거리던 대답은 지금 내게 하기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회사 대표의 딸(이란 설정)인 내게.

그러니까 이건…… 따지자면 내가 원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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