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2화 (2/430)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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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모노크롬 앎?

학생 때 친구가 잠깐 좋아했는데 해체한 줄.ㅋㅋ

└아이리스랑 같은 회사 아님?

└지가 관심 없어 놓고 멀쩡한 그룹 해체시키고 앉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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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이 미친 세상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면 못 돌아올까 봐 내내 집 안에만 있었다.

엄마는 계속 전화가 안 됐고, 그 와중에 시간이 지나니 배가 고팠고, 냉장고에 있던 과일은 싱싱했고, 어이도 없고.

포털 사이트에서 집 주소를 검색하고, 최근 있었던 사건 사고 뉴스들을 확인하고, SNS에서 대학 동기들의 페이지를 찾아보았다.

이 세상은 내가 있던 세상과 닮은 듯,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내가 있던 망할 회사에 전화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건 죽어도 싫었다. 대신 내가 지원했던 5년 전 채용 공고를 찾아봤다.

없었다.

내가 ‘지난 5년을 잊고 싶다’고 소원을 빌어서 5년 동안 나와 엮였던 모든 게 사라진 건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내 손에 있는 유일한 실마리는 마이 엔터의 퀘스트뿐이었다.

참고로 마이 엔터 공식 커뮤니티 또한 사라져 있었다.

진짜. 설마. 아니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가장 마지막으로 미뤘던 확인 작업을 개시했다.

검색창. [모노크롬] 검색.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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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모노크롬(monochrome) - 가수

멤버 - 여우형, 백해랑, 유한이, 채윤환, 현준해

소속사 - 뉴마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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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난 게임 속 세상으로 들어와 버렸다.

동명의 타 그룹도 아니었다. 내가 직접 고른 멤버 이름까지 똑같았으니까.

더군다나 소속사인 뉴마 엔터테인먼트. 그게 내가 지은 게임 속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이름이었다.

내 이름 신주인.

신=뉴. 주인=마스터. 뉴마스터. 줄여서 뉴마.

인물 정보 옆에는 모르는 다섯 남정네의 단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니. 모르는 건 아니지. 다만 지금까진 그래픽으로만 봤을 뿐이었지.

“허허허…….”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상황을 인정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주듯이.

[(알 수 없음): 딸! 무슨 회사가 새해 첫날부터 출장이라니? 몸 건강히 잘 다녀오고~ 엄마가 항상 응원해~]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졸였던 마음이 확 풀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신호는 연결되지 않았다.

대신 메시지창이 활성화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게임 속 세상에 갇혀버렸다고?

그러나 이 와중에 이 불효녀는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응. 무슨 출장인지 내가 말했던가?]

……라고 메시지를 적으려는데, 타이핑한 글자들이 제멋대로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알아내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는 듯.

나는 철저히 게임 시스템 속에 있었다.

사라져 버린 엄마의 프로필 사진이 너무 서러워서 나는 엉엉 울며 다시 메시지를 적었다.

[응! 고마워요. 자주 연락할게!]

***

1월 1일은 일요일이었다.

1월 2일은 월요일이다.

이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느냐. 월요일은 보통 회사를 가는 날이 아니던가.

1월 1일에 이 게임 속 세상에 혼자 덜렁 떨어져 버려 온종일 울다 말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아무 준비도 없이 2일을 맞이했다.

퇴사하면서도 흘리지 않은 눈물을 하루 만에 쏙 뺐더니, 머리가 울리긴 해도 이제는 침착하게 사고할 수 있었다.

뉴마 엔터테인먼트가 실존하는 게임 속 세상. 지금 이곳에선 게임처럼 내가 대표일까?

검색해 보니 뉴마 엔터의 사옥 주소도 나왔지만, 대뜸 찾아가서 ‘내가 대표요!’ 해도 되는 건가?

자는 둥 마는 둥 하느라 피곤한 정신으로 열심히 머리를 굴렸지만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

그러나 다행히도 내 의문을 해결할 수단이 알아서 찾아왔다.

[최단우: 좋은 아침입니다, 이사님. 오늘부터 이사님을 보좌하게 될 비서팀 최단우라고 합니다.]

스마트폰의 알림이 울려 확인해 보니 메신저에 새 대화창이 생겨나 있었다.

그쪽에서 날 먼저 추가한 모양이었다.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을 본 순간, 나는 그가 누군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마이 엔터 게임 속의 비서 캐릭터.

어째서인지 그의 프로필 사진은 그 비서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튜토리얼 캐릭터라 이거지?’

그는 게임 속에서 인터페이스와 기능을 알려 주는 튜토리얼 NPC였다.

또한 보고 형식으로 게임 내 성과나 특이 사항을 알려주는, 온갖 방면으로 유용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튜토리얼 캐릭터답게 내게 필요한 정보를 아주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최단우: 지난주까지 이사님의 아버님이신 대표님을 쭉 보좌해 왔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이사님이 불편하시지 않게 도움 드리도록 전담 비서로 임명받았으니 사소한 도움이라도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최단우: 어제 한국에 입국하셨으니, 시차 적응을 위해 당분간 재택근무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그런 설정이란 말이지.

난 뉴마 엔터 대표의 딸로, 외국에서 지내다 오늘부로 이사로 부임한 것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이 세상에 적응 못 하고 어리바리하게 굴어도 이상하게 생각될 일은 없겠다.

비서는 게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자료를 보기 쉽게 착착 정리해 내놓았다.

메일로 회사 자료를 보냈다며 회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전달해 줬는데, 로그인 방법까지 이미지로 준비되어 있었다.

로그인하여 메일의 첨부 파일을 열어 보니 뉴마 엔터의 조직도와 전 임직원 연락처, 소속 아티스트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내가 제일 궁금한 건 대표란 사람이었다.

게임에선 내가 대표였는데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가 대표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직함뿐만 아니라, 이름마저 대표였다. 대표 이사 신대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회사엔 날 아는 사람이 없더라도,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나면 곤란할 텐데…….

[신주인: 아버지는?]

[최단우: 국내 운영은 사장님에게 맡기시고, 새로운 레이블의 외국 진출을 위해 해외 출장 중이십니다. 정확한 기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약 2년 정도 해외 순방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2년이라.

퀘스트가 내게 준 기간이 2년이었다.

일단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겠군.

갑작스레 떨어진 세상이지만 나름 나를 위해 탄탄하게 설정되어 있었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퀘스트 달성만 보고 발에 불나도록 달려보라 이거지.

‘하……. 예정에도 없던 취업이라니.’

신입 시절, 회사 사람들의 직급과 이름, 얼굴을 외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직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나는 임직원 연락처를 훑으며 무슨 팀이 있고 몇 명이 있는지만 대충 확인했다.

작년 기준이라는 것을 봐선 또 변동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굳이 당장 외울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게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내 첫걸음이니…….

‘잠깐만, 이거……?’

어차피 이름을 봐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목록의 맨 마지막에서 눈에 익은 단어가 들어왔다.

[아이리스]. 그리고 옆에 적힌 일곱 개의 이름.

‘우리 아이리스 애기들이라고?!’

아이리스의 위를 보니 [모노크롬]이라는 항목 옆에 다섯 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확실히 모노크롬 멤버들의 이름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게 정말 아이리스 멤버들의 연락처란 뜻이다.

‘그렇지. 뉴마 엔터테인먼트가 현실화됐으니 거기 소속된 아이리스 멤버들도 실제 인물이 됐겠지!’

지금은 모노크롬에 집중해야 할 상황.

그러나 이 심각한 와중에도 내 시선은 아이리스에게 향했다.

우는 아이 앞에서 장난감을 흔들면 우는 것도 잊고 거기에 집중하지 않는가.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근데 본명이라 누가 누군지 모르겠네.’

나는 소속 아티스트 정보 파일을 열었다.

모노크롬 멤버들은 활동명으로 본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왜냐? 게임을 처음 시작했던 나는 모노크롬을 만들 때 예명 시스템이 있는 줄 몰랐으니까.

아이리스를 결성할 땐 기능 대부분을 숙지한 후였다.

그래서 아이리스 멤버들의 예명이 뭐냐면…….

[아이리스(IRIS) 소속 멤버 - 레드(홍수연), 오렌지(주인아), 옐로(황소희), 그린(윤그린), 블루(이청아), 네이비(남도윤), 퍼플(한보라)]

‘뭐야! 너무 예쁘잖아!’

소속 아티스트 정보의 아이리스 페이지를 열었더니 단체 사진과 멤버별 사진이 떴다.

예명이 빨주노초파남보라니 전대물 같고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따로 떼놓고 보면 하나같이 이쁜 이름들이다.

‘안녕하세요! 아이리스의 막내, 퍼플입니다!’라고 소개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얼마나 상큼하겠는가!

아이리스가 실존한다는 것은 분명 활동 영상들도 잔뜩…….

‘아차. 내가 이걸 볼 때가 아니었지.’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덕질을 시작할 뻔했잖아.

아이리스의 영상 컨텐츠를 검색하려다 정신을 차린 나는 모노크롬의 정보 페이지를 열었다.

2년간 내 인생을 걸어야 할 5인조 아이돌 그룹.

그들의 얼굴을 처음 확인한 감상은.

‘……미묘한데.’

딱히 빠지는 건 아닌데 특출한 것도 아니다. 기억에 확 남는 이미지가 없다고 해야 하나.

아이리스를 보고 난 후에 봐서 비교가 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왜 퀘스트가 아이리스가 아니라 모노크롬한테 발생한 거지.’

아이리스라면 2년 내에 대상을 노릴 법도 했다.

그러나 모노크롬은, 솔직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딱히 뭔가 이룬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뭘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게임엔 없었던 정보가 있는지 확인해 보자.’

모노크롬(monochrome). 5인조 보이그룹.

소속 멤버는 여우형(27), 백해랑(26), 유한이(25), 채윤환(24), 현준해(23).

첫 계약일은 5년 전 1월 2일로, 올해 1월 2일 재계약.

그러니까 오늘부로 재계약 기간이 시작이었다. 어찌 보면 나와 시작점이 같다고 할 수도 있었다.

방치하긴 했어도 내가 계속 플레이했던 그룹이므로 기본 정보가 기억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데이터보단 직접 보는 게 확실하겠지.’

나는 파일을 닫고 스마트폰의 메신저창을 열었다.

[신주인: 내일부터 바로 출근하게 준비 부탁해.]

[최단우: 알겠습니다. 시간에 맞춰 차를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게임이 내게 부여한 설정처럼 시차 적응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참 편하네. 출근이라 하면 덜 마른 머리로 급하게 지하철 시간에 맞춰 뛰어가던 기억뿐인데.

집 앞에 바로 차를 대령해 놓는다니……. 아.

[신주인: 혹시 우리 집 비밀번호도 알아? 그리고 집 주소도.]

***

다음 날, 다행히 집 비밀번호를 알아냈기에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었다.

최 비서가 비밀번호를 아는 건 아니었고, [예전 집 전화번호 뒷자리로 설정해 두었다고 대표님께 전해 들었습니다.]라고 말해줬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외국에서 왔다는 설정 참 편리하단 말이지.

참고로 집은 자가였다. 아직 내 월급도 얼마인지 모르는데 월세로 돈 나갈 일은 없으니 잘된 일이었다.

드레스룸에 나를 위해 준비된 옷을 신나게 골라 입고 나오니 정말로 차가 대기 중이었다.

‘……이거 나 태우러 온 차 맞아?’

생각해 보니 이게 회사 차인지, 다른 사람을 태우러 온 차인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 걱정도 잠시.

“……신주인, 이사님이십니까?”

“마, 맞는데요?”

차 옆에서 대기하던 남자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실제로는 처음 뵙겠습니다. 비서팀 최단우입니다.”

오. 내게 꾸벅 인사하는 비서의 비주얼이…… 제법 괜찮았다.

게임 내에서도 아이돌들이나 일러스트가 화려했지, 비서 같은 튜토리얼 캐릭터는 그저 픽셀로 된 간소한 캐릭터였다. 그 깍두기 같은 캐릭터를 그대로 사용하는 그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도 마찬가지고.

네모난 아저씨를 상상했던지라 상대적으로 더 훈남처럼 보인 것일 수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살펴봐도 준수한 얼굴이긴 했다. 검은 수트 위에 코트를 걸친 옷차림도 잘 어울렸고.

“몇 살이에요?”

“서른하나입니다.”

내가 스물여덟이니까 세 살 위다.

‘흐음. 게임이 준비한 게 마냥 시궁창은 아니란 거겠지.’

어차피 2년 동안 구를 거, 기분 좋게 구르자!

물러설 곳은 없으니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을 즐기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기분이 나아진 나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회사로 향했다.

생각보다 험난한 길이 펼쳐져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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