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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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를 [대성공]으로 마쳤습니다!
팬 지수+200
인지도+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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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어!’
내가 키우는 아이돌 ‘아이리스’의 콘서트 수익 10억 원이 내 지갑으로 들어왔다.
물론 현실 지갑은 아니다.
스마트폰 게임 속 지갑 말이다.
‘마이 엔터’라는 이 게임은, 제목 그대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대표가 되어보자는 콘셉트의 모바일 게임이다.
아이돌! 나 같은 일반인에겐 그 얼마나 환상적인 존재던가.
물론 게임이라 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으나, 엔터 업계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겐 꽤 리얼하게 다가왔다.
아이돌이란 요소에 계속 늘어나는 컨텐츠까지 더해지니 나는 이 게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게임은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였지만, 삐끗하면 쪽박을 차는 경우가 많은지라 현실적이란 평도 많았다.
나도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다가 최근엔 게임 시스템에 익숙해져 승승장구 중이다.
내가 결성한 이 ‘아이리스’라는 그룹은 7인조 걸그룹으로, 무지개의 여신이란 뜻의 그룹명대로 각기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 하나씩을 맡아 의상도 색깔별로 맞추는 재미가…….
“신주인! 이제 제야의 종 치는데 나와서 안 볼 거야?”
“아, 알았어!”
이쁜 내 새끼들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부름에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수십, 수백억을 굴리는 가상의 엔터 대표에서, 만 원짜리 티셔츠를 입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는 현실의 나, 신주인으로.
현타가 몰려와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방을 나섰다.
“아직 20분이나 남았는데 뭘 벌써 불러.”
“이제 금방이야.”
미적미적 거실로 나오니 엄마는 거실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
내가 그 옆자리에 풀썩 앉자마자 엄마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어. 민수 엄마. 그래. 새해 복 많이 받고.”
정작 날 부른 엄마는 통화하러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나는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TV에선 시상식이 한창이었으나, 얼마 전까지 바쁘게 회사에 다니느라 TV와는 먼 생활을 했던 내겐 별 흥밋거리가 되지 못했다.
타종까지는 시간도 남았겠다. 나는 과일을 한 조각 집어 먹으며 다시 스마트폰을 켜 게임 화면에 집중했다.
시상식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드레스를 보니 우리 아이리스 애기들에게도 이쁜 옷을 사 주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랐다.
‘의상 아이템에 드레스 종류도 있던가.’
나는 게임 내 스타일링 화면에서 새로 업데이트된 신상 원피스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오. 이 의상은 다음 앨범 의상으로 찰떡인데? 오. 이건 콘서트 엔딩에 입으면 딱이겠는데?
내 새끼들이라 콩깍지가 꼈는지,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캐릭터지만 너무 이뻤다.
‘이건 연말 시상식 이벤트에 입히면 이쁠 것 같다.’
게임 내에서도 가히 최고 난도라 할 수 있는 연말 시상식 이벤트.
내가 키우는 아이리스도 1년 차에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기가 참 어려웠다.
이제 3년 차인데 최우수상 정도는 받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대상을 받으면 마이 엔터 게임 공식 커뮤니티의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데, 아직도 거기까지 도달한 플레이어 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도 받고 싶다. 대상.’
그때는 말 그대로 무지개의 여신을 만들어 놔야지.
그런 꿈 같은 상상을 하며 스마트폰에 빨려 들어갈 듯 옷 입히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TV에서 울먹이는 목소리의 수상 소감이 들려왔다.
[제 연기 활동을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신 우리 회사 동료분들, 직원분들 그리고 우리 가족들.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트로피를 들고 서 있는 것은 내 또래의 여배우였다.
“…….”
또다시 찾아오는 현타에, 나는 소파에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과 내 모습이 너무 비교돼서.
‘나는 지금까지 뭘 이뤘지.’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회사. 그게 내 창창한 커리어의 시작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처음엔 참 희망찼다. 친구들은 상사 욕을 그렇게 해대던데 나는 다행히도 자상한 상사를 만났다.
사람 스트레스가 가장 힘들다던데, 갓 사회인이 된 내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상사가 있다는 것은 큰 복이었다.
이따금 과도한 친근함이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저 내가 사회생활에 익숙지 않아서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좋은 상사라고 생각했던 점들은 알고 보니 이성을 향한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물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유부남이었으니까.
[부담을 줬다면 미안해요. 나도 이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잘해 봅시다.]
난감해하는 내 모습을 본 그는 뜻밖에 상식적으로 사과했다.
그때 난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었더란다.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상식적인 반응이고 뭐고, 애초에 그가 아내를 두고 신입 사원에게 대시하는 비상식적인 남자였단 것을.
[들었어? 기획팀 김 팀장님한테 완전 이상한 애 꼬였다며.]
[헐. 나 걔 알아. 입사 동기였는데 사실 전부터 눈빛이 좀 쎄하더라니까.]
정신 차려보니 회사 내에서 내 이미지는 유부남에게 꼬리치는 정신 나간 여자가 되어있었다.
그 당사자인 상사도 소문을 들었는지 미안한 얼굴로 최대한 해명에 나서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차차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그 개새끼가 퍼뜨린 소문이었지.’
몰랐다. 앞에선 소문을 잠재우겠다던 놈이 뒤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정치질했을 줄은.
난 잘못한 게 없었으니 당당했고, 당당했기에 버텼다. 버티다 보니 욕먹는 것도 무뎌진 줄 알았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지옥이었다.
그 자식의 아내까지 출동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홀로 비난을 받아내다가 결국엔 꺾여 버렸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그 생각이 들자 그냥 다 버리고 일 초라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잘리듯이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버틴 게 무려 5년이었다.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5년이었다.
회사를 뛰쳐나온 나는 자취방도 정리하고 본가로 돌아와 칩거했다.
엄마는 내가 갑자기 회사도 그만두고 돌아온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분위기를 봐서 무슨 일이 있었으리란 것은 눈치챈 듯했다.
회사의 미친X은 참을 수 있어도 불효녀까진 되고 싶지 않았는데.
잊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피곤함이 몰려와서 눈을 감았다.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데엥-.
비몽사몽 중에도 제야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데엥-.
소원…… 빌어야 하는데.
데엥-.
……이 5년이 내 인생의 한계점으로 남을지, 성장의 밑거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데엥-.
지난 5년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정도로, 앞으로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한 일만이 있기를.
데엥-.
데엥-.
…….
[올해의 음악대상. 발표하겠습니다. 음악대상! 그 영예의 수상자는…….]
몽롱한 의식 너머로 설핏 시상식 진행 멘트가 들려왔다.
깜빡 잠든 사이에 타종이 끝난 모양이었다.
엄마는 통화 끝내고 종소리 들으셨으려나.
[이라솔! 축하드립니다!]
대상이면 들어봤을 법도 한데 처음 듣는 이름이네.
내가 그렇게 TV와 벽을 쌓고 살았던가.
[이라솔 씨는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20xx년 자체 프로듀싱한 앨범 <추억의 향수>를 발표하고, 국내외 음반 시장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여 한류 열풍을…….]
음? 방금까지 연기대상 아니었어?
눈꺼풀이 무거워 잘 들리지 않았다.
눈을 찡그리며 겨우 떴더니 흐릿한 시야 사이로 TV 화면이 들어왔다.
우리 집 TV가 저렇게 컸나…….
[제 노래를 사랑해 주시는 팬분들께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칙-.
[저희 소속사 식구들…… 그리고…… 너무……#!&…… 저……. ?!#%…….]
치직-.
[<퀘스트 발생!>]
TV 화면에 노이즈가 끼더니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면서 알 수 없는 문구가 떠올랐다.
‘뭐야…….’
아직 꿈이었잖아.
***
아직 꿈인가?
잠에서 깨 보니 난 처음 보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침실 하나, 드레스룸 하나.
여자가 혼자 사는 집 같은데, 내가 얼마 전까지 살던 원룸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가구도 하나같이 비싸 보였다. 게다가 소파 앞에 있는 것은 꿈에서 본 커다란 TV.
“뭐야, 여긴?”
분명 난 본가에 있었는데?
꿈이라고 하기엔 감각은 현실적이었고, 상황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꿈이 이렇게 리얼할 수가 있나? 얼떨떨한 나는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와. 이거 완전 다 내 스타일인데?”
드레스룸에는 딱 내가 입던 스타일의 옷들만 걸려 있었다. 대충 보니 사이즈도 딱 내 사이즈였다.
인테리어도 그렇고, 내가 꿈꾸던 자취방이 재현된 건가 싶을 정도였다.
다시 거실로 나와 TV를 켜 보니 아침 뉴스에선 전국 곳곳에서 새해를 맞는 모습을 내보내고 있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커튼을 열어봐도 창문 밖의 풍경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꿈이 아닌가?
그럼 엄마는……?
“아! 핸드폰!”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한 집이었지만, 소파에 그대로 올려둔 핸드폰만큼은 내가 쓰던 모델 그대로였다.
연락처도 다 지우고 얼마 전에 새로 바꾼 신형 모델.
화면을 켜 보니 날짜는 그대로였다. 1월 1일.
어젯밤에 내가 화면만 껐는지, 잠금 화면을 풀자 실행 중인 마이 엔터의 게임 화면이 바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앙엔 못 보던 퀘스트창이 떠 있었다.
마이 엔터의 퀘스트는 불시에 랜덤으로 나타나는 이벤트로, 성공하면 다른 이벤트보다 큰 보상을 주곤 했다.
[<퀘스트 발생!>: 2년 내에 음악대상에서 [모노크롬]이 대상 수상하기!]
순간 꿈에서 본 TV 화면 속 문구가 떠올랐다.
게임에서 얼핏 본 게 꿈에 나타난 건가, 아니면 아직 꿈속이라 이 문구가 또 나타난 건가.
그나저나 내가 키우던 그룹은 아이리스였는데, 모노크롬?
어쩐지 익숙한 이름인데…….
“아!”
아. 기억났다.
모노크롬은 내가 게임을 깔고 처음 만들었던 그룹의 이름이었다.
게임에 익숙해지기 전에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던 그 그룹.
모노크롬은 5인조 보이그룹으로, 내가 아이리스에만 집중한 이후에도 해체하지 않고 아직 그룹 관리 창에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공식 커뮤니티에 그런 팁이 돌았으니까.
돈이 모자라면 아무 그룹이나 만들어서 돈 버는 용도로 쓰라고.
그래서 나도 가끔 아이리스의 앨범 제작에 돈을 너무 써서 자금이 모자랄 때만 잠깐 전환해 돈 되는 스케줄을 돌리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모노크롬한테 퀘스트가 뜬다고? 그것도 연말 시상식 대상?
‘아니. 이건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게임 화면을 끄고 엄마에게 전화해 보기 위해 주소록을 띄웠다.
그런데 연락처가 텅 비어있었다.
‘산 지 얼마나 됐다고 오류야.’
할 수 없이 다이얼로 직접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새해라고 또 통화 중이신가.
메시지라도 남겨 놓으려고 메신저 창을 켰는데 여기도 친구 목록이 텅 비어있었다. 하아.
핸드폰 주소록에 엄마의 연락처를 등록하고 연락처 동기화를 눌렀는데.
[(알 수 없음)]
알 수 없는 사용자라니?
점점 불안한 기분이 몰려왔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 꿈이 혹시 현실이라면…… 나한테, 혹은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닌가?
꿈이란 걸 자각하면 금방 깨기 마련인데, 아무리 날 때리고 꼬집어봐도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런 날 재촉하듯이 핸드폰 상단바에 마이 엔터의 알림이 떴다.
[마이 엔터: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세요!]
날 이끄는 알림에 홀린 듯이 화면을 터치했다.
마이 엔터의 로딩 화면이 떠오르고, 아까 그 퀘스트창이 다시 떠올랐다.
“모노크롬이 대상 수상하기……. 퀘스트 보상…….”
문구를 찬찬히 읽자 그 아래에 있는 퀘스트 보상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퀘스트 보상>: [모노크롬]의 팬 지수+10000, 인지도+10000]
그리고.
[신주인]의 현실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