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림서(風林誓)와 단심맹(丹心盟)
어느덧 두 달이 흘렀다.
꽃이 한창인 춘삼월(春三月)이다.
진소백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세 명의 중년인과 역시 세 명의 노인
이 앉아 있었다. 한 노인이 먼저 말했다.
"풍림서(風林誓)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들로서는 첫 번째 실패였으니…… 네 활약
이 컸다."
다른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을 너무 자극하면 우리의 종적이 드러날 수도 있소. 조금은 자제함도
좋을 듯하오."
진소백이 공손하게 말했다.
"제자는 십분 조심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앉아 있는 청수한 중년인이 말했다.
"초의 선사께서는 엽평을 지도하시고 계시느냐?"
"예, 대사부님은 그를 일 년 안에 두각을 나타낼 고수로 만드시려 합니다."
중년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부디 조심하여라. 풍림서(風林誓)는 기존에 존재했던 어떤 무림
문파와도 다르며,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섭다. 심화절은 단지 외단의 인물에 불
과했다."
진소백이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유(儒) 사부!"
유 사부라 불린 중년인이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천하는 결코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 무림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눈에 강한 안광(眼光)이 일었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풍림서는 우리 단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자리에서 가장 연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진소백을 따뜻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너는 천우성(天佑星)을 타고났으니 유난히 인복이 따르리라. 또한 네가 도왔던 수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우리의 힘이 되니, 풍림서란 역천의 집단은 결코 우리를 당하지 못할 것
이다."
진소백이 공손하게 다시 말했다.
"천하를 걱정하시는 사부님들이 계시는 한, 풍림서는 결코 뜻을 이루지 못할 것입
니다."
* * *
금광(金光)이 허공을 수놓고 있었다.
금빛의 검!
하지만 아홉 조각으로 이루어진 이 검은 눈에 익었다.
바로 엽혼의 구절검이었다.
금포승의 재료가 되는 금린사(金麟沙)로 바깥을 다시 만들어, 금빛을 띤 검으로 다
시 태어난 구절검(九節劍)!
본래 이 검은 엽혼의 독문검이었지만 지금 구절검을 휘두르는 사람은 엽혼이 아니
었다.
그의 동생 엽평!
종수(鐘秀)의 심장을 받아 죽음에서 살아난 엽평이 구절검을 힘차게 휘두르고 있
었다.
한쪽에서 자애한 눈빛으로 엽평을 바라보는 노승이 있었다.
초의(草衣)!
지금 그의 보리천승공이 구절검을 통해 검법으로서 거듭나고 있었다.
엽평이 마지막 일초를 휘두르며 바닥에 내려서는 것을 보며 초의 선사가 입을 열
었다.
"네 성취 속도는 고금에 드물다. 내공의 정진 또한 상상의 한계를 훨씬 넘어서니
아마 생사의괴가 네 심장을 치유하며 뭔가 특별한 조처를 취한 것 같다."
초의의 음성이 더욱 엄숙해졌다.
"더욱 정진하라. 일 년 후면 네 성취는 능히 노납을 능가하리니, 풍림서(風林誓)를
상대하는 일에 일익(一翼)을 맡을 수 있으리라."
"사부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엽평이 무릎을 꿇으며 힘있게 말하는 모습에서 초의 선사는 지난날의 엽혼을 보았
다.
'이 아이는 그의 형을 무척 많이 닮았구나. 그의 아버지도…… 게다가 자질은 거
의 백아에 필적할 정도이니…… 강호의 겁난(劫亂)은 이들에 의해 해소가 되리라.'
다시 엽평의 우렁찬 기합 소리와 금광이 주위를 감쌌다.
엽평의 기합이 사방을 울리는 어느 곳!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진 편액이 보였다.
<단심(丹心)!>
* * *
비응방의 일은 마무리되었다.
음마문의 사공두가 꾸몄던 음모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암중에서 강호를 장악하려는 풍림서(風林誓)란 세력은 이제 겨우 그 꼬리만이 드
러났고…… 역시 암중에 풍림서(風林誓)를 주시하며 그들의 야욕을 견제하는 진소
백의 세력도 이제야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풍림서(風林誓)!
그리고 단심맹(丹心盟)!
이제 그들의 세력이 서서히 충돌하며 풍운(風雲)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풍림서의 숨은 힘은 어느 정도인가?
그들을 상대로 펼쳐질 진소백의 활약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또 진소백이 받았
던 생사의괴 종도의 금낭과 일 년 후의 약조(約條)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아무것도 끝난 것은 없었다.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
중원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얽히고, 그 와중에 나타나는 구름 같은 신진고수들!
무림에 천년 만에 찾아오는 무림 흥륭기(興隆期)를 맞아 영웅 기재가 속출하는 진
정한 무림의 이야기는 이제야 그 서막을 열었.
그리고 그 혼란을 뚫고 얽혀진 난맥(亂脈)들을 쾌단(快斷)하는 진소백과 엽평, 아
미옥녀 섭수진, 매일도, 금청청!
이 젊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나는 이제서야 겨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