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27 장 천붕뇌정(天崩雷霆) (28/32)

제 27 장 천붕뇌정(天崩雷霆) 

 1 

음마문(陰魔門)! 

대가 끊기고 무공이 실전된 지  이십 년 이상이나 지난  문파! 특이하게도 그들의 

모든 무공은 좌수(左手)가 주(主)가 된다.

검법도, 도법도, 장법도.

복면인은 애초에 진소백과 싸우기보다는 다른 자들에게 도망갈 기회를  만들어 주

기 위해 덤볐다는 사실을 진소백은 곧 알 수 있었다.

"비켜라!"

진소백이 외치며 맹렬히 휘두른 용음수에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몸으로 막아 서

는 것으로 보아.

진소백이 최선을 다해 십여 초 만에 그를 쓰러뜨렸을 때는 이미 다른 자들의 흔적

은 보이지 않았다.

땅으로 내려서며 진소백이 침중히 말했다.

"설마 음마문의 세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일까?"

"냉설 선배는 이미 숨이 끊겼어요."

섭수진의 우울한 말에 진소백은 정신이 들었다.

급히 눈을 돌려 자신이 제압했던 복면인을 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였다.

"어떤 자들인지 모르지만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또한 음마문과 관련이 있다."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 섭수진이 말했다.

"하나의 가능성밖에 없군요. 분면음마의 셋째 제자!"

진소백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누굴까? 심화절일까? 

냉설은 마지막에 극도의 고통을 당한 듯, 손에  자신의 머리칼 한 움큼을 잡고 있

었다.

머리 한켠이 왕창 빠져 나가 붉은 살이 드러났다.

섭수진이 그의 가슴을 보며 말했다.

"검이 심장을 관통했어요. 그는 뭔가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나 봐요."

"아마도 음마문의 세 번째 제자의 정체쯤 되겠지. 그는 오로지 분면음마의 제자들

만을 추적했으니, 가능성이 있소."

하지만 때가 늦었다. 

 진소백 등이 조금만 일찍 왔더라도 셋째 제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러나 그들은 늦었고, 냉설은 이미 죽었다.

"휴, 죽은 자도 말을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그 말이 옛말이 아닌 현

실이라면 좋겠어요."

진소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전서구는 창문을 통해 들어갔다.

하나의 손이 전서구의 발목에 묶인 통을 풀어 그 속에 든 쪽지를 꺼냈다.

씌어진 글은 간단했다.

<실패(失敗).> 

손이 부르르 떨렸다. 

 손은 길고 가늘어 무인의 손이 아니라 문사의 손인 듯 보였다. 손의 임자인 심화

절의 눈도 떨렸다.

이 일이 실패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았다.

두 노인이 익혔던 무공은 풍림서의  엄밀한 반복 분석을 통해  구파일방의 무공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되도록 고안된 

변형 무공이었다.

어찌 실패할 가능성이 있을까? 

'진소백, 그리고 섭수진의 무공이 이미 자신들 문파의 수장인  인의신개나 금정(金

頂) 신니(神尼)의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이었다.' 

심화절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진소백이 개방의 문하가 아니라는 점! 

또한 섭수진이 싸움 도중 우연히 깨달음을 얻으며 절정고수 반열에  한 발을 들여

놓았다는 사실! 

심화절은 노존에게 연락을 취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일이 급하게 되었소.

엽혼의 처형장에 초의가 올 것임은 확실하나,  엽혼이 가짜임을 알고 있는 진소백

과 섭수진을 없애는 일은 실패했소.

서(誓) 내부의 도움을 더 얻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막아 주시오. 만일 그들이 우

연이라도 초의를 만난다면 일이 모두 틀어질 것이오.> * * * 

진소백이 느닷없이 물었다.

"일전에 우리가 옥산에서 도망쳤던 방법을 기억하시오?"

섭수진은 왜 진소백이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했다.

"물론 기억해요. 한데 왜……?"

"별것 아니오. 단지 이 앞에도 절벽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을 뿐이오. 한 번 

더 그런 기회가 온다면 좋겠소."

섭수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가 좋다는 거죠?"

"하하, 손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았소? 게다가 짚 위에 떨어질 땐 서로의 몸이 겹

치게 되니…… 하하하!"

섭수진은 화가 났다.

그저 시간만 나면 이런 소리라니! 

"뭐예요?"

그녀가 눈을 치켜 뜰 때! 

"피하시오!"

진소백이 다급히 말하며 섭수진을 뒤로 밀었다.

섭수진 또한 공기를 찢는 화살 소리를 들었으므로, 급히 공력을 모아 양손을 둥글

게 휘둘러 막(幕)을 만들었다.

차라락`─` 

다섯 개의 화살이 그녀가  만든 경기(勁氣)의 막을 뚫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는 

사이 진소백은 일곱 개의 화살을 막아 

내며 그 중 세 개를 되쏘았다.

슉! 

화살은 강궁(强弓)에서 쏘아진 듯 가공할 빠르기로  공기를 갈라 숲속으로 들어갔

다.

"우욱!"

세 개의 화살이었음에도 단지 한 명의 혈의인(血衣人)이 왼쪽 어깨를 부여잡고 일

어섬을 본 진소백의 눈에 은은히 놀람의 빛이 어렸다.

"이십사 명 혈의대(血衣隊)가 이 정도 실력이란 말이냐?"

진소백이 크게 외치며 몸을 날렸다.

비록 호기롭게 말했지만 그의 말투엔 평소의 장난기가 조금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가 눈앞의 적들을 중히 여김을 알 수 있는  모습! 섭수진의 귀로 전해지는 전음 

또한 진지했다.

"좌측을 맡으시오. 조심하시오, 일반 무사들과는 격(格)이 다른 자들이오."

진소백이 우측의 숲을 덮치고 섭수진이  뒤이어 좌측의 숲으로 날아든  것은 거의 

동시라, 일반인이 

보기엔 마치 처음부터 짜고 한 행동 같았다.

게다가 얼마나 빨랐던지, 처음에 진소백이 받았다가 되던진 세 개의 화살 바로 뒤

쪽에 줄이 묶여 있어 그들이 딸려 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하지만 숲에 숨은 혈의인들의 반응도 무척 빨랐다.

그 짧은 순간 제이의 화살이 날아올 줄 어찌 짐작했을까? 하지만, 

"너희의 전술은 익히 알고 있다."

진소백이 외치며 허공에서 발등을 번갈아 찍으며 도약했다.

이처럼 허공을 밟고 도약하는 신법은 웬만한 문파의 수장(首長)도 하기 어려운 것

이었다.

한데 섭수진 또한 비슷한 신법을 전개해 화살을 피하고 있지 않은가? 아미파 천룡

신공(天龍神功)의 응용! 

본래 무공이란 어느 정도 경지를  넘어서면 한 순간의 깨달음으로  경계를 넘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걷히지 않던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며 새로운 세계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지금 섭수진이  보여 준 움직임은  이전의 그녀로서도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꽤 어려웠을 것이다.

하나 지금 섭수진의 동작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

그녀는 이미 무공에서 하나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미리 진소백의 경고를 받았다.

해서 몸을 날릴 당시부터 발꿈치의 용천혈에 진기를 모아 허공  중에서 방향을 바

꿀 대비를 했으니.

 재도약했던 몸이 내려오는 속도는 이전보다 빨랐다.

따라서 혈의인에 대한 공격도 더욱 빨라짐은 당연한 이치! "우우욱!"

비명을 지르며 진소백 주위의 혈의인 셋이 동시에  튕겨 나갔다. 일 초에 세 명을 

처치했건만, 진소백은 만족한 표정이 아니었.

그의 용음수(龍音手)는 다섯 명을 동시에 노리며 쏘아 갔었다.

진소백의 전음이 섭수진의 귀를 울렸다.

"최선을 다하고, 손에 인정을 두지 마시오. 적은 이들만이 아닐 거요."

 적을 일검에 죽이는 것보다, 상처만 주고 제압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섭수진도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잘 뽑지 않는 검을 뽑았다.

우수의 검에서는 소청검법(小淸劍法)이 위세를 떨치고, 좌수엔  금정산수가 오묘한 

기세를 담고 혈의인을 쓸어 갔다.

원래 이십사 혈의대는 열두 명의 궁대(弓隊)와 열두 명의 검대(劍隊)로  나뉘어 있

다.

궁대의 공격을 피한 진소백과 섭수진이 검대를  휘젓자, 궁대 또한 화살을 버리고 

궁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때 진소백은 오 초를 휘둘러 다섯 명을  땅에 눕혔고, 섭수진은 삼초를 뻗어 세 

명을 물리쳤다.

단지 네 명이 남아 있었는데, 다시 열두  명이 가세하자 남았던 네 명은 가까스로 

생명의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진소백과 섭수진의 기세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으므로.

다시 진소백의 일장이 한 명의 가슴을 짓뭉갰다. 피를 토하고 밀려가는 그를 보며 

진소백은 생각했다.

이들은 심화절의 배후인 풍림서(風林誓)의 무사들이었다.

심화절은 왜 이처럼 많은 인원을 동원해서 자신을 막으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

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초의(草衣) 선사(禪師)! 

심화절이 공개적으로 엽혼을 처형하겠다고 거짓말을 한 이유를, 초의 선사를 제외

하고는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심화절은 엽혼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 자신과 금청청  등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그는 걱정이 되었다.

금청청이 심화절의 손에 잡혔다면 틀림없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진소백은 잊고 있었다.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자신과 섭수진이었다.

다시 혈의인의 검이 등을 노리고 다가왔다.

진소백은 몸을 절묘하게 비틀어  피하며, 중지를 꼿꼿이  뻗어 혈의인의 천돌혈을 

찔렀다.

"켁!"

숨막힌 기침이 혈의인에게서 터져 나왔다.

노존은 백여 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의 앞에는 두 명의 청삼노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비응방의 일 정도

를 당신과 천기수사 둘이서 처리할 수 없었다니, 정말 뜻밖이오."

노존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처음엔 쉬워 보이던 일들이 너무  덩치가 커졌소. 고숭무 정도가  문제가 아니오. 

아직 정체를 모르는 흑회 회주란 자와 진소백이란 녀석의 능력은……  보면 알 것 

아니오?"

두 청삼노인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혈의대의 능력이라면 능히 웬만한 강호고수를 상대하는 데 일 각도 소요되지 않을 

것이다. 한데 지금 들리는 저 소리는…… 

그들은 소리만 듣고도 전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들이었다.

"혈의대가 상대가 되지 않는구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심화절과 내가 어찌 다시 서(誓)의 도움을 청했겠소?"

청삼노인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이 생긴 두 청삼노인의 유일한 차이는 미간의 사마귀였다.

한 명은 사마귀가 있고 다른 한 명은 없었다.

사마귀가 있는 자가 형인 듯했다.

사마귀가 무(無)사마귀에게 말했다.

"어서 발동하라!"

무사마귀가 즉시 신호를 보내자 어디선가 도화선에 불이 붙어 숲속으로 타 들어갔

다.

"마지막!"

진소백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지막 혈의대 무사를 처치했다.

동시에 섭수진 또한 일검을 날려 그녀에게 덤빈 무사들을 모두 처치했다.

비록 그녀가 처치한 혈의인(血衣人) 수가 진소백에 비하면  반수(半數)에 불과했지

만, 그것 역시 대단한 것임을 

진소백은 알았 

자신은 혈의대의 무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야말로  처음 대하는 

무공을 맞아 이 정도 싸운 것이다.

생각을 잇던 진소백은 낯익은 냄새를 맡았다. 

 화기(火器)에 남다른 조예가 있는 진소백이었다.

어찌 이 냄새를 모르랴? 

"어서 내공을 모으시오."

그의 손은 섭수진의 허리를 감고 발은 땅을 박찼다.

"최고의 장력으로 땅을 치시오!"

그들의 장력이 땅을 갈길 때, 그 땅이 갈가리 찢어졌다.

꽝! 꽈광! 

어찌 장력의 힘일까? 

 묻혀 있던 화탄(火彈)이 폭발하고 있었다.

폭발의 여력에 휘말리며 진소백과 섭수진의 신형이 이십여 장 하늘로 높이 솟구쳤

다.

마치 바람을 타고 나는 천신(天神)의 모습 같았다.

 * * * 

비응방 주위는 시끄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자 모여들었지만, 심화절의 엄격한 통제를 통해 출입표를 

받은 몇 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출입표를 주는 기준이 알려지지 않아, 비응방 정문에 모인 군웅들이 웅성댔다.

군웅 중에 누군가가 외쳤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출입표를 주고 말고 한단 말이오?"

지금 출입표를 나누어 주는 사람은 총관직(總管職)을 맡은  귀조 독소명(獨蘇冥)이

었다.

그는 유일하게, 옥산(玉山)에서 있었던 흑회(黑會)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었다.

심화절은 방주가 되자 일부의 직제를 바꾸어 새로 총관이란 직책을 만들어 그에게 

주었다.

독소명은 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대력호(大力虎), 당신이로군! 스스로 자격이 있다 여기면 가져 가 보시오."

독소명이 출입표 한 장을 흔들어대자 대력호의 검은 얼굴이 붉게 변했다.

"흥! 무시하지 말거라."

대력호가 크게 외치며 땅을 박차자 그의 몸이 이 장 위로 떠오르며 독소명을 덮쳐 

갔다.

그러나, 

"흥, 네 정도 실력으로는 비응방의 땅을 밟지 못한다."

독소명이 차게 말하며 땅을 차  올리자, 돌멩이 한 개가  쏜살같이 날아 대력호의 

발바닥 용천혈을 노리지 않는가? 

대력호는 공중제비를 돌아 그 돌을 피했다. 

 하지만 어느새 독소명의 발끝에서 돌멩이 두 개가 다시 쏘아졌 하나의 기세는 맹

렬(猛烈)하고 하나는 온건(穩健)했다.

온건한 돌이 먼저 왔고, 맹렬한 돌은 나중에 왔다.

대력호는 부득이 첫 번째의 약한 돌을 밟고 도약(跳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두 번째의 맹렬한 돌을 피하려니 부득이 그 방향도 일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독소명의 머리 위.

세 번의 도약으로 어쩔 수 없이  독소명의 위로 가게 된 대력호는  힘이 떨어짐을 

느꼈다.

공중에서 돌멩이를 짚고 세 번의 도약을 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 어!"

그가 독소명의 머리 위에서 바둥거리며 떨어질 때!  독소명의 우수가 귀신의 발톱

처럼 대력호의 목줄기를 잡아 버렸다.

"우`─`우욱!"

원래 대력호의 덩치는 독소명보다 컸다.

하지만 그런 대력호를 독소명의 귀조가 전혀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듯 잡고 있었

다.

목이 잡힌 채 허공에 바둥거리는 대력호를 보며 귀조 독소명이 말했다.

"출입표를 주고 말고는 내가 결정한다. 이제 그 뜻을 알겠느냐?"

대력호가 정신없이 눈을 끔벅이자 독소명이 비로소 그를 놓아 주었다.

휙! 

그가 내던진 대력호는 오 장 정도를 날아 바닥을 뒹굴더니  정신없이 기침을 해대

었다.

군중들이 조용해졌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대력호는 제법 이름이 있는 자였으나, 독소명의  적수가 전혀 되지 못함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독소명의 입가에 득의의 웃음이 어렸다.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 

독소명의 미소가 잦아들었다.

그는 한 사람을 보았다.

푸른 가사를 걸친 승려! 

그의 맨발마저 확인하자 독소명은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만 마음속으로만 외칠 뿐이었다.

'그가 왔다.' 

 * * * 

노존은 하늘 높이 솟았다 떨어지는 두  신형을 보았다. 청삼노인들도 물론 보았을 

게다. 

 "과연 대단하군! 어떻게 저런 고수들이 갑자기 나타날 수 있지?"

사마귀의 말은, 그 또한 진소백과 섭수진이  허공을 날아 폭발의 여력을 해소함을 

보았음을 의미했다.

무사마귀가 형의 심중을 짐작하고 앞질러 명령을 내렸다.

"오령혈(五靈血)와 삼절진(三絶陣)을 동시에 발동하라."

숲속 어디선가 복명의 소리가 들렸다.

멀어지는 기색이 있더니 일단의 사람들이 숲을 가로지르는 소음도 들렸다.

사마귀가 침중하게 말했다.

"어쩌면 그들 외에도 우리까지 나서야 할지 모른다."

노존 장육삼이 놀라 말했다.

"그 정도로 강하단 말이오?"

사마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너무 적은 인원을 동원한 건지도 모르겠소."

그의 얼굴이 침중했다.

사마귀는 생각했다.

'어떻게 된 걸까? 아무리 강한 자라고 해도 그처럼 쉽게 혈의대(血衣隊)를 제거할 

수는 없는데…… 게다가 

마치 알고 있다는 듯 폭약마저 피해 버리다니……' * * * 

섭수진은 몸에 앉은 먼지를 털어 내었다.

"폭약을 사용하다니…… 같은 편마저 돌보지 않는 자들이군요."

진소백도 옷을 털며 말했다.

"그런 자들을 상대하는데 우리도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겠지."

"무슨……?"

진소백이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화탄이야말로 내가 숨겨 놓은 가장 큰  장기(長技) 중의 하나지. 시간이 없소. 결

코 이 정도 공격으로 끝나지 않을 거요."

진소백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동서남북(東西南北) 사방에서 검은 옷을 입은 네 명의 무사들이 소리도 없이 달려

든 것은.

멀리 동영 인자(忍者)들의 전형적인 차림을 하고 있었다.

가슴에 새겨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선명(鮮明)한 핏방울 문양이 특이했다.

"인자들? 오령혈(五靈血)이구나!"

어떻게 진소백은 적들의 이름을 이처럼 잘  아는가? 섭수진은 궁금했지만, 지금은 

물을 때가 아니었다.

진소백이 쌍장을 휘둘러 동남의 두 명을 마주쳐 갈 때, 섭수진도 소청검법을 일으

켜 서북의 두 명을 상대했다.

용의 울음이 사방을 진동하며 일어나자, 동남의 두 인자는  뒤로 물러섰다. 섭수진

의 소청검법은 비록 일초에 인자들을 물리치지는 못했으나, 절정의 위력으로 적들

을 비틀거리게 했다.

그녀가 다시 삼 초를 맹렬히 휘둘러 좌우를 쓸어 갈 때 진소백은 오 초 만에 인자 

둘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싸움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방심(放心)이었다.

오령혈의 마지막 절정혈(絶頂血)의 공격은 이런 방심의  허를 노리고 계산된 것이

었다.

진소백의 두 인자를 쓰러뜨리는 순간, 남쪽  방향에서 달려들던 인자의 배 부분이 

갈라지면서 하나의 검이 쏘아져 왔다.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것은 난쟁이! 

인자의 배 부분에 숨어 있다가 적이  네 인자를 물리치고 방심할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동(發動)되는 난쟁이의  공격이 바로 절정혈이라  불리는 오령혈 최후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너희의 수법은 이미 알고 있다."

진소백은 어찌 알았는지 난쟁이가 자신의 초식을 채 전개하기도 전에 다른 인자에

게서 뺏은 검을 남쪽 인자의 배에 박아 버렸.

배는 곧 난쟁이의 머리였다.

"크헉! 어떻게……? 네놈은……"

오령혈은 그 이름조차 비밀이었다.

오(五)라는 숫자가 은연중에 숨은 절정혈의 공격을 예상하게 만들지도 모르므로.

그런데 진소백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들의 공격 형태까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경악한 난쟁이에게 진소백은 차게 말했다.

"난, 너희들을 상대하기 위해 지난 이십 년간을 하루도 편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난쟁이가 의혹을 씻지 못한 눈을 마침내 감았다.

섭수진도 인자 둘을 이미 물리쳤음을 보고 진소백이 말했다.

"서두릅시다. 이게 끝이 아니오. 더 무서운 공격이 있을 거요."

나쁜 예상은 항상 들어맞는다던가? 

삼삼(三三)은 구(九)! 

아홉 개의 창(槍)이 삼 면(面)에서 쏘아 왔다.

상, 중, 하를 각각 세 개씩이 노리고 와서 피할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 기세의 맹렬함을 어찌 필설로 형용하랴! 섭수진은 이번이야말로 이전과

는 비교가 안 되는 위기(危機)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진소백은 당황하지 않았다.

냉소하며 품에서 밧줄을 꺼내 들었다. 손이  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동작이 그대

로 이어지며 

밧줄은 정면에서 오는 세 개의 창을 휘감았다.

그대로 밧줄을 잡아당기자, 

휙! 

창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며, 정면의 세 창은 뒤쪽 좌우의 여섯 개 창보다 앞서 진

소백과 섭수진에게 쏘아 왔다.

하지만 세 개의 창, 그것도 정면에서 오는 것을 피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몸을 석 자 정도 띄워  허공에서 유영(遊泳)하듯 눕히자, 창들은  아래위로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변화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진소백이 땅으로 내려오면서 창을  묶은 밧줄을, 손목을  휘둘러 잡아채 가니…… 

보라! 

창 세 개가 나머지 여섯 개의 창들의  진로(進路)를 막아 기세를 완화시켜 버리는 

것을! 따땅! 

기세가 완화(緩和)된 창을 섭수진의 검이 자르는 소리였다.

진소백의 끈을 뚫었던 창은 불과 세 개였던 것이다.

힘을 잃고 당연히 땅에 떨어질 것으로 생각되었던 창들이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

났다.

뒤쪽의 여섯 창(槍)은 끈에 묶여 있었다. 

 그에 비해 앞의 창은 크기가 훨씬 크고 기세가 강했지만 영교하지는 못했다.

이런 큰 창은 끈으로 조종이 힘들 뿐 아니라 효과적이지도  못했으므로 강한 힘으

로 던질 뿐이었다.

오직 적의 이목을 교란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것은 능률의 문제였다.

대응이 느린 적은 전방의 강한 창에 당했고,  대응이 빠른 자들은 후방의 여섯 창

이 펼치는 변화에 당했다.

하지만 오늘 삼절진(三絶陣)은 누구도 쓰러뜨리지 못했다.

삼절진을 구성하는 아홉 무사가 숲에서 걸어나왔다.

아홉 명의 청의(靑衣)는 모두 같아 그들이 한 문파에 속해 있음을 일러주었다.

그 중의 한 명, 대창(大槍)을  등뒤에 여러 개 맨 사내가  말했다. "정말 대단하다. 

우리 삼절진의 변화를 알고 있었는가?"

진소백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풍림서(風林誓)의 인물들이 적을 맞아 시간을 끌다니, 누구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거냐?"

'냐'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소백의 신형이  청의사내들과의 거리를 단숨에 줄였

다.

청의사내는 헛바람을 들이키며 등뒤의 창을 급히  빼내며 외쳤 "즉시 진(陣)을 발

동하라."

그러나 너무 늦었다. 

 진소백의 오른손에 들린 끈이 진기를 싣고 검과  같이 꼿꼿하게 변해, 뒤쪽의 대

창수(大槍手) 하나를 찔러 감을 

청의사내는 보았 

그는 청삼노인 사마귀의 말을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일 각의 시간만 끌어라. 우리까지 나설 테니! 어쨌든 일 각이다.

청의사내들은 최선을 다해 진소백과 섭수진을 맞아 싸웠다.

그들의 눈에는 결의가 번뜩였다.

바닥에는 이미 다섯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진(陣)의 가장 큰 약점(弱點)은,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처음 진

소백에게 불의의 기습을 당해 한 명의 대창수를 잃어버린 삼절진은 귀퉁이가 무너

진 

형상이 되어, 다만 이 대 팔의 혼전(混戰)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청의사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청의사내 눈에 서린 그 굳

은 결의(決意) 때문이었을 게다.

진소백은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을 늦게서야 겨우 들었다.

그는 다급하게 섭수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위험하오."

이때 이미 하늘은 화탄을 실은 철시(鐵矢)들로 가득했다.

어디로 피할까?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피할 수 없을 거요!"

사마귀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삼절진의 아홉 수하를 희생하면서 만든 함정이었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희생이 생길 수도 있었다.

"절대 피하지 못할 겁니다."

무사마귀가 다신 한 번 확신하며 말했지만 장육삼은 불안했다. 노존 장육삼! 

그는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 * * 

청의사내들도 이미 화탄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심한 배신감이 떠오르며, 싸움은 일시 중단되었 그 틈을 타서 진소

백은 왼손으로 섭수진의 허리를 감아 갔다.

"무슨 짓……!"

섭수진은 놀랐으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행한 일! 

 만일 그녀가 거부했다면 남아 있던 시간으로 보아 그들은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

다.

진소백의 오른손에 들린 끈이 장내를 휘감으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청의사내들의 

시체 다섯 구를 모두 쓸어 모았다.

이어 그들의 시체가 병풍처럼 주위를 감싸자, 

"눈을 감아!"

진소백이 외치며 섭수진의 몸을 감싸안았다.

꽈꽈`─ 꽝!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 일어났다.

폭음과 함께 먼지가 지축(地軸)을 흔들며 일어났다.

 * * * 

따닥, 따닥! 

불길이 살아 있는 나무를 삼키는 소리였다.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불이 꺼진 곳에 남은 것은 검은 숯과  타고 찢어진 육

편들! "이것 봐! 여기는 무더기로 죽었구먼!"

사마귀가 한 무더기의 육편(肉片)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에 돌아서 육편을 바라보던 노존 장육삼은 놀라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심하시오!"

육편 속에서 푸른 검이 솟아나오며 사마귀를 노렸다.

"우욱!"

사마귀는 신속하게 대응하며 피했지만 어깨와 오른 뺨에 검상을 입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암습(暗襲)을 이정도의 상처만으

로 피할 수 있음은 그가 대단한 고수라는 의미였다.

육편을 뚫고 두 명이 일어섰다.

진소백과 섭수진! 

진소백의 머리 곳곳은 타고 입가에는  가는 핏줄기가 내비치는 것이  내상이 심해 

보였지만, 섭수진은 그다지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진소백이 몸을 감싸 보호한 탓에 그녀는 무사했던 것이다.

"과연 살아 있었구나!"

노존이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그는 비록 진소백을 오래 상대하지는 않았지만 뭔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

다.

"과연 태청쌍수(太靑雙搜)의 손쓰는 법은 대단하구려. 자신의 수하마저 속이다니."

청삼노인 둘의 얼굴에 감탄이 어렸다.

"네가 어찌 우리를 그리 잘 아느냐?"

그들 스스로 시인한 셈이었다.

태청쌍수! 

곤륜에서 반도로 낙인찍혀 쫓겨났던 인물이다.

그들이 여기 있다니! 

"내가 아는 것은 더욱 많소. 당신들이 풍림서란 세력에 속함도 알고 있지!"

태청쌍수의 눈에 살기(殺氣)가 떠올랐다.

"그 말로써 너는 살길을 잃었다."

진소백이 힘없이 웃었다.

그의 내상(內傷)은 매우 심해 섭수진이 부축하지  않는다면 쓰러질 지경이었던 것

이다.

사마귀가 크게 웃었다.

"크하하, 여자에게 기대지 않고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놈이 큰소리는……"

사마귀는 말을 멈췄다.

진소백의 손에 작고 푸른 공이 들려 있음을 본 까닭이었다. 뇌정구(雷霆球)! 

화문의 무가지보(無價之寶)인 뇌정구! 

"이것의 위력을 안다면 움직이지 말아라."

진소백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사마귀는 이미 조심하고 있었 뇌정구의 위력을 모

르는 무림인이 어디 있으랴? 

사마귀가 조용히 말했다.

"그것이 터지면 너도 죽는다. 설마 자폭할 셈이냐?"

"후후! 그럼, 너희들이 나를 살려 줄 생각을 하고 있었더냐?"

진소백이 냉소하며 섭수진에게 눈짓했다.

섭수진이 진소백을 부축하며 걸어가자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가지각색  옷을 입을 

무사들이 비켜났다.

뇌정구를 든 진소백이 섭수진의 부축을 받은 채 서서히 걸어가고, 그 뒤를 태청쌍

수(太靑雙搜)와 수하들이 따라가는 

기이한 대치가 계속되었다.

한참 걸어가던 섭수진이 멈칫했다.

"절벽이에요."

그랬다. 길이 끊기고 절벽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마귀가 음침하게 웃었다.

"흐흐, 이제 갈 데가 없으니 그만 항복해라."

진소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봐, 파란 사마귀! 너는 혹시 재수없는 그 웃음 때문에  곤륜에서 파문당했던 것

이 아니냐?"

사마귀는 노해 달려들려다가 멈췄다.

진소백이 수중의 뇌정구를 좌우로 흔들었기 때문이다.

"안 되지, 안 돼! 까불지 말아라.  좌우간, 본 공자는 배가 몹시 고프니  어서 먹을 

것을 구해 오너라. 만일 까불었다간 확 터뜨려 버릴 테다."

기이한 형세가 되었다.

포위당한 진소백이 오히려 큰소리를 땅땅 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노존은 유심히 진소백이 든 뇌정구를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태청쌍수들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태청쌍수의 얼굴이 기묘한 표정을 띠며 변해 갔다.

사마귀가 진소백을 보며 말했다.

"크흐흐, 네놈은 얼마 전 비응방에서 흑수동주 도곡(陶曲)이 뇌정구를 가지고 있었

다는 사실을 아느냐?"

진소백의 눈에 당황이 어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크흐흐, 여기 있는 노존(老尊)이 당시 뇌정구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네가 지금 

갖고 있는 것과는 모양이 틀렸다."

진소백은 비로소 노존이 비응방의 하인 우두머리였던 장육삼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급히 대답했다.

"원래 뇌정구는 벽력세가(霹靂勢家)의 물건으로서 화문(火門)이 그  모양을 도용했

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사마귀가 흠칫하다가 다시 괴소를 흘렸다.

진소백이 마른침을 삼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크흐흐, 금시초문(今時初聞)이다. 네놈이 가진 건 가짜가 틀림없다."

진소백의 눈에 당황의 빛이 역력했다.

그는 섭수진의 손을 잡고 말했다.

"큰일이오. 저놈의 사마귀는 의심병까지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겠소."

사마귀는 정말 화가 났다.

"저놈의 자식을!"

그가 외치며 먼저 덮치자 뒤이어 수많은 무사들이 진소백을 덮쳤다.

진소백이 낭랑히 웃으며 섭수진의 손을  잡고 망설임없이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

하하, 세상에 믿음이 없으니 살기가 힘들구려."

그를 놓친 사마귀의 손에 뇌정구가 잡혔다.

"요런 가짜를 가지고…… 망할 놈의 자식!"

사마귀는 손 안의 뇌정구가 미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쿠꽝꽝! 

벽력세가의 뇌정구가 뇌성(雷聲)을 울리며 폭발했다.  태청쌍수(太靑雙搜) 휘하 삼

십여 명의 풍림서(風林誓) 인물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것은 풍림서가 발족한 이래 최초의 좌절이며, 가장 큰 좌절이었다.

전서구 하나가 심화절을 향해 날았다.

그 새는 발에 이런 전신을 달고 있었다.

<대폭발(大爆發)!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