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10 장 위기엽혼(危機葉魂) (11/32)

제 10 장 위기엽혼(危機葉魂) 

진소백의 거처는 심화절이 특별히 마련한 곳이라 섭수진이 있는 곳에서 그다지 멀

지 않았다.

둘이 함께 살수와 그 배후에 대한 수사를 하는 터라 의견 교류를 쉽게 할 수 있도

록 심화절이 안배(按配)한 것이었다.

덕분에 섭수진은 진소백의 거처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갈수 있었다.

"왜 천랑파의 일을 심 당주에게 말하지 못하게 한 거죠?"

섭수진이 밖을 살펴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뒤 진소백에게 물었다.

그들은 빗장수와 이틀 후에 만나기로 약속한 뒤 비응방으로 돌아왔었다. 섭수진은 

천랑파의 변고(變故)와 비응방의 일이 관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빗장수의 일

을 심화절에게 말하려고 했었다.

이때 진소백이 섭수진을 극구 만류하였는데, 지금 섭수진은 그 이유를 묻고 있다.

진소백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섭 소저의 지혜는 강호상에 유명하지만 아직 강호 경험이 부족한 것 같소."

'무슨……' 하며 눈을 치뜨는 섭수진을 보며 진소백이 말을 이었다.

"비록 천기수사가 우리에게 일을 부탁하긴 하였으나,  일이 돌아가는 상황(狀況)으

로 보자면 그 또한 

의심 대상에서 벗어나기 어렵소.  만에 하나라도 그가  흉수일 가능성도 생각해야 

되지 않겠소?"

섭수진은 확실히 총기(聰氣)가 있었으나, 너무 서적적(書籍的)인 지식에 국한(局限)

되어 있었다.

글 속에서라면 어떻게 사건을 의뢰한 심화절이  범인이 될 수 있으랴마는, 현실은 

다른 것이었다.

섭수진이 뭐라 말을 하려는 것을 진소백이 손을 들어 제지했.

거의 동시에 섭수진 또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방 내의 중요 인물들은 두루 만났습니까?"

심화절이었다.

처음 그가 금사진의 변고가 일어난 경위와 방 내에 반도(叛徒)가 있음을 의심하게 

된 경위를 말하고 반도를 찾아  줄 것을 부탁하였을 때,  진소백은 자세한 사항은 

중요 인물들을 한번 만나 본 후에 듣겠노라고 했었다.

선입견(先入見)을 가진 채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 진소백의 그런 선택

에 섭수진도 공감(共感)을 표한 바가 있었.

"예, 대충은."

"그럼, 이제 일전에 대략적으로 말씀드린  것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겠습

니다."

수사를 하자면 전체적인 윤곽을 잡기 위해 관련된 제반 사항을  알아두는 일은 불

가피하다.

관련 사항이란 어떤 것이겠는가? 

그 중에는 비응방이 외부로 흘려서는 안 되는 극비(極秘) 사항도 있다.  만일 이런 

비밀들이 외부로 흘러나간다면 비응방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었다.

심화절이 주위의 거파들을 두고서 개방과 소림,  그리고 아미파에 도움을 청한 것

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모두 이름 높은 명문들이니  수사(搜査) 도중 알게 된  비응방의 비밀을 자신들의 

사익(私益)을 위해 사용할 

가능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화절이 설명한, 비응방을 싸고 있는 상황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방주위의 계승(繼承) 문제.

원칙적으로 방주위의 계승권은 금청청과 고숭무, 그리고  심화절이 동등(同等)하게 

가지고 있었다.

금사진의 유고 시, 셋 중 방도들의 지지가  가장 높은 사람을 택해 금사진의 지위

를 계승하게 하는 

것이었고, 그 와중에 방주의 부인인 적염의 발언권(發言權)이 가장 클 것임은 명약

관화(明若觀火)! 

그리고 그 결정은 늦어도 금사진의 장례가 치러지기 전까지는 내려져야 했다.

금사진의 장례가 나흘 남았으니 이제 결정의 날은 사흘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다.

둘째, 원한 관계.

이 문제가 가장 아리송했다.

금사진은 자신의 적에게서 한 명의 피붙이를 남기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치

밀했던지라, 원한을 가질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과연 그 원한을 갚을 만한 자가 

살아 있을지 의문(疑問)인 것이었다.

셋째, 광산에 얽힌 이권의 문제.

이 부분이 심화절이 개인적으로  가장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었고, 직접 

광산의 일을 맡았던 고숭무가 설명하기로 하였 

심화절의 설명을 듣고 나서 생각에  잠겨 있는 섭수진에게 진소백이  의견을 물었

다.

"어떤 것이 흉수의 동기(動機) 같소?"

"제가 보기에도 역시 광산의 이권 문제가 가장 타당해 보이는데요."

진소백은 빙그레 웃었다.

"역시 그렇죠? 하지만 복잡한 사건(事件)에서는 여러 가지의 이유가 섞일 수도 있

으니 한 번에 단정하기도 어렵군요."

섭수진이 다시 뭐라 말하려는 순간, 심화절이 일어나며 말했다.

"아, 저기 고 당주께서 오시는구려."

고숭무의 설명은 심화절만큼 조리있지는 않았다.

하나, 광산(鑛山)의 일을 직접 지휘하며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그였는지라 생동감

(生動感)이 있어 그런대로 지루하지 않게 들어 줄 만했다.

"……하여간 이 광산(鑛山)의 일은 비응방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은 후 기이한 허

탈감에 빠져 있던 방주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했소. 다만 한 가지,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

고숭무는 알려진 무공에 비해 의외로 다혈질의 인물인 듯, 광산의 일을 자신의 의

견까지 섞어 가며 말하기 시작했다.

'방 내의 일을 필요없이 자세히 얘기하다니……' 뒤에 선 심화절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 갔지만, 고숭무는 점차 열이 오르는 듯 말이 빨라져 갔다.

그의 얘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처음 무산(巫山)에서 광맥(鑛脈)을 발견한 것은 색도광(色賭狂) 가도(賈屠)였다.

어느 날 그가 흙투성이의 몸으로 비응방을 찾아와 합작할 것을 제안했을 때, 금사

진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여자나 밝히고 도박하는 것밖에 모르는 색도광 같은 자의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인

가? 하나 색도광이 내놓는 철광석(鐵鑛石)을 보자 금사진의 마음은 달라졌다.

철광석에 함유(含有)된 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양질(良質)이었고, 이런 광맥을 광

산으로 개발(開發)한다면 큰돈이 될 수 있었 

방세를 확장하기 위해 큰돈이 필요했던 금사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

다.

문제는 색도광의 인물됨이었다.

그가 술집이나 기루를 돌며 곳곳에서  입을 놀린 덕분에 귀왕곡이나  흑수동 같은 

사파의 세력들도 이 광산의 일에 

끼여들게 되었고, 급기야는 적염의 아버지인 공동의  풍운 진인마저 이 일을 알게 

된 것이다.

닥치는 대로 계약을 맺어 돈을 챙기려는 색도광의 욕심 때문에  너무나 많은 문파

들이 모여들게 된 것이다.

노한 금사진이 색도광에게 위약(違約)의 책임을 물으며 그를 처리(?)하고 났을  때

는 이미 비응방과 

공동을 위시하여 군소 칠 개의 방파가 일에 참가하고  난 다음! 문제는 서로의 지

분에 관한 것이었다.

비응방은 먼저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선점권(先占權)을  들어 당연히 가장 

큰 지분을 요구하였고, 나머지  방파들도 저마다의 이유를  들어 지분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호가 비록 실리(實利)보다는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인물들의 집단이라고는 하나, 

돈은 귀신도 움직인다고 하지 않는가? 

광산의 권리를 사이에 두고 여러 문파들이 서로 합치고 갈리면서 팽팽히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숭무가 새해 초부터 비응방을 떠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각 방파의 대표자들이 모여 계속 의견을 절충하며 결국에는 

타협을 이루고 고숭무가 돌아온 것이 바로 정월 십사일이었던 것이다.

"이상하군요."

고숭무의 설명을 듣고 있던 진소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갈등이 있었는데도 어떻게 강호에서는 조금의 소문도 나지 않았습니까?"

강호의 소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  일곱 개의 문파가 연루된 갈등이 아무 

소문 없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숭무의 대답은 간단했다.

"각파들끼리의 갈등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파를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었소. 사천에는 비응방이나  공동뿐 아니라 점창  같은 대문파도 있으니

까."

진소백은 이해하고 다음 질문을 하였다.

"그 절충의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사실 일곱 개의 문파라곤 하나, 우리 비응방 외에는  공동만이 거대파벌일 뿐, 나

머지는 손색이 있는 문파들이었소."

고숭무의 눈에 자랑스러워하는 빛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내가 공동의 풍운(風雲) 진인(眞人)에게 두 파의 관계를 내세워 합작을 제의하고, 

우리 두 파가 합작을 하자, 나머지는 

더 이상 분쟁을 벌일 수 없었소."

그렇다.

귀왕곡(鬼王谷)이나 흑수동(黑水洞) 등도 결코 작은  세력은 아니었으나, 거대문파

인 비응방과는 차이가 있었다.

비응방과 공동이 합심(合心)하자, 다른 문파들이 싸울 기세를 잃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결국은 타협을 보고야 말았지."과는  비응방과 공동이 사(四) 할(割)씩 가

져 가고, 남은 이 할을 다섯 개의 문파가 가지게 되었으니, 비응방과 공동 외의 다

른 문파들은 그야말로 껍질만 가지는 꼴이 된 셈이었다.

"알맹이는 다 챙기시고 껍질만 조금 던져 주셨구려."

이 말이 자신의 협상술을 칭찬하는 것인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웃던 

고숭무는, 이어지는 

진소백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구겨졌다.

"사 할이라…… 욕심이 많군!"

비록 혼잣말인 듯하였으나 고숭무에게는 똑똑히 들렸다.

발작을 하려던 고숭무는 억지로 자신을 눌러 참았다.

이놈에게 괜히 잘못 보여, 예전처럼 자신을 범인이라고 지목하면 어찌하겠는가? '

빌어먹을 놈의 자식, 내 이번 일만 끝나면……' 화를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는 고

숭무였다.

"자, 이제 저희는 비응방 문제의  대략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서겠습니

다."

'왜 저놈의 자식은 심  당주에게는 고분고분하면서 내게는  버릇없이 구는 거지?' 

진소백이 심화절에게 말하는 것을 보고 고숭무는 생각했다. 그리고 고숭무의 생각

이 어떻건 진소백은 더욱 

공손하게 심화절에게 말했다.

"심 당주께서는 나흘 후의 장례 준비로 바쁘시겠군요? 하지만 따로 조사한 곳에서 

새로운 단서라도 발견이 되면 즉시 

알려 주십시오."

"당연한 말씀이시오. 그럼 이만……"

인사하며 나가는 심화절을 급히 뒤따라가며 고숭무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상하단 말이야!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지?' 

금사진의 장례(葬禮)까지는 이제 사흘이 남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진소백은 오늘 금청청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왜 하필 그녀인가요?"

섭수진이 진소백에게 물었지만, 이어지는 진소백의 말에 그녀는 입을 다물어야 했

다.

"미인이지 않소! 혹시…… 질투(嫉妬)라도 하는 것이오?"

섭수진은 한가하게 유람 나온  사람처럼 행동하는 진소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계속 투덜거리면서도 끝까지 진소백을 따라오는 것이  수상하지 않은가? 

"하하! 이것 보시오, 이 오솔길은 정말 아름답구려."

섭수진은 비록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공감(共感)했다.

적당히 어우러진 나무와 공간(空間)이 자아내는 고아한 풍취! 그 아름다운  오솔길

이 끝나는 곳에 금청청의 처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섭수진에게 던진 진소백의 한마디에 섭수진은 다시 화가 났

다.

"저 여인이 술에 취하면 어찌 될지 궁금하지 않소?"

"뭐예요?"

자신이 취하여 한때 정신을 잃은 것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아는 섭수진이었다.

 * * * 

금청청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니, 이미 많이 마셨다.

어떻게 하면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 버릴 수 있을까? 하나 술을  마실수록 정

신은 오히려 또렷해질 뿐.

'누가 술을 근심을 쓰는 빗자루라 했지?' 

그때 금청청의 눈에 진소백과 섭수진이 들어왔다.

'저 둘의 사이가 언제 저렇게 가까워진 걸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둘이 가까워졌다는 점이 아니었다.

진소백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 금청청은 마음이 울적하여 감정(感情)을 풀어 버릴 대상을 찾고 있는 상태였

다. 게다가 자신은 이미 술에  취했으니, 이 정도면 시비를 걸기에  충분하지 않은

가? "너, 이 자식, 잘 만났다."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금청청의 손에  들려 있던 술 

호로가 직선으로 날았다.

목표는 진소백의 머리! 그러나…… 

"당신 옆에 있다가는 항상 뒤처리만 해야겠군요."

청아한 음성과 함께 술 호로는 어느새 섭수진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전과 동일한 변화(變化)! 

진소백이 뒤로 숨자, 섭수진이 대신 금청청의  공격을 처리한 것이었다. "흥, 항상 

여자 뒤에만 숨다니…… 그러고도 네가 남자냐?"

금청청은 또 진소백이 숨으며 자신의 공세를 피하자, 냉소(冷笑)하며 날아올랐다.

홍의(紅衣)의 붉은빛이 하늘을 덮는 듯싶더니, 어느새 섭수진의 머리를  넘어 진소

백을 향해 금청청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연꽃 같기도 하고 모란 같기도 한 꽃들이 어지러이 피어올랐다.

"어이쿠, 난화수(亂花手)로구나!"

그러나 언제 또다시 앞으로 돌아간 것일까? 

놀란 듯 비틀대던 진소백의 몸은 어느새 다시 섭수진의 앞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진(鎭) 공자, 당신 정말!"

어느새 섭수진이 짤막히 외치며  또다시 금청청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이번에는 장(掌)과 장이 부딪치는 소리가 일어나지 않았다. 금청청이  섭수진과 부

딪기 전에 손을 거두었고, 섭수진 또한 그것을 보고서 손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섭수진이 손을 거두는 자세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마치 처음부터  공력을 일으키지 

않은 듯하였다.

진소백의 눈에 이채(異彩)가 일었다.

하지만 그것은 섭수진의 뛰어난 무공을 봐서가 아니었다.

보라! 

거두어지는가 했던 금청청의 손이  다시 뒤집어지는 것을,  어지러이 펼쳐지던 꽃 

그림자가 손으로 모이는가  했더니 다시 난초의  어지러운 줄기처럼 경기(勁氣)가 

분분히 일어나며 섭수진의 몸을 돌아가는 것을! 

섭수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뒤쪽의 진소백만을 공격하는 기이한 공력이었

다.

진소백은 물론, 이번엔 섭수진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손끝에서 뻗어지는 경력(勁力)이  마치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휘어져 가다니…… 

이것이야말로 난화수(亂花手) 최강(最强)의 절초 중 하나이며, 금청청이 채 완성하

지 못하여 시전을 꺼리는 난화회류(蘭花廻流)인 것이었다.

믿기 힘든 공격에 노출된 진소백! 

하나 믿기 힘든 일은 한번 일어나기 시작하면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아이구, 나 

죽겠네!"

당황한 듯 다시 비틀거리는 진소백의 몸이 믿을 수 없게도  난화회류의 바늘 같은 

틈새를 밟으며 경력의 해일(海溢) 속에서 빠져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여인의 입에서 놀란 외침이 동시에 터졌다.

"취선보(醉仙步)!"

개방의 취선보! 

 취한 듯 비틀거리는 가운데 어떠한 공격이라도 흘려 보낼 수 있다는 개선( 仙)의 

절학이었다.

"정식 명칭은 취팔선과천(醉八仙過天)이라고 하지!"

낭랑히 외친 진소백이 정말로 하늘을 건널 듯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땅으로 다시 내려섰을 때에는 금청청의  완맥은 이미 진소백의 수중(手中)

에 들어간 후였다. 

 "네, 네놈이……"

당황한 금청청은 진소백을 쳐내려 하였으나, 이미 완맥을 잡힌 터라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금청청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진소백, 그런데  그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지 않는가? 

"이럴 수가?"

진소백이 매우 놀란 듯이  말하자, 섭수진은 물론  금청청조차도 가슴이 철렁하여 

그의 입만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섭 낭자, 죄송하나 잠시만 손을 이리 줘보시겠소?"

강호인이 손을 타인(他人)에게 맡기는 것은 목숨을 맡김과도 같다.  그러나 섭수진

은 어떻게 된 

것인지 조금의 불안함도 없이 진소백에게 손을 내밀었다.

물론 얼굴은 약간 붉어졌지만…… 

"어찌 이럴 수가……"

섭수진의 맥을 짚어 보던 진소백은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하며  잡고 있던 금

청청의 손마저 놓아 버렸다.

완맥이 풀림과 함께 공력이 회복된 금청청! 

그러나 무언지 모를 불안한 느낌이 음습해 오는 것을 느낀 그녀는 감히 다시 덤비

지 못하고, 진소백의 다음 말만을 기다렸다.

참다못해 섭수진이 먼저 물었다.

"진 공자,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진소백이 침중히 대답했다.

"놀라지 마시오, 섭 소저. 좀 전의 금 낭자는 마치 미친 살쾡이처럼 날뛰지 않았소

이까. 그런데 내가 맥을 짚어 보니……"

'미친 살쾡이'란 말에 막 발작하려던 금청청은 진소백의 다음 말, '내가 맥을 짚어 

보니'란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내게 무슨 병이라도……?' 

"짚어 보니요?"

섭수진의 독촉에 진소백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글쎄, 섭 소저랑 맥박(脈搏)이 똑같지 않겠소. 이게 말이나 되오? 섭 소저같이 현

숙(賢淑)한 여인과 미친 살쾡이가 맥박이 같다니. 이 무슨 해괴한……"

진소백은 당연히 그 뒤의 말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이 자식아`─`"

금청청이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분노를 더하여 폭풍 같은 경기(勁氣)를 동반했던 금청청의 이번 공격도, 너무나 쉽

게 제압되고 말았다.

진소백이 두 손을 치켜 들자,  금청청의 두 손은 마치  처음부터 약정(約定)이라도 

한 듯이 진소백의 손아귀에 

쥐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이것 보시오. 어떻게 이런 살쾡이와 당신의 맥박이 같을 수 있겠소?"

금청청은 분노로 인해 얼굴로 피가 몰려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섭수진 또한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심한 것 같아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다만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 하나.

'이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때였다.

"형장, 그 손을 놓으시오."

어디선가 젊은 청년의 것인 듯한 목소리가 들려 오며, 한  줄기 경력(勁力)이 진소

백과 금청청의 사이를 갈라 오는 것이 아닌가? 

만일 진소백이 계속해서 금청청을 잡고 있는다면 밀려오는 경력에  자신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형세! 

진소백은 급히 한소리 외치며 금청청에게서 손을 떼고 물러났  진소백이 물러나자 

금청청과의 사이에 생긴 빈 공간으로 표표히 떨어져 내리는 신형이 있었다.

굳이 그가 펼치는 신법을 보지 않아도 화산의 제자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매일도(梅逸度)! 당신이구려."

진소백은 침중히 말했다.

마치 한 수에 금청청을 넘겨주게 된  것이 불만이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만나게 

되었소."

명가의 풍도를 잃지 않으며 진소백에게 인사하는 매일도에게 금청청이 말했다.

"사형, 저자가…… 저를 모욕했어요."

그러나 매일도는 오히려 금청청을 꾸짖었다.

"청아! 그만 하거라."

 이어 진소백에게 말했다.

"진 형이라 하셨소? 청아가 무례히 군 점에 대해서는 내가 대신 사과하리다."

섭수진은 당연히 진소백이 웃으며 일을 넘길 것이라 예상을 했었는데 그의 행동은 

의외였다.

"호오, 살쾡이의 사형께서 대신 사과를 하다니, 왜 겁이라도 나신 게요?"

매일도의 눈썹이 역 팔 자로 올라가며, 주먹이 쥐어졌다.

진소백은 왜 이리도 무례하게 구는 것일까? 

 3 

"하긴, 나랑 싸워 좋을 게 없지. 자칫 잘못하면 망신당하기 십상일 테니!"

매일도의 꽉 쥔 두 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진소백의 도발은 계속되었다.

"이렇게 무례하다니, 내가 형장을 잘못 보았소."

"사람을 잘못 보았는지 모르지만  무공은 잘 보았소.  당신 정도로는 내게 덤비지 

않는 게 좋아!"

이 정도가 되면 매일도로서도 참을 수 없는 일! 

"좋소, 내 시험해 보리다. 조심하시오."

화가 난 와중에도 경고의 말을 하는 매일도를 보는 진소백의 눈에 감탄의 빛이 어

렸다.

그러나 마음속의 감탄과 가슴을 질러 오는 매일도의 좌수(左手) 일권(一拳)과는 서

로 관계가 없었다.

진소백은 급히 일보(一步) 후퇴하며, 오른쪽 손바닥을 추산(推山)의 일식으로 쓸어 

가서 매일도의 일권을 제지(制止)하고자 하였다. 그 와중에도 입은 쉬지 않았다.

"하하, 역시 당신 정도로는 되질 않는다니까."

진소백의 반응은 매우 빨라 매일도가 일권을  쏟아 내자마자, 이미 손바닥으로 일

권을 봉쇄(封鎖)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흥!"

싸늘한 웃음과 더불어, 믿을 수 없게도  매일도의 좌수가 손바닥을 피해 진소백을 

계속 핍박하는 것이 아닌가? 

원래 매일도의 일권은 진소백을 정면으로 질러 가고 있어 손바닥을  피할 수 없었

는데, 기이하게도 

지금 매일도의 일권은 진소백의 우측(右側)에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헛!"

진소백이 놀라 뒤로 두 걸음을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나 매일도의 좌수가 거둬지고, 다시 우수가  기이하게 말려진 형태로 찔러 오

는데, 그것은 더욱 빨랐다.

"이형권(移形拳)이로구나!"

진소백이 놀라 외치며 다시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권세(拳勢)의 범위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매일

도의 권(拳)은 계속해서 진소백의 면전을 압박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매일도의 발을 자세히 보라! 

전혀 걸음을 옮기는 것 같지 않은데도 발이 땅위를 미끄러지며 신형(身形)을 이동

시키고 있지 않은가? 

원래 권법의 힘은 안정된 하체(下體)에서 나오는 것! 이렇게 이동하면서 쏟아 내는 

권법은, 중심이 흔들려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지금 매일도의 일권 일권은 그야말로 산을 쪼갤 듯하여  조금도 중심이 흔

들리는 기색이 없었다. 

 만일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발을 이동시킬 수가 있다면 그 변화는 그야말로 천변

만화(千變萬化)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매일도가 전개하고  있는 이형권(移形拳)의 본질(本質)이었다. 

권세를 피해 잇달아 물러섰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도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자 진

소백은 어쩔 수 

없이 허공(虛空)으로 몸을 띄웠다.

그러나…… 

"어림없지!"

매일도의 신형도 곧장 떠올라 오며, 허공 가득히  손 그림자를 그려 내는 것이 아

닌가? 마치 꽃이 피듯이 만개하는 주먹의 그림자는 매일도가 권법의  속도를 배가

(倍加)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화형권(花形拳)까지!"

 이형권법의 전개 속도가 어느  단계를 넘어서서, 꽃 그림자를  피워 내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난무하는 주먹 꽃(?) 속에서 자신의 보법(步法)이 어지러워짐을 느낀 진소백은  마

침내 가슴에 일장을 맞고 말았다.

펑! 

"우욱!"

가죽북 터지는 소리가 나며 진소백의 신형이 일 장 떨어진 곳으로 곧장 날려갔다.

"진 공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에서 튀어나온 큰 소리는 섭수진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진소백에게 달려가는 섭수진.

"어떻게 된 거예요? 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섭수진은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하였다.

진소백은 급히 섭수진의 손을 잡아, 말을 잘랐던 것이다.

"과연 화산옥기린은 못 당하겠소. 어서 피합시다."

섭수진이 뭔가를 말하려 하였으나, 진소백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남기는 한마디.

"다음에 볼 때 다시 한 번 겨뤄 봅시다."

진소백과 섭수진은 떠나갔다.

남은 것은 매일도와 금청청! 

매일도를 보는 금청청의 눈에는 정감(情感)이 가득하였다.

"흥, 지가 그래 봤자지! 사형, 고마워요!"

금청청이 쾌활하게 매일도에게 말했다.

"응? 으응!"

하지만 매일도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하였다.

기실은 좀 전에 진소백의 가슴을 쳤을 때,  마치 고무공을 치는 듯하여 별다른 느

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일 장이나 밀려가다니……?' 

생각에 잠겨 있던 매일도는 문득 금청청을 보았다.

금사진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크다며 항상 술만 마시고 우울해  있던 자신의 사

매 금청청! 그러나 지금은  매일도가 진소백을 물리친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눈에 이채(異彩)가 떠올랐다.

진소백, 그는 왜 그렇게 무례하게 군 것일까? 

'그가 설마……?' 

 * * * 

"자, 이제 말해 주세요."

금청청의 처소에서 멀어지자 섭수진이 물었다.

"뭘 말이오?"

"몰라서 물어요? 좀 전의 일 말이에요."

진소백이 빙긋이 웃었다.

"매일도의 성취는 상상 밖이라 감당하기 힘들더군! 아야!"

섭수진이 진소백을 꼬집어 난 소리이다.

섭수진은 무의식중에 진소백을 꼬집고 난 뒤,  자신도 당황하여 얼굴이 또다시 붉

어졌다.

"아아, 여자가 남자를 꼬집는 것은 그 남자에게 마음이 있단 뜻이라던데……?"

"뭐예요?"

섭수진이 아미를 날카롭게 세웠다.

계속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했으므로 진소백은 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금청청은 금사진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느껴, 풀이 많이 죽어 있었소!"

"그래서요?"

"내가 두 가지 치유약을 주었지!"

섭수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하! 하나는 당신을 미워하게 하여 생의 의욕이 나게 만들어 준 것이군요?"

"옳소. 그런 성격의 여인은 분노(憤怒)를 통해서 생의 의욕을  얻기도 하는 법이니

까?"

"그럼, 두 번째 약(藥)은요?"

"매일도는 우리가 처음 그곳에 갔을 때부터  나무 그늘 아래에 숨어 있었소. 사매

의 모습을 보고 있었겠지만 명가(名家)의 

훈도(薰陶)를 받으며 자란 그로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겠지!"

"그럼 당신이 일부러 그를 끌어 낸 것인가요?"

"미움이나 분노도 살아 가는 의욕을 북돋우기는 하지만, 역시 사랑이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니겠소?"

 진소백은 웃었다.

"그들 사형제는 원래 사이가 좋았으니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 

거요."

섭수진도 따라 웃다가 갑자기 얼굴을 굳히더니 물었다.

"그런데 아까 일권을 맞은 가슴은 괜찮은 거예요?"

진소백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러고 보니…… 이거 아무래도……"

섭수진이 놀라 물었다.

"아무래도요?"

"그냥 나을 것 같지가 않소. 아무래도 당신이……"

진소백은 섭수진이 지나치게 걱정을 하는 것 같자, 얼굴을 펴며 빙긋이 웃었다.

"당신이 술을 한잔 사야만 나을 것 같소."

"뭐예요!"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꼬집혔는지 진소백은 숨이 넘어갈 듯 비명을 질러대었다.

"아고고! 이거 한 잔으로는 안 되겠소. 서너 잔은 사주어야…… 아고고……"

사랑은 여기에도 있었다.

 인간은 때로는 미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며 살아 가지만,  그래도 역시 가

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 아닐까? 

삶의 의욕을 북돋우고, 지나간 날의 상처를 잊게 하는 가장 좋은 약(藥)! 무엇보다 

사랑이었다.

 * * * 

심화절의 연락은 밤늦은 시간에 왔다.

진소백은 급히 달려갔고,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는 섭수진의  모습을 보았다. 그를 

보자 인상이 구겨지는 고숭무의 얼굴도! 

그러나 진소백을 놀라게 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니었다.

심화절이 폭탄과도 같이 내뱉은 말이 그를 놀라게 하였다.

아니, 폭탄이 터지더라도 이렇게 놀랍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상의 이유로 방주의 장례식 때, 방주의  원혼(怨魂)을 달랠 제물로 살수(殺

手)의 심장(心腸)을 바칠 것을 건의하오!"

이 무슨 소리인가? 

살수라면 엽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엽혼을 살릴 것을 주장하던 심화절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다

니, 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진소백은 마음이 급해졌다.

살수를…… 엽혼을 죽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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