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6 장 절체절명(絶體絶命) (7/32)

 제 6 장 절체절명(絶體絶命) 

진소백은 엽혼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옆의 화로에서는 불길이 솟아오르며 방안의 공기를 훈훈하게 데워 주고 있었다.

의자는 편안했다.

그러나 엽혼은 이 의자에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  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원래 그

의 무공이나 능력이라면 평생을 편히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엽혼은 그러

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동생의 병을  위해 자신의 

전생(全生)을 희생하는 삶은 그가 바랐던 것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편안한 삶, 건강한 동생을 원했을 테지만, 운명은 그에게 다만 힘들고 괴로운 삶을 

주었을 뿐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엽혼은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까? 

자신의 운명이 건네 준 쓴 잔을 묵묵히 들이키며 몇 번이나 절망했을까? 진소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서서히 엽혼이 남긴 서찰을 펼쳤.

두 번째 읽는 것이었다.

<……해서 나는 이 청부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네. 다만 걱정되는 것은 평아(枰

兒)의 장래이네만, 이는 자네를 

믿고 맡기기로 하겠네……中略…… 

그래서 나는 청부자에 관해 더  알아 보고자 하였네. 비록  시간이 촉박하여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자네에게 나머지 일을 맡길 수 있어서  다행이네. 내가 구한 

모든 자료는 집에 남겨 놓았네. 만일 그들이 평아를 노리지 않는다면 자네가 자료

들을 모두 

불태워 주게. 그리고 만에 하나 그들이 약속을 어기고 평아를 노린다면 그것은 이 

청부에 다른 뜻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中略…… 남겨 둔 자료가  있는 곳은 

다음과 같네. 그리고 찾는 방법은……> 그렇게 엽혼의 편지는 말하고 있었다. 

 또한 정월 십오일이 되어, 모든 것이 결정된 이후에야 자료를 꺼내 볼 것도 아울

러 부탁하고 있었다.

엽혼은 청부자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다. 

 만일 그들이 엽평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진소백도 엽혼의 뜻에 따라 자료를 모두 

태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엽평을 공격했다. 혹여 엽혼이 사로잡히게 될 경우, 비밀 유지를 위

한 안전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오히려 스스로 자신들의 목줄을 쥐는 격이 될  줄 어찌 짐작

이나 했겠는가? 

이곳은 부엌이었다.

며칠간을 불기[火氣]가 없이 지낸 탓으로 공기는 싸늘했다.

불기도 없는 부엌에서 진소백은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계속해서 불타  올랐을 아

궁이는, 지금은 다만 싸늘히 식은 채 재로 덮여 있었다. 진소백은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재를 쓸어 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쌓인 재를 모두 쓸어 내자 

바닥에 하나의 문이 드러났다. 돌로 된 문! 

이 집을 세운 엽혼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돌인  탓에 불에 타지도 

않을 것이고,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진소백은 말없이 그 석문을 들어올렸다.

끼이익`─` 

비명을 지르며 석문이 열렸다. 

 두꺼운 문! 

두 자는 족히 넘어 보이는 돌문이었다. 

 이 정도라면 아궁이에 불이 타오르더라도 그 열이 전해져 아래를  훼손시키는 것

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석문을 열자마자 진소백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휙`─`! 

무언가 진소백의 머리 위를 스쳐 가며 뒤편의 벽에 박히는 것이 있었다.

삼각형의 형태로 벽에 박힌 것은 세 개의 암기! 

서찰에서 미리 경고받지 못했다면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공격이

었다.

엽혼은 만에 하나 자신이 남긴 자료가 남의 손에 들어가  청부자에게 피해를 입힐 

것을 염려하여 

용수철을 이용한, 일종의 기관을 장치했던 것이다.

엽혼이 이같이 해놓은 것은 가능하면 청부자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했음이지만, 청

부자의 행동은……! 

석문의 아래는 어두웠다. 

 하지만 석문의 바로 아래 부분은 밝은 곳으로  나와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곳에는 쇠사슬이 매달려 있었다.

진소백은 망설이지 않고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쩔렁! 쩔렁! 

이윽고 쇠사슬이 모두 당겨 오자 그 끝에 매인 석함(石含)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석함 속에 든 것은 여러 가지의 문서들! 

바로 화선이 엽혼에게 건네 주었던 문서들이었다. 

 그곳에는 엽혼이 남긴 서찰이 하나 더 있었다.

<……청부 내용에서 이상한 낌새를 챈 나는 일부러 정보를 구하는 기한을 촉박하

게 잡았네. 하지만……中略…… 

그런 정보를 이토록 쉽게 구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네. 이

것은 단지 한 가지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서찰을 읽어 가던 진소백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비응방(飛鷹幇)의 내부에서 도울 때만 가능한 일이지!"

<……비응방 내부에 조력자가 있다면  그는 자신이 이 일과  관계 있음을 알리지 

않기 위해 살인멸구를 꾀할 가능성이 높네. 또한 내가 생포될 경우를 

대비하여 엽평을 납치하고자 할 가능성도……中略…… 내가 이 일을 맡은 이상 살

아날 가능성은 백에 하나도 없네. 난 평아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을 희생

하더라도 아깝지 않네. 만에 하나 내가  금사진을 살해한다 하더라도 비응방 내부

의 조력자가 나를 살려 둘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일이지……後略……> 

 진소백은 끝까지 읽은 후에 서찰을 움켜쥐었다. 

 엽혼은 이 청부를 맡은 이래로 자신의 앞길에 놓인 것이 다만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과 동생의 생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자료를 남겨 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남긴 자료를 이용하여  엽평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을 막아  줄 것을 

부탁했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줄 것을 부탁하지 않았다.

비응방 내부의 누군가가 이 청부에 관계되어  있었고, 그자는 만일을 위해 엽혼뿐 

아니라 엽평마저 노릴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누굴까? 누가 한 일일까? 

비응방 내의 누가 엽혼을 시켜 금사진을 노렸단 말인가? 그리고 엽평을 노렸단 말

인가? 

현재로서 진소백이 가지고 있는 단서는 세 가지였다.

이 문서들. 지난번에 엽평을 습격했던 구천(仇賤)이란 사내, 그리고 엽혼에게 청부

를 중개한 화선(花仙)! 

엽혼은 비록 이 자료들을 단지 엽평을 보호하기 위해 써줄 것을 부탁했으나, 진소

백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런 일을 어찌 진소백이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는 청부자를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런 진소백의 결심은 청부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불리한 일이 될 것이

다.

 * * * 

엽혼이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하나, 금사진의 운공이  절정에 이르러 있지 

않았다면 눈치채였을 것이다.

아니, 평소의 금사진이라면 알아차렸을 것이다.

평소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금사진은 알지 못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흐르던 광채는, 흐르던 검날

은 마침내 금사진의 

왼쪽 가슴에 박혀 버렸 

푹! 

손끝에 전해지는 둔중(鈍重)한 느낌.

검이 서로 다른 형질인 살가죽과 근육과 혈관을, 그리고 마침내는 심장을 찢어 가

는 이 느낌! 

엽혼은 자신의 검이 금사진의 심장을 갈랐음을 느꼈다.

그리고…… 환청(幻聽)이었을까?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울리는 것도 같았다.

그는 성공한 것이다.

이 성공은 다만 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이 희열(喜悅)! 

엽혼은 가슴이 떨려 옴을 느꼈다.

 * * * 

금청청(金靑靑)은 혼자 앉아 있었다.

이곳은 산속! 

 주위에는 산짐승의 울음만이  검은 하늘로 올라가고,  하늘에는 별빛만이 어둠을 

내려다보는 산속의 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일은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고, 금사진은 몰려온 빈객(賓客)들에게  어느 정도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일이었나? 

어쨌든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금청청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하수(銀河水)가 흘러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저 은하수를 건너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녀가 만일 은하수 가에 선다면, 별들의 강을  건너 누구를 만나게 될까? 어머니

……? 

방응향에 대한 기억은 여윈 몸에 끊임없이 기침을 해대던 모습과  항상 자신을 바

라보며 짓곤 하던 애잔한 눈빛뿐이었다.

그녀는 항상 말하곤 했었다.

─`죄는 내게 있으니,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아라.

오히려 어머니의 그 말 때문에  금청청은 더욱 금사진을 원망하게  되었는지 모른

다. 너무나 약하여 바람에도 쓰러져 버릴 것 같았던 어머니! 어머니를 단 한  번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하늘에는 별이 많았다.

별은 저마다 한 사람의 목숨이라던가? 

멍하니 별을 바라보던 금청청은 문득 유성(流星) 하나가  서천(西天)을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누구의 별이 지는가? 

금청청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아직은 이른 시간! 동쪽 하늘에는 여명(黎明)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곳은 깊은 산중이었다.

금청청은 혼자 앉아 있었다.

 * * * 

지금은 새벽이었다. 

 아직은 해가 떠오르지 않은 시간,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이 일어나 일을 하고 있

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어나는 것과 다른 의미의 깨어남이 있었다.

비응방이 놀라 일어나고 있었다.

사공두는 금청청에게 입었던 상처  때문에 누워 있던  자리에서 놀라서 일어났고, 

심화절은 광문각에서 집무를 보다 놀라 일어났고, 밖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그간 방(幇)에 있었던 일들을 보고받고 있던 고숭무(暠崇武)는 의자에서 벌

떡 일어났다.

날카로운 호각 소리! 

비응방 전체가 호각 소리에 일어났고, 호각 소리가  들려 온 방향을 알자 더욱 빨

리 일어났다.

일어난 자들은 일제히 호각 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다 일어났지만, 가장 빨리 호각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간 것은 순찰당(巡察堂)

의 부당주 인소(引蔬)였다.

그리고 그런 인소를, 금사진의 연공실은 자신의 석문을 굳게 닫은 채 맞이했을 뿐

이다.

호각 소리는 위급(危急) 신호! 

바로 비응방의 방주 금사진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였던 것이다.

"무얼 하는 게냐! 어서, 어서!"

닫혀진 석실을 열도록 재촉하는 인소의 얼굴엔 초조함이 가득했다. 방주가 연공실

에서 연공하는 동안 주위를 경계하는 것이 순찰당의  의무! 그리고 당주인 사공두

가 자리를 비운 지금, 만일 방주의 신상에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급히 달려오는 고숭무와 심화절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인소의 고함 소리는 더욱 

커져 갔다. 

 그리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비응방 전체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호각 소리! 

이 호각 소리는 도대체 누가 낸 것일까? 

엽혼은 금사진의 심장에 박힌 검을 급히 다시 빼 들었다.

금사진은 천하인이 인정하는 고수이므로, 비록  심장을 찔리더라도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을는지 몰랐다.

그가 급히 검을 빼 든 것은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무인(武人)이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다음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문인(文人)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견해 보고 대비하는 것이 올바른 문인의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무인은 어떤가? 

 그들은 상상하지 말아야 했다. 다만 그때그때 최상의  응변을 할 수 있도록 대비

해야 하는 것이다.

상상에 의해 다음에 일어날 일을  마음속으로 미리 정해 버린다면  의외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대비하기가 어려워진다.

미리 예상을 하면 무의식중에 몸은 그 예상에 맞추어 반응할  준비를 갖추게 되므

로…… 그래서 만일 예상외(豫想外)의 일이 일어나더라도  몸은 이미 기억하고 있

는 무의식적인 반응(反應)을 먼저 실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반응이 느려지게 될 것임은 당연지사(當然之事)! 이것은 때로  무사에게

는 치명적인 것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엽혼은 지금  머릿속에서 다음 장면을 

그리고 있었다.

금사진의 가슴 깊숙이 박혀 든 검을 빼 들며.

검날을 빼어 들면 분수처럼 솟구칠 핏줄기! 

당연히 엽혼은 핏줄기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는 솟구치지 않았다.

인간의 심장이 피를 보내는 압력은 상상보다 훨씬 세다.

엽혼은 혈관이 터지면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게  됨을 지난 세월의 살수행(殺手行)

을 통해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금사진의 가슴에서는 피가 솟구치지 않았다. 다만 흘러나왔을 뿐이다. 피가 뿜어지

지 않고 흘러나온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당연히 심장이 이미  뛰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뛰지 않는 심장.

자신이 일검을 찌르기 전에 이미 금사진의 심장은 멎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일까? 누가 자신보다 먼저 금사진을  죽게 한 것일까? 아니면 금사진은  운기 

도중 입마(入魔)에라도 빠졌단 말인가? 그도 아니라면……? 

엽혼은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어렴풋이 느낀 불안이 사실이 되어 감을 깨달았던 것이.

이 일은 너무 쉬웠다. 

 원래 이 일은 불가능(不可能)에 가까웠던  것이었는데…… 호암군의 비밀 통로가 

발견되고 또 금사진의 연공법이 알려지고, 그리고 금청청이 방응향의 기일에 

맞추어 돌아오는 것이 알려져 가능한 일이 되었던 것이다.

금사진과 금청청이 만나면 말다툼이  있게 될 것이고,  금사진은 노화를 달래고자 

이곳에 올 것이 거의 확실하므로. 

 하지만 그런 일들이 어쩌면 이렇게 이가 물린 듯 맞아떨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엽혼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동시에 밖이 매우 소란스러워짐과 조금  전 귓가를 두드린 휘파람  소리가 환청이 

아니었음도 깨달았다.

누군가 경고로 호각 소리를 내었고, 그 호각 소리를 들은 비응방도들이 석실에 들

어오려고 밖에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누구일까? 

 누가 호각 소리를 낸 것일까? 

엽혼이 금사진의 가슴에 일격을 가함과 동시에 호각 소리는 들려 왔다. 누군가 숨

어 엽혼의 일을 지켜본 뒤  호각 소리를 낸 것일까?  어쨌든 이 청부는, 금사진에 

대한 이 살인 청부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엽혼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이제 자신이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 밖에는 비응방

의 전세력이 모여 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이러한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한 명뿐이라는 것도 역시 깨달았

다.

진소백! 

일람무의(一覽無疑) 진소백(鎭小栢)! 

 '이제 내가 믿을 사람을 너밖에 없구나.' 

엽평의 일도, 그리고 이젠 자신의 일까지도 모두 한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엽혼은 마음에 걸렸다.

진소백에게 그는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다만 받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 * * 

석실은 마침내 열렸다. 

 밝은 횃불이 안을 비추자 석실 안의 경물들은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

작했다. 그리고…… 좌대 위에 정좌한 금사진의 모습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슴에서 미미하게 흘러나오는 피! 그 피가 금사진이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님

을 알려 주고 있었다.

가장 먼저 경호성(驚呼聲)을 터뜨리며 달려간 것은 인소였다.

"방주!"

그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경호성이 좌중(座中)의 인물들  중 가장 무공이 고강(高强)하다고  할 

수 있는 고숭무의 입에서 터져 나왔.

"감히!"

동시에, 뛰어오르는 철권(鐵拳) 고숭무! 

그의 오른 주먹이 검은빛으로 물들며 허공을 쏘아 갔다.

그리고 좌중의 사람들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허공을 허깨비인 양 흘러가는 흐릿한 그림자. 

 그리고 고숭무(暠崇武)의 철권이 그 그림자를 따라가며 내질러지는 광경을.

퍼펑! 

고숭무의 파황권(破荒拳)이 그림자에 부딪치며  나는 음향! 하나 평소의  파황권의 

힘에 비해서는 이 음향은 너무 경미했다.  그림자가 비록 타격을 받기는 하였으나 

고숭무의 파황권을 받아 넘기며 허공에서 물러난 것이다.

놀람을 나타내던 고숭무의 눈빛이 이어 분노의  빛으로 바뀌며, 그가 일권을 다시 

뻗어 내었다. 

 일권붕악(一拳崩岳)의 엄청난 기세가 일어나며 그림자를 덮쳐 갔다. 좀 전과는 비

교도 안 될 만큼 강한 기세! 일견하기에도 그림자가 피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슈

슉`─` 

허공을 격하는 고숭무의 일권붕악! 

그림자의 정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엽혼이었다. 

 그는 석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 천장에 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금사진의 시체로 쏠리는 틈을 타서 최대한의 신법

을 전개해 밖으로 뛰쳐 나왔다.

하지만 고숭무의 눈만은 피하지 못했고 지금 이런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엽혼의 

두 눈이 갈등으로 떨렸다.

이런 강맹(强猛)한 기세의 권력(拳力)을 힘으로  맞서 정면에서 맞이해 가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옆으로 비스듬히 쓸어 가며 힘을 비켜 가는 것이 상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엽혼의 자세로는…… 

만일 엽혼이 고숭무의 권세(拳勢)를 피해서 이동한다면  허공에 띄우고 있는 몸을 

땅으로 내려야만 했다. 

 그러한 변화를 고숭무가  예상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이하게도 지금의 

엽혼에게는 아래 방향이 유일한 퇴로인 것인데…… 

엽혼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땅에 내려선다면 자신은 비응방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악문 엽혼은 쌍장에 힘을 모아 앞으로 내질렀다. 고숭무의 붕악의 일초를 정

면으로 맞이하는 자세였던 것이다.

엽혼의 자세를 본 고숭무가 냉소했다.

"흥!"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은 곧바로 마주쳐 갔다. 

 꽝`─` 

아까와는 다른 음향이 들림은 곧  둘의 경력이 정면으로 부딪쳤다는  것을 의미했

다.

드러난 둘의 우열(優劣)은 명백했다.

고숭무가 어깨를 들썩이며 단 한 걸음 물러난 것에 비해 엽혼은 입에서 나오는 피 

분수를 허공에 뿌리며 훌훌 

날려가고 있었 

누가 보아도 명백한 고숭무의 우세! 

그러나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심화절이 다급하게 외쳤다.

"저, 저…… 쫓아라, 어서!"

허공으로 훌훌 날려가던 엽혼의 그림자.

그 그림자가 갑자기 몸을 뒤집어 중심을 잡으며 땅을 박차 오르는 것을 보았던 것

이다. 

 * * * 

엽혼은 약자(弱者)가 아니었다. 

 비록 고숭무의 철권(鐵拳)이 천하가 인정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엽혼 또한 약하지 

않았다.

단순한 살수 무예만을 익힌 일반 살수와 엽혼이 다른 점은 그 무예의 바탕에 정종

(正宗)의 단단한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단 한 번의 맞부딪침으로 엽혼이 나가떨어진다는 것은 기실 불가능한 일이

라 할 수 있었다.

엽혼이 내뿜은 피는 내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혀를  깨물어 내뿜은 것

이었다.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자들은 비응방의 고수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

신이 이들 모두를 당해 낼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고숭무 혼자라면  자

신의 몸 하나 빼내는 것쯤 어렵지 않겠지만, 문제는 고숭무의 공격 뒤에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발휘된 엽혼의 임기응변(臨機應變)! 

고숭무와 일장을 부딪치며 일부러 입 안에서  피를 내뿜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내상을 입었다고 착각하게 한 뒤, 그들이 안심하고 잠깐 마음을 놓았을 때, 

달아나는 것이 엽혼의 계획이었 

비록 약간의 상처(傷處)를 입기는 했지만 엽혼의 이 한 수는  성공하여, 엽혼의 계

략(計略)을 깨달은 심화절이 수하들에게  쫓을 것을 외쳤을 때  이미 그의 신형은 

삼십 장 밖을 달리고 있었다. 

 엽혼의 경공(輕功)은 빨랐다. 

 임시응변으로 벌어들인 삼십 장은, 엽혼과 같은 경공의 소유자에게는 아주 큰 것

이었다.

엽혼은 세 번째 도약(跳躍)으로 비응방 내원의 담장을 넘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세어 보는 숫자! 

'셋!' 

그러자 엽혼의 이 마음속의 숫자 셈에 답이라도  하듯, 엽혼의 삼 면을 노리고 푸

른 검날 세 개가 쏘아져 왔다.

'화선(花仙)이 제공한 정보는 정확했다.' 

생각과 함께 이미 대기하고 있던 엽혼의 일초가 펼쳐졌다.

왼손으로 조(爪)의 형을 지어 좌측 매복자(埋伏者)의 견정혈을 누르고 오른손은 일

지선(一指線)의 

형태로 세워 우측 매복자의 승장혈을 찔러 갔다.

"케엑!"

두 매복 무사(武士)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엽혼의 몸이 재도약하면서 마지막 하

나 남은 매복자의 머리를 넘었다.

놀란 마지막 매복자가 머리를 돌리기도 전,  엽혼의 발뒤꿈치가 그의 머리 뒤통수 

후정혈을 걷어차니…… 

세 명의 매복 무사가 엽혼의 일초 삼변(三變)에 박살이 났다.

지금 여기 매복하고 있는 무사들은 비응방의 일반 무사들로서 엽혼의 일초도 감당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또다시 이어지는 엽혼의 다른 생각, 다른 숫자! 

'둘!' 

이번에도 어김없이 좌우에서 두 명의 인영(人影)이 덮쳐 왔다.

엽혼이 마음속으로 세고 있는 숫자! 

그것은 화선이 구해 준 정보 속에 들어 있던 비응방 내부의 매복자들에 관한 숫자

였다.

다행히도 그 정보는 매우 정확했고, 엽혼은 매복하고 있던 적이 덮쳐 오기에 앞서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좌측과 우측의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덮쳐 오는 두 인영! 이럴 경우, 그대가 오른

손잡이라면 당연히 왼쪽의 인영부터 노려야 한다.  그리고 엽혼 역시 왼쪽의 인영

부터 찔러 가고 있었다.

손에 든 것은 검! 엽혼은 어느새 구절검(九節劍)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치잉`─ 

 푹! 

엽혼의 구절검이 좌측(左側) 매복자의 검을 옆으로 쳐내고는  천돌혈(天突穴)에 박

혔다. 즉사(卽死)! 

비록 좀 전의 세 명보다는 고수라 하나,  역시 일반 무사로서는 엽혼의 일검을 견

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적의 목젖을 반 치 정도 찌르고 들어간 엽혼의 구절검이 이번엔  엽혼의 몸이 회

전함에 따라 옆으로 휘둘러졌다.

찌익`─` 

그 바람에 목젖을 찢긴 좌측  매복인의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뿜어 나왔다. 왜 

엽혼이 좌측부터 공격한 것인지는 지금 엽혼의 행동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

다.

좌측 매복인의 목젖을 찢자마자 몸을 우측으로 돌리며 손 또한 밖으로 돌리자, 몸

의 회전에 손을 

따라 움직이는 검날의 회전이 더해져 우측 매복을 향해 쏘아 가는 검의 속도는 가

히 전광(電光)이라 할 만했다. 인간의 팔은 안으로 굽힐 때보다 밖으로 펼 때가 더

욱 빠른 법이다. 만일 큰  힘이 필요하다면 굽히는 근육이 중요하고,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면 펴는 근육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엽혼에게 필요한 것은 힘[力]이 아니라 빠름[快]이었다.

엽혼이 우측의 매복을 먼저 노리지 않고 좌측을 먼저 공격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에서였다.

칭! 

"크`─`윽!"

구절검의 가공할 속도를 견디지 못한 매복자의 검날이 부러지며 가슴이 그대로 베

어져 나갔다.

그리고 엽혼은 다시 도약을 했다. 

 비응방을 벗어나기까지는 아직 먼 길! 

 과연 엽혼은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고수들 거의가 엽혼을 쫓아갔다. 고숭무도, 인소도, 그리고 그 외 여타 고수들도.

그러나 모든 고수들이 엽혼을 쫓아간 것은 아니었다.

단 한 명, 심화절만은 몇몇 수하(手下)를 대동하고 여기 연공실(練功室)에 남아 있

었다.

악적(惡敵)을 쫓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뒤를 정리하는 일도  중요하다. 침입해 

들어온 살수가 더 있을지도 모르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현장을 보존하는 일은 매

우 중요한 것이다.

만일 살수(殺手) 개인의 원한에 의한 암살이라면 모르되, 다른 제삼의 인물에 의한 

청부(請負) 살인이라면 그 사람까지 밝혀 내야 하는 것이다.

심화절은 재지(才知)가 출중한 인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천기수사(天機秀

士)란 명호를 감당하겠는가? 

석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금사진의 가슴! 가슴에  뚫린 검

상(劍傷)! 

 그리고 그곳에서 흘러나와 바닥에 흥건한 피! 

방주의 시신을 수습하려는 수하들을 제지하며 심화절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자의 무공이 이렇게 높단 말인가? 

 아무리 운공(運功) 중이었다고 하나 방주가 전혀 반항을 못 하고 당하다니.

게다가 이 피들은? 

 살아 있는 사람의 가슴을 검이 찔렀건만 어떻게 피가 아래로만 흘러내려 있단 말

인가? 왜 피가 앞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것일까? 

혹시 이 살수의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심화절의 눈빛이 다급해졌다.

만일 누군가가 있어 이 살인을 암중(暗中)  지원했다면…… 그렇다면…… "여봐라, 

어서 고 당주 등을 쫓아가거라. 그리고…… 아니, 아니다……"

암중에 살수를 지원한 자가 있다면 그는 살수의 입을 막아 자신을 숨기려 할 것이

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심화절은 수하 몇에게 살수를 반드시 생포하라고 고 당

주 등에게 전할 것을 명령하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 내가 직접 갈 테니 너희들은 내가 올 때까지 현장을 반드시 이 상태 그대

로 보존하고 있어야 한다."

고개를 조아리며 답하는 광문당의 수하들을 뒤로하고 심화절의 몸이  질풍처럼 밖

으로 쏘아 갔다.

가공 경지(境地)의 신법! 

이러한 고수가 얼마 전 금사진의  일격을 당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

가? 천기수사 심화절(深化絶)! 

 여기 또 한 명의 고수가 있었다.

 * * * 

엽혼을 다시 앞에서 덮쳐 오는 그림자들은 원래부터 있던 매복자가 아니었다.

엽혼이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도 전에 달려들고 있었으므로.

게다가 그 기세 역시 기존의 매복자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먹이를 발견한 표범이 달려들듯, 그 속도와 힘은 그야말로 가공지세! 각각 검과 도

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두 인물.

가슴에 새겨진 글귀가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좌위(左衛), 그리고 우위(右衛)! 

금사진을 분신처럼 따르며 호위해야 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의 경우, 즉 금사진이 무공 수련에 들었을 때만은 물러나 쉴 수 

있었다.

그리하여 전원(前園)에서 쉬고 있다가, 호각 소리에 달려나온 그들이  엽혼과 마주

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미 호각 소리와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방도들의 외침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

는지 알아 낸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인 금사진의 호위를 완벽히  하지 못했다는 자

책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자책은 곧 분노로 변해 그들의 검을 더욱 위력적이게 하고 있었다. "고

수(高手)!"

엽혼의 입에서 놀란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그들이 금사진을 호위하는 수신삼위 중 둘임을 알아보았다.

전면에서 달려들던 그들이 어느새 좌우로 나뉘어  내리쳐 오고 있었다. 앞측의 좌

우에서 내리쳐 오는 검과 도! 

하지만 엽혼은 뒤로 피할 수 없었다. 뒤에는 비응방의 전력(全力)이 오고  있지 않

은가? 설명은 매우 길었다.

그러나 이곳은 비응방의 전원, 금사진이 죽은 석실에서 단지 삼백 장(:지금의 약 1

㎞) 떨어진 곳일 뿐이다. 

 고수들이 내공을 다해 달린다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좁혀질 거리! 엽혼이 

석실에서 나와 고숭무와 일장을 교환하고 이곳에 이른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

다. 또한 이 순간이 심화절이 금사진의  시신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달려오고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전면에서 좌우로 나누어 달려드는 두 고수! 

약점을 찾는다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이 한편이 되어 어떤 일을 해본 일이 있는가? 하나의 일을  서로 상대방이 

해주겠지, 하고 미루다가 큰 손해를 본 일이 있는가? 

 만일 그런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엽혼의 선택을 이해하리라.

동등한 능력을 지닌 두 고수의 합공(合攻)! 

 그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면서 동시에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했다. 상대방에게 미루느라 공격 시간을 못 맞출 수도 있고, 또한 공격을 하더라도 

자기 편이 다칠까 봐 심한 공격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휘리릭`─` 

엽혼의 구절검이 맴돌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였다.

좌위와 우위의 정중앙을 향해 달려들며 구절검을  휘둘러 좌우 양위(兩衛)의 사이

를 벌린 엽혼은 마침내 둘의 방어를 돌파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엽혼은 급히 몸을 세웠다가 역방위(逆方位)를 밟으며 

뒤로 번개같이 물러났다.

이들은 수신삼위(守身三衛)! 

 모두 세 명이란 것을 엽혼은 갑자기 생각해 냈던  것이다. 이 둘 외의 나머지 한 

명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인가?  여기에 생각이 미친 엽혼은 급히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엽혼의 생각을 뒷받침이나 하듯 앞에서  번개같이 날아오는 

하나의 창! 창끝을 잡고 있는 자의 복장은 앞서 나타난 둘과 똑같다. 다만  가슴에 

씌어진 글귀만이 달랐다.

이자가 바로 수신삼위의 우두머리이며  가장 강한 고수라는 중위(仲衛)였다.  쏘아 

오는 창! 

비록 늦게나마 깨닫고 몸을 돌린 까닭에 죽음은 면했으나, 온전할 수는 없었다. 피

하거나 막기엔 이미 늦었음을 깨달은 엽혼은 오히려 왼쪽 어깨를  갖다 대며 오른

손의 구절검을 휘둘러 자신의 우측에 있던 좌위를 공격해 갔다.

푹`─` 

엽혼의 어깨에 중위의 창이 깊이 박히는 소리였다. 이와 동시에 엽혼이 휘두른 오

른손의 구절검도 좌위를 핍박해 가고 있었 

좌위는 대경(大驚)하며 도를 급히 끌어올려 엽혼의 검을 막아 나갔다.

창! 

 검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

엽혼이 항상 노리고 찔러 가는 목젖 바로 앞에서 구절검과 좌위의 도가 부딪쳤다. 

'막았다!' 

좌위의 순간적인 생각이었다. 

 엽혼이 지닌 구절검은 아홉  개의 독립된 마디가 이어져  검을 이루는 것이었고, 

그 아홉 개 각각을 내부의 용수철이 당겨 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엽혼은 손잡이의 단추를 눌러 용수철의 당기는 힘을 풀어 버렸다.

휙! 

진로(進路)가 막힌 엽혼의 구절검이 마치  뱀처럼 머리를 꺾으며 좌위의  도(刀)를 

휘감더니 그대로 좌위의 목젖에 꽂히는 것이 아닌가! 

"끅`─`!"

구절검의 또 다른 묘용! 

원래 이런 변화는 포승(捕繩)을 자주  쓰는 신포(神捕)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절기

(絶技)로서, 검으로 구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소림 출신의 한 승려는 이 절기를 극한(極限)까지  연마하여 단지 한 가닥의 끈만

으로 당할 자가 없었다 한다.

어쨌든, 엽혼은 왼쪽 어깨를  희생시킴으로써 절명(絶命)의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 

냈을 뿐 아니라 좌위까지 해치울 수가 있었다.

구절검(九節劍)의 절묘한 변화에 우위와 중위가 잠시 멈칫하는 순간,  엽혼은 몸을 

돌려 자신의 왼쪽 어깨에 박힌 중위의 연자창에서 벗어났다.

찌`─`익! 

 마치 팽팽한 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엽혼의 어깨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크게 한 점 찢겨져 나간 살덩이! 

그리고 고통을 참느라 악물어진 엽혼의 이! 

창이나 활 등, 찌르고 들어가는  무기들은 모두 날끝에 역린(逆鱗)을  가지고 있어 

안으로 밀어 넣기는 

쉬우나 밖으로 빼내기는 무척 어렵다. 

 만일 억지로 빼낸다면 역린(逆鱗)에 의해 찔릴 때보다 더욱 큰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전쟁에서 적의 활을 맞은 장수들이 화살을 빼지 않은 채, 끝까지 싸우는 것은 바

로 이 때문! 하지만 지금 엽혼이 맞은 것은 활이  아닌 창이니 그대로 둘 수도 없

는 노릇 아니겠는가? 해서 무리하여 어깨에서 

창을 빼냈던 것이다. 

 어깨에서 전해지는 고통으로 아득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을 틈도 주지 않고 중위가 

다시 공격해 들어왔다.

연자창의 날이 없는 부분이 선풍곤(旋風棍)의 수법으로 휘둘러져 왔던  것이다. 엽

혼의 허리를 노리며 달려드는 봉의 기세는 그야말로 용이 달려드는 듯했다.

혹자(或者)가 창을 가리켜 꼬리를 감춘 독룡(毒龍)에  비견하였는데, 이는 창의 날

을 꼬리에 붙은 독침에 비유하고 

창의 봉(棒) 부분을 용의 몸통에 비유한 것이었다.

휘두르는 이에 따라서 창으로도, 봉으로도  쓰일 수 있는 것이 창인  것이고, 또한 

창에는 그만큼 

변화가 많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격언(格言)인데…… 지금 엽혼의 허리로 휘둘러져 

오는 창(槍)의 기세와 변화를 그야말로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이 아닌가! 

엽혼의 몸이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옆으로 휘두르는 공격에는 이와 같이 뒤로 물러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 

아니겠는가? 하나 거의 동시에 우위의 검이 물러난 엽혼의 머리를 노리고 짓쳐 들

고 있었다. 그리고 헛손질을 한 중위의 

창도 다시 꼬리(:칼끝)를 앞세우고 엽혼의 가슴으로 날아왔다. 같은 싸움에서 우위

가 단지 일초의 공격을 가하는 동안 중위가 이초식을 공격하고  있음은 중위의 무

공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러한 중위의 일격을 왼쪽 어깨만을 희생한 채 피해 내며 좌위를 죽일 수 

있는 엽혼의 무공 또한…… 

엽혼의 몸이 뒤로 휘어지며 등이 거의 땅에  닿는 형국이 되었다. 우위의 검이 허

공을 가르고 중위의 창이 빈  공간을 찌른 것은 거의  선후(先後)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엽혼의 왼발이 차 올려지며 중위의 창을 쥔 손목을 노리는 것도 단지 일수

유에 일어난 일이었다.

"헉!"

중위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부득불(不得不) 몸을 옆으로 피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 

오른발 하나로 몸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던 엽혼이 오른발을 튕겼다. 차 올리던 왼

발의 힘과 막 튕긴 오른발의 힘, 그리고  찔러 가는 오른손의 속도가 합쳐져 속도

를 얻은 구절검이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우위의  목줄기! 막 다시 공격을 펼치려

던 우위는 몸을 급히 옆으로  움직여 피했다. 아까 좌위가  당하던 때의 구절검의 

변화를 

본 까닭이었다. 잘못 막았다가는  좌위와 같은 꼴이  될까 염려한 것이었으나…… 

뻗어 가던 채찍을 잡아채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  지금 엽혼이 손목

을 잡아채자 구절검이 일으킨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뱀이 허공에

서 허리를 틀어 먹이를 노리듯 구절검의 끝이 허공을 감으며 회전하는 것이다.

"피해!"

"욱!"

외침과 비명은 동시에 나왔다. 하나는 중위의 입에서 나머지는 우위의 입에서. "이

놈!"

우위마저 엽혼에게 당하자 분노가 극에 달한 중위가 필생의 힘으로  창을 질러 왔

다. 하지만 일 대 삼의 대결을 끌어 온 엽혼이었다.

비록 중위의 무공이 높다 하나 엽혼에 비해서는  손색이 있었 질러 오는 창을, 용

수철이 다시 당겨져 팽팽해진 구절검이 마주쳐 나갔다. 차`─ 창`─`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나며  잇달아 삼 초 칠 식이  서로 부딪치며 

중위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우열은 명백했다. 아까의 허를 찌르는 기습  공격이 아니라면 엽혼이 어깨를 다칠 

리도 없는 차이. 

 이윽고 막 사 초째를 쳐내는 엽혼의 검이 중위의 목을 노리는 순간, "물러나!"

굉렬한 외침과 함께 뒤에서 강한 권풍이 날아들었다.

엽혼이 수신삼위(守身三衛)와 싸운 것을 설명하기는 비록 길었으나, 그것은  숨 몇 

번 들이쉴 사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비응방의 주력들은 그를 쫓아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엽혼은 중위를 노리던 검을 되돌려, 쏘아 오는 고숭무의 권세(拳勢)를 막아 갔다.

펑`─ 

기습적인 권세를 막아 낸 엽혼이 뒤로  밀려나며 자세를 가다듬는, 그 짧은  순간! 

엽혼의 주위로 인영들이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하나같이 눈빛이 형형한 인물들! 

 이들이야말로 비응방의 핵심  인물이었고, 엽혼은 자신이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순간적인 임기응변으로 만들었던 바늘 같은 기회! 

그러나 엽혼은 수신삼위라는 의외의 인물 때문에  그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리고 

이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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