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 5 장 검광유유(劍光流流) (6/32)

제 5 장 검광유유(劍光流流) 

어두운 석실 안, 엽혼(葉魂)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금사진이 들어오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정월 십사일의 날이 밝았다.

정월. 새해의 첫 달.

원단(元旦)에 시작된 축제의 분위기는 조금씩  사그라지는 듯하다가, 상원(上元)이 

되면 다시 절정에 다다른다.

하나, 모든 사람들이 명절의 마지막을 축하하며  행복해하고 있을 때에도 결코 행

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아패(阿覇) 역시 그런 사람들에 속했다.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차라리 불행하다고 하는 편이 나으리라.

그것도 매우 불행하다고…… 

당신은 윗사람에게서 두 가지의 명령을 동시에 받아 본 일이 있는가? 그것도 완전

히 다른 명령을 말이다.

퍽! 

 "우욱!"

 두 소리는 모두 아패(阿覇)에게서 난 소리였다. 

 하나는 그의 얼굴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의 입에서.

"이놈, 방주님의 행차에 대비하여 정문을 티 하나 없이 청소하라고 말하지 않았더

냐?"

핏대를 세우며 아패의 얼굴을 쥐어박고 있는 자는 바로 이곳  비응방 하인들의 우

두머리인 장육삼이었다. 

 오늘은 정월 십사일, 내일의 상원절을 즐기기  위해 인근의 명숙들이 비응방으로 

모이는 날이었다. 

 정문은 그 집의 얼굴이니,  손님을 맞이하는 자는 먼저  정문을 정결히 청소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하여 장육삼이 정문을 티 하나 없이 치우라고 아패에게 명령한 것이 바로 오늘 아

침의 일이었는데…… 

"이것 봐라, 이놈아! 예가 어디라고 이런  부적(符籍) 나부랭이가 날아다니도록 두

는 것이냐!"

말을 하다 다시 화가 치민 장육삼은  또 아패에게 화풀이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

고고, 장 노대(老大)님. 소인 잘못이 아닙니다요. 글쎄, 밖을 좀 보십시오."

결코 크지도, 늙지도 않았지만 지닌 바 지위 때문에 노대라 불린 장육삼은 그제서

야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왜 아패가 제대로 청소를 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여인. 울고 있는 한 여인! 

산발한 머리, 바람에 날려 귀기(鬼氣)롭다. 

 죽은 자의 넋을 달래려 휘휘 날리는 부적은  바람에 감겨 하늘로 오르고, 단촐한 

제상(祭床) 위로 위패(位牌) 하나가 외로운데…… 방응향(芳凝香)! 

머리를 산발한 채 고개 숙이고 있던 여인이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문을 열고 빼꼼히 내다보던 장육삼과 아패의 목이 쏙 들어가 버렸다.

"제가 왜 청소를 제대로 못 했는지 아시겠지요?"

머리통의 혹을 만지면서, 아패가 입이 한 자나 나와  말했다. 장육삼은 머쓱했지만 

여기서 약하게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냐, 이놈아! 하지만 이런 일이 생겼으면 빨리 어른들께 보고해야지, 왜 그냥 있

었던 게냐?"

다시 한 대를 더 때리는 장육삼! 

공교롭게도 이미 맞아 혹이 났던 곳이라, 아패의 얼굴이 두 배로 찡그려졌다.

"아야야, 이미 사공(司空) 당주님께서 알고 가셨으니 방주님도 아실겝니다요."

더욱 머쓱해진 장육삼이 막 뭐라 하려던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오는 인물이 있었다. 

일신에 두른 혈포보다도, 가슴에  수놓여 막 하늘로  오를 듯한 금응(金鷹)보다도, 

저절로 풍겨 나오는 기도가 더욱더 

보는 사람을 억누르는 한 중년인! 

비응방주 금사진(金査震)! 

사천 땅 이름없던 소방파에 불과하던 비응방을 그의 장인에게서 물려받은 후 오늘

날의 대방파로 만들기까지 크고 작은 싸움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는 전설

적인 인물! 

비응혈조(飛鷹血爪) 금사진! 

당금 강호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 중 하나가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

"노대나으리. 방주님께서 친히 납시었습니다요."

"나도 안다, 이놈아."

"방주님이 화가 무척 나신 것 같은데, 작은 주인님은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모두 윗분들의 일인데.  우린 그저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

기나 하는 것이 만수무강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하지만 작은 주인님이……"

"아, 글쎄 이놈이!"

이번의 한 방이 또다시 혹 위였기 때문에,  아패는 일찍이 겪지 못했던 아픔에 떨

어야 했다.

금사진은 혼자 오지 않았다. 

 두 명의 장년인이 금사진의 뒤에 서고, 다시  세 명의 무표정한 무사는 금사진을 

호위하듯 서 있다.

수신삼위(守身三衛)! 

 항상 금사진 주위를 맴돌며 경호를 맡는 무사들이다.

두 명의 중년인 중 왼쪽의 인물은 문사건을  쓴 학자 차림의 인물이었는데, 이 사

람이 바로 비응방의 광문당(廣文堂)을 총괄하는 천기수사 심화절이었다. 

 따로이 비응방의 문상(文相)으로 불리기도 하는 비응방의 제삼인자! 오른쪽의  인

물은 중년답지 않은 날렵한 허리와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독두(禿頭)가 인상적이었

다.

바로 이 사람이 순찰당(巡察堂)을  맡고 있는 박룡도(搏龍刀)  사공두(司空斗)였다. 

굳게 다문 입술이 그의 성정을 잘 말해 주고 있는, 비응방의 제사인자! 지금  여기 

비응방의 수뇌 인물 세 사람이  서 있었던 것이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고 있는 

여인이 누구이기에…… 노한 눈으로 산발(散髮) 여인을 바라보던 금사진이 장육삼

을 돌아 보았다.

찔끔하며 고개를 움츠리는 장육삼. 

 하인들 앞에서는 노대(老大)였던 그가 금사진의 앞에 서자 그야말로 소소(少小)가 

되어 버렸다.

"오늘 귀하신 분들이 많이 오실 것이니, 정문을 치워야 할 것이 아니더냐?"

소소(少小) 장육삼이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고개를 수그린 채 처

분만 바라는 수밖에.

'이제 죽었구나' 하고 기다리는 장육삼의 구원자는 언제나처럼 심화절이었다.

"방주님. 장육삼을 나무라실 일이 아닙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

니다."

'고마우신 문상 어르신. 항상 아랫것들을 위급함에서 구해 주신단 말이야.' 심화절

이 끼여들어 겨우 위기를 넘긴 소소(少小) 장육삼은 계속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났

다.

금사진은 비록 그 성질이 불 같았으나, 세 명의 말만은 새겨들었다. 심화절과 사공

두. 그리고 이 자리에는 없는 숭무당 당주인 철권(鐵拳) 고숭무(暠崇武)! 문상과 무

상의 능력이 뛰어남을 알기 때문이었고, 사공두의 충성심을 알기 때문이었다.

특히 문상(文相) 심화절의 말은 더욱  새겨들었는데, 자신의 급한 성질을  잘 잡아 

줄 수 있는 이임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심화절의 말에 노화(怒火)를 접어 둔 금사진의 시선이 산발 여인에게로 향했다. "

이게 무슨 짓이냐? 일전에 고 당주를 통해 사람을 보냈을 때는 듣지도 않더니, 갑

작스럽게 나타나……"

금사진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방주!"

금사진의 두 눈에 노화가 다시 차 오름을 보고, 또다시 심화절이 나섰다.

"소방주, 아버님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시오."

소방주! 

금사진(金査震)을 아버지로 둔 여인, 누가  있겠는가? 산발 여인은 금청청(金靑靑)

이었다.

날수냉심 금청청! 

정월 십사일, 그녀가 비응방에 나타났다.

"물론 오늘이 돌아가신 전  마님의 기일(忌日)인 것은 알고  있지만은요, 이전에는 

전 마님의 제사는 항상 후원에서 조촐하게 지내고 말았잖습니까요?"

아패의 질문에, 이젠 다시 아패의 앞에서 노대(老大)로 돌아온 장육삼이 말을 받는

다.

"글쎄 말이다. 저렇게 작은 주인님이 방(幇)의 정문에서 손님들이  오시는 것을 막

고 있다는 걸 아시면 방주님의 진노(震怒)가 대단하실 텐데……"

금청청의 친모 방응향의 제사는 항상 후원에서  조촐히 지내 왔었다. 어쩐 일인지

는 모르나 금사진은 방응향의 제사에 불참할 뿐만 아니라, 크게 제사를 모시는 것

조차 허락하질 않았다. 

 사람들은 그것이 현재의 부인 적염(狄艶)을 의식해서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

소방주, 이러지 말고 어서 자리를 옮깁시다. 내 이미  아랫것들에게 추호의 소홀함

도 없이 준비하라고 일러 놓았소."

금사진의 노화가 커지기 전에 일을 무마코자 심화절이 나섰다.

그러나 오늘만은 금청청이 심화절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이미 일을 크게 만들

려고 처음부터 작심(作心)을 하고 나선 터였으므로.

"왜 옮겨야 하는 거죠? 이 위패는 제  어머니 것이에요. 그리고 이곳은 제 어머니

의 아버지께서 세우신 비응방의 정문이구요."

금청청의 말소리가 점점 커지며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나는 눈빛 또한 더욱 날카로

워져 갔다.

"그런데 왜 후원에 숨어 제사를 지내야 하나요? 그것이 올바른 일입니까? 심 당주

님도 그리 생각하시고 있나요?"

"그, 그건……"

거의 말이 막히지 않는 심화절이었다. 그러나 이때만은 말이 막혔다. 그는 물론 이 

속에 숨은 비화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는 자신

의 앞에 선 금사진의 불끈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소방주는 오늘 왜 이러는 것일까? 

손님들이 오는 것을 알고서, 일부러 소란(騷亂)을 부려 금사진을 망신 주고자 하는 

의도일까? 

금사진은 떨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의 노화는 이미  머리를 뚫고 올라가고 있었

다. 자신의 딸! 

 유일한 딸, 금청청의 말이 커져 갔지만 그는 금청청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귓

가에 들려 오는 여인의 목소리! 

 ─`당신은 그의 발끝에도 못 따라가요.

환청(幻聽)이었다. 

 그러나 금사진이 어찌 이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금청청의 말소리가 커질수록 

귓가에 들려 오는 환청도 커져 갔 화를  참고자, 또 자꾸만 귀를 파고드는 환청을 

억누르고자 금사진은 두 주먹을 더욱 굳게 쥐었다.

노화(怒火)를 억지로 참은 탓에 오는 어지럼증을 또한 억누르며 금사진이 겨우 말

했다.

"사공 당주, 어서 저년을 내 눈앞에서 치우시오."

이런 명령을 심화절이 받았든가 또는  고숭무가 받았다면 한 번쯤은  다시 물었을 

것이다. 금사진이 말한 저년(?)이란, 다름 아닌 비응방의 소방주! 그러나  사공두는 

다르다. 

 일종의 군인 정신에 사로잡힌 인물. 

 명령을 받으면 다만 그 명령에 충실한 인물이 바로 사공두(司空斗)였던 것이다. "

소방주, 어서 이걸 치우시고 나를 따라가십시다."

공손한 말. 마주잡고 앞으로 모은 손! 

그러나 범 같은 허리가 곧게 펴지고 두툼한 입술이 굳게 다물어져 그의 의지를 말

해 주고 있었다.

사공두의 일 처리는 항상 이러했다. 

 금사진의 명령이 있다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해내고 말았다.

일신의 무학이 다른 두 당주에게 못 미침에도 불구하고, 그가 순찰당을 맡은 이유

는 바로 사공두의 이런 면을 금사진이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금청청도 사공두를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는 무력이라도 불사(不辭)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왜 올해에 이르러서야 이런 일을  벌인 것이겠는 오 년. 오 년이나 

참아서 말이다.

"당주께서는 제가 말을 듣지 않으면, 무력(武力)이라도 사용하시겠단 건가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소."

비록 돌려서 한 말이지만 뜻은 확연하다.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 "흥! 능

력이 있다면 어디 한번 해보시죠."

노골적인 무시(無視)의 말이 아닌가? 

사공두가 비록 금사진의 밑에 있다고는 하나 금청청과는 거의 이십년의 나이 차이

가 났다.

그리고 그가 금청청에게 예(禮)를 지킴은 방주의 딸에 대한 예의 때문이지, 직접적

인 상하 관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따라서 금청청의 이런 말투야말로 정말 무례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사공두의 굵은 눈썹이 꿈틀대며 입에서 노갈이 터져 나왔다.

"말을 조심하시오."

한 번 정도 외친 뒤 자중(自重)하는 것이 일반이나, 사공두의  신형은 이미 금청청

을 덮치고 있었다.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단순한 성격! 

또한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폭급(爆急)한 성격! 

이것이 바로 사공두, 비응방의 순찰당주였다.

사공두의 오른손이 금청청의 어깨를 노리며 찔러  왔다. 하나 이미 사공두의 성격

을 익히 알고, 준비를 하고 있던 금청청이  옆으로 몸을 틀어 사공두의 일격을 피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흥! 맨손으로 해낼 수 있으신가요?"

사공두의 특기가 도법(刀法)임을 의식해서 금청청이 한 말이었.

자신의 공격이 너무나 쉽게 무위로 돌아가자, 사공두의 두 눈에는 당황의 빛이 떠

올랐다.

게다가 어느새 옆으로 돌아선 금청청의 손이 기이한 형태로 자신의 손목을 노리고 

오는데, 손이 닿기도 전에 손목이 저려 오는 것이 아닌가? 

대단한 수법이며 응변이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심화절의 입에서 먼저 감탄성이 나왔다.

"난화수(亂花手)! 소방주의 무예가 전과 비할 바가 아니군요!"

심화절의 감탄성에도 불구하고, 금사진이 얼굴에는 복잡한 빛이 어렸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노여움인지 분간하지 못할 표정.

그리고 금사진의 귓가를 다시금 두드리는 여인의 목소리.

환청(幻聽)! 

─`흥, 남의 방파(幇派)를 탐내 들어온 데릴사위 주제에…… 금청청과 마주 싸우고 

있는 사공두는 감탄할 여유가 없었다.

소방주의 무예가 실로 많이 변하였음을 그는 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오 년 전에도, 금청청은 전원(前園)의 대청에서 방응향의 제사를  지내겠다고 고집

을 부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금사진의 명을 받은 사공두는 단 이 초 만에  금청청을 제압하여 후원으로 

데려갔었다.

그때 금청청이 이를 악물고 말한 바가 있었다.

─`두고 보세요. 내가 무공을 더 익혀서 꼭…… 

그 길로 화산으로 떠난  금청청은 화산성모(華山聖母)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 년이 지난 오늘, 다시 한 번 이러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쉭! 

 먹이를 발견하고 달려드는 뱀이 내는 듯한 소리.

그러나 그 모양만은 더없이 아름다운 이것은 화산성모의 절학(絶學) 중 하나인 난

화수! 여인의 섬섬옥수가 허공을 휘감으며 꽃을 피워 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이 꽃을 눈앞에서 보는  상대는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손끝에서 뻗어 나온 경력(勁力)에 손이 저림을 느낀 사공두는 급히 왼손을 

회수하며, 오른손으로 원(圓)을 그려 

상대의 경력을 해소하려 했다. 

 "흥. 어림없지!"

하나 냉소(冷笑)한 금청청이 손목을 뒤집는가 싶자, 어지럽게 피어  올랐던 꽃송이

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하더니 

사공두의 오른팔을 휘감으며 그대로 가슴으로 내닫는 것이 아닌가? 펑! 

당황한 사공두가 급히 독문(獨門)의 호표력(虎豹力)을  끌어올려 대항하였으나, 뒤

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세 걸음! 

그에 반해 금청청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한 수에 둘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 것인데…… 

사공두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오 년 전에  일초(一招)의 적

이 못 되었던 소녀가, 오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일수(一手)에 물리치다

니! 

 비록 사공두의 장기가 도(刀)라 하나, 이 어찌 믿기는 일이겠는  사공두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땅을 박차고 일 장이나 도약해 올랐다. 창`─` 

청아한 소리와 함께 등뒤의 도가 뽑혀 나왔다. 

 그리고 떨어지는 기세를 빌어 그대로 도를 내리그으니.

용을 잡는 칼, 박룡도(搏龍刀)! 

 드디어 사공두가 자신의 절기인 도법을 시전하려는 것이다.

떨어지는 칼날 아래 미모의 여인이 오연히 서 있었다.

겨울 바람은 여인의 머리를 마구 흩날리게 했고, 다만 도끝을 올려다보고 있는 여

인의 아름다운 눈동자! 

 이 아름다운 그림은 관전자의 머릿속에서만 그려질 수 있는 것이었다. 또한 안력

(眼力)이 발달한 고수라야만 비로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다만 사공두가 떠오르기 무섭게 어느새 뒤로 물러나 있는 금청청

의 모습만이 보였을 뿐이었다.

금청청이 떨어지는 도를 보며 머리를 휘날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가 했더니, 어

느새 뒤로 물러나 

사공두의 박룡도를 두 손으로 좌우(左右)에서 감아 가고 있었다. 두 손에서 경력이 

뿜어져 나와 도의 움직임을 압박해 가고 있었다.  조금 다른 각도로 휘어 가는 금

청청의 양손.

거기에서 나온 경력에 휩쓸리면 도를 놀리기가 어려워질 것임을 직감으로 느낀 사

공두가 도를 누이며 

횡(橫)으로 그어 간 것도 거의 동시였다. 

 이제 사공두가 도를 베어 가고 금청청이 그 도에 스스로의 손을  갖다 대는 형국

이 된 것인데.

하나, 마치 이런 변화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금청청이 손을 뒤집어 용호공(龍虎功)

의 자세로 모으자 다시 전세(戰勢)는 전과 다름이 없게 되었다.

처음의 형태에서 좌우(左右)가 상하(上下)로 바뀐 차이일 뿐! "감히!"

굉렬히 외친 사공두의 몸이 반칠성(反七星)의 방위(方位)를 밟아 가며 왼발을 차고 

올라왔다. 

 휘웅! 

만일 금청청이 계속해서 사공두의 도를 제압하려 하다가는 사공두의 각법(脚法)에 

허리가 남아나지 못할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금청청은 두 손의 경력을 이용해  제압하고 있던 사공

두의 도를 회선력(回旋力)을 주어 돌렸다.

그리고 자신은 뒤로 빠지며 건곤(乾坤)의 방위를 밟아 나갔다.

이리 되면 금청청의 허리를 노리던 사공두의 왼발과 금청청에 의해 방향이 틀어진 

도가 서로 부딪칠 위기에 처하게 

됨은 명확한 일! 

남의 힘을 빌려 공격하는 이러한 수법을 강호에서는 이화접목(移花接木)이라 부르

지 않는가? "헉!"

헛바람을 들이킨 사공두가 허리의 힘을 돋우며 겨우 자살(?)의 위험을 면했다.

본래 무인이 일수, 일도를 뻗어 낼 때는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뻗어 내기 마련이

었다. 따라서 그런 일격을 다시 회수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인데…… 

사공두가 자신의 초식(招式)을 창졸간에도 회수할 수  있음은 그만큼 고수란 의미

였다.

의미였지만…… 초식을 거둔 뒤 완벽히 균형을 잡지는 못하고  비틀거리는 사공두

에게 다시 뻗어 온 금청청의 일수! 

펑! 

"사공 당주는 이제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해요!"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사공두를 보며 금청청이 내뱉은 말이다.

사공두가 비록 비응방 서열 사 위의 순찰당주직을 맡고 있으나 그 무공도 사 위에 

달하는 것은 아니다. 

 금사진에 대한 충성심을 감안하여 순찰당을 맡고 있을 뿐.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사공두를 이렇게 몰아칠 수 있는 금청청의 능력은 대단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자식의 이런 성취에 금사진은 기뻐해야 했지만…… 그러나 금사진은  기뻐하지 않

았다. 

 다만 그의 귓가에는 금청청이 던진 말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 아니, 그 옛날, 어

느 여인의 말만이! 

금청청의 말과 아까부터 금사진의 귓가를 맴돌던 환청이 겹쳐 오기 시작하는 것이

다.

─`당신은 결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해요! 잔랑(殘郞)의 적수가…… 잔랑(殘郞)! 낭

군이라 부르다니…… 

엄연히 남편이 있는 여인의 입에서 어찌 그런 말이 나온단 말인가? 금사진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네가 감히!"

주위를 쩌렁 울리는 거대한 외침! 

마치 하늘의 새인 양 날아오르는 신법 천응비(天鷹飛)! 그리고 두 손 끝에  은은히 

어리는 혈광(血光)! 

 이것이 바로 하늘도 가른다는 금사진의 파천혈조(破天血爪)였다. 금청청의  두 눈

에 경악의 빛이 서리며 급히 난화수(亂花手)의 수법으로 마주쳐 나갔다.

까강! 

손이 마주쳤음에도 금속성의 마찰음이 터져 나오며 금청청은 일곱  걸음이나 물러

났다.

"우욱!"

단 한 수! 

 단 한 번의 마주침만으로  금청청을 패퇴(敗退)시킨 금사진이  더욱 강한 기세로 

금청청을 다시 덮쳐 갔다.

흉폭한 기세! 

조금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그는 설마 앞의 여인이 자신의 딸임을 잊고 있는 것인가? 금청청이 더욱  강한 이

번의 공격을 막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는 모른단 말인가?  또한 공격을 감당하지 

못한 금청청이 큰 상처를 입을 것임도.

"방주, 손에 사정을 두십시오."

보다 못한 심화절이 날아올라 전권(戰圈)에 뛰어들고, 막 몸의 중심을 추스른 금청

청이 이를 악물며 다시금 군화난분(群花亂奮)의 식으로 금사진의 혈조를 

막아 간 것은 어느것이 먼저인지를 가릴 수 없을 정도였다.

펑`─ 펑! 

"웃!"

 "우웁!"

믿기 힘든 일! 

 또다시 금사진의 일격을 받는다면 큰일이 일어남을 직감한 심화절이 금청청을 도

와 금사진의 혈조 일격을 막아 갔음에도 불구하고…… 

보라! 

 지금 신음 소리를 흘리며 심화절과 금청청이 물러나고 있음에 반해  금사진은 조

금의 타격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다만 허공을 두 번 맴도는 것으로 두 손으로 전해져 오는 상대의 힘을 분산시켰을 

뿐! 허공을 두 번 맴돈 금사진이 다시금 금청청을  공격하려 하는 것을 본 심화절

은 급히 내공을 돋우어 외쳤다.

"방주, 그녀는 방주의 딸입니다."

금사진이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 전신을 떨더니 다시 한 번 허공을 감돌아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멍하니 서 있는 금사진! 

그의 얼굴에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금청청이 방응향의 위패를 챙겨서 사라질 때까지도 꼼짝도 않은  채 서 있

기만 했다.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그리고 금사진!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금사진의 생각은 심화절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심화절은 금사진이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만은 알고 있었다.

그는 사공두에게 미미한 눈짓을 보냈다.

비응방주 금사진! 

그가 비록 무림의 혁혁한 인물이었지만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비애(悲哀)가 있었다. 

사람의 외형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속에는 저마다의 슬픔과 분노를  안고 살아 

가는 것이니…… 

인간은 왜 남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일까? 

심화절은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그리고 사공두도 물러났다.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 * * 

"심 당주님께서는 어딜 저리 급히 가시는 겁니까요?"

아패의 물음에 장육삼이 말했다.

"이놈아, 보면 모르겠느냐? 지금 방주님이 화가 머리 끝까지 나시지 않았느냐?"

그제서야 아패는 깨달았다.

"아아, 그래서……"

"이제 알겠느냐?"

아패는 알았다.

왜 심화절이 사공두와 함께 물러간 것인지를.

하지만 그런 일을 아는 것이  아패에게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는  다만 정문을 

다시 청소하는 것이 아득할 뿐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서 있는 그의 머리로 다시 장육삼의 일격이 날아왔다.

"아, 이놈이, 빨리 치우지 않고 뭘 해!"

이번 것은 더 더욱 아팠다.

엽혼은 지금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화선의 자료에서 읽었던 한 구절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금사진의 무공 수련에 관한 구절을.

<금사진은 오 년 전부터 정기적인 무공 수련을 중단했음. 다만  극도로 화가 나거

나 심적인 부담이 있을 때에만 연공실에서 무공을 연마함. 심적인 긴장을 무공 연

마로 푸는 듯……> 

지금 비응방도들이 급히 석실 안을 치우는 소리는 엽혼의 계획이 맞아들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끼이잉! 

석실 문이 닫히는 소리.

안에서 누군가 수련할 때에만 석실 문은 닫힌다.

그리고 이곳은 방주의 전용 수련실이니.

오늘은 정월 십사일.

금사진! 

 그가 마침내 여기에 왔다.

 * * * 

금사진의 무공은 그의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신법과 조법(爪法)에 특기가 있었다. 

하나, 지금 그가 수련하고 있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금사진이 권법이나 검술

에 있어서도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쉭`─ 쿵! 

일격, 일격에 힘이 서려 있긴  하지만 내공이 실리지는 않아  주위의 물건들에 큰 

영향을 주진 않고 있었다. 

 만일 내공이 실린 일격이라면 석실의 여기저기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정신과 몸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신이 괴로울 때 몸을 피로하게 하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

는가? 지금 금사진이 느끼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전력을 다해 몸을 학대한 지 이미 두 시진.

땀이 비 오듯 했다.

무림고수가 이렇듯 땀을 흘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강호인이 쓰는 힘은 거의가 내

공(內攻)을 사용한 것이므로.

또한 땀을 흘리는 것은 그다지 좋지도 않았다. 

 자칫하면 원기(元氣)를 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금사진은 전혀 내공을 쓰지 않은 채 자신을 학대하고 있었다.

마음속의 번뇌(煩惱)를 제거하고자 함이었지만, 그럴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한 여인

의 모습. 그리고 환청! 

─`당신은 결코 그의 발끝도 못 따라가요.

그의 발끝.

잔랑(殘郞)의 발끝.

자신의 아내 된 여자가 낭군(郞君)이라  부르던 그자의 발끝! 금사진의 손이  더욱 

거칠어져 갔다. 

 마음속의 격동을 주체하지 못하여 손끝에 공력이 실리고 있는 듯, 주위에 돌가루

가 자욱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쉭! 쉬쉭! 

피어오르는 돌가루와 함께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 그날의 그 처절했던 격전(激

戰)! 

금사진은 그의 발끝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목덜미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피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가을 하늘을 수놓던 선연한 핏줄기! 

아침에 시작된 일전(一戰)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잔혹마도 잔소(殘逍)를 쓰러뜨리고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웃어대던 자신의 모습

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이제 감히 그년은 이자를 잔랑(殘郞)이라 부르지 못하리라.

하늘에는 핏빛 노을! 

 아내의 정부(情夫)의 목줄기에서 솟아오르는 핏줄기도 더없이 붉고,  자신의 파천

혈조 또한 핏빛으로 붉어지던 그날.

하늘을 가득 메웠던 자신의 광소(狂笑)! 

 그리고 피, 붉은 피! 

금사진의 손이 붉은빛을 강하게 띠어 갔다. 

 휘둘러지는 손이 닿는 석벽들이 맹수가 할퀸 나뭇등걸처럼 마구 찢겨져 나갔다.

혈조! 

파천혈조(破天血爪)! 

잔혹마도를 죽이고 돌아온 그는 미친 듯이 방응향을 찾았다. 그리고  이어진 겁탈! 

그것을 겁탈이라 해야 할까? 

자신의 아내, 그러나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못한 잔혹마도의 정부(情婦)를! 

울고 있는 방응향을 보며 금사진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그가  본 것은 자신의 아랫도리에서  흘러내리던 피였

다.

방응향(芳凝香)! 

그러나 그녀의 삶은 이름과는 달리 결코 향기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남자의 아내

로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끝내는 남편을 불구로 만든 여자. 이런 여자의 사랑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금사진의 혈조가 더욱 강해졌다. 

 두붓장인 양 찢겨져 가는 석벽! 

피어오르는 돌가루! 

모든 것이 핏빛이었다.

그날도, 그리고 이미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도.

이 피는 누가 만든 것인가? 

금사진이기도 하고 방응향이기도 하고, 또는 잔혹마도이기도 했다.  어쨌든 자신이 

이 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금사진은 느끼고 있었다.

'죽는 그날까지 나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이렇게 미친  듯이 손

을 휘두르고 있을 뿐! 

얼마의 시간이 지난 것일까? 

미친 듯이 뿜어 나오던 금사진의 힘도 점차 한계(限界)에 달하더니 이윽고…… 쿠

앙! 

최후의 일격을 쏟아 낸 금사진이 서서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피로한 몸, 그러나 

그만큼의 번뇌는 줄어드는가? 

금사진은 그 후 한 번도 방응향을 찾아보지 않았다.

한 번의 관계로 임신한 그녀가 금청청을 낳았을 때도.

철부지 딸이 왜 엄마가 죽어 가는데도 오지 않냐고 울부짖을 때도.

그는 한 번도 방응향을 찾아가지 않았다.

다만 미친 듯이 싸우고 미친 듯이 죽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비응방은  강호에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거방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짙은 허무와 견디기 힘든 자괴감(自愧感)! 방파를 키워 갈 때는 몰

랐다. 

 그러다가 오 년 전부터  방파가 거대해지자 그에게는 싸울  일이 없어졌다. 싸울 

일이 없다는 것! 

이미 강호거방으로 자리잡은 비응방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없어진  것은 그에게

는 어쩌면 불행이었다.

허무와 함께 그를 찾아온 번뇌(煩惱)! 

밤마다 그를 찾아오는 것은 방응향의 기억이었다.

잊을 수 없는 번뇌! 기억! 회한!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여기였다. 석실.

미친 듯이 힘을 쓰고 나면 조금은 번뇌(煩惱)가 덜어졌다.

누구나 선망하는 강호(江湖)의 거물(巨物)!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비응혈조 금사진. 

 그런 인물 뒤에 이런 숨은 비애(悲哀)가 있음을 누가 알겠는 우리는 다만 화려한 

겉모습에 감탄할 뿐, 누가 숨은 비극에 눈을 돌리겠는가? * * * 

지금 금사진은 좌대(座臺)에 앉아 있었다.

항상 지쳐 쓰러질 지경까지 자신의 힘을 빼고 나서 시행하는 운공조식! 진기가 전

신을 일주(一走)하자 빠져 나갔던 힘들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처럼 온몸의 힘을 다 빼버리고 다시 채워 나가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한편

으론 좋은 점도 있었다. 

 근육이 힘을 무리하게 쓰면 당장은 지치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적응하게 되어 

더욱 강인한 

근육으로 길러지듯이, 지금 금사진의 온몸에 차오는 진기의 흐름도 언젠가는 더욱 

도도(濤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진기의 근원인 진원지기(眞元之氣)가 상하지 않았을 경우에만 해당하

는 말이다. 진원지기가 상할 정도의 무리를  한다면 이는 오히려 진기를 키우기보

다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 될 수도 있었다. 

 물론 금사진이 자신의 진기를  키우고자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지난 

오 년간 계속된 이런 연공에 의해 금사진의 공력이 오 년 전에 비해 비할 바 없이 

높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하지만 금사진이 스스로 이런 연공(練功)의 위험을 깊이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비

를 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어찌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때까지 금사진은 운이 좋았으나 계속하여 운이 좋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만일 운이 나쁘다면? 만일 진원지기라도  상한다면? 그리고 또 만일 이러한  연공 

도중 살수(殺手)라도 만난다면? 금사진은 지금 연공 중이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운공조식이 막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이 있는 석실 어딘가에서 미약하나마 계속해서 들려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연공 중이었으므로.

또 온몸을 맴돈 진기가 다시 척수를 따라 항문을 통해 단전으로 돌아오고 있는 상

황이었으므로.

금사진은 항문 어름이 따끔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기의 흐름이 강해지고 있어서일까? 

 어쨌든 금사진이 지금 눈을 떠서 앞을 볼 수가 없는 것은 어쩌면 그의 운이 다해

서일지도 몰랐다.

우두둑! 

자세히 들으면 뼈마디가 부서져 나가는 소리인 듯한 이것은 오히려 뼈마디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며 난 소리였다.

엽혼은 좁은 공간에 숨어 있기 위해  의도적으로 탈골(脫骨)시켰던 뼈를 복원시키

고 있었다. 그리고 뼈를 맞추자마자 자신도 급히 진기를 일주시키기 시작했다.

엽혼의 일주천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금사진의 경우는 진기를 완전히 소진(消盡)하고 다시 되찾으려는 의미의 대주천이

지만 엽혼은 단지 오랜 시간 뼈를 

탈골된 상태로 둔 것을 만회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금사진이 혈조를 휘두를 때에 엽혼은  소리를 죽이며 석실의 한곳에  숨어 이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금사진이 조식에 들어가 주위에서  눈을 돌려 자신의 내면(內面)을 

주시하는 지금에서야 암살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금사진이 지금 눈을 뜬다면,  탈골된 뼈를 맞춤으로 인해  원래의 몸 크기로 

돌아온 엽혼의 몸이 조금 밖으로 삐져 나온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금사진은 엽혼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좌대 위에 앉아 자신을 향해 한 발씩 다가오는 운명을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

다.

진기를 한번 돌리고 나자 전신의 혈관 곳곳에 활기가 살아나는  것을 엽혼은 느낄 

수 있었다. 좁은 곳에 웅크리고  있은 덕분에 원활하지 못했던 혈행(血行)이  다시 

행해지며, 처음엔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간지러운 느낌이 들더니 그 느낌이 

차차 사라져 갔다. 그리고 얼마 후 혈행(血行)이 제대로 이어지자 엽혼은  이제 때

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때, 금사진에 대한 암살을 수행할 때!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엽혼은 허리에서 작은 쇠 뭉치를 꺼내 들었다. 기이한 모양

의 쇠 뭉치! 

그리고 쇠 뭉치의 끝을 잡고 조금씩 당기자 끝이 딸려 나오며 점차 길이가 길어지

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접힌 곳이 완전히 펴진 쇠 뭉치는 무엇인가를 닮아 있었다. 검! 

곳곳에 마디가 있는 기이한 모양의 검! 

이름하여 구절검(九節劍)이었다.

잠입(潛入)과 탈출(脫出) 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엽혼이 스스로 고안하여  만든 

검이었다. 그리고 이번 잠행에 이 검은 정말 도움이 되었다.

이윽고 엽혼은 검을 가슴께로 서서히 곧추세웠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금사진의 가슴에 이 검을 꽂는 것! 다만 일격필살(一擊必

殺)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엽혼은 날았다.

그리고 엽혼의 검도 함께 날았다.

목표는 금사진의 가슴이었다.

흐르는 광채! 흐르는 검날! 흐르는 사람! 

엽혼의 검은 금사진의 가슴을 향해 직격(直擊)해 갔다.

눈이 부신 광채(光彩)! 

그리고 오늘은 정월 십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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