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2/66)

"내일은 해가 남쪽에서 뜨겠구나."

늘 보던 신우전이 아닌 천추전에서 서문경을 본 황제가 별 신기한 일도 다 보겠다는 듯이 말했다.

늘 먹던 약도 잊고 온 탓에 겸사겸사 천추전에 들른 참이었다. 자신의 침전임에도 다른 사람의 것인 양 낯선 느낌을 받고 참 오래도 방치해 놓았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태화방에서 난전 마마가 기다리고 계신다 누군가 귀띔을 해주었다.

해서 가보니 참말로 서문경이 태화방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듣자하니 심지어는 한 시진도 전부터 있었다 한다.

"오래간만에 이곳에서 네 얼굴을 보니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새롭기는 하다만." 황제가 상석에 앉으며 입술에서는 비웃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이리 하지 않아도 조금만 기다리면 네 처소로 갈 터인데 이리 부산을 떠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음이겠지. 무슨 용건이더냐?"

"청이 있습니다."

청이라. 황제가 머리를 갸웃했다.

"짐이 네 청이라면 당장 나라를 국에 말아 달라 해도 좋아라 들어줄 패군이라는 것을 경이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자신이 나라나 백성보다는 비 하나를 더 무겁게 여기는 한심한 군주임을 부끄러우하는 기색도 없이 말한 홍제가 다섯 마리의 용이 어지럽게 휘감은 등받이와 팔걸이에 등을 깊숙이 묻었다가 다음 순간 눈만 들어 서문경을 보았다.

뿌리 깊은 피로감과 나른함으로 젖은 검은 눈 안쪽에서 날카로운 빛이 감돌았다.

"제영이 녀석에 관한 청이더냐?"

"그것이 아니라 그저 문을 열어 주십사 청하려는 겁니다. 제게 '문'을 열 능력은 없으니까요."

황제는 일단 대답은 보류하고 검지 가운데 마디로 턱 끝을 살살 기 시작했다. '문'이란 표현은 대부분의 경우 '세계'와 '세계'를 잇는 통로인 '하늘'과 '물'을 말하지만 아마 서문경이 말하는 문은 그것이 아닐 것이다.

황제처럼 쉽사리 열고 닫는 것은 불가능하나 무리를 하면 서문경도 하늘과 문을 여닫는 것이 영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황제는 이마를 찌푸렸다. 

"둥지 말이냐?"

신룡의 '둥지'로 들어가는 문. 그리 생각하자 서문경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허나 다음 말은 또 의외였다.

"예. 효영이를 데리고 잠시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효영이를?"

황제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게야?"

"찾아봤는데요....."

서문경이 설명했다. 예의 일곱 번째 황제였던 현엽제에 얽힌 이야기였다.

예의 여섯 번째 황제인 홍력제의 아들로 태어난 헌엽제는 홍력제의 단 하나 뿐인 후계자였다. 정비인 황후는 물론이요 백화궁을 모두 채우고도 남을 만한 후궁을 두었던 홍력제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후사가 적었던 탓이었다.

첩첩산중으로 헌엽제에게 변이 생겼을 경우 뒤를 이을만한 황손도 없었다.

때문에 헌엽제는 태어남과 동시에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귀물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자랐는데, 그런 보람도 없이 헌엽제는 열여섯이 넘도록 용인이 되지 못했다.

당연히 나라에는 비상이 거렸고 시강원과 태학궁의 모든 술사들이 동원되어 헌엽제의 용기(龍氣)를 자극했다. 그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것이 당시 태학궁의 제이박사인 사고전이었다.

- 윗물이 지나치게 거세게 흐르면 부서진 바위와 떠밀려 내려온 흙 따위가 하류의 물길을 막는 경우도 있는 법입니다.

홍력제의 힘이 지나치게 강한 것이 모든 문제를 불러왔다는 말이었다. 결국 후사 문제는 그가 가변례를 치를 때 황후에게 조금 더 자신의 '힘'을 많이 실어주었다면 해결될 일이었으나 오만한 홍력제는 비록 황후라고는 해도 결국은 천미한 존재에 불과한 인간에게 자신의 힘을 빌려주는 것을 저어했다.

- 그러하니 태자 전하를 용들의 근본인 '둥지'로 모시어 직접 용기를 자극하는 방법이 막힌 물길을 뚫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헌엽제가 홍력제와 같은 천룡이라는 것은 만만다행한 일이었다. 사고전의 제안을 따라 헌엽제는 용인으로 거듭하는 것에 성공하였으나, 만에 하나 헌엽제가 홍력제와 다른 용이었다면 사고전이 제안한 마지막 방법도 써보지 못한 채 문위 황가는 종말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요 며칠 혼자서 분주하다 했더니 그 따위 고사를 찾아보고 있었더냐? 짐도 물론 헌엽제에 얽힌 고사는 알고 있으나." 서문경의 설명을 모두 들은 황제의 반응은 시퉁했다.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허나 효영이는 복장룡이다. 짐은 복장룡들의 '둥지'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복장룡의 둥지를 열어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폐하께서는 신룡의 둥지를 열어 주시면 됩니다."

"신룡의?"

황제가 처음으로 안색을 달리하고 대답했다. '안 된다.'

"신룡의 둥지에 효영이를 들였다가 무슨 꼴을 당할 줄 알고?"

서문경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황제가 저리 단호하게 자신의 청을 자르는 까닭을 서문경은 잘 알고 있었다.

용들의 관계는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혈액형과 비슷했다. '둥지'는 각 용들의 근본. 그러므로 천룡의 둥지는 천룡이 아닌 다른 용들의 존재를 배척하고 지룡의 둥지는 지룡이 아닌 다른 용들의 존재를 배척한다. 그 또한 고사에 예가 있었다.

"17대 황제 진회제의 아들이었던 연안은 진회제의 사후 형인 숙장과의 다툼에서 큰 상처를 입고 '둥지'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지룡의 둥지로 들어가는 방법을 익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적인 숙장 또한 천룡의 기질을 타고난 용인이니 천룡의 둥지로 들어가도 그리 긴 시간을 벌지는 못할 거란 계산 때문이었지.

그 결과는 그대도 알리라 믿는다. 연안은 마치 익사한 시체 같은 꼴로 홍양만에서 발견되었다. 지룡의 둥지가 지룡이 아닌 자를 침입자로 인지하고 공격한 탓이었지."

"...."

"그런 것을 효영이에게 시키겠다고?"

서문경은 자신을 향한 황제의 질책을 느꼈다. 저절로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그것은 몸의 반사적인 반응에 불과했다. 서문경의 결심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고집을 부릴 만한 근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룡과 천룡은 대등한 존잽니다. 그러니 서로 팽팽히 맞서는 것이 가능한 거지요. 하지만 그건 두 용의 경우고."

"신룡이나 복장룡은 다를 것이다?"

"정확히는 신룡이요. 신룡이 처음으로 태어난 용이라는 것은 아시지요? 용님이 이땅. '대지'가 되고 나서 처음 나타난 용이요. 그래서 학자에 따라서는 신룡을 다른 용들과 같은 선상에 두지 않고 육체가 땅으로 변한 뒤 남은 용님의 넋이 변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예제국 사람이라면 다섯 살짜리 어린애도 알만한 말을 세기의 발견이라도 되는 것 마냥 흥분해서 말하는 서문경에게 황제는 조금 한심해하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서문경은 기죽지 않았다. 정확히는 황제의 시선을 눈치 채지도 못했다.

"모르시겠습니까? 신룡은 어떻게 보면 다른 용들의 부모용이나 다름이 없다는 겁니다!"

"새로운 견해로군."

황제가 이죽거리며 턱을 괴고 앉았다. 

"그래서? 그대의 그 새로운 이론이 효영이의 안전을 보장해주는가? 제 아무리 부모라도 눈이 멀고 귀가 멀면 자식을 벨 수 있음이거늘."

"아니요."

계속해서 흥분상태였던 서문경이 갑자기 태풍이 끝난 바다처럼 차분하게 돌변해 황제의 말에 반박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저도 '둥지'를 봤으니까 압니다. 폐하께서는 그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하시는 모양이지만 저는 다릅니다. 그 둥지는...."

서문경은 떠올렸다.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 완벽한 암흑을. 사면이 두껍고 단단한 벽에 감싸여 있는 그곳은 마치 알 같았다. 그 안에서 서문경은 새로운 몸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먼저, 아니.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보다도 먼저 그 '벽'과 손바닥을 접하였다. 깃털조차 돋지 않은 새들의 배같은 손바닥으로 느껴지던 그 감촉을 서문경은 아직까지도 기억했다.

두터운 가죽이 몇 겹, 몇 십 겹이나 겹쳐진 듯한 감각. 그 단단하면서도 탄력있는 감촉은 분명히 철이나 돌과는 달랐다. 그리고 그 가죽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물이 밀려들고, 빠져나가고 다시 밀려들듯이. 가만히 손을 얹고 있으면 저절로 눈꺼풀이 감길 듯 느리고, 몽롱한 그 움직임은 마치....

"위험하지 않아요."

절대로.

서문경의 주장에 황제의 눈썹 끝이 꿈틀했다. 그것이 끝이냐? 황제의 물음에 서문경은 대답 대신 입만 꽉 다물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감이라'. 황제가 중얼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감과는 달랐지만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어서 서문경은 반박하지 않았다.

"감이란 말이지. 이거 기가 막혀서 원."

"효영이 혼자 들여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저도 같이 갈 겁니다."

순간 썩둑, 하고 공기가 잘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서문경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폐하께서 염려하시는 만약의 사태가 생겨도 효영이는 무사할..."

그만. 황제가 말했다. 서문경은 하던 말을 도중에 멈췄다. 자의는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순간 목덜미를 움켜쥐는 느낌이 들어 턱 숨이 막힌 때문이었다. 황제와 시선이 마주쳤다. 매운 것을 삼킨 것처럼 코끝이 아릿아릿했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죽겠다는 것도 아니고."

"거 참 희한도 하구나. 짐의 귀에는 네가 벌거벗고 호랑이 굴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는데."

"아니요. 폐하가 그렇게 두지 않으실 거잖습니까."

뜻밖의 말을 들은 것처럼 황제의 미간과 콧잔등이에 오글오글 주름이 잡혔다. 서문경은 재차 말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올 건데다. 폐하께서 계속 보고 계실 테니 위험할 틈도 없을 텐데 뭘 걱정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바로 같은 짓은 안 해요."

사실, 자신의 직감이 옳다면 그곳에서 위험이라는 놈은 자신의 발끝에 손 그림자조차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서문경이 그렇게까지 말하고 나서야 황제는 조금 누그러든 듯 했다. 어쩌면 자신을 믿는 구석으로 삼고 뛰어 내리겠다는 말을 듣고 우쭐해져서인지도 몰랐다.

몇 년이 지나도 참 애 같은 사람. 서문경은 한숨인지 웃음인지 스스로도 모를 것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황제의 팔을 잡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참 한심하고 딱 그만큼 사랑스러웠다. 아마 황제도 자신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를 존경하기는커녕 서로를 딱하게 여기는 부부관계가 과연 옳은가 서문경은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곧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려면 어떻단 말인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로에게 만족하고 있으면 될 일 아닌가.

게다가 보다 보니까 제법 귀엽고 말이지..... 서문경은 황제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분위기를 보니 자신이 더 이상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도 황제는 무난히 자신의 청을 들어줄 것 같았지만 왠지 뭔가 해주고 싶어졌다. 말하자면 황제가 원하는 것처럼 가장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다.

서문경이 황제에게 속삭였다. 그러하니 혹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시냐고. 황제가 픽 웃고는 서문경이 한 짓을 똑같이 흉내 내어 대답했다. 그러나 서문경의 반응은 황제가 보인 것과는 사뭇 달랐다.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긴 서문경이 내뱉었다. 이 화상아......

황제의 몸은 언제 봐도 감탄스러웠다. 옷을 걸치면 말라보이지만 오히려 나신으로 있으면 옷 안에 숨어 있던 골격이 얼마나 당당한지. 또 그 뼈위에 입혀져 있는 가죽과 천연의 근육 따위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타고난 허약체질 주제에 저리 선이 굵직굵직하니 같은 사내로서는 질투가 날 정도였다.

허나 그것도 멀리서 볼 때의 이야기다. 당장 그 훌륭한 나신을 조금만 움직여도 코끝이 부딪칠 위치에 두고 있어서야 느긋하게 감상을 말할 여유도 없다. 

눈앞에 들이밀어진 단단한 배를 우울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으려니 황제가 그 커다란 손으로 서문경의 뒤통수를 감싸 쥐고 물어왔다.

"서부인께선 어디 가셨나?"

"....물어버릴 겁니다."

"네 입으로 꺼낸 말이니 물기는 해야지."

킬킬 마른기침 소리를 섞어 웃은 황제가 서문경의 뒤통수를 확 끌어 당겼다.

"어서 물어보려무나."

훅 끼쳐 오는 열기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인지 황제의 몸뚱이에서 나온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눈을 치켜뜨고 필사적으로 보지 않으려하던 부분을 결국은 맞닥뜨리게 된 서문경이 하늘을 원망하다가 곧 이 상황이 자신이 판 무덤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머뭇머뭇 고개를 들이밀면서 동시에 혀를 내밀었다. 축축한 혀가 남성 아래의 늘어진 살덩어리를 한번 핥았다. 꽉 짜인 허리에 단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래에 달린 살덩이와 그 사이의 기둥 틈을 혀로 파고들었다가, 혀를 위로 미끄러뜨렸다. 단단한 살덩어리와는 확연하게 다른 감촉이 혀를 자극했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그것을 바로 입에 물려했지만 무리였다.

뭐가 이렇게 커. 서문경이 훅 몸이 달아오르는 감각에 당황해하면서 애써 사납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입을 벌려 집어넣을 수 있는 만큼 그것을 입 안으로 삼켰다. 사내 냄새가 나는 뜨거운 것을 계속해서 입술과 혀로 자극하고 있으려니 점점 자신의 아래도 뜨거워졌다.

갈 때까지 갔구나. 같은 사내의 것을 물고 자극하면서 자신 또한 자극 당하는 것을 깨달은 서문경이 속으로 한탄했다.

- 네 부리로 해 다오.

황제는 그렇게 요구했다. 문득 둥지에서 그와 몸을 섞었을 때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밀어내던 황제가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던 때가 딱 이랬었다.

이 인간. 입으로 해주는 걸 좋아했던 거구나. 서문경은 새삼 생각하면서 입 안에 든 것을 힘껏 빨아들였다.  입 안에서 훅 남성이 부풀어 올랐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아서 서문경은 황급히 그것을 뱉어냈다. 적당히 해둬야지. 입 안에서 사정하게 두었다가는 앞일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잠."

깐, 하고 황제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서문경은 외면했다. 황제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바싹 끌어당겼지만 힘을 주어 버텼다. 읏, 하는 신음이 들려서 서문경은 황급히 눈을 감았다. 예상한대로 뜨거운 것이 얼굴에 내뿜어졌다.

"아......"

피하려고 했는데.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미지근한 액체를 느끼면서 서문경은 손등으로 얼굴을 훔쳤다. 끈적끈적 얼굴을 타고 흐르는 그 액체가 마치 자신의 피부를 핥는 것 같았다.

손등으로 두어 번 문지른 뒤에야 눈을 뜰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속눈썹에 그것이 들러붙어 있는지 시야가 뿌옇다. 씻을 만한 게 있던가? 생각하면서 서문경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내밀었다.

입술에 묻은 그것에 스쳤는지 혀에 쌉쌀하고 비릿한 맛이 느껴졌.....

"어?!"

생각조차 다 끝내지 못한 채로 서문경은 당황한 소리를 내뱉었다. 시야가 순식간에 반전되며 어두워졌다. 불이 꺼진 것이 아니라 뭔가가 자신의 시야에 가득 찬 때문이었다.

뜨거운 것이 순식간에 자신의 옷을 벗기고 다리 사이를 벌렸을 때에야 황제가 거꾸로 자신의 위에 올라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하시는 겁니까?! 서문경이 황급히 외쳤지만 황제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거칠게 서문경의 다리를 벌린 황제가 반쯤 일어서 있던 서문경의 것을 입으로 삼켰다.

"읏....!"

그리고 동시에 단단하게 발기한 남성이 서문경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서문경은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한참을 잘못 짚었다. 저 인간이 약한 게, 입으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제 것을 내가 뒤집어 쓴 꼴을 보는 거였구나....!

벗어나려고 했지만 남성을 빨리자 온 몸에서 쑥 힘이 빠졌다. 아래에서 들리는 젖은 마찰음이, 멀리서가 아니라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이 느껴져서 귓볼이 화끈 달아올랐다.

황제의 것을 문 채로 잠시 머뭇거리던 서문경은 결국 두 손을 황제의 허리에 얹듯이 하고 혀와 입술을 움직였다. 서문경의 것을 빨던 혀의 움직임이 한층 더 거칠어졌다.

"으, 응. 아, 흣."

제멋대로 하반신이 움직였다. 빨아들이는 힘에 저절로 허리가 비틀리고 발가락이 꽉 안으로 조여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혀로 사내의 것을 감았다. 온 몸이 불덩어리가 된 듯 했다.

그러다 황제가 이로 살짝 건드리듯 남성 끝을 두드리고 힘껏 빨아들이자 서문경은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아, 하고 벌어진 입에서 사내의 것이 빠져 나가고.

"아아아앗!"

한 쪽 다리가 한계까지 찢어진 채로 그대로 삽입 당했다. 그리고 서문경은 그제야 보았다. 자신의 위에 올라탄 황제의 눈에서 광기와 비슷한 빛이 번뜩거리는 것을. 망했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생각했다. 예감은 들어맞았다.

다리를 황제의 어깨에 건 자세 그대로 몇 번이나 뜨거운 것이 안으로 치밀고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나갈 때는 거의 끝만 걸칠 정도로 빠져나갔다가 들어올 때에는 살과 살이 부딪치고 까슬까슬한 거읏이 느껴질 정도로 뿌리까지 박혀 들어왔다.

살을 맞대고 산지 오래된 보람(?)이 있었는지 거의 이성이 끊어진 채로 흔들고 있으면서도 황제의 것은 곧바로 서문경이 느끼는 부분을 찾아 찔러왔다.

단단하고 두꺼운 것이 계속해서 안을 자극하자 서문경은 어쩔 줄 모르고 도리질을 치다가, 스스로 다리를 움직여 황제의 허리를 감쌌다. 황제의 상반신이 저절로 아래로 내려왔고, 서문경은 두 팔을 뻗어 황제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끝까지 남성을 밀어 넣은 황제가 이제 더 들어갈 곳도 없는데도 허리를 더 안으로 밀어붙이며 서문경을 자극했다.

"아!"

눈앞에서 새하얀 불꽃이 튀었다. 퍽 소리가 날 만큼 황제가 거세게 남성을 빼냈다가 다시 처박은 탓이었다. 그대로 안을 몇 번이나 거칠게 자극 당하면서 동시에 곤두선 남성을 황제의 배에 문질렀다.

안과 밖을 함께 자극당하니 그만큼 절정이 빠르게 찾아왔다. 때때로 하얗게 점멸하던 시야가 완전히 새하얗게 변하면서, 서문경은 절정을 맞았다. 황제의 몸을 안고 있던 팔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가며 허리가 노곤하게 풀렸다.

그러나 황제의 팔이 와상에 누운 서문경의 허리 아래로 들어오더니 그의 몸을 휙 뒤집었다. 와상에 배를 붙이고 나서야 그가 무엇을 하려는 지를 깨닫고 서문경이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자, 잠깐만. 폐하!"

한 번 하셨잖습니까! 답지 않게 우는 소리를 내는 서문경의 뒷덜미에 이를 세우며 황제가 속삭였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거짓말! 서문경은 비난하려고 했지만 뜻대로는 되지 않았다. 서문경의 배를 들어 올려 마치 네 발로 선 것 같은 자세로 만든 황제가 아직까지 절정을 맞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것을 서문경의 안에 삽입했다.

"아.....!"

젖어 있던 덕인지 입구는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황제의 것을 삼켰다. 끝까지 삼입한 채로 황제는 이번에는 얕게. 그리고 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아. 아! 거친 행위에 익숙한 서문경이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간질간질해지는 자극을 이기지 못하고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버티고 선 팔다리에서 자꾸만 힘이 풀리는 것을 황제가 배를 끌어안고 유지시키면서 허리를 움직였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더 찐득한 물기를 머금었다.

"으, 아아, 응! 그, 앗, 아, 하지, 응, 그렇게." 서문경이 제멋대로 입에서 튀어나가는 신음을 참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황제에게 애원했다. "그렇게....."

하지만 도저히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서문경은 눈을 꾹 감고 도리질을 쳤다. 황제의 것이 얕게 드나들며 안을 희롱할 때마다 안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점점 머릿속이 멍해지고 앓는 듯한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그 감각에 취해 있다 보면 불현듯 자신도 모르게 조르듯 비문을 조이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온 몸이 불타는 것 같고, 작은 벌레들이 자신의 온 몸을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괴롭다. 서문경은 헐떡이며 생각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차라리.

쫓기듯 헐떡이며 서문경이 애원했다.

".....게."

"으응?"

황제가 깊숙이 남성을 밀어 넣으며 서문경의 등에 바싹 자신의 가슴을 붙였다. 그가 은근한 투로 물어왔다. '어찌 해 주련?' 일부러 묻는 꼴을 보아하니 서문경이 하려는 말을 알아들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느낀 서문경이 머리를 조금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열에 달떠 몽롱한 눈에는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앟았고 눈가는 온통 발그레했다. 

차라리 대놓고 유혹을 하지 그러려무나. 혹여나 서문경이 제정신이었다면 길길이 날뛸만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황제가 더 깊숙이 허리를 들이밀었다.

"무어라 했느냐?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요즈음 귀가 영 시원치를 못해."

"들었으면....., 아!"

뭉툭하고 단단한 끝이 깊숙한 곳을 찌르자 서문경이 교성을 지르며 무너졌다. 황제가 그런 서문경의 허리를 받아들고 계속해서 그 자리를 자극했다. 강하게 찌르지 않고 느끼는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나가면서 간질이는 느낌에 서문경의 허리가 달달 떨렸다.

머리가 곤죽이 되어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고 눈앞에 새하얀 빛이 번뜩번뜩했다. 고집스럽게 다물린 입을 충동이 강제로 열었다.

"세게." 숨이 거칠어져 거의 뭉개지다시피 한 발음으로 서문경이 애원했다. "더 세게 해주세요."

황제가 웃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였는지 착각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황제의 실낱같은 이성이, 서문경의 애원 한 마디에 완전히 잘려나간 탓이다.

자신이 애원했던 대로 거칠게 박힌 서문경이 자신이 했던 말을 후회하며 엉엉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은 그로부터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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