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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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돌아갈 수 있습니까?”

조원의 뒤를 따라 산수 무늬 비단 벽지가 발린 방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서문경이 곧바로 물었다.

“성미가 급하시군.”

방 안에서 산처럼 두루마리를 쌓아놓고 끙끙대고 있던 서생 하나를 차와 다과를 내어오라 쫓아내고 있던 조원이 빙그레 웃으며 서문경을 돌아보았다. 그 여유로운 웃음에 서문경은 순간 속에서 확 불같은 기운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일단 앉으시게.”

“돌아가고 싶습니다.”

조원이 의자를 권하는 것을 무시하고 서문경이 다시금 물었다. 거의 추궁처럼 들리는 격한 말투에 조원이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입술 끝을 끌어 올렸다. 

“돌아가고 싶은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못 가네.”

조원의 단호한 말에 서문경은 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저절로 눈이 부릅떠지고 벌린 입술이 발발발 떨렸다. ‘못 돌아간다고···.’하고 중얼거리자 쉴 새 없이 떨리고 있던 이빨이 서로 부딪쳐 딱딱딱 거친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다.

“제국이 존재한 뒤로 단 한 번도 ‘손님’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 예는 없네.”

“하지만, 찾, 찾아보면,”

“대붕(大鵬)의 날개를 타고 온 하늘손님들마저도 성공한 전례가 없는 일이야.”

서문경의 말을 막으며 조원이 말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조원의 눈빛을 보고 서문경이 북 이를 갈았다.

“당신들 천객(天客)들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니 이 비루한 수객(水客)은 감히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말란 말입니까.”

“화내지 말게.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은 그만큼 덧없는 희망이란 말일세.”

조원이 난감해하는 표정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성난 서문경을 필사적으로 타일렀다. 조원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것에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어 서문경은 의심스런 눈빛으로 조원의 표정을 살폈다. 노골적인 의심이 서린 서문경의 눈빛을 받고 조원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서문경은 침묵했다. 묘한 기분이었다. 아직 눈에 익숙지 않은 이 나라 복장을 한 사내가 마치 자신의 세계에 사는 사내애들이 으레 그러듯 어깨를 으쓱하고 눈을 찡긋거리는 모습이 마치 사극에서 뾰족구두를 신은 여배우를 보는 것처럼 괴상한 기분이었다. 

“정말로···.” 그래서 불현듯 서문경은 실감해 버렸다. “돌아갈 방법이 없는 겁니까.”

자신이 바로 그 우스꽝스러운 여배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처지라는 사실을.

“그리도 돌아가고 싶은가. 자네는 범(虎) 세계에서의 기억조차 없지 않은가.”

“당신은 아닌 겁니까.”

서문경이 무심결에 되묻자, 조원이 대답 없이 그저 싱긋 웃고 말았다. 

“당신은,”

그 웃음이 어딘가 그늘지고, 또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어 서문경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더 이상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서문경은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가로저어 버렸다.

“정녕 방법이 없습니까.”

“없네.” 조원이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뒤늦게 나직한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인간에게는.”

그 말에 서문경이 멈칫했다.

“인간에게는···?”

하고 중얼거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서문경을 조원은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설마하며 자신의 낯빛을 살피고 있던 서문경은 변변찮은 반항 한 번 해보고 못하고 거의 주저앉다시피 의자에 앉았다.

“그럼 인간이 아닌 자에게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단 말입니까.”

서문경이 항의하는 대신 와락 달려들듯 고개를 들이밀고 집요하게 물었다. 그러자 조원이 천천히 허리를 숙여 서문경의 귓가에 자신의 입술을 붙이고 속삭였다.

“이 세계에 진짜 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용?”

용이란 황제를 비유하는 말이 아니었던가? 서문경이 의아하게 중얼거린 말에 조원이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는 안 된다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진짜 용이 누구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있네.”

“밝혀지다니요?”

“모르나?”

서문경의 물음에 조원이 숙였던 허리를 펴며 고개를 갸웃하듯이 머리를 모로 기울였다. 

“하긴 자네는 이 세계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

“그러니까, 그 용이란 것이 대체 뭡니까?!”

답답함에 서문경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조원이 씩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신과 처음 얼굴을 맞닥뜨렸을 때 그가 지었던 그 시원하고도 심술궂은 웃음이었다.

“그 정도는 자네가 알아봐야 하지 않겠나.”

“무슨 말을!”

“박사! 박사!”

서문경이 막 화를 내려는 그 때, 조원이 휙 고개를 돌리고 외쳤다. 그 갑작스러운 외침에 서문경이 멈칫한 사이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화로와 부싯돌을 든 궁인이며 다과상을 든 아까의 서생, 그리고 언제부터 방 밖에 있었는지도 모를 학승박사와 그와 비슷한 옷차림을 한 중년 여인 하나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런, 경모(景慕) 박사께서도 오셨군.”

조원이 중년 여인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며 아는 체를 하자, 여인이 마찬가지로 조원에게 상냥한 시선을 보내고는 곧바로 서문경을 향해 다가왔다.

“그대가 바로 청의관에 묵고 계시단 그 소문의 물손님이시오?”

뭔지는 몰라도 별로 좋은 소문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문경이 얼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나는 소천 가(家)의 맏딸인 소천 경모라고 하오. 저 학승처럼 오경박사(五更博士) 지위를 맡고 있다오. 그대가 찾아오기 전에 미리 청의관으로 찾아가 봤어야 했는데, 손인 그대가 여기까지 행차하게 만들어 참으로 면구하기 그지없소.”

자신이 지금껏 만나 왔던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여인의 성실하고 솔직한 태도에 서문경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당황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대장군(大將軍)의 병세는 차도가 있습니까.”

서문경의 의혹을 풀어 주려는 듯 조원이 나서서 넌지시 물었다.

“염려해 주신 덕에 아버님께서는 쾌차하셨소. 단순한 고뿔인데도 아버님의 연치가 연치신지라 한 순간도 방심할 수가 없지 뭐요.”

자신의 이름을 소천 경모라고 밝힌 여인이 조원에게 목례로 감사를 표했다. 그 훈훈한 광경을 보면서 서문경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된 일이라 그거구나.

“그럼, 늦어서 참으로 송구스럽네만 객(客)의 ‘힘’을 끄집어내도록 해 봅시다.”

경모박사가 병풍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학승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떨떠름한 얼굴을 한 학승박사가 할 수 없다는 태도로 터벅터벅 앞으로 나섰다.

“좀 아프실 지도 모르오.”

경모박사가 서문경에게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 말에 서문경은 그녀 대신 학승박사에게 찌릿 경고의 눈짓을 보냈다. 일부러 아프게 하시면 두고 봅시다. 그 눈빛에 담긴 뜻을 눈치 챈 것인지 학승박사의 표정이 한층 더 떨떠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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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經筵)을 열 시간이 멀지 않았는데 어찌 시독관(試讀官) 임선은 소식이 없는가?”

수정과 옥으로 엮은 주렴(珠簾) 안을 물끄러미 훔쳐보고 있던 내관이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그 갑작스러운 질타에, 장지문 바깥에 나부시 절하고 있는 어린 궁아(宮娥)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던 중년 사내가 또 시작이냐는 듯 몰래 혀를 찼다. 그러나 그가 내관에서 시선을 돌렸을 때, 놀랍게도 사내의 얼굴에는 언제 싫은 티를 냈냐는 듯 빤지르르 단 기름기가 돌고 있었다.

“임선 그 치의 걸음이 좀 굼뜬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쯤 석교(石橋)를 지나고 있지 않겠습니까.”

“돌다리는커녕 홍랑(紅琅)의 다리 사이에서는 헤어 나왔나 모르겠구먼.”

내관이 사내의 오촌 조카인 시독관(試讀官) 임선이 최근에 빠져 있다는 기녀(妓女)에 대해 언급하며 이죽거리자, 사내가 비굴하게 웃으며 소매에서 묵직한 비단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슬그머니 내관의 손에 쥐어 주자 내관이 험험, 괜한 헛기침을 몇 번 하면서 누런 눈을 굴려 주렴 안을 힐끗 곁눈질했다.

“황상께옵서 무료하신 듯 하니 어선(御膳)부터 올리도록 함세.”

주렴 안에 허락도 구하지 않고 내관이 멋대로 궁인 하나를 불러 그렇게 일렀다. 

“정비전(整備殿)에 급히 알리겠나이다.”

명령을 받은 어린 궁인이 주렴 안쪽 대신 내관에게 절을 한 후 총총히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저 영감들 참 말 한 번 희한하게 하는군. 소나 돼지도 아닌 사람이 어찌 무료하다고 대뜸 식사를 하누.”

수정과 옥으로 엮은 발 안쪽 방에서 내시감(內侍監)과 지밀궁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황제 제안이 어느 순간 툭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넓은 방 안에는 황제 외의 사람이 없어, 황제의 그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고놈이 말 하나는 참으로 재치 있게 했거늘.”

황제는 턱을 쓰다듬으며 서문경의 얼굴을 떠올렸다. 들고 있던 당과라도 빼앗긴 것처럼 내내 부루퉁하던 얼굴이 금방 머릿속에 떠올랐다. 

‘저희들이 내내 군것질로 소일을 하니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청새치 주둥이마냥 뾰족하기 짝이 없는 그 혀는 방금 전 내시감이 한 말을 들었다면 그렇게 빈정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승직 효문에게 그랬듯 ‘네 몸뚱이가 그러니 그 모양이지.’하는 뜻을 담아 내시감의 육중한 몸을 아래위로 훑어봐 주었겠지.

그 상황을 상상한 황제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는지 킬킬킬, 심술 맞은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아이다.”

으레 그랬듯 콜록콜록, 마른기침 소리로 황제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방만하게도 아직 침의(寢衣)를 걸친 채인 황제 제안은 옷깃이 흘러내려 거의 헐벗다시피 한 등을 나른하게 벽에 기댔다. 

“그래, 그 아이를 어떻게 할까···.”

황제가 무료하게 중얼거리면서 한 손을 제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장난을 치던 황제가 한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허공에 멈춘 황제의 오른손이 동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갑자기 검푸르게 질렸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바닥 밑의 손등이 순식간에 딱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황제의 손등과 손목에서 불현듯 푸른 비늘 같은 것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비늘이라기보다는 검은 마노(瑪瑙)를 납작하게 깎은 장식품을 붙여 놓은 것처럼도 보였다. 

황제는 침묵했다. 등잔조차 밝히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푸르게 질린 황제의 손은 마치 늪 안에 잠겨 있는 커다란 도마뱀처럼 보였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황제의 손등에서 튄 작은 불꽃이었다. 손등과 손목이 호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자리에서 갑자기 푸른 불꽃이 탁 튀었다. 그 불꽃은 불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전기라고 표현하면 좋을 정도로 몹시 작았다. 자신의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불똥이 사르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황제가 문득 웃었다.

“그래, ‘힘’을 찾았나.”

어디를 급히 가나 싶었더니 학궁으로 갔던가. 황제가 중얼거리며 손을 뻗자, 허공에서 춤추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던 푸른 불꽃이 눈송이처럼 조용히 황제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황제의 하얀 손 위에 떨어진 불꽃이 녹아들듯이 아무런 소리 없이 사그라졌다. 그 나비처럼 곱고도 연약한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황제가 불꽃이 떨어졌던 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참으로 보잘 것 없는 힘이로고.”

그러나 그렇게 속삭인 황제의 목소리는 말의 내용과는 달리 경멸보다는 다정함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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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고뿔 걸린 계추(鷄雛: 병아리)라도 되느냐. 꼴이 어찌 그래.”

하고 타박을 놓는 황제는 어제와는 달리 침의 대신 푸른 대자(帶子)를 두른 편복(便服)을 입고 있었다. 

“어디 나가기라도 하십니까.”

거기에다, 발에는 구름을 수놓은 피말(皮襪)을 신고 어깨 위에 물빛 주의(周衣)까지 걸친 채인 황제를 보고 서문경이 멍하니 물었다. 

“짐이 어디를 나가.”

저것이 왜 짐의 용안을 면알하자마자 헛소리를 치누. 황제가 끌끌 혀를 차며 말타박을 놓았다. 황제의 인정사정없는 이기죽거림에, 판매대의 생선마냥 내내 흐리멍덩하던 서문경의 눈에 싸늘한 빛이 돈다 싶더니 곧 서문경의 눈매가 벨 듯이 뾰족해졌다. 

“왜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시비십니까?”

“시비? 경아, 네 정녕 목이 날아가고 싶은 게냐.”

우리 병아리가 간이 부었구나, 황제가 자신에게 따지고 드는 서문경을 흰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러나 서문경은 간담이 절로 서늘해지는 황제의 위협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꾸했다.

“오해십니다. 아무래도 범님의 세계와 용님의 세계에서는 시비가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모양이군요.”

“우리 경아가 제법 빤빤하게 거짓부렁을 하는구나.”

사내치고 낯빛이 유난히 곱다 했더니 민낯이 아니라 밀랍을 발랐더냐. 황제가 다가가 서문경의 볼을 암팡지게 꼬집어 뜯었다. 서문경이 악!, 하고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가자.”

서문경의 볼을 제 쪽으로 잡아당기며 황제가 말했다.

“어디를, 아니, 저 말입니까?”

“이 방에 그대 말고 또 누가 있누.”

황제가 서문경의 볼을 놓아 주고 턱짓으로 장지문 밖을 가리켰다. 황제에게 꼬집혀 벌겋게 달아오른 볼을 손등으로 문지르면서 서문경은 가만히 눈살을 찌푸렸다. 

“저를 왜 데려 가시려는 겁니까?”

“어차피 우리 경아는 할 일도 없지 않나.”

내가 범 세계의 모소설 제목처럼 잉여인간이라도 된단 말이냐. 서문경은 자신을 잉여인간 취급하는 황제가 몹시 못마땅했지만, 그렇다고 황제의 그 말에 당당히 아니다 반박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대체 어찌다, 서문경은 속으로 한탄하면서 황제의 뒤로 따라붙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후(后)의 비원(秘苑)을 돌아보러 가지.”

후라는 말에 서문경이 살풋 이맛살을 구겼다.

“결혼하셨습니까?”

대체 어떤 불쌍한 여자가. 보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시선이 황제의 파리한 낯빛과 마른 손목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그 시선을 눈치 챈 건지 황제의 눈이 찌를 듯 뾰족해진다. 

“아직 내전(內殿)은 맞이하지 아니하였다.”

“뭐 여러 모로 다행입니다···.”

황제가 쏘아붙이듯 중얼거린 말에 서문경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무어가 다행이냐?”

“아니 뭐, 이미 결혼하셨다 하시면 부인되시는 분이 가엾, 은 게 아니라 제가 쓸쓸해질 것 아닙니까.”

대쪽처럼 진실만을 말하던 서문경이 문득 장지문에 비치는 내관의 그림자를 보고 급히 말을 바꿨다. 갑자기 말을 바꾼 서문경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던 황제가 서문경의 시선을 따라가 보고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입술을 비틀었다.

“내시감 있는가.”

“내시감 봉승 들어 있사옵니다.”

“신우전(神佑殿) 비원으로 들 것이다. 채비하라.”

“행보(行步) 나가시옵나이까. 대령상궁(待令尙宮)에게 일러 대산(大?)을 준비하겠사옵니다.”

서두르라, 하고 황제가 닦달하자 닫혀 있던 장지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것을 무심결에 돌아본 서문경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장지문 가득 그려져 있는 구조룡(九爪龍)이 눈 안에 들어온 탓이었다. 

“따르라.”

복도로 나가 족건(足件) 위에 운혜(雲鞋)를 덧신은 황제가 서문경을 재촉했다. 뒤에서 승직 효문이며 내시감이라는 뚱뚱한 사내의 눈총을 받으면서 서문경이 운동화를 꺾어 신었다. 서문경이 돌바닥에 슥슥 운동화 밑바닥을 비비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황제가 물었다.

“그렇게 그 신이 좋은가?”

“아무도 다른 신을 것을 안 주니 어쩔 수 없이 신는 겁니다.”

하루 휴가라도 주면 빨기라도 할 텐데, 이놈의 애보기는 하루도 거르지를 못하게 하니. 비린내가 풀풀 올라오는 운동화를 노려보며 서문경이 대꾸했다.

“그건 아니 될 일이지. 짐을 하루라도 못 보면 경이 네가 쓸쓸해할 것 아니냐.”

황제가 서문경이 방금 전 내시감의 귀를 의식해 아무렇게나 지껄인 말을 새삼스레 끌어와 농을 걸었다. 예, 잘도 그러겠습니다. 서문경이 투덜거리며 답하고는 나는 길을 모르니 길을 아는 네가 앞장서라 황제에게 눈총을 주었다.

“대령상궁 연재 화연 대령하였사옵니다.”

이윽고 나이 지긋한 여관 하나가 젊은 궁인과 내관들을 이끌고 나왔다. 그 중 유난히 몸집이 좋은 내관이 앞으로 나서 황제의 머리 위에 비단으로 만든 햇빛 가리개를 씌워 주었다. 저것이 대산인가, 서문경이 자수로 장식된 푸른 비단으로 만들어 금빛 술과 구슬을 늘어뜨린 커다란 양산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황제가 서문경에게 손짓을 했다.

“내 뒤로 서거라. 그래, 짐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고.”

“지금 가는 곳은 여기서 멉니까?”

“가깝지는 않지.”

서문경의 입이 불만스레 튀어나왔다. 어제 학궁을 찾아가며 했던 수고가 다시 생각난 탓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어제만큼 걸을 필요는 없었다. 십 여 분 정도를 말없이 걷고 있자니, 황제의 침전과 그 뒤의 대전(大殿)을 향해 입을 벌린 문이 하나 나왔다. 막 문을 지나는 서문경에게 황제가 이 소요문(紹曜門) 안쪽부터는 황후가 기거하는 내전이라 일러 주었다.

고작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내전은 황제의 침전인 천추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느타나무, 은행나무, 주엽나무와 주목, 회화나무, 향나무, 다래나무, 수양버들, 참나무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나무들이 커다란 전각을 감싸 안고 있었다. 푸른 기와를 올리고 화려한 단청을 단 다음 흰 기둥과 마찬가지로 흰 주춧돌로 떠받든 전각은 단순히 사람들이 기거하는 집이 아니라 장인이 빚어 만든 예술품처럼 아름다웠다. 그런 전각 옆으로 매화나무, 철쭉, 배나무, 앵두나무 등 어여쁜 꽃이 피어나 영롱한 열매가 맺히는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를 이름도 모를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장식하고 있었다.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싶었더니 저 멀리로 누정(樓亭)을 끼고 있는 연못이 보이고, 그보다 더 아득한 곳에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작은 폭포가 보였다. 기암괴석에서 떨어진 계류(溪流)가 누정을 끼고 있는 거울 같은 연못을 지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연못을 지나 하얀 연꽃이 만개한 연못으로 통하고, 서문경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연못들을 돌아 다시 계곡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신우전이라는 현판이 걸린 전각뿐만이 아니라 내전 여기저기서 보이는 건물들 또한 그것들 하나하나가 빼어난 예술품과 같았다. 팔각지붕을 올린 누각이며 부채형으로 만든 정자, 혹은 민가의 양식을 흉내 내어 만든 집까지 그 형태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으며, 또 집들의 난간이며 문살, 포작(包作) 등은 한껏 솜씨를 발휘한 최고의 목조공예품이었고, 지붕에 올려진 기왓장은 하나하나 정성들여 구운 후 그 위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었다.

여기저기서 억눌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진 궁아 몇몇도 보였다. 그래, 서문경이 내전 안을 휘 둘러보고 동의했다. 그야말로 후원뿐만이 아니라 이 내전 전체가 그야말로 하나의 비원(秘苑)이었다.

“참으로 어여쁘지 않으냐.”

내전을 둘러보고 있는데 문득 황제가 넌지시 물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서문경은 건성으로 생각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확실히 아름답다. 하지만 이건.

“그대들은 이곳에 대기하고 있으라.”

그 때 황제가 차양 밖으로 나오며 자신의 뒤를 따르던 궁인들에게 그렇게 일렀다. 그러자 금상의 성후(聖侯) 쇠약해지셨으니 그리할 수는 없다 극구 말려야 마땅할 황제의 대령상궁이며 내시감 등이 가장 먼저 허리를 조아려 그 명령에 답하고는, 뒷걸음질 쳐 자리에서 물러났다.

“경아, 후원으로 들어가자꾸나.”

멍청히 그 자리에 굳어 있는 서문경을 황제가 손짓해 불렀다. 자신의 이름을 듣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서문경이 황급히 황제의 뒤를 따랐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무어가.”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폐하를 혼자, 그것도 이 나라에 온지 며칠 되지도 않는 제가 동행하는데.”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하고 서문경이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제가 나쁜 마음을 품고 폐하를 해할지 어떻게 안답니까?”

서문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구국의 영웅이 될 게다.”

킬킬, 황제가 웃음을 흘리며 덧붙였다. 물론 겉으로야 만고의 역적이라 매도하며 능지처참하겠지만 속으로는 다들 그대를 대견해 할 것이야. 서문경이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내저었다. 사양하겠습니다.

“헌데,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 아니냐.”

황제의 서문경의 정수리 근처에 드리운 나뭇가지를 손을 걷어 주면서 다시금 물었다. ‘훌륭하군요.’, 대체 왜 똑같은 질문을 또 하는 건가 의아해하면서 서문경이 대꾸했다. 그러다가 서문경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황제의 눈초리를 눈치 채고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떨떠름하게 입매를 굳혔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우리 경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이렇게 보느니.”

“거짓말은 아닙니다. 다만.” 

서문경이 우울하게 중얼거리며 제 가슴께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보고 있으려니 답답해서요.”

“답답하다?”

“예, 마치 새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하며 서문경이 후원 전체를 새삼스런 눈으로 돌아보았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연못과 거북이의 등과 같은 기암괴석, 그리고 오밀조밀 눌러 만든 것 같은 섬세한 전각들과 화사하게 봉오리를 터뜨린 희고 붉은 꽃, 옥처럼 수려한 수 천 그루의 나무. 다시 돌아봐도 흠 잡을 곳 하나 없이 수려한 풍광이었다. 그래서,

“눈을 홀리고, 생각을 흐리게 하고. 그래서 결국 이곳에서 나갈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들려는 사념(邪念)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서문경에게는 이 곳이 마치 거대한 새장처럼 느껴졌다.

“훌륭하구나.”

되는대로 내뱉어 놓고 황궁의 자랑거리일 내전을 이렇게 폄하해도 되는 것인가, 지레 찔린 서문경이 입술을 달싹거리는데 황제가 놀랍다는 듯 대꾸해왔다.

“어, 노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인 것을 왜 노여워 해. 이곳은 벌써 오백 년도 전에 이 나라의 황제였던 헌원제(軒轅帝)가 그의 후를 감금하기 위해 지은 곳이다.”

“감금?”

제안 황제의 입에서 나온 감금이란 단어에 서문경이 갑자기 주위의 공기가 싸하게 식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서문경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뒤흔들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무심결에 자신의 몸을 두 팔로 끌어안은 서문경이 황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창백한 황제의 얼굴이 젖은 듯 어두운 날씨 때문인지 더욱더 창백하게 보였다.

“헌원제의 후인 명의황후(明毅皇后)는 원래 정혼자가 있었지. 명의황후 홍씨와 홍씨의 정혼자는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헌원제는 홍씨를 자신의 후비로 맞이하기 위해 홍씨의 정혼자를 주(朱)국과의 전쟁에 내보내 혼란한 틈을 타 몰래 죽였지. 그 후에 헌원제는 홍씨를 황후로 맞이하여 평생 사랑하였으나, 크게 상심한 명의황후는 죽을 때까지 헌원제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고 하네.”

“그럼 이 곳은.”

“그래, 헌원제가 명의황후를 ‘감금’한 곳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 아닌가, 하고 황제가 심술궂게 웃었다.

을씨년스러운 나무 그림자가 상처처럼 드리워져 있는 황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서문경이 물었다.

“그런데 이 곳에는 왜 오신 겁니까?”

“듣는 귀가 가장 적은 곳이기 때문이지.”

“듣는 귀가 적다?”

그건, 할 말이 있다는 말인가? 서문경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을 보면서 황제가 커다란 주목(朱木)에 등을 기대고 섰다.

“작일에, 그대가 천추전에서 나간 후 바로 학궁으로 갔다 들었다.”

황제가 곧바로 용건을 말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던지, 서문경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러자 황제가 더 놀랄 말을 던졌다.

“묻겠다. 그대는 ‘힘’을 찾았나?”

“폐하.”

“그리고, ‘힘’을 찾은 이들이 그랬듯 그대도 짐을 능멸하고 체제공에게로 갈 생각인가?”

**

황제의 말을 듣고 서문경은 멈칫했다.

‘다른 이들이 수상에게로 가?’

목석 같이 딱딱한 표정을 한 수상의 얼굴과 제 얼굴에 침을 뱉어도 여전히 방긋거리고만 있을 것 같은 조원의 얼굴이 차례로 서문경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외에 다른 하늘손님들이 수상이 마련해 준 전각에 모여 살고 있다는 학승박사의 말도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 제가 처음인 것 아니었습니까?”

“무어가.”

기분 탓인지 그렇게 대답하는 황제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저를 제하면,”

“확실히 객들 중 시경원(施耕院) 소청이 짐에게 보인 것은 그대 하나뿐이지. 허나, 짐이 이부(耳部: 귀)까지 막혀 있는 줄 아느냐.”

“그럼···, 그 자들을 만나러 친히 행차하신 적도 있으십니까.”

“모두는 아니나.”

껄끄러운 화제와 맞닥뜨렸다는 듯이 황제가 이맛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있으시군요.”

그리고 그 뒤는, 말로 하지 않아도 뻔하다. 서문경은 얼굴이 저절로 구겨지는 것을 느끼며 황제의 말을 낚아챘다. ‘잔망스러운 것, 어찌 지존의 말허리를 끊는가?’, 황제가 당장 짜증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고함을 서문경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발끈하여 저렇게 고함을 내지은 다음 이어질 것이 자신을 향한 매서운 호통이 아니라 메마른 기침 소리일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미 예견한 탓이었다.

“못된 것.” 누구인지도 모를 누군가를 향해 서문경이 혀를 찬 다음 황제를 보았다. “폐하.”

쿨럭쿨럭, 나뭇가지처럼 마른 손으로 제 입가를 틀어막고 황제가 기침을 했다. 메마른 기침 소리가 한 번 터져 나올 때마다 바짝 말라 하늘을 향해 진짜 날개처럼 솟아오른 황제의 날개뼈가 부서질 것처럼 튀어 올랐다. 금방이라도 피를 토하고 쓰러질 듯 창백한 황제의 낯빛을 보면서 서문경은 표정을 흐렸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굶주린 까마귀처럼 신경질적이고 손댈 수 없이 제멋대로인 사내였지만 동시에 어린애처럼 정에 굶주린 사람이기도 했다. 아마 이 사내는 지금 자신에게 그러하듯이 이전에도 자신과 같은 이방인에게 정을 갈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 떨어져 불안해하던 손님은 이 치의 거칠지만 맹목적인 호의에 마찬가지로 호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지에 발붙이지 못하고 붕 뜬 것 같던 발이, 이 자로 인해 겨우 이 땅에 닿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겠지. 

“······.”

그렇게 생각하던 서문경이 불현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랬나.’

서문경은 이마를 찌푸린 채, 황제를 곁눈질로 훔쳐보고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냥 귀찮고 짜증스러운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런 거였다. 

자신이 사실은 저 황제에게 위로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서문경은 조금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그랬다, 하고 서문경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버릇없는 어린애처럼 난폭하고 제멋대로에다, 남의 집 애처럼 제 마음대로 훈육할 수도 없어 짜증스럽기까지 한 사내였지만 저 치만큼 자신을 필요로 해 준 사람도 없었다. 이 ‘세계’에서 자신을 비웃지도 않고 경멸하지도 않고 또 구경거리로 삼지도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호의를 보인 것은 저 남자가 유일하다시피 했다. 그러니 그럴 수밖에. 서문경은 거칠게 턱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폐하, 하고 서문경은 나직해진 목소리로 황제를 불렀다. 망설이다가 황제의 등을 쓰다듬으며 ‘괜찮으십니까?’, 하고 묻자 황제가 겨우 숙였던 고개를 들어 서문경을 바라보았다. 동양화처럼 단아하던 황제의 검은 눈이 생리적으로 배어 나온 눈물과 형형하게 선 핏발로 엉망이었다.

“폐하, 이것을.”

서문경이 황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황제가 뭐냐, 하고 묻는 것처럼 한 쪽 눈을 치켜떴다.

“그러니까···.”

서문경은 무작정 내민 손을 민망스레 꼼지락거리며 잠시 고민했다. 뭐가 좋을까.

‘고뿔 걸린 병아리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서문경의 머릿속에 문득, 오늘 자신을 보자마자 황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병아리, 좋아하십니까.”

“병아리? 그 노랗고 조그마한 새 말이냐.”

하는 황제의 대꾸를 듣고 서문경은 눈치 챘다. 

“병아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시군요.”

“무어? 그림으로는 본 적이 있다.” 서문경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는지 황제가 발끈해서 대답했다. “그리고 지존이 그 딴 하찮을 것을 보아 대체 어디다 쓰누.”

그렇게 입 속으로 중얼거리며 황제가 서문경의 손을 힐끗 곁눈질했다. 제 드높은 자존심이 상처 받을까 차마 말로는 꺼내지 못했지만, 너는 본 적이 있느냐 묻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예, 몸집은 작고 온 몸에 난 노란 털은 보송보송하고 까만 눈은 반지르르 물기가 돌고 노오란 부리는 자그마해서 귀엽습니다.”

“누가 그런 것이 궁금하다 했느,”

서문경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쫑긋거리면서도 관심 없는 척 팩 고개를 돌리던 황제가 갑자기 멈칫했다.

“이게 병아리란 겁니다.”

서문경이 두 손을 황제의 턱 밑에까지 내밀며 말했다. 황제가 홀린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정신없이 서문경의 손 위를 살펴보았다.

서문경의 두 손바닥 위에 작고 노란 새 한 마리가 올라 서 있었다. 황제의 시선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노란 새가 까만 눈으로 황제를 올려다보다 갑자기 조그만 부리를 열어 삐익, 하고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 작고 가련해서 서문경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린 채 한 쪽 눈을 찡긋했다. 

알 수 없는 조바심과 간지럼증에 서문경이 손을 움찔거리고 있으려니 노란 새가 고무로 만든 갈고리 같은 발로 오종쫑 뛰어서 서문경의 손가락 끝에 가 섰다. 노란 새가 있는 줄도 몰랐던 조그만 날개를 펴고 푸드득 몸을 털더니 다시금 황제를 향해 빽 울었다. 황제가 노란 새의 동그란 머리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다, 새의 머리에 손가락 끝이 닿기 직전 서문경에게 물었다.

“이거, 만져도 되는 건가?”

“되기야 할 테지만.”

서문경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황제의 손가락이 새의 머리를 툭 건드렸다. 

“어?”

눈을 동그랗게 뜬 서문경이 멍청한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병아리에 정신이 팔린 황제는 여전히 병아리를 노려보듯이 하고 있었다. 황제가 손가락에 힘을 주자,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노란 새가 서문경의 손바닥으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새의 머리에 닿았던 자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황제는 뒤늦게 새가 나가떨어진 것을 보고 당황한 듯 눈을 끔뻑거렸다. 그 꼴을 새가 파드득 날개를 털면서 노려보고는, 항의하듯 빽빽 울었다. 그 맹랑한 꼴을 보고 기가 막혔는지 황제가 화를 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허, 하고 헛웃음만 터뜨렸다.

“이게 병아린가?”

“정확히는 병아리의 모습을 본 떠 만든 환상이지요.”

서문경이 대꾸하며 제 두 손으로 천천히 깍지를 꼈다. 서문경의 두 손바닥이 맞닿으면서, 그의 손바닥 위에 있던 병아리의 모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더 정확히 말씀 드리자면, 제 기억에 바탕을 둔 환상입니다.”

“이것이 그대의 ‘힘’인가?”

“그런 모양입니다.”

황제가 서문경의 손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흐음, 하고 무슨 뜻인지 모를 신음을 흘렸다. 두 손을 맞잡고 있던 서문경이 자신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황제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등 뒤로 자신의 손을 숨겼다. 황제가 중얼거렸다.

“환상이라.”

“제 기억에 바탕을 둔 환상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제가 모르거나, 본 적이 없는 것은 만들어 낼 수 없어요.”

예를 들면, 하고 서문경이 말을 이었다.

“제가 호랑이를 만들어 봐야, 그 호랑이는 볕에 누워서 낮잠만 자대고 배고프면 먹이를 내놔라 뒹굴 거리다가 귓가에 윙윙거리는 날벌레들이 귀찮으면 꼬리로 날벌레들을 쫓고, 때때로 쩍쩍 하품을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할 겁니다.”

“···그런 범이 세상에 어디 있어.”

“제가 본 호랑이는 다 그랬습니다.”

사파리라든가 사파리라든가 사파리 등에서 말이지.

“더구나 힘을 찾은 직전에는 저 외엔 만질 수도 없었는데, 힘이 안정되면 환상도 같이 안정 된다고 했었으니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폐하께 하등 도움이 될 것이 없는 힘이라 그겁니다.”

아직도 의혹이 가득 차 있는 황제의 시선을 피하며 서문경이 말을 맺었다. 

“그리고 폐하뿐만이 아니라 수상, 그 자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힘입니다. 그래, 다른 자들의 말을 빌자면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는 힘이지요. 아니, 사실은 힘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지요.”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서문경이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누구도 탐내지 않는 힘입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오늘 이후에도 제가 기댈 곳은,”

서문경의 눈이 보란 듯 황제를 힐끗 쳐다보았다. 

“폐하밖엔 없단 말씀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황제는 서문경을 빤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자신을 말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는 황제의 눈을 피하면서 서문경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붓으로 그린 것처럼 수려한 눈매 속에 들어 있는 황제의 눈은, 아이나 짐승의 눈이 그렇듯 유난히 검은자위가 커서 이렇게 응시 당하고 있자면 때때로 숨이 막혔다.

“예전의 그 치들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만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자를 어찌 믿으라 할까. 나는 그 치들처럼 당신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다,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찌 마냥 신뢰하라 할까,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조차 완벽히 믿을 수 없는 말을. 

그러니 나를 믿으라는 말보다는 이 편이 옳았다.

“저는 어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서문경이 황제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실망하셨습니까.”

“······.”

“그래서 버리시렵니까.”

나는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가 아니라 버릴 수 ‘없다’. 

나는 당신을 버릴 수 ‘없으며’, 오히려 누군가를 버릴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 쪽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서문경은 선택권을 황제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답을 구하듯 물끄러미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당황한 듯 황제가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어쩌시겠습니까.”

그대로 놓아두면, 영원히 이 침묵이 깨지지 않을 것 같아서 서문경이 재촉했다. 황제가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예, 폐하.”

“더 만들 수 있느냐?”

“예?”

뜬금없는 말에 서문경이 황당해하며 되물었다.

“아까 그것 말이다.”

황제가 말하며 서문경의 손바닥을 툭 쳤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설마, 하고 서문경이 중얼거렸다.

“병아리, 말씀이십니까?”

“그래, 병아리.”

네까짓 게 말해주지 않아도 원래부터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듯 황제가 거만하게 가슴을 피고 거드름을 피웠다. 뭐 저렇게 회복이 빨라? 순식간에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황제를 보고 서문경이 당황해하다가 도리질을 치며 다시금 물었다.

“그런데 병아리는 어째서.”

“네 놈과 닮았다.”

서문경이 꾹 입을 다물고 검지로 제 턱을 가리켰다, ‘저요?’ 

“그래, 경아 너와 닮았다.”

“태어나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기가 막혀 서문경이 중얼거리자 황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서 고마우냐. 서문경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황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진심으로 내가 그 말을 기뻐할 거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검은 쪽이 좋겠다.”

“예?”

황제가 옳다, 하고 무릎을 치며 내뱉은 말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서문경이 눈을 홉떴다.

“털이 검은 쪽이 좋겠다. 그리고 꼬리는 좀 더 길고, 몸집은 조금 날렵한 것이 좋겠다.”

신이 나서 말하는 황제를 조금 두려운 눈으로 훔쳐보다가 서문경이 물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짐의 말대로 환상을 만들라. 그것을 보여 화국(畵局)의 화원(畵員)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도공(圖工)을 불러 조각을 만들고, 악사(樂師)에게는 노래를 만들라 이를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노래는 나라의 큰 연회(宴會)에서 부르도록 하며, 그림과 조각은 짐의 침전에 장식도록 할 것이니라.”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경아, 너는 짐을 위해 무대를 꾸며라. 경이 네 놈을 닮은 검은 새들이 나오는 연극이 좋겠다. 아니, 그림자 연극도 좋겠다.”

“왜 제가 그런 일을 해야.”

서문경이 서둘러 항의했지만, 황제는 그 항의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황제의 말에 항의하기도, 대꾸하기도 지친 서문경이 입을 닫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힘이 황제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처음의 의도는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설마.’

문득 등골을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예감에 서문경은 이맛살을 구겼다. 설마 저 인간과 어울려 줘야 하는 것도 모자라서 광대 짓까지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하고 서문경은 중얼거리며 손바닥으로 슬슬 팔을 비볐다. 날이 추워서인지 팔에 잔뜩 소름이 돋아 있었다.

“폐하, 가시지요.”

서문경이 들떠서 뭔가를 계속 지껄여대고 있는 황제를 불렀다. 생각을 방해 받은 황제가 찌푸린 눈으로 서문경을 노려보았다가, 곧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싱긋 웃었다. 차라리 소리를 질러라. 서문경이 달처럼 굽어진 황제의 눈을 보고 생각했다. 왜인지 팔에 돋은 소름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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