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외전 1 : 애 아빠 공방전
요즘 내 동생은 분위기가 바뀌었다.
부드럽고 여유가 넘치는 남자의 모습이라고 할까. 나이는 겨우 스물둘이 되었을 뿐인데, 벌써 제법 아기 아빠의 분위기가 났다. 물론 여전히 팬들의 찬사를 받는 파릇파릇한 청년 배우인데다가 내가 누리를 가졌을 때 설이가 미국에서 찍었던 영화가 히트를 친 덕에 이제는 해외에서까지 유명한 스타가 되었지만 말이다.
혹자는 배우 한설이 ‘천의 얼굴을 지닌 남자’라고 말했다. 제 나이또래의 어린 청년의 느낌이 나면서도, 눈빛에서는 어쩐지 인간이 아닌 신비로운 생명체의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설명도 있었다. 게다가 마치 일찍 결혼하여 아내와 자식을 둔 남자처럼 절제된 성숙미까지 풍기고 있어서 그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여인이 없을 거라는 찬사가 적힌 잡지도 읽은 적이 있다.
설이는 드라마와 영화를 종횡 무진하면서 냉혹하고 감정이 없는 캐릭터도 연기하고 때로는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설이가 가진 얼굴이었다. 나는 설이를 찬양하는 기사 댓글들에 공감하고 팬 사이트 내에 글을 올리느라 아주 바빴다.
그렇게 최근 나는 설이의 팬 사이트 설국지색 안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그건 누리가 많이 커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리는 첫돌이 되기 전부터 실리콘 수저를 쥐고 스스로 이유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도라 아주머니 말로는 먹여주지 않으면 잘 안 먹으려고 하는 아기들이 많다던데, 누리는 뭐든 혼자 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기 의자에 앉혀두고 수저를 쥐어주면 비록 포동포동한 볼 살에 이유식을 잔뜩 묻힐지언정, 아주 천천히 떠서 제 입에 넣으면서 차분히 식사했다. 그 결과, 목에 매어준 거즈 수건에도 점차 이유식을 많이 흘리지 않게 되었고, 점잖게 오물거렸다. 아주 조그마한 신사분이셨다.
"바바… 바!"
눈을 빛내며 내게 자주 말도 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이를 닮아가는 누리의 외모는 그 예쁘장하고 고결한 분위기까지도 딱 우리 설이었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눈을 예쁘게 뜨고 내게 조그마한 입술로 부바바 거릴 때에는 앙증맞은 우리 아기의 뺨을 깨물고 싶은 걸 참느라 정말 힘들었다. 나에게 안겨 내 손가락을 꼭 쥐고 행복해하는 누리를 둥기둥기 얼러줄 때마다 우리 아기의 천사 같은 귀여움으로 끙끙 앓을 정도였다.
누리가 도라 아주머니께는 그렇게 자주 말을 걸지 않는다고 했다. 설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바깥 일로 바빠서 자주 곁에 없는 설이에게는 낯설게 군다고 해도, 늘 돌봐주시는 도라 아주머니께도 우리 아기가 점점 미지근한 표정을 보낸다는 것이 신기했다.
감정표현이 풍부해지면서 누리는 내게만 애교가 늘었다.
"우리 아기 도련님이 울지도 않고 맘마도 잘 먹는데, 갈수록 엄마를 밝히네요."
도라 아주머니는 내가 가벼운 외출을 다녀올 때마다 누리를 달래느라 애쓰시는 모양이었다. 내 앞에서는 늘 순하고 불만 없는 착한 아기인데, 집 안에 내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울고 불고 떼를 쓰기 시작해서 도라 아주머니를 당황시켰다.
그러다가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눈물 젖은 예쁜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마아…! 하고 기쁜 얼굴을 했다. 나는 그런 누리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러워서 점차 외출이 줄었다. 근처 편의점에 가는 일조차 미안하게도 경호원 형님들께 심부름을 시키기 일쑤였다.
혹시라도 내가 몰래 외출한 것을 누리가 잠에서 깨어나 알게 되면,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내 외출은 필수불가결한 병원 진료 같은 것이었고, 한 시간 정도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누리의 화가 풀리지 않았으려나 기대했지만, 기억력 좋은 우리 아기는 외출하고 돌아온 나를 꽤나 험악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눈물까지 그렁그렁 매달고서 화난 얼굴을 한 누리의 얼굴은 어릴 적 나 혼자 학교를 다닐 때의 설이 얼굴을 떠올리게 해서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고 말았다.
"우리 아기, 아직도 화났어요? 엄마 이렇게 왔잖아요. 응?"
"……부으으으."
불어서 넘길 만큼 머리카락이 길지도 않은데, 동그란 입술로 훅 숨을 불어내며 누리는 바닥에 냅다 엎드려 토라졌다. 내가 미워서 내 얼굴을 보기 싫다는 표현인 것 같았다. 기저귀를 차서 빵빵 해진 엉덩이를 내보이며 바닥에 엎드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웃음을 참으며 사진을 얼마나 찍어댔는지 모른다.
"아유, 아기 도련님 여태까지 무서운 표정하고 맘마도 안 먹었어요."
도라 아주머니께서는 내가 돌아오자 겨우 안심의 한숨을 깊게 내쉬며 소파에 기대 앉으셨다. 고집 센 누리 때문에 내가 병원에 갈 때마다 고군분투하시는 게 죄송스러웠지만, 마냥 순하기만 했던 찹쌀떡 같은 우리 아기에게 고집이 생겼다는 게 나는 너무 웃겼다.
감히 혼자 집 밖에 나갔다 온 나에 대한 화를 감당하지 못해서, 엎드린 우리 아기에게는 귀와 꼬리가 튀어나왔다. 내 웃음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움찔거리는 하얀 솜 덩어리 같은 귀도 깜찍했고, 기저귀와 배 바지 밖으로 튀어나온 몽실몽실한 꼬리가 바닥을 콕! 치는 것도 숨 넘어갈 정도로 귀여웠다.
설이가 스케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우리 아기의 토라진 모습을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이거 봐, 이거 봐. 너무 귀엽지. 깜찍하지?"
"응. 그러네."
설이는 조용히 웃으며 내 머리꼭지에 입 맞추고 나를 끌어안았다.
아기가 생기고 나서 우리의 관계는 형제나 연인보다는 확실히 부부에 더 가까워졌고, 부쩍 깊어진 설이의 눈매를 바라볼 때면 낯설 정도로 심장이 찌릿거리는 걸 느꼈다.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천천히 내려와 목덜미를 간질이는 길고 섬세한 손가락에 숨이 자꾸 거칠어졌다.
"형, 나 안 보고 싶었어?"
입술을 만지작거리는 손길과 내리깐 시선,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를 자극했다.
"…나는 하루 종일 형이 너무 그리웠는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유혹적으로 느껴지는 설이의 눈동자를 홀린 듯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내 얼굴이 바로 붉어졌고 설이는 피식 웃으면서 상냥하게 미소 짓는 얼굴로 내 입술을 향해 다가왔다.
어쩌면 이렇게 섹시한지 차마 키스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설이를 바라볼 수 없어서 나는 늘 입술이 맞닿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입을 맞추며 은은하게 빛나는 그 눈동자를 마주보다가는, 감동이 지나쳐 심장마비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다. 감각적인 혀끝이 내 입 안을 살살 건드리다가 강하게 쪽 빨아올리면 나는 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으응… 설아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목소리는 마치 유혹하듯 가늘게 비음이 섞여 있었다.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가 다시 각도를 바꾸며 맞닿으면, 나는 이미 설이의 손에 의해서 침대에 등을 기대고 누운 자세가 되었다. 내 위로 올라탄 설이가 뜨거운 숨을 내쉬며 옷 속으로 미끄러지듯 손을 집어넣어 내 허리를 쓸었다. 가벼운 애무에도 금방 발기해서 허벅지에 힘이 풀리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지만, 이건 전부 설이가 지나치게 섹시하고 야하고 멋진 탓이다.
"으응, 읍…"
야릇한 분위기가 깊어질라치면 꼭 칭얼거리는 우리의 아기 때문에 나는 교성을 내지를 것 같은 순간마다 입술을 꾹 깨물며 신음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누리는 첫 돌이 되면서부터 우리 두 사람의 침실 바로 옆 방에서 베이비 캠을 설치한 뒤 혼자 재우기 시작했는데, 오피스텔 벽이 얇은 것도 아닌데 내가 조금만 흥분해서 소리를 내도 누리가 울며 나를 찾았다. 그럴 때는 도라 아주머니께서 계셔도 소용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거의 욕구불만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사람은 늘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깨우치는 법이다. 신음을 참아내다 보니, 어느 정도 누리가 알아채지 못하게 관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으응… 헉… 아…! 안 돼, 읍……"
나는 엎드린 채 손에 뭉쳐 쥔 침대 시트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내 등 뒤에서 허벅지 사이를 더 벌리며 꾸욱 밀려들어오는 뜨겁고 단단한 설이의 귀두 때문에 빠듯한 통증을 느끼며 헉, 숨을 들이켜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진득한 키스와 애무로 한참을 풀어줬는데도 불구하고, 늘 새롭게 느껴질 만큼 발기한 설이의 남근은 너무나도 굵고 딱딱했다. 끈적이는 선액과 지나칠 정도로 많이 흘려 넣은 젤로 범벅이 된 엉덩이가 미끈거렸지만, 볼기를 벌리며 삽입해오는 그 느낌만큼은 아직도 익숙해지지를 않았다.
"하아. 형, 괜찮아?"
"으… 으으……"
나는 가까스로 손등에 내 입술을 꾹 눌러 막은 채로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는 후우, 뜨겁게 숨을 내쉬면서 내 등에 제 넓은 가슴팍을 밀어붙였다. 손바닥으로 내 아랫배를 쓰다듬듯이 만지작거렸다. 제 것을 찔러 넣으면 불룩하게 모양이 변하는 내 아랫배의 피부를 쓸며 얼마만큼 들어갔는지 가늠하듯이 만지던 손가락은 익숙하게 조금 더 아래로 내려왔다. 아랫배와 옆구리 사이로 여전히 길게 남은 수술의 흔적을 조심스럽게 더듬다가 설이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나는 내 머리 옆을 지탱하며 짚고 있는 설이의 핏줄 선 손등을 쓸면서 작게 웃었다.
"으응… 이제 정말 괜찮다니까……"
내 뒷목에 간지럽게 촉, 입을 맞추면서 설이는 말 대신 부드러운 입술로 내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사실 나는 그 정도 수술의 고통과 임신의 괴로움으로 우리 아기를 갖게 된 것이라면, 충분히 감내할 만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던 설이의 입장은 또 다른 모양이었다. 설이는 어쩌면 아주 영영 사라지지 않을 수술의 상처를 볼 때마다 어루만지며 내게 사랑을 맹세했다. 그게 기쁘기도 하고, 아주 뿌듯했다.
내가 다정한 남편을 갖는 행복을 느끼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것도, 하나뿐인 동생으로.
내 다정한 남편은, 자신이 짐승의 본능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내게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불시에 하체를 밀어붙였다.
"아응…!"
나는 소리를 내지르고, 깜짝 놀라서 베이비캠 화면을 연결해둔 디바이스의 모니터 쪽을 휙 돌아보았다. 아주 감사하게도 우리 아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설이는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처럼 허리를 뭉근하게 쳐 올리며 괴롭혔다. 안으로 깊이 밀려드는 압박감에 나는 헉, 하고 숨을 참았다. 뱃속이 경련하듯 움찔거리고 엉덩이를 들고 있느라 침대를 짚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설이는 내 귓바퀴를 살짝 깨물면서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반쯤 감싸듯이 가리며 내 귓가에 뜨겁게 속삭였다.
"…형. 내가 입을 막아줄 테니까, 소리 내도 괜찮아."
조금 짓궂은 목소리와 함께 내 입가를 덮었다. 그 손의 부드러운 촉감 때문인지 마음이 놓였고, 나는 입술 사이로 작게 신음을 내질렀다. 허리에 힘이 조금 빠져 느슨해진 것을 틈타 설이는 내게 몸을 더 찰싹 맞붙여왔다. 굵고 뜨거운 것이 나를 꿰뚫으며 더 깊숙이 들어왔다.
빠듯하게 몸 안쪽이 벌어지는 느낌과 함께 허리가 푹 꺾였다. 삽입의 충격으로 허벅지까지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려오는 내 몸을 반대편 손으로 지탱하며 설이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후… 이제 완전히 들어갔어."
만족스러운 숨이 섞였다.
다정한 나의 동생은, 내가 몸 안에 가득 들어찬 제 것에 적응하는 시간을 주려는 듯 그대로 잠시 시간을 가졌다.
무릎으로 침대 시트 위를 지탱한 자세로 버티기 힘들어서 떨리고 있는 내 다리를 밀어 그대로 엎드리게 했다. 내 등 뒤에서 나를 납작하게 누르듯이 제 체중을 싣고 내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꽃잎 같은 입술을 내렸다. 아무래도 체격 차이가 꽤 나는 편이기 때문에 설이가 그 상태 그대로 나를 짓누르면 나는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설이는 적당히, 내가 괴롭지 않을 만큼 기분 좋은 압력으로 나를 누르면서 조금 더 깊숙이 내 엉덩이 사이로 허리를 바짝 붙이며 들어왔다.
"아응…! 읏, 응……"
콧소리를 내는 것처럼 나는 신음을 웅얼거렸다.
"형, 좋아?"
속삭이는 목소리로 설이는 내 어깨에 뺨을 비볐다.
"나는 너무 좋아, 형……"
뱃속을 가득 채우는 빠듯한 부피감이 어느새 내게 이런 편안함을 주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마치 이대로 설이와 하나로 겹쳐져 있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라고 느끼는 것처럼 내 몸은 흥분으로 녹진해졌다. 설이의 성기가 더 깊은 곳에 들어올 수 있도록 뱃속에서 자리를 내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더는 참기 힘들다는 듯 뜨거운 숨을 내 뺨에 내뱉으며 설이는 허리를 가볍게 쳐 올렸다.
"아으응……!"
헉, 숨을 멈추며 눈을 크게 뜨자 설이는 작게 웃었다.
"노팅하지는 않을 거야, 너무 겁 먹지 마. 형."
색정적으로 축축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끓듯이 속삭였다. 두려울 정도로 흥분한 주제에 설이는 잘도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또 다시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 희귀한 수정을 내 몸이 두 번이나 받아낼 수 있을 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설이는 수술 이후 내 몸을 불면 날아갈 깃털마냥 더욱 애지중지하기 때문에 노팅할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이와의 밤은 부드럽게 흘러가지도 않았다.
읏… 으응… 읏, 아으…!
젖은 피부가 철썩거리며 맞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뼈가 닿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격렬한 마찰이 시작됐다. 나는 침대 시트 위에 엎드린 채 짐승처럼 흥분한 남자가 나를 위쪽으로 쳐대는 몸짓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설이는 이따금 무릎으로 내 허벅지 사이를 더 벌려내며 내게 바짝 달라붙었다. 뜨거운 기둥이 내 몸 안을 깊숙이 헤집었다.
감전된 사람처럼 정신이 아득히 멀어졌다가 끊어지듯이 점멸하는 와중에도, 나는 최대한 신음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타액으로 젖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곳을 정확하게 찌르며 문지르는 설이의 허릿짓에는 이성을 잃고 소리를 냈다. 그나마 설이의 손바닥 안에 입술이 갇혀 있었기에 신음이 뭉뚱그려져 작게 새어나가는 것이 다행이었다.
끙끙대고 소리 참아내며 뒤에서 치받는 뜨거운 몸짓에 몸을 덜덜 떨었다. 몰래 숨어서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흥분은 빠르게 고조되었고, 나는 설이의 손 안에서 금새 파정했다. 뒤를 찔러오는 자극에 찔끔거리며 몇 번에 걸쳐 전부 내보냈다.
"으… 나, 했어어… 그, 설아, 으응… 그마안……!"
그렇지만 늘 나보다 한참은 더 늦게까지 빳빳하게 선 채로 남아 있는 설이의 뜨거운 기둥은, 이미 늘어진 내 몸을 깊숙이 꿰뚫으며 한참 나를 괴롭혔다.
"읏, 사랑해… 형……"
등 뒤에 바짝 붙어 어깨를 깨물면서 속삭였다. 그 뜨거운 고백이 없었더라면, 나는 울며 애원하는 와중에 정신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리를 두 손으로 그러쥐고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는 몸짓에 나는 두 손을 모아 스스로 입가를 짓누르며 신음을 참아냈다. 은밀하고 뜨거운 이 행위가 다 끝날 때까지 누리가 잠든 채로 있어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베이비캠 모니터 안에서 천사처럼 잠든 누리의 모습이 보이면, 설이는 파정한 뒤에도 나를 놔주지 않았다.
"혀엉……."
나른해진 내 몸을 껴안은 채 설이는 덩치 큰 개처럼 내게 뺨을 비비고 콧잔등을 맞대면서 애교를 부렸다. 나는 겨우 떨리는 손을 뻗어 땀으로 젖은 설이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후희를 즐겼다. 설이는 어둠에 젖은 다정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면서 내 손을 제 손으로 덮으며 손가락을 엇갈려 끼웠다. 우리는 겹쳐진 채로 반지를 낀 서로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두 사람에게서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설아, 반지 둘이 같이 있으니까 예쁘다. 그렇지?"
"형이 더 예뻐."
나는 순정만화 속 주인공처럼 속삭이는 설이의 목소리에 늘 그렇듯 소년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설이의 손가락에 반지를 몰래 끼워주었던 그 날, 낮잠에서 깨어나자 나보다 먼저 깨어 기다리고 있던 설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 옆에 팔로 머리를 지탱한 채로 누운 설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고, 포근한 별장 안에서 우리는 조용히 마주보며 웃을 뿐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수줍고, 영원을 알고 있는 신처럼 여유로운 그 미소가 나를 더 없이 행복하게 만들었다. 설이는 내가 반지를 끼워준 손으로 내 손등을 간질였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선물한 반지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인지 설이는 그 다이아몬드 링을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그래서 집에서뿐만이 아니라 스케줄을 갈 때에도 늘 끼고 다녔다.
아무래도 설이는 연예인이고, 스캔들에 민감한 직업이기 때문에 장신구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게다가 왼손 약지에 낀 반지는,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들키기 너무나도 쉬웠다. 그게 불안해서 반지를 목걸이에 걸어서 착용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했는데, 설이는 고집스럽게도 꼭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다녔다. 설상가상으로 반지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았다'고 말하며 보기 드물게 환한 미소까지 보여줘 버렸다. 그것으로 배우 한설의 '비밀 결혼설'이 다시 물 위로 떠오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것만 봐도, 누리가 누구의 고집을 닮았는지 명백하게 보였다.
***
"아이고,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제가 손만 대도 아기가 우네요."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은 진땀을 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지쳐 포기한 얼굴이었다. 그루 엔터테인먼트 홍보 팀 소개로 아동 의류 브랜드 고문 스타일리스트를 소개 받아서 누리의 돌 사진을 찍게 되었는데, 치수를 재는 것부터가 이미 쉽지 않았다.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은 배우 한설을 꼭 닮은 조카 아기를 만날 수 있음을 무척이나 영광스럽게 생각했고, 내게 누리를 모델로 데뷔시킬 생각이 없는지 초반에는 계속 은근하게 제의를 해왔었다. 우리 아기가 부모인 나와 설이의 눈에만 예쁜 게 아니라 모두가 보자마자 사랑에 빠질 만큼 사랑스럽다는 점은 흐뭇했지만, 나는 누리까지 설이처럼 연예인을 시킬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어색하게 웃으며 계속 그 제의를 거절하던 차였다.
"우우… 마아…!"
누리는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낯선 사람이 줄자로 조그마한 몸의 이곳 저곳 치수를 재는 것이 무척이나 불만스러운 듯 했다.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이 말을 시키거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누리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며 제가 화났음을 끝없이 어필했고, 나를 보면서 그런 스타일리스트 선생님의 만행을 이르듯이 울먹이는 눈빛을 했다. 급기야 사진 촬영 직전에 감히 모르는 사람이 제 옷을 갈아 입히려고 하는 것이 서러웠던 모양이다. 예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으앙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누리 아버님! 와주셔야겠어요!"
스텝들이 안아서 달래면 울음소리는 더 커졌기 때문에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꼬까옷을 입은 누리를 안아 들었다.
첫돌이 되면서 낯가림을 시작한 우리 아기는, 모르는 사람이 건드리는 것조차 싫어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무리 얼굴을 아는 사람이더라도,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 예쁘다며 안아주면 난리가 났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거의 자지러질 정도로 울다가 축 늘어지는 수준이었다. 결국 프릴이 달린 귀족 풍 꼬까옷을 입은 누리는 눈물로 얼굴이 범벅이 되어버렸고, 이대로는 사진 촬영이고 뭐고 안 되겠다 싶어서 촬영 중반에 그만두었다. 스타일리스트 선생님 쪽에서 준비해준 이벤트가 많았지만, 누리는 훌쩍이며 내 품에 안겨서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촬영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누리는 기본적으로 완고한 성격이었다. 스킨십에도 어찌나 엄격한지, 설이와 나와 도라 아주머니 이외에는 손도 못 잡게 했다. 그 작고 하얗고 보드라운 손을 잡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달 이상은 꾸준히 얼굴을 익혀서 '안전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전까지는 한동안 그 사람이 위험 인물이나 적군은 아닌지 확인하듯이 속눈썹이 긴 예쁜 눈동자를 깜빡이며 열심히 탐색하는 아가 탐정이었다.
그나마 갓난아기일 적에 미국에서 자신을 돌봐줬던 로빈의 냄새를 기억하는지, 멀리서 온 로빈 까지는 참아주는 얼굴이었다.
"어쩜 이렇게 예쁘게 컸죠? 우리 베이비, 정말 금방 크네요!"
돌잔치를 위해 한국으로 방문한 로빈은 부쩍 큰 누리를 안아보며 신기해 했다. 갓난아기일 적보다도 설이와 더욱 판박이처럼 똑같다며 감탄했다.
경호원 형님들과 도라 아주머니, 우정혁과 로빈 씨가 참여한 파티는 제법 시끌벅적했다. 프라이빗한 원테이블 레스토랑을 빌려서 돌잔치를 진행했는데, 외부 인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경비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도 그럴 게, 누가 봐도 설이와 내가 누리의 부모인 것이 한 눈에 보이는 파티였기 때문이다. 설이와 나는 정장을 맞춰 입었고 누리가 돌잡이를 하는 순간에 우리 아기를 함께 내려다보며 손을 잡고 있었다.
누리는 전통 식으로 차려진 돌상을 앞에 두고도 내 옷자락만 고집스러울 정도로 잡아당겼는데, 자신이 뭔가를 손에 쥐어야만 이 이벤트가 끝난다는 걸 깨달았는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리고는 돌상 안에서 나무로 만든 장난감 활을 골라 쥐었다.
"아, 어떡하지? 우리 누리 너무 용맹해. 활을 골랐어, 설아."
돌 빔을 예쁘게 차려 입은 채 근엄한 표정으로 활과 화살을 손에 쥐고 있는 누리의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행복에 젖었다. 설이는 그런 내 곁에서 조용히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뺨을 슬슬 쓸었다.
누리의 조그만 손가락에는 마디마다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은 우정혁이 선물한 것이었다. 돈 없는 백수가 이렇게 큰 금반지를 사면 파산되는 거 아니냐고 걱정스레 물었더니 우정혁은 픽 웃으면서 활과 화살을 든 누리의 사진을 신중하게 골라서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
우정혁은 제 아버지의 감시에서 벗어나 제 나름대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저렴한 값으로 녹음실을 빌리고 음반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 레이블 사업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정혁은 고등학생 시절에도 방구석에서 혼자 기타 줄을 튕기면서 지냈던 듯 하다.
얘가 전부터 그런 쪽에 취미가 있었지.
제가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해서 그런지, 최근에는 인상이 좀 훤칠해졌다. 우정혁은 제 휴대폰 배경화면의 누리를 감상하며 내게 불쑥 말했다.
"너네 반지 나눠서 꼈더라."
"어?"
"너야 예전부터 끼고 있었지만, 저 녀석한테는 네가 줬을 텐데… 한준, 너 치고는 꽤나 대범한 행동이었네?"
사람들 사이에서 누리를 안아 들고 있는 설이 쪽을 무심코 돌아보았다. 긴 손가락에 눈부신 반지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났다. 누리는 제 아빠가 높이 올려주는 게 재미있는지 보기 드물게 까르르 웃었고, 그 모습이 아기 요정처럼 깜찍하고 귀여워서 주변 사람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끙끙 앓았다.
나는 괜히 쑥스러워져서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뭐, 저기, 아무래도 설이는… 연예인이니까 반지 끼는 건 좀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래도 이왕이면 의미 있는 걸 주고 싶고 그래서… 뭐, 안 끼고 다녀도 괜찮은데… 글쎄, 내가 준 거라고 설이가 꼭 저렇게 끼고 다니더라… 하하…!"
딱히 자랑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말하다 보니 또 동생 자랑이 되어버렸다. 우정혁은 내 동생 자랑을 들을 때 늘 그러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한숨처럼 웃으며 말했다.
"뭐, 잘한 것 같다. 이제 애도 있는데 반지 정도는 나눠 껴야지."
"응…. 그렇지?"
뿌듯한 미소로 설이 쪽을 다시 바라보자, 누리에게 쌀 과자를 먹이고 있던 설이가 내 시선을 눈치 채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세상 가장 근사한 미소로 내게 웃어주었다.
설이는 이제 아기 아빠이면서, 어떻게 여전히 그리스로마 신화 그림 속에서 빠져 나온 미의 화신 같은 모습으로 이다지도 단아하고 아름다운 걸까. 설이의 미소가 햇살처럼 내 마음을 환하게 비쳤다. 설이에게 푹 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우정혁은 질린다는 듯 혀를 찼다.
"그렇게 좋냐."
"아… 크흠, 뭐……."
"그러고 보니까, 네 동생 놈 새로운 의혹 기사가 또 화제가 됐던데."
"아, 그거."
"너희는 조용할 날이 없구나."
골치 아픈 일이었다.
설이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누리는 그저 조카일 뿐인 것으로 공식 발언을 했고, 그 뒤로는 묵묵히 스케줄을 이어나갔다. 물론 느닷없이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고 나타나서 태연하게 촬영에 임하는 설이의 태도에 주변 사람들이 당황하기는 했지만, 대놓고 그 반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청년 배우가 그런 의미심장한 반지를 끼고 나타나면 '연애설'이 뜨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설이의 경우에는 그게 ‘애 아빠 의혹설’로 번졌다.
***
"빠!"
첫돌이 되면서 서너 가지의 단어 정도는 발음할 줄 알게 된 누리가 즐겨서 말하는 것은 빠! 였다. 주로 내게는 마아- 하고 길게 응석 부리듯이 엄마라는 뜻으로 지칭하지만, 퇴근해서 돌아온 설이를 보면 기쁜 얼굴로 빠! 하고 발음했다. 언뜻 그저 옹알이처럼 보였지만, 제 나름대로 아빠를 뜻하는 단어였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내가 설이를 보여주며 "누리 아빠지? 아- 빠-." 하고 인식을 시켜주었던 것을 이해했던 것 같다.
누리에게 약간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서, 설이 휴일에 우리 세 가족이 함께 누리의 담당 의사를 만나러 병원에 방문했던 날이었다. 다행히도 누리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고 미지근한 보리차를 자주 먹이는 정도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 안 먹여도 돼서 다행이야. 그치, 설아."
"응."
아직 귀와 꼬리가 뜬금없이 튀어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누리는 우주복에 후드 모자까지 꽁꽁 싸매 입힌 채였고, 누리는 설이의 팔에 안긴 채 무척 들떠 보였다.
"누리 이제 집에 가자?"
"마! 아아-!"
아마 우리 두 사람이 동시에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들뜬 모양이었다. 우리 셋이 가족이라는 것을 누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셋이 함께 있을 때 누리는 안정감을 느끼고 기뻐했다. 그렇지만 설이의 스케줄이나 사람들 이목을 신경 쓰느라 셋이서 외출하는 일은 극도로 자제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누리에게는 부모와 병원 나들이를 가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인 것이다. 그게 어쩐지 안쓰럽게 느껴졌고, 그날은 날씨도 무척 화창했다.
"설아, 우리 병원 근처에서 잠깐 산책하다가 갈까?"
거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공원이 있었고 평일 낮이었기 때문에 사람 없이 한가로울 시간대였다. 모자를 눌러쓰고 뿔 테 안경에 후드까지 덮어쓴 설이는 얼핏 지나가면 그저 장신에 덩치 좋은 청년쯤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설이는 한 팔에 아기를 안은 채로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공원 쪽으로 걸으면서 나머지 한 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근데 설아. 너 이번 작품 끝났는데, 이제 샐러드랑 단백질 쉐이크 그만 먹어도 괜찮지 않아?"
"음."
영화 촬영 중이라 식단 조절을 해야 했던 설이는 제 탄탄한 가슴팍에 나를 더 깊이 끌어안으며 전보다 날렵해진 턱을 비스듬히 기울여 다정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그런 모습만으로도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설이의 상대역 배우들은 어떻게 이 매력적인 눈빛을 곧바로 마주보며 연기하는 걸까. 설이를 눈 앞에 두고 대사를 잊어버리지 않은 그들은, 그야말로 프로인 것이다.
"그만 먹어도 될 거야. 소속사 쪽에서 따로 지시 사항은 없었어."
"그러면 저녁에 갈비찜 먹을래? 서양식 갈비찜을 좀 해볼까 싶은데."
내가 하겠다는 것에 반대하는 일이 없고, 내가 차려주는 밥상에 단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은 착한 내 남편은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누리도 슬슬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기 시작했고, 도라 아주머니와 매일 누리 이유식을 만들다 보니 설이에게 아침과 저녁을 차려 먹이던 추억이 떠올라 그리워졌던 참이었다. 맛있는 고기 반찬을 해다가 우리 아기한테는 살코기를 조그맣게 잘라주고, 설이에게는 듬뿍 담아 먹일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렜다.
나무로 만든 다리 위를 건너면서 나는 설이의 팔뚝을 쥐고 신나서 조잘거렸다.
"이번에 산 주물냄비 말이야, 거기에 레시피가 딸려 왔는데 맛있어 보이더라. 우리가 늘 해먹던 거랑은 많이 다르겠지만… 맛이 꽤 괜찮을 거 같아!"
"응. 나는 형이 해주는 건 다 좋아."
순하게 대답하는 내 천사의 뺨에 발끝을 올려 진하게 입맞추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밖이었다. 인적이 드문 편이어도 누가 볼 수 있으니 가까스로 이성의 힘으로 참아냈다.
"아, 그러면 이따가 재료 배달 시켜야겠다. 양지살, 채끝살 좀 사다가 와인 넣고……"
평온한 대화라기보다 내 일방적인 수다를 이어나가던 도중이었다. 공원의 아름다운 가로수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구경하느라 조용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누리가 아우우, 하고 말했다. 조그마한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 솜사탕이네?"
누리가 먼저 발견한 먼 곳에 솜사탕을 파는 행상이 보였다. 공원 광장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토끼 모양으로 핑크색 솜사탕을 커다랗게 만들어서 몇 개씩 가게 가장자리에 꽂아두었다.
아직 아기인 누리의 눈에도 몽실몽실한 솜사탕이 예쁘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눈을 빛내며 아-… 하고 황홀한 듯 바라보는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누리의 입가를 닦아내며 웃었다.
"저건 솜사탕이야, 누리야. 먹고 싶어?"
키득키득 웃으며 묻자, 간단한 질문은 이해하는 누리가 우아 하고 대답했다. 대답이라기보다는 옹알이에 가까웠지만 반짝이는 눈동자는 솜사탕 쪽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저게 사실 완전히 설탕 덩어리인데 우리 아기에게 먹여도 되나, 아주 조금 맛만 보여줄까, 고민하고 있는데 설이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형, 솜사탕 먹고 싶으면 사줄게."
다정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물으면서 설이가 자상하게 내 뺨을 만졌다. 나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동시에 풉, 웃음이 났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귀여운 내 동생이 어느새 이렇게 커서 나를 아기 취급하고 있다니.
내 대답을 기다리는 설이의 고운 얼굴과 설이에게 안긴 채 기대에 찬 표정을 짓는 누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솜사탕 행상 주변에는 가족 단위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가 괜히 설이의 정체를 들켜서 사람들이 몰려들까 봐 우려되었다. 경호원 분들도 곁에 없고 우리 셋뿐인 상황이었다.
"형은 여기에 있어. 내가 금방 가서 사올게."
설이는 모자 캡 부분을 잡아 내리며 싱긋 웃었다. 다정하고 귀엽고, 매력적인 것은 혼자 다 하는 설이었다.
"아. 그러면 누리는 내가…"
설이에게서 누리를 건네 받기 위해서 손을 뻗었지만, 고집쟁이 천사는 내 말에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형 팔 아파서 안 돼."
누리가 이제 꽤 묵직해져서 오래 안고 있으면 팔이 저리고 허리가 뻐근할 정도였지만, 그래도 내가 우리 아기를 잠깐 안고 있는 정도로 힘들어할 약골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설이는 결국 나를 벤치에 앉혀둔 채로 누리를 고쳐 안고 성큼성큼 멀어져 갔다.
인파 속에서 있어도 금방 눈에 띄는 설이의 크고 날렵한 체격 탓에 벌써 행상 주변에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흘깃거리는 몸짓들이 보였다. 결국 나는 걱정 되어서 슬금슬금 그쪽으로 따라서 다가갔다.
설이는 핑크색의 커다란 토끼모양 솜사탕을 행상 주인에게서 건네 받았다. 그리고는 제 품의 아기가 솜사탕을 볼 수 있도록 가까이 보여주었다. 코앞에 몽실몽실한 솜사탕이 있으니, 그게 너무 신났던 우리 아기는 눈을 반짝이며 병아리 같은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빠아! 아빠!"
누리의 공식적인 외부에서의 첫마디는, 우렁차게 큰 소리의 ‘아빠!’였다.
아마도 그 말은 "아빠, 이거 보세요. 엄청 크고 예쁜 솜사탕이에요!" 정도의 감탄사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미 아기를 안은 남자가 배우 한설임을 확신하고 있었던지, 누리의 외침에 일순 조용해졌다. 누가 들어도 정확한 발음의 '아빠'였다.
"아… 안 되겠다."
나는 다급히 달려가서 손을 뻗었다. 겨우 후드만 덮어썼을 뿐이지만 어차피 나는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반인이었다. 그저 빨리 누리를 설이에게서 빼앗아 안아 들고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설아, 누리 이리 줘. 내가 안을게. 빨리 가자."
조그맣게 속삭이며 누리의 팔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는데, 이미 솜사탕 때문에 기분이 잔뜩 좋아진 우리 아기는 방긋 웃는 얼굴로 나를 보더니 환하게 표정이 밝아지며 외쳤다.
"어마아!"
놀라 헉, 숨을 들이키는 소리는 나뿐만이 아니라 배우 한설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 다가와 있던 여성들에게서 동시에 나는 소리였다. 나는 눈이 동그래진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어, 엄마, 엄마한테 가자… 하하… 어디에 계실까……?"
천상 배우 소리를 듣는 내 동생과 다르게 로봇처럼 뻣뻣한 나의 연기에 그들이 속아줄 리 만무했지만, 일단 나는 설이에게서 우리 아기를 빼앗듯이 안아 들고 공원 광장에서 벗어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느긋하게 솜사탕을 든 채로 내 뒤를 따라온 설이가 괜찮다는 듯 내 어깨를 토닥거렸지만, 누군가가 그런 우리의 뒷모습까지 몰래 동영상으로 찍어서 sns에 올렸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딱 애 데리고 산책 나온 부부의 뒷모습인데?'
누군가가 적은 댓글에 공감 버튼을 누른 사람만 수 백 명이었다. 짧은 영상 속에서 나는 누리를 안고 귀가 빨개진 채로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고, 뒤에서 따라와내 어깨를 감싼 설이가 솜사탕을 누리 쪽으로 보여주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영상의 캡쳐 사진이 연예 기사에 첨부되어 있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배우 한설의 조카로 알려져 있는 아기가 분명한 발음으로 한설을 '아빠'라고 지칭했으며 그에 대해서 한설이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설이는 아마 성격상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어디에 있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든, 전혀 개의치 않고 설이는 그저 내 기분만 살피는 성격이었다.
그 공원의 솜사탕 행상 앞에 있던 사람들은 누리가 나를 향해서 엄마, 라는 말을 했다는 것까지도 분명하게 들었다고 목격 글을 적어 올렸다. 그 덕분에 우리가 캘리포니아에 있었을 때 제기되었던 수많은 의혹들이 다시 물 위로 떠오른 것이다.
배우 한설에게 동성의 연인이 있고, 그 연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고 싶어서 미국에서 대리모를 구해 아기를 출산했다는 의혹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런 주장이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실제로 아기가 한설을 아주 많이 닮았고, 이제 그 빼 닮은 아기가 배우 한설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도 생긴 것이다.
미국에서 찍었던 몇 편의 영화 흥행으로 인해, 한설은 이미 해외에서도 꽤나 명사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자극적인 소재의 기사들은 세계적으로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그렇지만 증거라고 나온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아기를 안고 멀리 걸어가는 뒷모습뿐이었다. 그 영상에 내 얼굴은 아예 나오지 않았고 설이의 옆 얼굴도 어렴풋하게 찍혀 있었다. 다정하게 걸어가는 우리의 뒷모습과 누리의 뻗은 손, 그리고 솜사탕만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런 의혹은 더 힘을 얻지 못했다. 다만 팬 사이트들은 난리가 났다.
'애기가… 한설 혼자 낳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았어. 이건 대리모가 아니야. 인공 난자나 뭐 그런 거 아닐까?'
'저기요. 설 오빠가 이미 조카라고 공식적으로 말했었고요, 아기들은 원래 아무한테나 아빠라고 해요. 여기에 쓸데없는 소문 퍼트리지 마세요.'
'근데 한설 형이라는 사람이 아기 아빠라면, 아기 엄마는? 나 한설이 형 말고 형수님이라는 존재랑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어. 이상해.'
'아니, 동생이 공인이라고 해서 가족들까지 국민이 다 알아야 하나? 형이랑 형수는 일반인이니까 아가랑 조용히 살게 해줘라.'
'근데 한설이 아기아빠라고 생각하면… 왠지 섹시함.'
'다들 정신 차리자. 설이 오빠는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서 대리모도 뒀을 리가 없다. 시상식 옆자리에 가슴 드러난 드레스 입은 여배우들한테 시선 한 번 안 줬던 거 알잖아.'
'그럼 한설의 숨겨둔 남자친구가 애를 낳았다거나? 미안. 정신 줄 잡을게.'
설이는 왼손 약지에 반지를 늘 끼고 다녔고 그것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어떤 발표도 한 적이 없었다.
일반인으로 추정되는 애인이 있다는 소문은 계속 떠돌았지만 그건 단속할 만한 이슈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리모와 출산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루머들은 한설의 이미지에 흠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그루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한설의 대리모 의혹에 대해서 사실 무근의 근거 없는 소문들에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수준의 글을 쓴 사람들을 고소했다. 그렇게 ‘한설 애 아빠 소동’은 마무리되어 갔다.
그러나 그 뒤로 누리는 말이 트였는지, 설이를 정확하게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실수로 아빠라고 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우리 아기가 설이를 분명히 제 아빠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무에는 설이가 하루 종일 육아를 책임졌다. 그 덕분에 나는 하나라도 놓친 설이의 방송이나 인터뷰가 있다면 꼼꼼히 찾아보고 저장할 시간이 충분했다.
"아, 이거 어제 못 본 거네."
설국지색 사이트에서 놀다가 최근 찍은 영화 홍보용으로 짧게 나갔던 설이의 단독 인터뷰 영상을 찾았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드라마 속 역할과 스토리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갔다. 설이는 간이의자에 몸을 구겨 앉아 팔짱을 낀 자세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스케줄이 빡빡했던 날이었는지 설이의 얼굴이 꽤 피곤해 보였는데, 눈빛도 나른하고 목소리도 낮게 가라앉아서 그 모습이 어쩐지 야릇했다.
아…… 누구 남편인지 엄청나게 섹시하네.
마른 입술을 축이며 영상 중간 중간 화면을 캡쳐했다. 리포터는 준비된 질문이 끝났는지 애드립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데요! 한설 씨 형이 혼자서 아기를 키우는 미혼부라는 소문이 있던데 말이죠…
'형'이라는 단어가 리포터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설이의 미간이 살짝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신 매니저님의 말에 의하면, 모든 인터뷰를 하기 전에 개인적인 가족사에 관한 질문은 일체 받지 않는다는 약속을 미리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사전에 협의되지 않는 질문을 치고 들어오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리포터는 밝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 한설 씨를 꼭 닮은 조카를 보니 형도 미남이실 것 같더라고요. 혹시… 형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여배우는 없으신가요?
어떤 의도를 가진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상을 보는 나조차 으응? 하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다. 영상 속 설이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조용히 대답했다.
- 그럴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지나치게 차가운 표정으로 단칼에 대답하기는 했지만, 깔끔한 대처였다. 불쾌함을 드러내는 표정도 과하지 않았고 현명한 대답이었다는 생각에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리포터는 그런 싱거운 대답으로 이 인터뷰를 끝내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설이에게 가까이 마이크를 가져다 대며 재차 물었다.
- 혹시… 왜 그런 마음이 없으신지 알 수 있을까요? 한설 씨가 아는 여배우 분들 중에는 좋은 사람이 없다던가, 그런 이유로…?
그제야 나는 리포터가 원하는 정보가 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설이와 이번 작품을 함께 찍은 배우 중에는 연상의 유부남과 스캔들 기사가 난 아이돌 출신 신인 배우가 있었다. 어떻게든 설이 입에서 그 이름이 등장하게 만들어서 그 배우와 엮어 화제를 만들어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유부남과의 불륜'을 연상시키기 위해서 미혼부라고 알려진 나를 대화에 소환했던 모양이다. 지나치게 짓궂은데다가 다분히 악의적인 질문이다 싶어서 나는 혀를 쯧쯧 찼다.
무례한 질문을 받은 화면 속 설이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설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아무 감정도 없는 상태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 무표정 속에 설이가 무척 화가 난 것이 보였다. 설이는 어느 한 부분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다가, 이내 미미하게 입술 끝을 올려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 그런 건 아닙니다. 저와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분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형과는 관련이 없는 분들이죠.
- 앗… 그래도 형 쪽에서 마음에 들어 하시면…!
리포터의 다급한 질문에 설이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설이의 그 표정을 보며 나는 순간적으로 불안해졌다.
- 그게 아니라 형은 제 거라서요. 제가 옆에 있기 때문에 내 형은 다른 사람을 소개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리포터는 얼빠진 표정으로 의문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설이는 그대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설이의 개운한 표정이 영상의 마지막 장면에 남았다.
"……아이고오, 설아."
나는 휴대폰을 쥔 채로 이마를 짚었다. 영상 밑 댓글들은 도저히 읽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설이가 사실 아기 아빠였다는 그 의혹에서 이제 겨우 벗어났는데 이 인터뷰로 또 다른 소문이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뭐라고들 떠들어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래 봤자, 형인 내가 설이의 애를 낳았다는 사실까지 밝혀지진 않겠지. 실제로 아기를 낳은 나조차도 그게 믿기지 않는데, 누가 그런 예측까지 하겠는가.
그저 데뷔 초부터 말이 나왔던 설이의 브라더 콤플렉스 성향에 대한 기사가 날 것이다. 그로 인해서 우리 둘의 가정사가 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겠지만, 이제 그 정도는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인터뷰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는데…… 설아, 조금만 더 참지.
하지만 “형은 제 거라서요.” 하고 말하는 순간에 싸늘하게 미소 짓는 눈가를 보니, 이미 제 딴에는 많이 참았구나 싶었다. 어떤 쪽으로든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설이가 그런 상황을 뒤집어엎어버리고 은퇴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나 때문일 것이다.
조용한 거실로 살금살금 나갔더니 소파에 누워 잠든 설이의 모습이 보였다.
설이의 가슴팍에 엎드려 잠든 누리가 숨 쉴 때마다 고르게 움직이는 설이의 몸에 맞춰서 새근새근 숨을 내쉬고 있었다. 뽀얀 찹쌀떡 같은 뺨에 긴 속눈썹이 설이의 어릴 적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둘이 잠든 얼굴을 비교해보면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도 같았다.
누리에게는 아마 내 모습도 있을 것이다. 설이와 내게 함께 만든 아기니까.
시끄러운 세상 소문들이야 어찌됐건, 나는 일단 설이를 깨워서 밥을 먹을 생각이다. 설이에게는 닭과 인삼을 넣어 푹 끓인 삼계탕을 먹이고, 누리를 위해서는 잘게 다진 고기와 야채를 삶은 이유식을 준비할 테니 슬슬 천사들이 일어나줘야 한다.
대천사 같은 내 남자와 아기천사를 한참 감상하다가 나는 그 곁에 다가가 설이의 귓가에 간지럽게 속삭였다.
설아, 걱정하지 마. 나는 언제나 네 거야.
마법이 풀리는 것처럼 섬세한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도톰한 입술 사이로 느릿하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형."
"응. 깼어? 설아, 밥 먹자."
부드럽게 웃는 설이가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내 뺨을 감쌌다.
"그 전에 입맞춤부터 해줘."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우리 둘의 소중한 아기가 깨어나기 전까지, 키스는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