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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나도 네 생각만 해. (37/65)

37. 나도 네 생각만 해.

"혼자 자는 건 너무 쓸쓸해."

투정부리듯 입술을 비죽 내밀면서 설이가 중얼거렸다.

입원한지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설이는 숙련된 어리광쟁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눈을 내리깔고 예쁜 얼굴로 투정부리는 것이 아주 어릴 때의 말투 같아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네가 왜 혼자야. 나 있는데."

얇은 이불을 덮어주며 다치지 않은 가슴 위쪽을 가볍게 토닥거렸더니 원망의 눈길로 나를 올려다본다.

"……형 있는 침대 너무 멀어."

vip 병실에서는 보호자가 잘 수 있는 침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지만, 환자의 침상과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한 공간에 있기 때문에 환자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다. 성큼성큼 걸어서 네 걸음이면 닿는 정도니까 그렇게 멀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한 침대에서 서로 끌어안고 잠들었으니, 넓은 입원실 안에서 떨어져 있는 두 침대의 거리가 설이에게는 지나치게 멀게 느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요즘 아프다는 핑계로 어리광이 잔뜩 늘어서 나와 계속 붙어 있고 싶어했다. 그런 설이의 애교를 내가 당해내질 못하는 것을 설이도 잘 알고 있었다.

베개를 베고 누운 설이의 까만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가만가만 빗어 넘기면서 나는 조금 망설였다.

"음… 그렇다고 내가 지금 여기 누울 수는 없잖아. 그러다가 다친 곳 건드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조심하면 괜찮아."

"그래도… 위험할 텐데."

의사는 경과를 본 뒤, 며칠 내로 통원치료를 받는 것으로 하자고 말했지만 그래도 설이는 아직 환자였다. 지금 당장은 회복이 빠른 것 같아도 원래 교통사고라는 것이 후유증이 길거나 뒤늦게 아픈 곳이 또 생기기도 한다고 들었다. 지금은 가벼운 산책까지 가능하지만, 뼈가 다 붙지 않아서 웬만하면 퇴원 후에도 집에서도 얌전히 누워 있게 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무리한 활동은 뭐든 좋지 않을 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vip 개인 입원실 침대가 아무리 일반 베드보다 넓다고 해도, 두 사람이 눕기 좋게 일부러 큰 사이즈로 맞춘 우리 집의 침대처럼 넓지는 못했다. 내가 옆에 끼워 누웠다가 설이의 몸에 부딪힐 까봐 두려웠다. 내 걱정이 표정에 다 보인다는 듯 설이가 말했다.

"얌전히 누워 있으면 위험하지 않아."

설이는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리 버텨도 이럴 때 결국 설이에게 지고 마는 것이다.

나와 다르게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새침해 보이는 설이의 눈매에 새까만 눈동자가 흑색의 보석처럼 예쁘게 깜빡였다. 그 누구라도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눈동자였다. 

내가 쉽사리 허락하지 않자, 설이의 말투에 좀 더 어리광이 섞였다.

"내가 잠들 때까지만 같이 있어주면 되잖아. 응?"

오른팔을 뻗어 허리를 감싸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꼬리를 좀 늘였다. 다시 한 번 보채듯이 …응? 하고 물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아, 대체 누구 동생이 이렇게 귀여운 거야? 현기증 나네.

침대 앞까지 가까이 끌려 온 내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설이가 긴 손가락으로 내 귀 옆머리를 귓가로 부드럽게 넘겨주었다. 귓바퀴에 설이의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몸이 움찔거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주변 공기가 덥게 느껴지는 건, 느닷없이 떠오르는 그날 밤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이 길고 예쁜 손가락이 때론 얼마나 집요한지 내 몸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그러다가 간호사 분이라도 들어오면……"

시선을 피하며 설이의 손을 잡아 내렸다. 내가 손길을 피한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가늘게 뜬 설이가 잠시 입술을 꾹 다물고 무표정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끈질기게 다시 내 얼굴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엄지의 지문이 내 아랫입술을 조금 힘주어서 느릿하게 만졌다.

"잊었어? 형은 내 연인이잖아."

날 빤히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에 데인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그렇지. 그러기로 했지…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렇지만 가습기 소음만 들리는 조용한 병실 안에서는 목소리도, 숨결도, 붉어진 얼굴도 숨길 수가 없었다. 숨소리가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단 둘뿐이었다.

"나를 외롭게 만들면 안 되지. 응?"

구슬리는 듯한 말투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살짝 갈라져 있었다.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떠보듯이 샐쭉 웃는데 눈가에 도톰하게 살이 접혀서 귀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환자복을 입고서도 이렇게 섹시한 남자가 우리 설이 말고 또 존재할 수 있을까.

초저녁에 휠체어를 태워서 머리를 감겨줬더니, 드라이로도 약간 덜 마른 머리카락 끝부분이 여전히 살짝 젖어 있었다. 홀린 듯이 설이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설이가 내 등을 부드럽게 쓸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내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다.

"혀엉. 한동안 아무도 안 올 테니까, 내 옆에 누워."

"안 돼… 너 아프잖아."

설이는 내가 꼼짝 못하도록 내 두 팔을 쥐고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형이 옆에 안 누워주면, 나 쓸쓸해서 더 아플 것 같아."

"……나 참, 못 이기겠다."

어차피 한 번도 설이의 고집을 내가 이긴 적도 없었지만.

나는 어서 누우라는 듯 침대 한 편으로 비켜나며 이불을 들춰주는 설이의 옆자리에 모로 누웠다. 낮에 링거 줄을 뺀 뒤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설이는 집에서 함께 잘 때의 습관처럼 내게 팔베개를 해주려는 듯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환자의 팔을 머리 무게로 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내가 팔을 뻗어 설이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잘 생긴 얼굴로 수줍게 미소 지으며 기뻐하는 게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몸을 숙여 설이의 보드라운 뺨에 가볍게 뽀뽀했다.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화답하듯이 내 손을 끌어와 손바닥에 입을 맞추는 설이의 눈 감은 얼굴이 성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은은한 조명이 설이의 상아빛 피부를 따뜻한 색으로 덮었다. 가만히 설이의 얼굴을 감상하다가 손등으로 뺨을 쓸어주었다.

"너 아파서 졸업식도 못 가서 어떡해. 서운하지?"

설이가 입원해서 병원 안에서만 지내는 동안, 설이가 다녔던 학교는 졸업식을 치렀다. 내가 졸업할 때 설이가 나를 위해 꽃다발과 반지를 챙겨줬던 것처럼 나도 설이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놓쳐 버려서 무척 아쉬웠다. 꽃다발 든 설이와 교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설이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난 괜찮아, 형.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왜 상관이 없어. 일생 단 한 번뿐인 고등학교 졸업식인데…"

설이는 내 팔에 뺨을 댄 채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형 냄새. 기분 좋다."

대학에 지원할 생각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몇 번 물어봤지만, 설이의 대답은 늘 똑같이 '형이 원한다면 갈게' 였다. 설이가 지원 가능한 대학과 과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설이가 딱히 흥미를 보이는 곳이 없었다. 나는 설이가 스스로 공부를 더 하기를 바라면 그걸 뒷바라지해주고 싶은 생각이었던 것이지, 억지로 설이를 대학에 집어넣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형한테서 무척 좋은 냄새 나는 거 알아?"

"아… 바디워시."

나는 그저 설이에게 안정된 미래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 같은 탄탄한 직장에 입사하고, 나중에는 착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알콩달콩 애 낳고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게 평범한 내 머리로 꿈 꿀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삶이었다.

"바디워시 같은 게 아니야."

"어어…"

하지만 이미 설이는 평범한 삶에서 멀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꿈꿨던 설이의 미래에서 그 어떤 것 하나도 설이가 갖게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형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그루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설이가 연예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좀 더 평탄한 길을 걸었을 것이다.

"형이 내 거라서 그렇게 느끼나. 숨만 쉬어도 단내가 나네."

내 코 끝에 날렵한 제 콧날을 살짝 비비며 싱긋 웃는 얼굴이 어느새 가까워져 있었다. 놀라서 숨을 멈추자, 까칠한 기가 다 나아서 다시 부드러워진 도톰한 설이의 입술이 내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설이의 평탄한 삶을 지원하고 응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그 옆자리를 다름 아닌 내가 꿰차다니, 스스로가 괘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설이는 귀엽다는 듯 웃으며 찌푸려진 내 미간을 검지로 살살 문질렀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심각해진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게, 생각할수록 너무 아까운 것이다. 신이 내린 요정 같은 아이를 내가 감히 취하다니.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안기는 입장이니 취한다는 말은 어감상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어쨌든 내가 가지기에 설이는 너무 어여쁘고 특별한 아이였다. 만약 부모님께서 살아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지도 면목 없었다. 아마 등짝을 얻어맞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겠지.

생각에 빠진 내 표정이 재밌었는지 가만히 웃고 있던 설이가 내 얼굴을 귀까지 감쌌다. 손이 커서 손바닥을 넓게 편 것만으로도 내 얼굴의 반을 다 가렸다. 따듯한 체온이 전해지자 눈이 절로 스르르 감겼다.

"나는, 형이 나하고 있을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했으면 좋겠어."

"어떻게… 아무 생각도 안 해……."

웅얼거리듯 대답하면서 조금은 잠에 빠지는 중이었다. 내 뺨을 감싸던 설이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턱을 쓸며 내려와서 내 목덜미를 쥐었다. 내가 평균보다 마른 편이기는 했지만 설이의 긴 손가락이 내 목을 감싸 쥐자, 목덜미의 반을 넘게 덮였다. 설이의 따뜻한 손아귀 안에서 목이 조이는 느낌이 들어 인상을 찌푸리자, 엄지로 목덜미 가운데에 튀어나온 울대뼈를 문질렀다. 크게 힘을 주지 않은 것 같은데도 악력이 센 편이어서, 사냥하는 짐승의 송곳니 사이로 목덜미가 물린 기분이 들었다. 침을 삼키자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내 목울대를 꾹 만져보던 손길이 그 길을 따라서 쇄골까지 미끄러져 내려왔다.

"내 옆에 있을 때는 내 생각만 해줘, 형.”

"음……"

"그랬으면 좋겠어."

잠옷을 겸해서 입은 흰 박스 티의 목덜미 안 쪽으로 설이의 손가락이 스윽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 손길에 선잠에서 깨버렸다.

신 매니저님이 내 옷 사이즈를 잘 몰라 모든 옷을 넉넉하게 엑스라지 사이즈로 사다 주신 덕에 티셔츠는 전부 내게 품이 남아돌게 컸고, 설이가 입는다면 조금 꽉 끼는 정도였다. 그래서 내게는 옷자락을 잡아당기면 가슴팍이 전부 드러날 정도로 네크라인이 넓은 옷이었다.

설이의 손가락이 거침없이 스르륵 옷을 끌어내며 내려갔다. 내 피부 위에 줄을 긋듯이 내려오는 그 간지러운 손가락이 예민한 곳에 닿기 직전에 나는 눈을 뜨면서 몸을 비틀었다.

"아, 잠깐…!" 

야릇한 느낌을 감지했는지 아니면 단지 놀라서인지, 유두가 뾰족하게 솟았다. 설이의 손가락이 나의 맨 가슴팍에 닿은 채로 내려오더니 새끼 손가락에 유두가 닿았다. 허리가 절로 튀었다.

"읏…! 이, 이런 건… 안 돼. 설아."

"잠깐 만지기만 할게, 형."

뭐에 자극을 받았는지 낮게 속삭이는 설이의 숨결이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환자를 강하게 저지할 수 없어서 어정쩡하게 허리를 뒤쪽으로 구부려 새우처럼 몸을 만 채로 설이의 손목을 잡아 내 옷 속에서 빼냈다. 다행히도 설이는 손에 힘을 주지 않고 내가 이끄는 대로 옷 속에서 빠져 나왔지만, 눈썹 끝을 내리고 슬픈 얼굴을 했다.

"조금만…. 착하게 굴게, 응?"

홀로 못된 짓을 하는 응큼한 손과는 다르게 설이의 얼굴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착한 천사와 같았고,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복도 쪽으로 통하는 문으로 슬쩍 시선을 두었다.

아주 잠깐이라면, 간호사분들이 잠깐 들어오기 전까지라면 괜찮을 지도… 문 밖에서 밤새 지키고 서 있는 경호원 분들에게는 병실 안의 대화 같은 건 들리지 않는다고 했고.

내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을 금새 알아챈 설이가 벌써 반쯤 눈가를 접으며 웃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내 귓가가 빨개졌는지 귀 끝이 간지러웠다. 나는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침대 너머 부엌 쪽에 둔 채로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미약한 승낙의 메시지에 설이는 재빠르게 반응하며 바로 상체를 일으켰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내 입술에 제 입술을 댔다.

"으응…"

간지러운 촉감을 느낄 새도 없이 뜨거운 혀끝이 내 입술을 살짝 두드렸다.

조명을 낮춰 어두워진 넓은 병실 안에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마찰음이 적나라하게 퍼졌다. 처음에는 짧게 촉, 하고 떨어졌던 것이 금새 농밀하게 바뀌었다.

설이는 아예 오른손으로 침대를 지탱하고 내 위에 상체를 올린 채로 고개의 방향을 바꾸어가며 깊게 혀를 얽혔다. 오래 굶주렸던 짐승처럼 목 안쪽으로 그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가 숨이 차서 버거울 때쯤, 겨우 봐주듯이 입술이 한 번 떨어졌다가, 그 틈 사이로 내가 숨을 한 번 몰아쉬고 나면 어김없이 자석처럼 다시 딱 맞붙었다.

혹시라도 깁스한 설이의 왼팔에 무리가 갈 까봐, 내가 설이의 어깨를 밀어 침대에 눕히고 그 위로 몸을 겹쳤다.

그렇게 뒤바뀐 자세가 새로웠는지, 아니면 내가 적극적인 태세가 되어버린 것이 기뻤는지 눈을 뜬 설이가 눈동자를 빛내며 작게 콧숨을 내쉬어 웃었다.

"읏… 으, 웃지 마…"

"후, 키스할 때는, 형이 내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좋아."

위에서 내려다보는 설이의 얼굴은 또 색다르게 예뻤는데, 새치름한 눈빛으로 눈썹을 치켜 뜨며 날 올려다보는 분위기가 유혹적이었다. 까만 눈동자에 내 모습이 조그맣게 비쳐 보였다.

"나는 늘 형 생각만 하니까, 우리가 똑같아져서 좋아."

수줍게 웃으며 속눈썹을 내리깐 모습이 너무 깜찍해서 심장이 간질거렸다. 이런 고백을 받고 심장이 떨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여 설이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도장처럼 꾹 눌렀다. 그리고 나서 설이의 입술이 당연한 수순처럼 내 입술을 다시 뜨겁게 삼켰다. 동시에 손길이 느껴졌다.

"앗…"

옷자락 아래에서부터 밀려들어온 설이의 손바닥이 내 아랫배를 문지르며 뜨거운 체온을 전하다가 명치 쪽으로 조금씩 기어올라왔다. 맨 가슴팍을 넓게 문지르며 내 윗입술을 쪽 빨았다. 이제는 숨이 차서 가빠져도, 내 혀끝을 빨거나 깨물면서 놓아주질 않았다.

설아, 너 이거, 조금이 아니잖아. 착하게 군다던 내 동생 어디 갔어.

키스가 벅차서 설이의 머리 옆을 지탱한 내 두 팔이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어쩐지 수치스러웠다. 애정표현과 스킨십을 위해서도 체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더니 전과 다르게 저질 체력이 된 것 같아서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평소에 운동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동생과 키스하다가 하게 되다니,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흉곽을 다친 설이를 차마 밀어낼 수 없어서, 설이의 두 뺨을 가볍게 쥐고 옆으로 쓰러지는 것으로 끈질긴 입맞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 쉬는 나에 비해서, 설이는 여유로워 보였다. 나를 바라보며 붉은 혀를 내어 제 아랫입술을 살짝 핥아 올리더니 노골적으로 아쉽다는 눈길을 하고 있었다.

"더는 안 돼."

"응."

착하게 대답하면서도 손을 뻗어 내 옷자락 안으로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다시 들어오려고 시도했다. 이번에는 트레이닝 복 바지의 고무줄 안쪽으로 은근슬쩍 들어오려고 하는 설이의 손길을 재빠르게 저지했다. 그리고 설이의 손을 봉인하듯 이불 속에 단단히 넣어주고 이불을 우리 두 사람의 목 끝까지 올렸다.

“착하지? 이제 눈 감고 자자. 응?”

설이는 내 뜻을 잘 알았다는 듯 픽 작게 웃더니 순순히 박스 티 밖으로 팔을 둘러 내 등을 감싸 안았다. 나는 숨이 고르게 쉬어질 때까지 잠시 누워 쉬다가 설이가 잠들 때까지 머리를 만져주었다.

나도 언제나 설이 네 생각만 해.

그런 마음을 담아서 새근새근 잠든 설이의 뺨과 이마를 가만히 만져주었다.

결국 나도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새벽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설이의 상태를 살피던 간호사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환자의 침대를 반쯤 차지하고 누워서는, 설이의 오른팔을 바디필로우처럼 두 팔로 껴안은 채 잠든 모습 그대로였고, 나는 놀라서 급히 후다닥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미 그런 꼴을 보여버린 걸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vip입원실 담당 간호사는 프로페셔널 한 미소로 친절하게 속삭였다.

"괜찮습니다. 편히 계세요.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옷을 홀딱 벗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내가 그냥 눈치 없이 동생의 침대에 올라가 같이 잠든 것뿐이었다. 어쩌면 우애 좋은 형제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지나치게 민망해한 탓에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까 걱정이었다.

내가 아무리 동생을 탐하는 천벌 받을 변태라고 해도, 환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변명의 말을 하는 것이 더 이상해서 그저 조용히 보호자용 침대로 돌아갔다. 내가 뒤척이며 일어난 탓에 깨버렸는지 설이는 간호사가 돌아가고 난 뒤에 내게 다시 침대로 올라오라며 은근하게 유혹했지만, 나는 그때부터 아침이 올 때까지 보호자용 침대에서 자는 것을 택했다.

***

"나 포도주스."

"어어, 그래."

"형도 옆에서 같이 마셔."

"응, 그러자."

아침 식사 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퇴원이 가까워질수록 검사도 잦아졌고, 설이가 직접 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항들이 꽤 많아져서 침대를 끌고 이동하거나 노트북과 서류를 보기 쉽도록 설이가 소파에 옮겨 앉는 것을 도왔다.

냉장고에서 포도주스를 세 팩 꺼내서 일단 빨대를 꽂아 설이에게 쥐어주고, 반대편 소파에 앉은 신정아 매니저님에게도 하나 드렸다. 그리고 설이의 옆자리에 돌아와서 내 것에도 빨대를 꽂아 쭉 빨아 마시고 있는데, 신 매니저님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내 옆에서 나와 똑같이 주스 팩의 빨대를 물고 있는 설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포도주스 싫으세요? 오렌지 드릴까요? 복숭아?"

"아, 아뇨. 그냥 신기해서요."

신 매니저는 내게 말하면서 서류 가방 안에서 꺼낸 대본 뭉치를 설이에게 건넸고, 설이는 페이지를 넘기며 그걸 유심히 읽었다.

"형님 앞에서는 한설 씨, 정말 다른 사람 같네요."

"아. 저 없을 때 밖에서는 어른스럽죠?"

뿌듯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무래도 설이는 내 앞에서만 애 같이 굴 뿐, 사람들을 만나 촬영하고 일할 때에는 제 몫을 다 해내는 듬직한 면이 있었다. 설이와 같이 일하는 신 매니저가 누구보다 그런 설이의 멋진 모습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신 매니저님은 내 물음에 어색하게 웃더니 네,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밖에서의 모습을 얼마든지 더 칭찬해주셔도 좋은데, 워낙 바쁜 사람이라서 매니저님과 설이 이야기를 길게 나눌 수 없는 점이 참 안타까웠다.

"저, 그보다 내일쯤 퇴원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네. 의사 선생님께서 이제 집에서 쉬면서 회복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요."

"그러면 이후로는 오피스텔 쪽으로 제가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설이가 그루 엔터 사무실로 나가기는 어려울 테니, 볼 일이 있을 때 매니저님이 집으로 찾아와 주는 편이 훨씬 편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려는 내 옆에서 설이의 대답이 훨씬 빨랐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근처로."

완전히 회복 될 때까지는 많이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기도 했고, 오피스텔 안이나 본사 안이 아니고서야 어딜 가도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 보면 신경 써야 하는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닌데, 굳이 편한 집을 놔두고 직접 밖으로 나가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문의 눈길로 바라보는 나와 다르게 신 매니저님은 설이의 뜻을 알았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오피스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용히 얘기할 공간을 제가 찾아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이미 그러기로 합의를 본 상황이라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머쓱하게 둘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 매니저님은 우리가 오피스텔로 이사를 온 뒤에 한 번도 위쪽까지 올라온 적이 없었다. 언제나 주차장에서 설이를 기다렸다. 집 구경을 권하거나 올라와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시라고 말해도 늘 바쁘다는 말로 극구 거절했다. 어쩌면 남자 둘이 사는 집이라서 신 매니저님이 오가기에는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두 사람이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을 때,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회진을 돌면서 담당의와 간호사분들이 왔다간 것이 한 시간도 되지 않았으니 의료진은 아닐 것이다.

누구세요, 하고 묻자 문 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조용하게 들려왔다.

"권영도입니다."

활기차던 평소와 다르게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한설 후배님에게 사과도 직접 하고 싶고, 한준 씨하고 얘기할 것도 있어서 왔습니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을 열어주려고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는데, 설이가 내 손을 낚아채듯 잡았다.

왜 그러나 싶어서 내려다보자 설이의 눈빛에 날이 서 있었다. 침입자를 대하듯 차가운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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