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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스노우볼 (33/65)

33. 스노우볼

어디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크게 뜬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엉덩이 사이로 깊숙이 들어와 내 안을 가득 채운 것이 꿈틀거리며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 고통은 착각일 수가 없다.

불어난 성기는 울퉁불퉁하고 뾰족한 모양새였기 때문에 설이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그것이 뱃속을 찢을 듯 괴로웠다. 고통에 벌어진 입술이 바르르 떨렸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설이의 단단한 몸은 나를 껴안은 채 미동하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뒤쪽에서 허리로 꾹 몸을 붙여왔다. 그 뻐근한 둔통에 침대 시트를 구겨 꾹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으, 으응…!"

갑작스러운 아픔에 몸서리치듯 떨리는 내 몸을 고정하며 설이의 몸이 무게로 내리눌렀고, 내 몸은 침대와 설이의 단단한 하반신 사이에 낀 채 짓눌렸다.

남자끼리 하는 섹스라는 게 어떤 것인지 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오산이었다. 생각해보면 여태껏 살면서, 성별 상관 없이 어떤 타인과도 이런 관계를 가져본 적도 없는 초짜 동정인 내가 섹스에 대해서 뭘 알겠느냐는 말이다. 마치 몸 안으로 찔러 넣어진 상대의 성기가 발기 상태에서 더 굵어지며 가시라도 돋아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진짜 섹스였다는 것을, 내가 상상할 수가 있었겠는가.

설이가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면 내 몸이 말랑한 게 맛살처럼 찢어져 둘로 갈라질 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몸 안이 너무 좁아서 설이가 괴로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먼저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더 엉덩이에 힘을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등 뒤에 바싹 붙은 딱딱한 몸은, 짐승처럼 시근덕대고 있었다. 내 살에 닿는 설이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서 닿는 곳이 전부 녹아 내릴 것 같았다. 뒷목에 살짝 닿은 입술이 낮은 목소리로 당황을 숨기지 못하며 속삭였다.

"윽… 이렇게까지, 흥분할 생각은… 없었는데."

침대 시트 사이로 들어온 설이의 커다란 손이 내 불룩한 아랫배를 조심스럽게 슬슬 쓸었다. 나는 끙끙대며 겨우 버티는 중이었는데, 무릎에 힘이 풀려서 거의 주저앉은 자세였다. 그런 내가 힘겨워 보였던지, 설이가 나를 침대 머리맡 쪽으로 끌어올려 편하게 엎드리는 자세로 만들어놓았다. 그리고는 등 뒤에서 느릿하게 내게 몸을 겹쳐 누웠다. 그 바람에 명치까지 밀려 올라올 것 같은 거대한 둔기가 뱃속에서 날카롭게 꿈틀거렸다.

"아… 아…… 아파…"

겹쳐진 내 팔에 눈물이 방울로 뚝 떨어져 내렸다. 설이는 뜨거운 신음을 겨우 제 입술을 깨물어 참아내며, 내 머리 위에 입을 맞추어 나를 달랬다.

"아프지, 미안해… 금방 끝날 거야, 형."

조금만 참아, 하고 말하면서 말과 다르게 내 어깨를 까드득 깨물었다. 그리고는 마치 제 송곳니가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내 피부를 잘근잘근 짓씹었다. 그 통증에 울컥 눈물이 터졌는데, 그런 나를 위로한답시고 내 어깨의 깨문 자국을 핥는 혓바닥이 흥분으로 까슬까슬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자극이 더 따가워서 흐응, 하고 절로 울음이 났다.

설이의 입술이 뒷목에 몇 번이나 촉 촉 닿았다가 떨어졌다. 까칠한 혓바닥으로 뒷목을 싸악 쓸어 올려 핥았다. 설이가 허벅지에 힘을 주어 내 엉덩이 사이에 몸을 붙여 뭉근하게 움직였다. 발가락 끝이 절로 벌벌 떨렸다. 여린 볼깃살에 닿는 성인 남자의 까칠한 음모와 고환의 부딪히는 느낌이 낯설어서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읏, 그래도 걱정하지마. 형."

땀으로 젖은 내 머리카락 사이에 집어넣어 머릿속을 슬슬 쓸어주는 손길이 너무 기분 좋아서, 고통으로 끙끙거리는 와중에도 눈이 절로 감겼다. 커다란 손바닥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흐트러뜨렸다. 

"완전히 표범으로 변하지는 않을 테니까."

……뭐?

그 말인 즉, 설이 것이 지금 이보다도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인가. 역시 이건 평범한 섹스가 아닌 거지? 보통 부부들이 매일 밤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닌 게 맞지? 만약 그랬다면 나와 같은 초보들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알몸인 채 구급차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당연히 뉴스 속보에 나왔을 텐데, 한 번도 그런 속보는 본 적이 없으니 역시 이건 평범한 섹스가 아닌 것이다.

뱃속을 찢는 통증에도 겨우 익숙해져서 정상적인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한계까지 벌어진 몸 안쪽으로 뜨거운 액체가 왈칵 퍼지는 것을 느꼈다.

"흐윽…!"

내 몸 안쪽 깊이 틀어박힌 짐승의 성기가 사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몸 안의 어디쯤인지 알 수 없이 부유하던 통증들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가시 같은 게 돋아난 듯 몸 안쪽을 가득 찌르며 빠듯하게 채운 귀두관과 음경의 굵은 기둥이 더 선명하게 내 뱃속에서 꿈틀거렸다.

엉덩이가 홀쭉해지도록 꾸욱 힘을 주어 안으로 조금이라도 더 진입하려는 설이의 몸짓에 나는 버둥거리며 손을 휘저었다. 뜨거운 입술이 눈물로 젖은 내 뺨에 짓눌러졌다.

"쉬이, 괜찮아. 가만히 있어. 형."

달래는 목소리는 분명 다정했는데, 뱃속을 가득 채우는 동통은 도저히 참을 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금방 끝나는 거라면 어떻게든 참아야지, 싶었는데 아무리 끙끙거리며 참아봐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끝나지를 않았다. 설이는 입술로 내 목과 어깨, 뺨과 귓바퀴를 슬슬 쓸 듯 지나가면서 예쁘다고 속삭였지만,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어째서 사정이 멈추질 않는 거지?

몸 안을 가득 채워서 물 풍선처럼 펑 터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마저 생기고 있었다. 침대 시트의 한 곳을 응시한 채로 눈을 깜빡 거릴 때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으응… 서, 설아. 형이… 잘못했어. 형이 다 잘못했어어…"

솔직히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는 나 스스로도 의문이었지만,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러다가 뱃속이 터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왜, ‘복상사’라는 단어도 있잖은가. 혹시 그게 알고 보면 이런 식으로 죽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 같은 울음이 절로 터졌다.

"흐으아… 설아, 나 죽어……."

주름진 침대 시트에 고개를 푹 숙이더니, 뺨을 대고 엎드려 누운 나와 얼굴을 마주보며 설이가 씨익 웃었다. 아름다운 악마처럼 웃는 설이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은 감탄했지만 눈앞에 희뿌옇게 눈물로 흐려져서 곧 설이의 표정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길고 두터운 설이의 보송보송한 꼬리가 내 발바닥을 간지럽게 쓸고 지나갔다.

"이런 걸로 안 죽어. 형."

귀엽다는 듯 뺨과 코끝, 눈가에 입을 맞추며 설이는 여전히 훌쩍이는 내 귓가에 콧날을 비볐다. 울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려 내 엉덩이를 쓰다듬는 손길이 야릇하면서도 다정했다.

"한 번 깊이 박으면, 가시가 돋아난 구조로 변형되는 거야. 그래야 읏… 사정하는 동안 절대 빠지지 않겠지."

힘주어 내 엉덩이 사이로 제 사타구니를 맞도록 꽉 끼워 넣는 몸짓에 앓는 소리로 흐느끼자, 내 앞쪽을 더듬어 끈적하게 젖은 내 성기를 쥐더니, 손끝으로 구슬리듯 만져왔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것이 또 반쯤 서 있었지만,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더는 사정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움찔거리는 요도구 끝부분을 손톱으로 살짝 누르면서 그 자극에 반사적으로 떠는 내 어깨에 설이는 입술을 파묻었다.

"흐읏, 왜 굳이… 가시 같은 거… 으읏, 왜……"

그딴 거 없어도 그냥 평범하게 삽입하고 사정하면 되잖아,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통과 체력 부진으로 똑 부러지게 항의하지 못했다. 설이는 흐느낌에 먹혀버린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찰떡 같이 알아들었는지 작게 웃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내 귓가에 촉,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고양잇과 동물은 대부분 다 이렇게 생겼어."

몰랐어? 하고 속삭이는 뜨거운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알 리가 있겠냐. 설아, 형은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 못했지만 이런 건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없단 말이다. 하물며 이런 지식을 어디선가 알게 되어서 외우고 있었다고 한들,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될 거라고 생각이라도 해봤겠냐. 그 요상하고 거대한 기둥에 삽입 당해보니까 이미 이렇게 아픈데, 그 지식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 

묵직하게 채워지는 정액으로 뱃속이 넓어지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뿌려지듯 속눈썹에서 단번에 떨어졌다. 아랫배가 빵빵 해져 있을 것 같아 두려워서 손을 내려 만져보지도 못하는데, 설이는 손끝으로 내 가슴을 어루만지며 장난스럽게 유두를 꼬집었다가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배꼽 언저리를 손톱 끝으로 긁듯이 간질이기도 했다.

"흐으, 하지, 하지 마……"

남은 생경한 아픔에 움직이지도 못하겠는데 내 몸을 물고 빨고 깨물고 있는 설이가 얄미워서, 내 배를 쓰다듬는 설이의 손을 겨우 잡아서 밀어냈다. 서운한 듯이 하지마? 하고 묻는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져서 대답하지 않고 끙끙거리자, 설이는 내 뒷목을 슬쩍 깨물었다.

"으, 아얏…!"

그리곤 심술부리는 아이 같은 얼굴로 내 뺨을 길게 핥아 올렸다. 설이도 잔뜩 흥분하기는 했는지 까슬한 혓바닥으로 강도 조절을 하지 못해서 뺨이 따가웠다. 허락해줄 때까지 계속 괴롭힐 것 같아서 그럼… 조금만 만져, 하고 마지못해 대답하자 기쁜 듯 뒤쪽에서 보드라운 꼬리가 내 발목을 꼭 조여 쥐며 감싸왔다.

이미 콘돔을 한 번 바꾸기 전에 했던 삽입으로 잔뜩 쓸려버린 허벅지 안쪽이 따가웠다. 계속된 마찰로 인해 열상을 입은 것일지도 모른다. 넓적다리 안쪽의 여린 살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럽다가도 한 번씩 못 참겠다는 듯 농밀하고 짓궂어졌다. 제 것을 담고 있는 내 엉덩이 사이의 빠듯하게 벌어진 구멍의 주름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가늠하듯이 만지작거리는 손길에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뜨거워지다 못해서 터질 것 같았다. 엉덩이를 진탕 주무르는 손길에 눈물이 쏙 나왔다.

"대체… 흐, 설아, 언제… 끝나…흐읏… 응…?"

"후으… 형, 노팅은 그렇게 빨리 안 끝나." 

그 망할 노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귓가에 조곤조곤 설명하는 목소리가 얄미울 정도로 듣기 좋아서, 관절이 다 녹아 내리는 기분이었다.

이 상태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득하게 의식이 흐려져갔다.

"……내가 형을 선택해서, 형을 사랑하게 되어서… 미안해."

몽롱하게 도피성 수면에 빠져들면서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설이의 속상해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머리카락을 가만히 헤집으며 내 뺨과 귓가에 굿 나잇 키스를 하는 설이의 입술을 느끼는 순간에도, 몸 안쪽으로는 뜨겁게 사정 액이 퍼지고 있었다. 기둥이 뿌리까지 꽉 들어찬 구멍 바깥 틈으로 꾸역꾸역 액체가 밀려나오는 감각이 꿈 속처럼 흐려졌다.

지금 잠들면 안 되는데. 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나도 사랑한다는 말을, 내가 더 사랑한다는 말을 해줘야 하는데…….

***

"깼어?"

으응…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 안이 아파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키면서 눈을 떴을 때, 뿌연 욕실의 김이 눈 앞을 가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가슴까지 따뜻한 물에 노곤하게 잠겨 있었다. 입욕제를 넣은 뽀얀 물 위로 붉은 장미 꽃잎이 떠다녔다. 향긋한 냄새가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중이었다.

"아…."

물 밖으로 드러난 내 어깨에 설이가 따뜻한 목욕물을 손바닥으로 뿌려주었다. 그 위로 입술이 내려앉았다.

설이는 내 등 뒤에 앉아 나를 등받이처럼 단단한 가슴팍으로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알몸으로 나무 욕조 탕 안에 잠겨 있는 중이었다. 뒤쪽에서 뻗어 나온 팔이 내 허리를 감싸며 동시에 물 속에서 내 가슴 위를 어루만졌다.

시선을 들어보니, 침실 바깥쪽으로 이어져 있는 노천탕 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밖을 볼 수 있도록 드러나는 부분을 유리 창으로 뒤덮어놨기 때문에 춥지 않았다. 천장까지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새벽이 밝아오는 어스름한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꿈속 같았다. 파스텔처럼 부드러운 색으로 물든 하늘이 어두운 도시의 높은 건물들 사이로 비쳐오고 있었다. 게다가 새벽 하늘에서 폴폴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스노우볼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곳은 설이와 나, 단둘뿐인 세상이었다.

따뜻한 물 덕분에 정신이 맑게 깨었고,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방금 동생의 스무 살 생일 밤을 기념하는 호텔 침대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불자마자 바로 동생에게 안겨버린 것이다. 둘이서 격렬한 섹스를 하다가 나는 기절했고, 몇 시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겨우 깨어났다. 함께 몸을 섞은 동생과 알몸으로 욕조 안에서 껴안은 채로.

귀 끝까지 간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어서 내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꽃잎에 초점을 맞춘 채로 침만 꿀꺽 삼켰다. 어차피 심장 박동이 빨라져서 나와 몸을 겹치고 앉은 설이가 내 심경의 변화를 눈치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설이 얼굴을 볼 엄두가 안 났다.

"……형."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 옆에서 들려왔다. 으응, 하고 작게 대답했는데 목 감기라도 걸린 듯 목 쉬어서 이상하게 높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더 민망해져서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 어깨에 계속해서 따뜻한 물을 끼얹어져 주는 설이의 손길이 평소처럼 다정했다.

어쩌면 우리가 몸을 섞은 것은, 내 황당한 꿈인 게 아닐까? 내가 일찍 잠들어서, 그래서 설이가 날 위해서 목욕을 시켜주는 것뿐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 온 몸에 힘이 다 빠지고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데다가 엉덩이는 거의 감각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전부 꿈이라는 게 더 현실성 있는 것 같은데…….

"안쪽은 형 잘 때 내가 다 빼냈는데, 그래도 정액이 좀 남았을 수도 있어."

그렇구나. 절대 꿈이 아닌 거구나.

허탈한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이는 자상한 손길로 물을 끼얹어주다가 물속으로 들어와 내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감싸며 만지작거렸다.

"……처음이라서, 콘돔이 이렇게 잘 찢어지는 건지 몰랐어."

말 끝에 이어 작게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반성하는 말투로 기운 없이 말을 잇던 설이는 고개 숙여서 내 어깨에 턱을 올렸다. 잠시 틈을 둔 채로 그대로 가만히 있던 설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임신하지는 않을 거야. 앞으론 더 조심할게. …미안해, 형."

한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발기했을 때에 귀두 끝에 그렇게 뾰족하게 가시가 돋아난다면, 어떤 고무로 만든 콘돔이라도 다 찢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남자인 내가 임신할 리가 없다는 사실도 말해야 하거니와, '앞으로' 더 조심하겠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이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을 한다는 건가. 하지만, 하지만…… 그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이게 한 번이라면, 실수였으며 사고였다고 말하면서 잊고 넘어갈 수 있다고 쳐도… 두 번째부터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누구한테 뭘, 왜 변명해야 하는 거지? 도덕과 양심의 신이 있다면 그 앞에서 죄를 고하고 빌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설이가 나를 원하는 건데, 그게 죄가 되나?

쓸데 없는 생각으로 멍해진 동안, 설이가 내 몸을 두 팔로 가득 끌어안았다.

"그래도 난, 너무 기뻤어."

웅얼거리듯 내 등에 이마를 댄 채로 속삭이는 그 목소리가 감격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혹시라도 내가 후회하고 있을 까봐 눈치를 보는 듯, 나를 껴안은 설이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라고 설이의 손등을 내 손으로 감싸 잡았다.

"생일 축하해. 그리고…… 너무 사랑해, 설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였고, 설이의 뜨거운 눈물이 내 등에 닿는 것을 느꼈다.

유리 천장으로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우리 두 사람만의 공간을 세상으로부터 감춰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설이의 말대로 성체가 된 것이 이미 오래 전이고, 나를 위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려왔던 거라면, 설이는 아마 한참 전부터 이러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내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서, 세간의 눈을 신경 쓰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에 이런 날을 그저 계속 바래왔겠지.

연인끼리의 사랑은, 형제의 사랑과는 다르다는 걸 내가 설이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다면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다. 문제는, 나도 그 차이를 잘 모르겠다. 내게는 연인도 없었고 형제라고는 눈 속에서 찾아온 요정 같은 우리 설이 뿐이다.

이렇게 예쁜데,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데려간다고 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이 세상에 단둘만 남는다고 해도 두려울 게 없는데…… 그걸 꼭 어떤 사랑인지 나눠야만 하나? 머리가 나빠서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설이가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뿐이다.

"사랑해, 한설. 예쁜 내 설아."

특별할 것 없는 내 고백의 말에 설이는 그저 웃으며 행복한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해주었다. 엉덩이 쪽에 닿는 딱딱한 것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등 뒤로 고개를 돌려서 닿은 입술은 여전히 뜨거웠고 키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미로웠다.

소중한 내 동생 설이가 날 누구보다 사랑하고, 나도 세상에 더 없이 설이를 사랑하면, 그걸로 된 거잖아.

단순하게 그렇게 결론을 지은 것만으로도 마음은 후련해졌다. 설이는 내 허벅지에 제 것을 문지르며 겨우 삽입을 참아내는 것 같았다. 시선을 돌려 붉어진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감추며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중얼거렸다.

"그… 설아… 하고 싶으면, 더 해도 돼."

놀란 듯 몸을 멈추고 손가락 사이로 흘깃거리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설이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느릿하게 내 허벅지 안쪽에 발기한 제 것을 문지르면서 뒤통수에 입을 맞췄다.

"괜찮아, 형. 이따가… 잠들 때까지 침대에서 껴안아줘. 그거면 돼."

어차피 앞으로 시간은 많아. 느긋하게 속삭이는 설이의 목소리에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지만, 설마 우리 착한 설이가 이렇게 힘겨운 것을 자주 하자고 하지는 않을 거야… 하고 내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침실의 시트가 젖어서 어쩌나 걱정했더니, 설이는 목욕 후 가운을 입힌 나를 안아다가 사이드 룸으로 데리고 갔다. 보송보송한 새것의 침대에서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고 옆으로 누웠다.

누구 동생이 이렇게 잘 생겼지, 늘 생각하지만 도무지 합리적인 답을 알아낼 수 없을 정도의 미남이 내 품에 안겨 있다. 내 팔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설이는 언제 그렇게 나를 괴롭혔냐는 듯 얌전한 얼굴이었다. 귀와 꼬리도 감추고,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잠들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서로의 뺨을 어루만지고 허리를 껴안은 채로 있다가,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순결하고 깨끗한 흰 눈이 덮인 산을 혼자서 올라갔다. 자박자박, 온통 내 발자국뿐이었다. 새하얀 둔덕 위에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는데, 파란 꽃잎이 청초하게 피어나 눈이 쌓일 때마다 가녀리게 흔들리고 있었다. 꽃잎의 묘한 빛깔이 마치 진귀한 보석처럼 검푸른 빛을 띠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어떻게 이렇게 험한 겨울 산길에 피어있을까. 그게 경이롭기도 하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이슬을 머금은 듯 꽃술이 반짝였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설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나는 그 꽃을 꺾어버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은, 빨리 설이에게 이 꽃을 건네주고 싶다는 마음에 져 버리고 말았다.

세상 가장 예쁜 꽃을 설이에게 선물해줘야지. 

그로 인해서 내가 어떤 벌을 받게 된다고 해도 그런 건 다 상관 없을 정도로, 나는 꿈 속에서도 설이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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