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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형만 있으면 돼. (11/65)

11. 형만 있으면 돼.

"그게 어떻게 천사냐, 악마지."

우정혁은 내가 준 엿을 빨아먹으면서 못된 소리를 했다. 기껏 편의점 사장님과 수아 누나가 준 수능 대박 기원 엿 세트를 나눠주는데, 남의 동생 험담이나 늘어놓는다. 엿을 다시 압수하려고 했더니 긴 엿을 뚝 부러뜨려 입 안에 전부 넣어버렸다.

졸업 후 바로 유학 계획이 잡혀 있는 우정혁은 수능을 아예 보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놈에게 너그럽게 엿을 나눠줬더니만 감히 내게 빅엿을 날린다.

"왜 우리 착한 설이가 악마냐? 우정혁, 너 매 타작 좀 받아야겠다?"

"야, 인마. 수험생한테 ‘수능 안 봐도, 네 인생 책임지겠다’는 게 어떻게 응원의 메시지가 되냐."

"그게 뭐 어때서."

"이거, 이거, 누가 밥 먹여줄 테니까 장가 오라고 하면 홀랑 넘어갈 순진한 시골총각이 따로 없네."

"뭐어! 설이는 나 공부 더 하고 싶으면 대학 꼭 가라고 그랬었어. 내가 싫다고 했지. 그래도 수능은 쳐야 하나 고민하니까, 나 부담 가지지 말라고 해준 말이고만."

제 공부만으로도 바쁠 텐데 언제 준비했는지 설이는, 포장된 수제 초콜릿 박스를 수줍게 내밀었다. 절대로 우정혁과 나눠먹지 말고 혼자 다 먹어달라는 고백이 너무 귀여워서 그 미소가 꼭 천사 같아 보였다는 내 고백에 우정혁은 구토하는 시늉을 했다.

설이가 만든 초콜릿은 달지 않아서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누구 나눠주기 아까워서 점심시간에 나 혼자 열심히 먹었다. 어차피 우리 지역과 완전히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서 수능을 봐서, 아는 사람도 없었다. 

설이가 일찍 일어나서 손수 만들어준 도시락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금치계란말이와 고기 부추 볶음이 들어 있었다. 보온병에 따뜻한 유자차도 담아서 준비해주었다. 얼마나 자상한 동생인가, 감동하느라 영어 듣기평가 도중에 울컥 눈물이 났다. 

시험장에 도착해보니, 다른 학생들은 부모님과 함께 와 있었다. 시험장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서도 교문 앞에 서서 기도하는 부모들이 많았다. 아마도 형제의 배웅을 받으며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설이는 제가 하고 나온 머플러를 풀러 내 목덜미에 감싸주며 정전기로 들뜬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는 내 코트 주머니에 손 난로를 넣어주고 도시락 가방과 보온병을 내게 들려주었다. 

훌쩍 커진 동생이 대견스러우면서도 설이 앞에서 마치 아이라도 된 것 같아서 민망하던 찰나, 설이가 내 등을 가만히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형한테는 내가 보호자야. 그렇지?"

그 말이 내 몸 속에 따뜻하게 스며들어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미소가 절로 떠오르는 내 뺨을 흰 손이 부드럽게 감쌌다. 설이의 얼굴을 마주보자, 교문 앞에서 시끄럽게 응원하는 목소리나 다른 사람들의 수선스러운 기척이 귓가에서 멀어져 갔다.

바로 취업 예정이면서 굳이 수능을 보는 것은, 내게는 오기이자 졸업 전 하나의 추억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공부를 못해서 도망치듯이 입시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혹시라도 수능을 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까 싶어 기대하는 담임의 소원이기도 했다.

설이는 내 양쪽 뺨을 감싸고 떨리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시험 끝나면, 데리러 올게."

첫 눈처럼 새하얀 얼굴의 설이가 눈가를 살짝 찡그리며 귀엽게 웃었다. 나는 그 순간 설이가 내게 입을 맞췄더라고 해도 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무척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르는 그때, 설이를 보느라 멈춰 서 있는 수험생과 학부모가 한둘이 아니었다. 타 학교 응원단은 뭐에 홀린 듯 설이에게 다가와서 코코아를 건넸다. 수능 상황을 취재하러 온 방송사에서 설이를 화면에 담으려고 해서 내가 초상권 침해를 들먹이며 겨우 그들을 말려야 했다.

파티에 다녀온 뒤 한동안, 설이는 휴대폰 전원을 꺼놓고 지내는 것 같았다. 어차피 수업 중일 때나 독서실에서는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을뿐더러 설이는 나와 연락할 때가 아니면 휴대폰을 아예 이용하지 않았다. 산골에서 자라서 다른 애들보다 우리는 늦게 신문물을 접하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SNS 같은 것에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우리 형제는 메시지 보내는 어플만 겨우 이용하는 정도였다.

어떻게 알아낸 건지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허구한날 설이에게 전화하는 것도 모자라, 내게까지 연락을 해왔다. 어느 날 저녁 밥을 짓는 도중에 내가 전화를 받았다. 설이를 데뷔 시키자는 관계자의 설득에 거절하느라 쩔쩔매고 있으려니, 설이가 다가와서 내 휴대폰을 빼앗아갔다. 그 뒤로 한동안 그들이 내게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교문 앞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설이는 나를 보자마자 저벅저벅 달려와 끌어안고 수고했어, 하고 귓가에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주변에서 그 장면을 본 여학생들의 숨 멎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설이의 등을 마주 끌어안으며 따뜻한 체온과 익숙한 설이의 품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형이랑 외식하고 싶어서 예약해놨어."

"뭐? 네가 돈이 어디…… 아."

"오늘은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 응?"

주식으로 번 돈이구나, 싶어서 도끼눈을 떴더니 설이는 풀이 죽어서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슬픈 눈을 했다. 형한테 수능 치느라 수고했다고 대접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 예쁜 마음을 혼낼 수는 없어서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삼촌이 고생했다며 용돈을 좀 보내주셔서 그걸로 소고기 사다가 설이에게 구워줄 생각이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제 맘대로 하게 해주겠다고 하자, 설이는 표정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눈동자를 빛내며 신나 했다. 마치 첫 데이트를 하는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아직은 설이가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 열을 올리며 애정을 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나중에 설이에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처음에는 조금 질투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인 내게도 이렇게 다정한데, 애인이 생기면 얼마나 더 다정해질까.

"형, 이제 내려."

"어? 어어."

택시를 타고 설이가 이끄는 대로 오니, 조선시대 양반들이 지금도 살고 있을 것 같은 웅장한 기와집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가니 실내 인테리어는 신식이었다. 한지를 바른 듯한 복도의 벽과 자그마한 도자기 같은 아이템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내면서도, 밝고 은은한 조명이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복도를 지나 룸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테이블 앞에 금실로 지은 쿠션이 깔린 고풍스러운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앉자 왕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자그마한 은행과 말린 대추 등을 꽂은 아기자기한 다과와 함께 동충하초가 들어간 전통 차가 다기에 담겨 나왔다. 그 뒤로 이어진 코스 요리는 궁정식이였다.

난생 처음 보는 그릇에 신선로와 구절판 같은 메뉴들이 나올 때마다 한복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이 들어와서 음식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정갈한 음식들은 전부 맛있었지만,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마주 앉은 설이가 내 앞 접시에 살코기를 올려주었다.

"근데 설아, 이런 곳은… 비싸지 않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어, 형."

"여기 왠지 상견례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하하…"

설이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입 끝을 올려 웃었다.

"형, 결혼하고 싶어?"

"큽!"

목 뒤로 넘어가고 있던 전복이 목에 걸릴 뻔해서 헛기침을 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반대 의사를 표하자, 설이가 조금 더 깊어진 눈빛으로 미소 지었다.

고등어 자반의 기름진 살코기가 맛있어 보여서 가시를 발라내 설이의 숟가락 위에 올려줬더니 설이는 나와 눈을 맞춰 웃어주곤 밥을 먹었다.

매끄럽게 올라간 눈매 안으로 신비로운 회색 빛이 어린 검은 눈동자가 내 모습을 담고 있다. 그림처럼 잘 빠진 입술이 음식을 오물거리며 먹고, 흰 뺨이 볼록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우리 설이 나중에 결혼할 때는, 형이 멋진 식당에다가 상견례 예약해줄게."

"……"

"남부럽지 않게 해서 보낼 거야."

입안 가득 미역국을 집어 넣으며 나는 다짐의 고갯짓을 홀로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졸업하기 전부터 수익이 잘 나는 직장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담임은 수능 후에는 수업 일수 생각하지 말고 구직 활동에 전념하라고 나를 타일렀다. 우리 형제의 가계를 잘 알기 때문에 빠듯한 살림을 위해 편의를 봐주신 것이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설이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입술은 부드럽게 올라가 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나는 아무데도 안 가."

"응?"

"형 두고 어디 가지 않을 거야."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설이의 말뜻을 생각하던 나는 수저 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풋 웃어버렸다.

"야, 그건 당연하지! 근데 보통, 여자랑 결혼할 때 장가 '간다고' 말하잖아. 나는 그런 뜻에서…"

"여자랑 결혼할 일 없어."

"……왜?"

설이는 대답 없이 지그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설아, 너처럼 자상하고 좋은 애가 없는데… 왜 결혼을… 아니,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벌써부터 안 하겠다고 단정지을 일은 아니잖아?"

나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물론 너에게 남들과 다른 비밀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걸 이해해줄 여자는 반드시…!"

"이해 받고 싶지 않아. 형만 있으면 돼."

조용하지만 단호한 설이의 목소리에 할 말을 잃고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사춘기인 걸지도 모른다. 게다가 설이는 설 표범과 인간 사이의 존재니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겠지.

나는 빙긋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형은 늘 네 곁에 있을 거니까!"

"…응. "

수줍게 시선을 내리깔며 웃는 설이의 얼굴이 너무 예뻐서 가슴 속이 녹아 내릴 뻔했다.

***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두운 공원에서 산책도 했다.

설이와 손을 꼭 잡고 어릴 때처럼 잔디 위의 징검다리도 건넜다. 그때는 설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내가 지탱해주는 역할을 했었는데, 이제는 설이가 비틀거리는 내 팔을 쥐어주고 손을 잡아 이끌어주었다.  듬직한 보디가드라도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밤거리를 설이와 둘이 걷고 있으면 불량한 인사들이 시비를 걸다가도 설이와 눈이 마주치면 그대로 조용히 물러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설이가 워낙 잘 생겨서 연예인이라고 착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가로등 불빛이 부드럽게 뿌려진 벤치 앞에서 설이가 멈춰 섰다. 

뒤돌아 나를 꼭 껴안더니 내 귓가에 콧날을 비벼댔다.

"사랑해, 형."

그저 다정한 동생의 애정 표현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아프도록 떨리는 걸까.

마치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 있는 장면 속에 내가 있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작게 숨을 내뱉으며 응, 하고 작게 대답했을 뿐인데도 설이는 행복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쥐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코트 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열자, 조그마하게 보석이 박혀 있는 얇은 은색의 반지가 보였다.

"뭐… 뭐야, 왠 반지야?"

"졸업 선물, 미리 주는 거야."

설이는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 끌더니 싱긋 웃으며 내 왼손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약지에 꼭 맞게 들어가는 반지는 아주 얇아서 평소에도 끼고 다닐 수 있는 정도였고, 디자인이 심플했다. 작은 보석 하나가 박혀 있지만, 지나치게 화려한 액세서리의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수호해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작스러운 반지 선물에 놀라기도 했고, 가로등 불빛 아래 반짝이는 반지가 너무 예뻐서 나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이제 형 곧 스무 살이니까, 선물해주고 싶었어."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설이가 내 표정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동아리 같은 데에 들면, 후배들이 졸업하는 선배에게 돈을 모아서 졸업 반지를 선물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다. 나는 바빠서 동아리 활동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 후배들을 대신해서 준다는 마음으로 준비했구나, 싶어 대견함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눈동자에 눈물이 어리자, 반지 안의 보석이 무지개 빛깔로 아름답게 수놓아졌다. 멈칫, 고개를 들었다.

"설아, 근데 혹시 이거… 다이아몬드야? 아니지? 그건 엄청 비싸잖아."

내 질문에 설이는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내 손바닥을 간질이듯 문질렀다.

그런데 졸업 반지 같은 것을 왼손 약지에 끼는 게 맞던가.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보통 티브이에서 보면 약지에는 결혼 반지 같은 것을 끼고 있던 것 같다. 어머니도 결혼 예물로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옥 반지를 왼손 약지에 내내 끼고 계셨던 것 같은데.

"내가 준 거니까, 소중히 할 거지?"

"어? 그럼! 당연하지!"

"매일 끼고 다녀줘, 형."

설이가 내 손을 가져가 손등에 작게 입 맞추었다. 눈을 감고 내 손등에 입술을 댄 설이의 얼굴이 고귀한 천사 같아서 나는 기분이 멍해졌다. 우정혁 놈을 학교에서 만나면 뒤통수를 한 대 후려 갈겨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이렇게 천사 같은 내 동생이 어떻게 악마냐, 눈 나쁜 새끼.

나는 설이를 꼭 끌어안았다. 커다란 설이의 품에 거의 폭 안기는 형태가 되었지만, 나는 형이니까 설이의 등에 팔을 뻗어 착한 동생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형이 평생 끼고 다닐게! 정말 고마워, 설아."

두 손으로 설이의 등을 강하게 꼬옥 끌어 안았다.

"그리고 형도 우리 설이 많이 사랑해. 알지?"

"…응."

귀엽게도 설이는, 연인에게서 사랑 고백을 받은 청년처럼 조그맣게 대답하며 내 어깨에 이마를 댄 채 수줍게 웃었다. 차가워진 뺨을 감싸 마주보자, 귀 끝까지 빨개진 설이가 드물게도 무척이나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가지런한 속눈썹을 내리깐 채로 내 시선을 피하는 설이의 얼굴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어릴 때처럼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댈 뻔했다.

"크흠! 이, 이제 집에 갈까?"

헛기침을 하며 설이의 뺨을 놓아주려는데, 설이가 내 두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뭔가 기대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발그레한 뺨과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듯 아름다운 흰 얼굴에 나는 잠시 홀린 듯 몽롱해져 있다가 나도 모르게 설이의 도톰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촉,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이런 건 이제 곧 성인인 형제끼리는 너무 지나친 애정표현인데, 싶어서 정신을 차렸을 때 설이는 눈을 뜨고는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설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나도 전염이라도 된 듯 웃음이 났다. 확실히 설이는 눈 덮인 산에서 나를 찾아온, 천사가 분명하다.

……어차피 우리 둘뿐인데, 오늘 하루쯤은 과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설이가 내 뺨을 감싸며 천천히 다가왔고, 우리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첫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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