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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린 사실 친형제가 아니야! (3/65)

3. 우린 사실 친형제가 아니야!

장례식은 속초에 있는 의료원에서 치러졌다.

아버지가 산에 오른 건, 우리 형제가 등교하던 아침 즈음이었다. 아마 동화책을 위한 자료 조사를 위한 등산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야생 풀꽃을 책 안에 그려 넣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우리를 학교까지 차로 태워 데려다 주신 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이나 아버지를 기다렸다고 했다. 급기야 점심 때가 한참 지나서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아버지를 직접 찾으러 산에 간 어머니는, 비탈길에서 아버지의 등산화 한 짝을 발견했고 바로 신고했다.

교무실에 불려갔을 때, 설이가 이미 고학년 담당 교사 앞에 서 있었다. 그때부터 난 이미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경비 겸 교내 잡일을 도와주는 박씨 아저씨의 트럭을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도중에 아버지가 이미 숨을 거두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꽃 구경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가파른 언덕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경찰은 그렇게 추측했고, 우리에게는 달리 의심할 다른 원인이 없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고, 타살의 흔적도 없었다.

외삼촌 내외가 밤늦게 다녀갔고, 쓸쓸한 장례식장에는 우리 세 식구가 남았다. 암흑과도 같았다.

열세 살이던 나는, 남 앞에서 질질 우는 것이 싫었다. 아랫입술을 터질 때까지 꾹 깨물고 참다가 화장실에 숨어서 몰래 훌쩍이며 울었다. 아버지 사진 앞에 기대어 앉아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형… 여기 있어?"

고요한 새벽, 장례식장 화장실 칸막이 밖에서 설이가 날 조용히 불렀다. 울음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고 울음을 그치려 노력했지만, 가쁜 숨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칸막이 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설이가 가만히 내 숨소리를 듣고 서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혼자 울지 마, 나 있잖아."

쓸쓸해하는 나지막한 그 목소리에 나는 잠긴 문을 열었다.

까맣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슬픔을 가득 머금고 나를 바라봤다. 이미 그때 설이는 나보다 한 뼘은 더 키가 컸다. 뒷목이 새까맣게 탈 정도로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고 돌아다니는 애들과 다르게, 설이는 차분하고 성숙했다. 뼈가 곧은 어깨, 골격부터 큰 손과 다리는 이미 소년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얼굴에 나를 위로하고자 미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나는 내게 조용히 팔을 벌리는 설이의 품에 뛰어들어 안겨 울었다.

"설아, 흐, 아버지가… 흐으…!"

그때 나는 처음으로, 설이가 더는 꼬리와 귀를 숨기지 못하는 작은 동물이자 내 아기 같은 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듬직한 존재였다. 만약 설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 어둠과 같은 시기를 지나기 더욱 힘겨웠을 것이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상주가 된 내 곁에 작은 아들 설이가 지키고 서 있는 것에 훨씬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우리, 서울로 갈까?"

장례식을 모두 마치고, 아버지의 유해를 뿌려드린 후에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떠나고 싶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의견을 따를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로 이사했다.

중학교를 서울에서 보내게 된 첫 학기는, 꽤나 빠르게 지나갔다.

강원도 산골과 다르게 최첨단이었던 교내와 거리, 아파트의 시설에 적응하고 서울 애들 문화에 섞여 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도 새 직장을 얻고 서울살이에 적응하느라 슬픔을 뒤쳐두고 바삐 움직이셨다. 비록 시장 잡일이라 몸이 부서지게 바쁘셨지만 그래도 우릴 위해 잘 웃으셨다. 덕분에 집안에는 활기가 돌았고, 우리 가족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몰두했다.

그런데 설이는 그다지 새 생활 적응에 어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설아, 이게 뭐야?"

"…잡동사니. 그냥 그대로 둬."

서울 초등학교의 육학년으로 전학을 온 설이가 혹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은 확실히 나의 기우였다. 설이의 책상 옆에는 선물이 가득 담긴 종이 백이 있었다.

더 어렸을 적에 학교 아이들이 선물한 것을 받는 족족 나에게 주어서 그러지 못하게 교육했던 덕분인지, 설이는 서울 학교에서 받은 선물들을 내게 주지 않고 그대로 모아놓고 있었다. 정성 들여 쓴 편지도 몇 장이나 되었다. 하지만 내게 혼이 날까 봐 버리지 않았을 뿐, 그 모든 것을 그저 잡동사니처럼 쌓아두고만 있었다. 어떤 귀중한 선물도, 정성스런 고백 편지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사는 맨션 현관 앞까지 몇몇 아이들이 찾아오는 날도 있었다.

"너 누구니? 설이 찾아왔어?"

"네, 저 6학년 1반 황주은인데요. 한설 집에 있어요?"

"설이 지금 심부름 갔는데, 들어와서 기다려."

긴 머리카락을 높게 묶은 여자아이는, 아직 집에 도착해서 교복을 갈아입지 못한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중학생이던 나보다는 설이가 더 일찍 하교했기 때문에, 일 하느라 집에 없는 어머니 대신 우리 두 형제는 알아서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설이가 장을 봐오면, 내가 집에 도착해서 밥을 만들곤 했다.

여자아이는 뭔가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안 들어갈래요. 그냥 이것만 한설 전해주세요."

불쑥 내민 것은, 초콜릿이었다. 페로로로쉐라고 영문 로고가 적힌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는 금박으로 싸인 동그란 초콜릿이 들어 있고 겉면은 리본과 스티커로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쪽지도 끼워져 있었다.

내 동생이 워낙 잘 생기고 멋져서 아마 전학 온 뒤에도 수 없이 많은 고백을 받았을 것이다. 그게 나는 내심 뿌듯하고 흐뭇해서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서울에 와서 처음 알게 된 '발렌타인데이' 라는 날 때문에 초콜릿을 선물한 것이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왜, 들어와. 설이 금방 올 거야."

"오빠는… 한설네 형이죠?"

여자아이는 경계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내 얼굴과 교복을 살폈다. 니트로 된 교복 조끼에 명함이 새겨져 있었다. 여자아이가 그걸 읽으며 입술을 비죽거렸다.

"한준… 오빠는 한설이랑 별로 안 닮았네요?"

조롱하는 어투였지만, 그래 봐야 설이를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의 새침한 말투였고 나는 딱히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이미 교복을 입어도 멋지게 어울릴 만큼 키가 쑥쑥 크고 있는 설이와 다르게 나는 백육십오 센티미터에 머물러 있었다. 게다가 설이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외모인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민망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렇지? 우리 설이가 워낙 멋있으니까. 뭐 주스라도 줄까?"

"안 돼요."

여자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복도 계단 쪽을 힐금거리며 초조해하는 기색이었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듯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오빠랑 얘기하면 한설이 엄청 싫어한단 말이에요."

"응?"

여자아이가 샐쭉한 표정으로 나를 흘겼다.

"한설이랑 같은 반 김효인 아시죠? 걔가 여기 찾아왔다가 오빠가 깎아주는 사과 먹었다면서요. 한설이 그 뒤로 김효인을 투명인간 취급한단 말이에요. 걔랑 말도 안 하고 차갑게 대해서, 걔 울었어요."

"...뭐?"

나는 얼이 빠져서 멍하니 입을 벌렸다.

김효인이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설이를 찾아왔다면서 초인종을 누른 남자아이가 있었다. 설이는 두부 심부름을 보낸 참이었다. 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축구부에 들어오라고 해도 싫다고 하여 설득하기 위해 집에 방문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까지 설이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그 애가 고마웠다.

설이가 오기 전까지 줄 게 없어서 어머니가 사다 놓은 사과를 깎아서 먹였다. 집에 온 설이는 그 애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다지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둘이 방에 들어가서 놀라고 한 뒤, 나는 식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설이와 방에 들어간 지 5분도 안 되어서 그 애는 돌아갔다.

그 뒤로는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설이가 왜 사과를 먹었다고 그 애를 미워해?"

여자 아이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게 아니라요오, 오빠랑 얘기한 게 잘못이라니까요? 유미니도 한설한테 말도 못 붙여요!"

"아, 미니!"

이름이 특이하고 이름처럼 조그마했던 여자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쿠키 상자를 들고 집에 찾아왔었다.

직접 만들었다며 설이에게 쿠키를 내미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고마워서, 집에 들어오게 했다. 싹싹하고 착한 그 애가 우리 설이와 친하게 지내줬으면 했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예의 바르게 거절했고 그 뒤로는 그 애도 찾아오지 않았다.

"왜, 설이가 나랑 말한 친구를 미워한다는 거야? 응?"

"몰라요. 저 이제 갈 거니까, 그거나 한설한테......"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돌아가려는 여자아이 뒤로 설이가 계단을 올라왔다.

"뭐야."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설이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한 집에 사는 형인 내가 가장 잘 알았다.

여태까지 내 앞에서 미주알고주알 열심히 얘기를 잘 하던 여자아이는 설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혼비백산이 나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도망치듯 달려 맨션을 빠져나갔다.

찬거리가 든 할인마트 비닐봉투를 든 설이는 삐딱한 시선으로 내 손에 들린 초콜릿 상자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눈빛이 하도 차가워서 냉장고에 안 넣어놔도 초콜릿이 깡깡 얼어버릴 정도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 형제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는 그 여자아이의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설이는 저와 너무 다르게 생긴 내가 창피할 지도 모른다. 잘하는 것 하나 없고, 삐쩍 마르기만 한 형을 친구들에게 내보이는 게 부끄러워서 그 친구들과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달리 추측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나는 내가 세운 가설에 확신이 들었고, 조금 우울했다.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는 설이가 했다. 나는 거실 겸 부엌 바닥에 앉았다.

"설이, 너 이리 와서 앉아 봐."

얌전히 내 앞에 앉은 설이는 순한 양과 같았다. 도저히 나를 창피해하고 친구들에게 쌀쌀맞게 대할 아이 같지 않았다. 워낙 설이가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아서, 다른 애들이 착각한 건 아닐까? 

하지만 설이를 보고 놀라서 도망가던 여자아이의 얼굴에는 정말 두려움이 가득했다.

나는 형으로써 해야 할 말은 해야 했다.

"설아. 너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게 싫으니?"

"......응."

후우, 다행히도 설이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왜인지 형이 물어봐도 될까?"

그러나 그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입을 다물었다. 설이는 제가 잘못한 것이 있건 없건, 내가 혼을 내는 분위기가 되면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런 기운 없는 설이의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더 할말도 못하곤 했다. 나는 훅, 숨을 내쉬었다.

"설이 너, 형이 네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나면… 그 친구들이랑은 안 논다면서? 왜 그런 거야?"

"......싫어서."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나는 차마 더 묻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설이 머리카락 사이로 흰 표범의 귀가 비죽 튀어나왔고, 어느새 긴 꼬리가 바닥을 툭 치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설이는 제 꼬리와 귀가 튀어나온 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릴 때 이후로 몇 년 만에 보는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꼬리의 매화꽃 모양 고리 무늬는 더욱 선명해져 있었고 탐스러운 흰 털이 가득한 보송보송한 꼬리가 기운 없이 축 늘어졌다. 새까만 귀 끝 털이 선명한 귀가 파르락거리며 움직였다. 나는 당황해서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

"너... 애도 아니고... 귀, 귀랑 꼬리……!"

설이는 훌쩍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형은 내 거잖아. 내 형이잖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새까만 눈동자가 진실된 빛으로 번들거렸다.

"형은 내거니까, 걔네랑 얘기하는 거 싫어. 설이 형이잖아... 하나뿐인 설이 형이잖아. 응?"

나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설이의 눈물 어린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보니 설이를 아버지가 눈 산에서 데려온 것은 무척이나 조그마한 새끼 시절이었다. 어쩌면 설이는, 내가 정말로 제 친 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어려서 기억을 못하는 지도 모른다. 

나와 부모님은 짐승의 꼬리와 귀가 튀어나오지 않는 것은, 숙련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할 수 없군. 진실을 말해야겠다.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두 주먹을 꾹 쥐었다. 눈을 질끈 감고 겨우 입을 열었다.

"설아, 사실은… 우리는 친형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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