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요정의 아기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다.
아기였던 내가 아토피와 폐렴을 앓아서, 좀 더 좋은 환경을 위해 강원도 산골로 이사를 했다고 들었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름 없는 동화작가였던 아버지와 잡일을 해가며 집안을 꾸리셨던 어머니는 사정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두 살배기 나를 데리고 산골까지 오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외동이었다. 주변에는 빽빽하게 산이 들어찬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는 폐허나 다름 없었다. 없는 살림에 리모델링 하여 나름대로 아늑하게 만들었던 단칸방의 마루 딸린 집이, 나는 좋았다.
자주 목이 붓고 열이 났던 나를 위해, 어머니는 이것저것 좋다는 약초를 구해와서 달여 먹였고, 아버지는 틈틈이 읍내까지 트럭을 타고 나가서 소아과와 약국을 다니며 약을 구해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땔감을 떼오고, 밥도 짓고 일거리도 찾아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두 부부가 바쁘게 움직여도 모자랄 텐데, 늘 한 분은 내게 발이 묶여 있었다. 그래도 늘 웃고, 긍정적인 분들이셨다.
어머니는 열에 달뜬 내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하곤 했다.
"아휴, 우리 준이 형제라도 있었으면 덜 심심했을 텐데. 그렇지?"
살림에 여유가 없으니 동생이 생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네 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동화책을 읽으며 이야기 속에 나오는 형제나 자매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폭설 속에서 하필이면 똑 떨어진 내 해열제를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던 아버지는, 반나절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눈이 쌓여 늦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늦은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업고 재우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여보! 준아!"
한참 멀리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어머니는 눈물이 쏙 났다고 했다.
창문을 뒤흔드는 눈바람을 뚫고 집에 도착한 아버지는 해열제와 함께 다른 것을 구해오셨다.
바로 내 동생, 한설이었다.
***
"어머, 고양이 아니야? 어디서 데려왔어요?"
어머니가 짠 아버지의 두터운 뜨게 목도리에 둘둘 감긴 눈 덩어리를 이불 위에 올려 놓았다.
나는 해열제를 먹고 겨우 벽에 상체를 기대어 앉아, 그 작은 덩어리를 흘깃거렸다. 사실 내가 동생만큼 또 바랐던 것이 바로 동물이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키우고 싶었다. 가끔 집밖에 고라니나 다람쥐가 다니는 것도 봤지만 어차피 그들은 내 동생 삼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데려온 눈 덩어리는, 내 것이었다.
"봐라. 준아, 네 동생이다."
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며 따뜻한 물수건으로 눈 덩어리를 닦아냈다. 푸슬푸슬 떨어지고, 녹아 내리는 눈 뭉치 안에는 작은 동물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사랑에 빠졌다.
꼬리와 조그마한 귀를 파르르 떨며 신비로운 은회색 눈동자가 떠지더니 나를 바라봤다.
마치 새끼오리처럼, 설이는 눈 뜨자마자 본 나를 부모처럼 여기는 것인지 유독 잘 따랐다.
없는 살림에 주변에 마트라고 할 것이 없는 건 물론이고 시장마저 멀리 나가야 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고양이 사료를 준비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장에서 사온 돼지고기를 잘게 썰고 밥과 함께 삶아서 설이에게 먹였다. 설이는 뭘 줘도 잘 먹었고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얌전히 내 곁에서 잠들었다.
영양실조였던 것인지 삐쩍 말랐던 몸은 곧 토실해졌고, 온몸을 수놓은 듯 멋진 고리 무늬도 나날이 선명해졌다. 밝은 은회색의 몸체에 검은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무척 아름다웠다. 부드러우면서도 결이 강한 설이의 털을 쓰다듬고 있으면 나는 행복해졌다.
"설아, 이쪽으로 와!"
날이 따뜻해지면서 나는 건강해졌다. 어쩌면 늘 곁에 있어준 설이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설이와 봄 꽃이 핀 산기슭까지 뛰어 놀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목줄을 하지 않아도 내 착한 흰 고양이는 멀리 가지 않았다. 내가 부르면 어디에서는 금방 달려왔다.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지, 주변에 보이지 않아도 이름을 부르면 바로 등뒤에 달려와서 장난치듯이 내 등에 매달렸다. 부드러운 혀가 내 뺨과 목덜미를 핥았고, 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설이는 큰 덩치로 내게 안겼다.
"여보, 근데 우리 설이 너무 빨리 커진 거 아니에요?"
"그런가요?"
"고양이가... 원래 이렇게 크던가?"
어느 날 세 식구가 접이 식 상을 펴놓고 식사하며 바닥에서 고깃국을 먹는 설이를 내려다보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설이는 몇 달 만에 30센티미터 가까이 몸이 길게 자랐다.
기네스북에 오른 대형 고양이는 거의 새끼 표범 정도의 크기가 된다는 말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설이의 생김새는 고양이라고 보기에는 좀 더 야생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내게는 온순하고 귀엽게만 생긴 내 동생이었지만, 그건 우리 가족의 시선 안에서만 그랬던 모양이다.
"호... 호랑이! 호랑이가 있어...!"
식자재를 배달해주려고 친히 트럭을 몰고 집 앞까지 와준 읍내 김씨 아저씨가 근처에서 나비를 따라 뛰어 놀고 있던 설이를 보고 그렇게 소리치며 엉덩방아 찧지 않았다면, 그때까지도 우리 가족은 거의 성체가 되어가는 설이를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를 재워둔 채, 부모님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산속에 풀어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저 아이도 무리를 만나야죠."
"집에서 키웠는데 무리가 있더라도 설이를 받아주겠어요?"
"그래도 여보, 우리가 산짐승을 계속 키울 수는 없는 거잖아요."
나는 베개를 적시며 흐느껴 울었다.
내 이불 안으로 들어온 설이가 본능적으로 내 뺨의 눈물을 핥았고, 나는 이제 어린 내 두 팔로 전부 끌어안을 수도 없게 커져버린 설이를 안은 채 그 보드라운 털 속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 것이, 너무나 슬펐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내 옆에는, 알몸의 소년이 내 손을 쥔 채로 잠들어 있었다.
그 아이가 설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길쭉한 팔다리와 뽀얀 피부, 차분하게 감긴 속눈썹과 가지런한 콧날, 도톰한 입술, 새까만 머리카락이 모두 너무 예쁘장하게 잘 생긴 소년이었지만 귀와 꼬리는 내 동생 설이의 것이었다.
분명 신체는 인간의 형태였지만, 흰 표범의 꼬리와 귀가 그대로 달려 있는 기묘한 모습이었다. 인간도, 짐승도 아니었다.
나를 깨우러 왔던 부모님은 그런 설이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어머! 여보, 얘... 얘 좀 봐요!"
"이런! 이, 일단 옷을 입혀야겠어요. 감기 걸리겠어!"
아버지는 빠르게 서랍을 뒤져서 내 잠옷을 한 벌 꺼내 아직 잠이 덜 깬 소년에게 입혔다.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양말을 신겼다. 귀 끝을 파닥이며 스르르 눈 뜬 아이가 보드라운 옷에 뺨을 비비며 환하게 웃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설이가 웃고 있었고, 내 동생이며 우리 가족인 것에서 변하는 건 없었다.
무명의 동화작가였던 아버지는 이 기적을 그저 기쁘게 생각했다. 아버지는 설이를 '요정의 아기'라고 생각했으며, 그 덕분에 영감을 얻어 새 그림책을 그리는 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생활고로 그림책에 대한 열정을 잃었던 아버지에게 설이는 또 다른 축복이었다.
역시 그런 아버지를 사랑해서 결혼한 여자답게 어머니는 설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설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했다. 하늘이 우리 가족에게 아이를 선물해주었고,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형… 형아…”
“응, 그래. 설아. 내가 설이 형이지?”
“형아… 설이… 설이 거야.”
역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일까, 설이는 말과 글을 빨리 깨우쳤다.
이미 아기 시절을 짐승의 형태로 다 자란 채였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로 보였다.
수저를 쥐고 밥 먹는 일을 가르치고, 함께 집밖을 쏘다니며 풀꽃과 곤충의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내가 여섯 살이던 무렵, 설이는 꼬리를 감추고 표범의 귀마저도 인간과 같은 형태로 변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지나치게 신나서 뛰어 놀거나 할 때에는, 표범의 귀와 꼬리가 튀어나왔지만 그건 차차 연습시키면 될 일이었다.
그리하여 설이는 다섯 살 때, 읍내에 처음 나왔다. 아버지는 우리 두 형제에게 사탕을 물려주고 읍내장을 돌아다니며 두 아들을 자랑했다. 뒤 늦은 출생신고로 과태료를 내고 애를 많이 먹었지만, 가족관계증명서에는 ‘한설’이라는 이름이 버젓이 들어갔다.
아버지의 그림책 수입이 나아지고, 우리는 조금 더 번듯하게 집을 보수했으며 중고 승합차를 장만했다. 집에 틀어박혀 일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차를 몰고 나를 읍내 초등학교까지 데려다 주셨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게 즐거웠지만, ‘집에 가서 내 동생 보고 싶다’는 생각에 수업 시간 내내 오매불망 발을 동동 굴릴 때가 더 많았다.
***
“엄마, 나도 학교 갈래요. 형아 학교. 설이 같이 가.”
내가 하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지루했는지, 어느 날 설이는 어머니를 붙잡고 서러운 듯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로 졸라댔다.
지금도 미남이지만 어릴 때의 설이는 꼭 동화 속에서 튀어 나온 듯 또렷하고 커다란 눈매에 오밀조밀 예쁜 콧날과 입술, 뽀얀 피부의 요정 같았다.
설이가 그런 슬픈 얼굴을 하고 조르면, 못 얻어낼 게 세상에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학교에서 꼬리라도 튀어나오는 날에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을 것이다. 교내가 발칵 뒤집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을 부르거나 뉴스에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설이는 외계 생물체 따위로 의심되어서 실험대에 오르거나 평생 유리관에 갇혀 지내게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설이의 정체가 탄로나면 생명이 위험했다.
“나 잘 숨길 수 있어요. 이틀 동안도 꼬리 귀 안 나와요. 설이 잘해요. 네?”
간절한 눈빛으로 설이가 내 옷자락을 쥔 채로 부모님을 번갈아 가며 올려다봤다. 그리고 결국, 설이는 입학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설이의 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는데, 몇 안 되는 읍내 학교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학년의 여자 아이들은, 다 합쳐봐야 열 명이 안 되었지만 모두가 설이를 짝사랑했다.
육 학년 졸업반이었던 한 누나는, 집에서 매일 설이에게 줄 선물을 가져왔다. 종이 학을 접어서 병에 넣어오는 날도 있었고, 쿠키를 구워오거나 김밥을 싸오는 날도 있었다. 경쟁이 붙어서 다른 학년 여자아이가 집에서 키우는 오리가 낳은 알을 가져왔는데, 육 학년 누나가 그걸 운동장에 던져서 깨졌다. 둘은 울며불며 서로 싸워 난리가 났다.
그러나 그 애들이 그렇게 애써 준비한 선물은 고스란히 저녁마다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삼 학년쯤의 어느 날, 설이를 앉혀두고 설교했다.
“설아. 친구들이 설이 생각해서 선물한 건데, 다 형한테 주면 안 돼.”
“왜 안 돼?”
“설이 좋아해서 주는 거니까, 형한테 주면 다들 슬퍼해.”
얌전히 무릎 꿇고 앉아 바닥을 내려다보며 까만 눈을 깜빡이던 설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형을 좋아해서 형에게 준거야. 안 돼?”
“어… 나도 모르겠다. 일단 친구들한테 꼭 ‘고마워’ 하고 나한테 준 건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열 살 정도였던 나도 해결책을 몰랐고, 나는 그저 내 동생이 나를 그만큼 따라 준다는 것이 기뻤다. 게다가 여자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동생을 두었다는 것도 퍽 자랑스러웠다. 내 동생 예쁘지? 내 동생 잘 생겼지? 그렇게 하루 종일 자랑하고 싶은 것을 참는 것만해도 나는 내가 철들었다고 생각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설이의 공부 습득력은 더 월등히 좋아졌다. 나는 고작 수업을 따라가는 것에 급급했지만, 설이는 두 학년 정도는 거뜬히 뛰어넘는 교과과정까지 이해했다. 신입 교사는 설이를 큰 도시의 학교로 보내야 한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신입 교사가 가정방문을 하고 간 다음부터 설이의 시험성적은 하락했다. 갑자기 공부를 못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딱 그 학년에 맞는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게 되었다.
남자아이들은 어느 학년이고 모두 설이를 시기했는데, 그래서인지 설이는 친구가 없었다.
“야, 준. 내가 너 주려고 집에서 훔쳐왔다.”
당시 내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읍내 슈퍼 집 아들 김수영은, 자주 내게 크런치 바 같은 것을 내밀었다. 우유에 타먹으라며 초콜릿 가루 같은 것을 주기도 했다. 물론 전부 그대로 집에 가져가서 저녁 먹기 전에 설이 입에 넣어주곤 했지만, 나는 읍내에 살지 않는 나를 친하게 생각해주는 김수영이 고마웠다.
“야, 너 나보다 한 살 어리잖아. 형이라고 불러, 인마.”
“한준 너는 나보다 작잖아. 근데 형은 무슨, 형?”
“콱! 그냥, 너 내년에 누가 더 크나 보자.”
운동장에서 김수영과 낄낄거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설이가 다가왔다. 설이는 물끄러미 한 걸음 뒤에 서서 나와 김수영을 바라볼 뿐 불평을 하거나 끼어들어 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수영은 설이를 불편해했는데, 아마도 설이가 그때부터 유난히 잘 생기고 또래보다 키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내가 김수영과 치고 박고 싸우는 일이 벌어졌다.
교내 소풍 날이었다. 가까운 계곡으로 모든 학년 학생들이 다 모여서 놀러 갔다. 그래 봐야 서른 명 남짓한 인원수였고, 교사는 세 명이었다. 시원하게 계곡에 수박을 담가놓고 찬 물에 무릎까지 넣은 채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그러다가 설이가 없어졌다.
계곡 물에 떠내려간 설이는, 겨우 바위에 몸을 걸쳐 살아남았다.
구급대원이 왔고, 인공호흡 끝에 겨우 숨을 쉬었다. 입술이 푸른 빛이었다. 나는 동생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신임 교사도 우리를 껴안고 울었다.
구급대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설이와 김수영이 함께 넓고 비탈진 바위 언덕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목격한 아이가 있었다. 교사들이 절대 오르지 말라고 주의를 준 곳이었다.
김수영은 울먹이는 얼굴로 소리쳤다.
“내… 내가 아니라, 한설이 올라가자고 한 거였어요!”
“그래서, 바위에서 설이가 미끄러졌니?”
김수영은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져서… 내가 얼른 손을 잡았는데… 그랬는데 한설이 뿌리쳤어요… 진짜예요!”
김수영은 덜덜 떨면서 공포에 질린 눈으로 설이를 쳐다봤다. 설이는 겨우 숨만 내쉬며 담요에 감겨 있었다. 차게 식은 몸으로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곧 구급차에 실렸다. 나는 뺨에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구급차에 함께 올라탔다.
“그런데 왜 바로 선생님한테 알리지 않았니?”
“무… 무서웠어요… 쟤가… 물 위에 잘 헤엄치다가 갑자기 멈춰서 스스로… 자기가 스스로 빠졌단 말이에요…!”
나는 구급차에 타기 전에 김수영에게 달려가서 그 녀석을 마구 때려줬다. 교사가 날 안아 들기 전까지 손발을 휘둘렀다. 어떻게 그런 변명을 할 수 있는지, 위험에 처한 내 동생을 왜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는지, 김수영에 대한 배신감이 차 올랐다. 그 뒤로도 김수영은 몇 번이나 내게 변명 섞인 사과를 했지만 나는 졸업할 때까지도 김수영을 용서할 수 없었다.
“혀엉… 나 추워.”
“그래, 설아. 형 여기 있어. 걱정하지 마. 응?”
“응…”
설이의 차갑고 작은 손이 구급차 안에서 내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옆에 있어서 겨우 안심한 듯이 설이는 미소 지으며 잠들었다. 내가 내 동생을 지켜줘야지, 다짐하며 설이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