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나 혼자 10만 대군 202화
59장 나 혼자 10만 대군 (7)
그것은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림자가 빨려 들어오고, 분명 그림자에 불과한 그 형상은 내게 정보를 전해주었다.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누군가가 나와서 직접 말해주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림자가 내 몸 안쪽에 흡수된 그때부터 그 정보는 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자신만만하게 다가오던 사탄이 다시 한번 손에 검은 마력구체를 만들어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사방으로 기운을 퍼뜨리는 마력 구체를, 그는 망설임 없이 던졌다.
그와 함께 검은 마력은 빠른 속도로 내게 쏘아지고 있었지만, 아까 전 찾아왔던 주마등은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우연하게도 내가 방금 흡수한 그림자 형상의 능력은 모든 ‘마력’을 반사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츠츳거리는 소리를 내며 품 안으로 빨려 들어오듯 날아오는 검은 구체, 나는 말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
사탄이 던진 검은 마력은 내가 들어 올린 왼손에 정확히 위치해 날아오던 힘을 잃었고, 오히려…….
쾅! 콰가가가가각!
순식간에 사탄 쪽으로 날아가 그의 몸을 맞히며 터져 나갔다.
“이건 또 뭐야!”
수북하게 퍼지는 흙먼지와 건물 잔해 사이로 사탄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이 주변에 있는 ‘그림자’를 모조리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한 것만으로도 내 주변에 잔뜩 소환되었던 다른 형상을 가진 그림자들은 내 몸속으로 빨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의 그림자가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옴과 동시에 수백 가지의 기억이 내 머릿속을 관통하고 지나간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부터 몰려오는 깊은 만족감과 동시에 나는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탄을 마주 봤다.
“이 녀석, 어떻게……!”
“말했잖아? 나도 너처럼 할 수 있다니까?”
그림자들의 능력을 사용한다.
회복에 관한 능력을 사용하고.
재생에 관한 능력을 사용한다.
“자 그럼 이제 진짜로…….”
온몸에는 마법 저항과 마법 반사를…….
“끝내자.”
왼손에 들고 있는 창과 오른손에는 각각 수많은 종류의 능력을 무작위로 때려 박으며, 나는 사탄에게 달려나갔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검은 마력을 폭사시키며 빠르게 달려온다.
검은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달려오는 사탄.
분명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그 모습이, 지금의 나에게는 무척이나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발을 딛고, 도약해 내 옆으로 다가와 팔을 내딛는 장면까지.
처음 싸울 때는 기묘한 움직임으로만 보였고, 그가 마력을 폭사시키고 싸웠을 때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던 그 공격이, 지금에 와서는 무척이나 자세하게 보였다.
관절의 꺾임이.
발을 딛는 위치가.
몸의 하중을 이동시키는 움직임이.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제대로 보였다.
그렇기에…….
“무슨……!?”
보이는 것을 피하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된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탄의 눈빛을 보며 나는 그가 볼 수 있게 입가를 끌어올린 뒤, 그의 배에 창을 찔러 넣었다.
사탄은 뒤늦게 몸을 비틀고 마력을 일으켜 창을 보호하려 했지만, 마력의 반사가 걸려 있고, 무엇이든지 뚫을 수 있는 신창의 능력을 결합한 엘리고르의 창은…….
푸화아아악!
“끄아아아악?!”
사탄의 배를 무척이나 간단하게 뚫어버렸다.
그는 배가 뚫림과 동시에 자신의 권능 중 하나를 이용해 내게서 벗어난 뒤, 아직도 그 말도 안 된다는 눈빛을 지우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배에는 지금까지는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뭐냐! 뭐냔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변한 거지!? 도대체 어떻게!”
사탄이 괴성에 가까울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
“이 새끼 이거 완전히 조울증이네? 10초 전에는 웃다가 10초 후에는 울다가, 너 완전 또라이처럼 보이는 거 아냐?”
내 이죽거림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는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섣불리 다가오지는 못하겠는지 몸을 주춤거릴 뿐이었고, 나는 피식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가속화’를 이용해 땅을 박찬다.
‘정거’를 이용해 그의 뒤에 몸을 멈추고.
‘일권’을 통해 그의 뒤통수에 주먹을 휘두른다.
꽝!
한순간 터져 나온 귀가 깨질 정도의 폭음.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건물 잔해.
하지만 나는 그 사이에도 ‘파악’을 통해 꼬꾸라진 채로 도망을 시도하는 사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콰직!
“끄아악!?”
다리를 밟힌 사탄이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심장을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콰가가강!
그는 그 찰나의 순간 정신을 집중해 다시 한번 위치를 이탈했고, 나는 엘리고르의 창을 뽑아 ‘파악’을 통해 사탄이 있는 곳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창을 던졌다.
그와 함께 다시 한번 도약.
키이잉!
몸을 움직이자마자 보이는 모습은 오른 다리가 재생되고 있는 사탄이 내가 날려 보낸 엘리고르의 창을 비껴치고 있는 모습.
나는 그의 몸을 향해 다리를 찍어 내렸다.
“끄아아아아아!!!”
쿵! 쾅! 콰아아아아아아!!!
다리를 찍어 내리자마자 주변의 지층이 허무하게 가라앉으며 양측으로 흙먼지와 잔해들을 털어낸다.
마치 대형 재해가 일어난 것처럼 주변의 잔해들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건물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탄은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도망치기 위해 마력을 사용하려 했다.
“대체 왜 마력이……!”
하나 그의 마력은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모으면 흩어지고.
또 모으면 흩어진다.
계속해서 흩어지는 마력을 보자 나는 이죽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네가 아무리 마력을 모아서 권능을 사용하려고 해도 안 될걸? 네 뒤에는 마력을 빨아들이는 그림자가 너를 붙잡고 있거든.”
“뭐……?!”
그와 함께 사탄의 등뒤에서 빠져나온 검은 그림자들은 사탄의 몸을 속박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가 빗겨 쳤던 엘리고르의 창을 다시 한번 손에 쥐었다.
손에 쥐어진 엘리고르의 창에서 오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망설임 없이 창을 들어 올린 뒤, 사탄에게 충고했다.
“그러니까 사람을 놀릴 생각이었으면 나처럼 대비를 확실하게 하고 놀려야지, 응?”
“내가, 내가……!!”
콰직!
뼈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사탄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깔끔한 일격.
조금 전처럼 사방의 건물이 터지거나, 지반이 무너지지도 않았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엘리고르의 창이 특수하게 폭발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담백한 죽음.
창을 내리 찔러 사탄의 머리통 정중앙을 관통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깔끔한 죽음.
내가 창을 빼내자, 사탄의 시체는 기다렸다는 듯 내 그림자 안쪽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마치 서서히 녹아서 그림자에 흡수되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던 사탄의 시체는 어느 한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 더 이상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은 뒤 제자리에 주저앉아 시선을 돌렸다.
보이는 풍경은 대부분 그대로였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은 서울이 얼마나 처참하게 박살 났는지 말해주고 있었고, 사방에는 온전한 건물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주변이 완전히 박살 난 지금 상황에서 조금 변하고 있는 게 있다면.
“후…….”
분명 잿빛으로만 물들고 있던 하늘이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고 있다는 것 이었다.
* * *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헌터들에 의해 매우 빠른 속도로 복구되고 있으며 48일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미국의 워싱턴 지역은 85% 이상의 복구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피해자 보고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현재 피해자 보고 상황은 UN 쪽과 국제 헌터 협회가 연합해서 조사하는 중입니다만, 한국의 경우 ‘레볼루션’이 일어난 직후 헌터들의 대처가 매우 빠른 편에 속합니다. 사상자 수가 다른 곳과 비교해 보았을 때 확연히 낮은 것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씨커 길드 사무소 2층의 휴게실에서 휴게실 메인에 있는 TV를 바라보고 있던 김서윤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야, 미국은 85%면 거의 복구 다 된 거 아닌가?”
“85%면…… 거진 전부 복구된 거지.”
“그러게, 근데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지. 우리나라도 벌써 복구율이 90%니까. 미국보다 높잖아?”
김서윤, 하리남 이은별이 차례대로 말하자 이로하는 슬쩍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그건 저희가 땅이 좀 작아서 높은 게 아닐까요?”
“그건, 확실히 그렇죠. 미국이랑 한국은 면적 차이가 또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에 대답한 에단은 이내 시선을 돌려 자신이 하고 있던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다.
[50일 전 일어난 ‘레볼루션’ 사태. 정부는 대책이 있나?]
[헌터들, ‘레볼루션 사태는 재앙을 넘어선 무언가다’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다.]
[서울 던전 80%를 씨커 길드에서 담당하다. ‘국가를 돕는 건 당연한 일’]
‘50일, 벌써 한 달 하고도 반이나 지나갔네.’
에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50일 전, 레루션 사태라고 명명된 그때 당시의 기억을 되돌아봤다.
갑작스레 몬스터들이 소환되어 지구를 완전히 개판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그때.
에단은 새삼스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길드원들을 돌아보다 문득 물었다.
“형은요?”
“응?”
“형이요. 분명 아까 전까지 저희랑 같이 TV보고 있지 않았어요?”
에단의 물음에 김서윤은 에휴 하고 한숨을 쉬더니, 말없이 손가락을 들러 저쪽으로 손을 돌렸다.
“저기에 있으시다.”
“……또?”
에단이 김우현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횃불을 보며 한숨을 내쉬자 이은별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중얼 거렸다.
“도대체 저 안에서 뭘 하는 까요?”
“아까 형님한테 물어보니까 무슨 자서전인가 뭔가, 그 내용에 대해서 뭣좀 물어보러 간다는데.
“뭐? 자서전?”
“응, 몰랐어? 형님 이번에 무슨 국가랑 협력해서 시민들이랑 헌터들이 뭔가 희망을 갖게 할 수 있는……? 뭐 그런 자서전을 쓴다고 하던데.”
“그건 또 뭔 소리예요?”
김서윤이 요상한 표정으로 묻자 하리남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솔직히 나도 잘 몰라, 형님에게 듣기만 한 거니까.”
“뭐, 그냥 지금 레볼루션 사태 때문에 시민들 불안감이 최고조니까 길드장님을 내세워서 그 불안감을 좀 잠재워 보려는 목적으로 내는 거 아닐까 싶은데…….”
“오, 그거 그럴듯하다.”
“그러게요.”
이은별이 가만히 생각하다 의견을 제시하자 김서윤과 이로하가 그럴 듯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화륵!
김우현이 나타났다.
“아저씨! 자서전 써요?”
“?”
그리고 김우현이 나타나자마자 그를 바라보며 묻는 김서윤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어떻게 하다 보니 쓰게 되기는 했는데…….”
“많이 썼어요?”
“아니, 지금 한 장도 못 썼어. 대충 ‘제목’만 정해놓은 상태인데.”
김우현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자신이 들고 있던 노트를 뒤로 감췄지만, 김서윤은 예리하게 김우현이 노트를 뒤로 감추는 것을 보며 그에게 물었다.
“제목이 뭔데요?”
“음…… 제목?”
“네, 제목이요.”
“그게…… 나중에 말해줄게, 아직 확정은 아니라서.”
김우현이 어색하게 넘기자 김서윤은 뭔가 더 추궁하고 싶은 모양새였으나, 김우현은 이내 그녀가 다시 입을 떼기 전에 밥을 사겠다며 길드원들을 데리고 휴게실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그리고 김우현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노트의 맨 위쪽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나 혼자 10만 대군’이라고…….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