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나 혼자 10만 대군 197화
59장 나 혼자 10만 대군 (2)
꽈직!
아가리를 벌리는 드래곤의 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힘차게 차올려 곤죽을 만들어버린 김서윤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은 무수히 많은 몬스터의 시체와 세기말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도시.
도로는 여기저기 반파되어 콘크리트 조각이 튀어나와 있었고, 저 멀리에 보이는 고층 빌라는 화마에 휩싸여 불타거나 어느 한 곳은 심하게 무너져 내려 있었다.
“읏……!”
주위를 둘러보던 김서윤은 문득 자신의 손에 묻은 드래곤의 붉은 피에 슬쩍 인상을 찌푸린 뒤 손을 털어냈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아직도 상공을 날아다니고 있는 몬스터가 보였다.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하늘이나 지상에 있는 몬스터의 숫자는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을 정도로 튀어나오는 몬스터 탓에 김서윤은 애를 먹었다.
상공에 있는 거대한 몬스터를 무기 삼아 통째로 걷어내도 다시 순식간에 몰려들어 잿빛 하늘을 가릴 정도였고, 지상의 몬스터 역시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 힘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이 몬스터들이 전부 ‘던전’이 아닌 ‘밖’에 있다는 사실이, 김서윤은 무척이나 초조하게 만들었다.
“후…….”
김서윤은 숨을 고르며 몬스터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잿빛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잿빛 하늘에서 터져 나온 하얀 빛.
물론 몬스터 사이에 가려져 있어 그 빛의 진원지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건 그 빛이 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끊었을 것이라고, 김서윤은 생각하고 있었다.
크에에엑!
콰지직!
김서윤은 어느 순간 자신의 뒤를 점해 기습해 온 ‘놀’의 상반신을 발차기 한 번으로 날려버린 뒤, 몬스터를 정리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리고 그때…….
“……!!”
갑작스레 느껴진 무언가의 느낌에 김서윤은 본능적으로 조금 전 놀이 있었던 그곳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꽈앙!
그녀의 주먹이 휘둘러지자마자 주변을 뒤흔드는 폭음과 흙먼지가 터져 나오고, 김서윤은 그 거창한 폭음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타격감이 없어……!’
그 어느 몬스터든 김서윤의 주먹과 발이 지나가고 나면 제대로 남아나는 녀석이 없었다.
그것은 SS급 이상의 몬스터도 마찬가지.
하지만 지금 김서윤의 본능에 의해 휘두른 주먹은 무엇인가에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귀의 ‘계승자’인가. 이 정도의 영혼이라니, 대단하군.”
그리고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면서 김서윤은 자신의 주먹을 막고 있는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머리 위에 나 있는 거대한 뿔과, 붉은 머리칼.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이 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 푸른 피부.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검은자위 위에 붉은 홍채.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느껴지는 위협감에 몸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 거리가 벌어졌지만 김서윤의 뒤에 나타난 남자, 사탄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김서윤을 바라봤다.
“너는…… 누구야?”
그리고 김서윤은 사탄을 보며 자세를 잡고서 그에게 물었다.
김서윤이 말하자 사탄은 슬쩍 고개를 기울이고 피식 웃더니 말했다.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뭐?”
“어차피 말해봤자 넌 여기서 죽을…….”
“!?”
쉭!
사탄의 모습이 일순 사라졌다가 김서윤의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사탄의 모습에 김서윤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김서윤은 순식간에 이어지는 그의 공격을 막기 위해 두 손을 들어 올리고 사탄은 짧게 중얼거렸다.
“……테니까.”
콰드득!
“크흑……!?”
그와 동시에 휘둘러지는 사탄의 주먹.
김서윤은 두 손을 엑스자로 교차해 불길한 오오라를 내뿜는 주먹을 막아냈지만,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들어오는 묵직한 대미지에 깜짝 놀라 신음을 흘렸다.
“그래도 ‘아귀’의 계승자라 이건가.”
“으그으윽!”
사탄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이죽거리자 김서윤은 팔을 엑스자로 교차한 자세에서 몸을 크게 뒤로 빼며 사탄의 얼굴에 발을 휘둘렀다.
꽝!
다시 한번 터지는 폭음과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흙먼지.
‘이번에도……!’
히지만 이번에도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김서윤은 서둘러 자신의 몸을 뒤로 빼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벌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사탄은 이 이상 질질 끌 생각은 없는지 몸을 뺀 김서윤의 앞에 다가왔다.
“더 이상 힘을 뺄 생각은 빨리 끝내도록 하지.”
그와 함께 사탄의 주먹에서 검은색의 마력이 솟아나 김서윤에게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지근거리에서 쏘아지는 빛과도 같은 검은 마력에 김서윤은 공중에 떠오른 상태로 최대한 몸을 비틀어 검은 마력들을 피해냈다.
꽝!
“아흑!?”
하지만 검은 마력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녀는 사탄의 주먹을 막아내질 못했고, 그대로 건물 옥상을 뚫고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김서윤의 몸이 건물의 바닥을 마구잡이로 뚫으면서 추락했지만, 김서윤은 그 와중에도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쿵!
“흡!”
자세를 바로잡자마자 다시 한번 내려치는 일격이 이어졌고, 김서윤은 순식간에 반응해 몸을 뒤로 빼는 것으로 사탄의 공격을 피했다.
“!?”
꽝!
하지만 짧은 찰나, 별다른 준비 동작도 없이 순식간에 이동한 사탄은 다시금 김서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사탄의 공격을 막았지만, 그 반동으로 인해 건물의 외벽을 뚫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밖으로 튕겨 나가자마자 김서윤은 최대한 중심을 잡으며 완전히 박살 난 도로에 안착했고, 그 뒤를 따라 사탄이 그녀의 앞에 섰다.
“미친…….”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사탄을 보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김서윤은 욱신거리는 팔을 매만지며, 조금 전 일어났던 일을 머릿속에 스쳐 보냈다.
처음 일순간 사탄의 움직임을 놓쳤을 때부터 시작해서, 건물을 뚫고 내려와 자신 쪽으로 도약하는 사탄의 모습까지.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아……!’
정확히는 공격을 포함한 모든 것이 김서윤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처음 자신을 향해 도약했을 때?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뒤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공격을 보기는 했지만 그것도 거의 찰나의 순간이었고, 조금 전 마지막으로 김서윤이 보았던 사탄의 움직임은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것이었다.
바닥에 떨어지고,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순식간에 몸을 뒤틀어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탄의 모습.
마치 중력의 영향이라는 것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듯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김서윤에게 수많은 의문을 주었다.
“빨리 끝내도록 하지.”
김서윤이 사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쯤, 사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예상외로 꽤 버티는군.”
“…….”
“원래라면 ‘힘’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더 이상 귀찮게 투닥거리고 있을 시간은 없으니 빠르게 죽여주도록 하지.”
사탄의 말과 함께 그의 몸 주변으로 검은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하지만…… 조금 전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검은 마력 사이에 묘하게 섞여 있는 검붉은 색과 검푸른 색의 마력은 순식간의 사탄의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고, 사탄은 이내 씩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읏!?”
그와 함께 검은 마력 속에서 아까 전 피해냈던 검은 마력들이 마치 한줄기 광선과 같은 느낌으로 김서윤에게 치닫기 시작했다.
김서윤은 순식간에 뻗어오는 검은 마력들을 몸을 움직여 피했지만…….
퓩!
“끄……아!?”
분명 피한 줄로만 알았던 검은 마력들은 곧바로 궤도를 바꾸어 그녀 쪽으로 쏘아졌다.
예상치 못한 궤도로 날아온 마력에 의해 김서윤의 몸이 관통당하고, 그녀는 그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김서윤의 복부와 어깨, 그리고 오른 다리에서 붉은 피를 터져 나오고, 검은 마력에 당한 관통상이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감염’과 ‘전환’의 권능의 조합은 생각보다 괜찮군.”
사탄은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채 끅끅거리고 있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며 혼자 중얼거렸고, 김서윤은 힘겹게 얼굴을 들어 올리며 사탄을 바라봤다.
사탄은 자신을 바라보는 김서윤을 내려다보다 이내 자신의 손을 올려 검은 마력을 뭉쳐내며 선고했다.
“이제 죽어라.”
다시 한번 그의 손에서 쏘아지는 검은 마력에 김서윤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고 그녀의 머리를 노리고 간 검은 마력은…….
“그렇게는 안 되지……!”
김서윤의 앞에 갑작스레 나타난 남자에 의해 가로막혔다.
* * *
완전히 박살 난 도로, 그 주변으로는 무너진 고층 빌라가 가득한 곳.
나는 김서윤에게 쏘아진 검은 마력을 막아내고 그를 바라보았다.
“……네가 사탄이냐?”
내 물음에 그는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곳에 나를 알고 있는 녀석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왜 모르겠어? 네 부하 중에 반 이상이 나한테 뒤졌는데.”
“…….”
마치 빈정대듯 그를 도발하자 사탄은 슬쩍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재미있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녀석이었군.”
그 확정하는 듯한 답변에 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고, 사탄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쁘지 않군. 악마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영혼의 밀도도 장난이 아니야. 확실히 네 영혼을 흡수하면 힘을 거의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겠군.”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탄.
나는 이죽거렸다.
“과연 그게 그렇게 쉽게 될까?”
그 말과 함께 나는 곧바로 몸을 틀어 사탄에게 검을 휘둘렀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몸을 뒤로 빼 검을 피해냈다.
“……아저씨?”
사탄이 빠지자마자 들리는 목소리.
그곳에는 고통조차 잊은 것인지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김서윤이 있었다.
머리나 몸 여기저기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사탄에 의해 관통당한 상처는 사탄이 무엇인가를 해놓았는지 제대로 치료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그림자 영체.”
[소환 해제 : ‘파이몬’]
[그림자 영체가 소환됩니다! ‘악마 파이몬’]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곧바로 하늘에서 검은 마법진을 없애고 있을 파이몬을 불러냈고, 내 의지에 따라 소환된 파이몬은 김서윤의 몸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파이몬의 마력이 흘러들어 가자 아주 더디지만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한 후, 사탄을 보며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을 사용하자마자 내 주변에 몰아친 검은 오오라는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와 함께 도시가 변하기 시작했다.
잿빛 하늘만 가득하던 그곳에는 회색빛의 하늘 대신 일식 현상이 나타났고, 지상에 수많은 형태의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상, 가로등 위, 건물 옥상, 부서진 자동차 위. 곳곳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들이 일제히 사탄을 바라봤을 때, 사탄의 얼굴이 굳어졌다.
“네가 설마 샤넬리오스의……!”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