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나 혼자 10만 대군 195화
58장 최후(5)
“마지막 시험이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이로하의 얼굴 속에서 묘한 근심을 발견한 그녀는 이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근심 어린 표정은 짓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 시험’이라고 말은 했지만 실제로 네가 시험을 보진 않으니까.”
“네?”
“사실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기는 했었지. 나는 ‘진실’과 ‘정의’를 관장하는 신이니까.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말이다.”
“상황이요……?”
“네가 처한 세계의 상황 말이다.”
그녀의 말에 이로하는 얼굴을 굳히며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에단의 도움으로 올라갔던 지구의 위쪽에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수많은 검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저번에 보았던 마법진과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그 검은 마법진에서는 계속해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고, 이로하는 그 마법진을 없애다 그녀에게 불려왔다.
이로하가 조금 전 상황을 짧게 되뇌고 있자 그녀는 불만스럽다는 듯 툴툴거렸다.
“쯧, 사탄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올바르게 수행을 해서 계승자로 임명하고 싶었는데…….”
“사탄이요?”
“그래, 지금 네 세계가 그렇게 변한 이유는 사탄 때문이다.”
그 말에 이로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했다.
“도대체 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로하의 모습에 그녀는 답해주었다.
“그 녀석은 이 세계를 멸망시키고 싶어 하거든.”
“……이 세계를 멸망시킨다고요?”
이로하의 물음에 그녀는 무엇인가를 설명하려 하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네가 모르는 것들을 설명해 주고 싶지만, 그것들을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무리다. 그렇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내가 말했듯 사탄은 네 세계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거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로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네게 그걸 막을 수 있는 힘을 주도록 하마.”
그녀는 이로하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중얼거렸다.
“잘 듣거라, 내 ‘계승자’야. 너는 이제부터 네가 원할 때는 필멸자의 눈이 아닌, 나 ‘마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말과 함께 후카이 이로하는 무엇인가를 질문할 새도 없이 그 거대한 신전 안에서 튕겨 나갔고, 자신을 마트라고 소개한 여신은 이로하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회수했다.
“후…….”
“여기도 계승자 의식은 끝났나 보군.”
그녀가 한숨을 내쉬고 있자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마트는 언짢은 듯 중얼거렸다.
“……내가 이곳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뭐 그러나, 우리 사이에?”
마트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 신전 안쪽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한 명의 수인이 자신을 보며 서 있었다.
소의 뿔을 가지고 있는 수인.
마트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피스’, 내가 말했지? 내 신전에 올 때는 무조건 수인화를 풀고 오라고.”
“수인화를 풀고 오는 게 아니라 봉인하고 오는 거겠지.”
“그거나, 그거나! 그리고 대체 왜 온 거야?”
마트가 묘한 가식을 벗어던지고 그렇게 짜증을 내는데도 불구하고 아피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마트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이야기했다.
“뭐 오는데 굳이 이유가 있나? 그냥 2지구를 보기에는 이곳이 더 편해서 온 거지. 혼자서 마력을 사용해서 보기에는 피곤하거든. 근데 네 신전에는 수정구가 있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신전 안쪽에 있는 수정구를 가리켰다.
“그것뿐?”
“그것뿐이라기보다는……. 뭐, 거기에 덤으로 네 계승자가 네 권능을 온전하게 받아갈 수 있을지 궁금해서 와봤는데, 그냥 그럭저럭 잘 받아간 것 같네.”
남자의 말에 마트는 이상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태평해도 되는 거야?”
“뭐가?”
“지금 2지구가 박살 나면 그다음은 우리라고?”
마트의 말에 아피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서?”
“……뭐?”
허, 하며 묻는 마트를 보며 그는 마찬가지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랑 나는 이미 계승자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줬어. 한마디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신경 쓸 게 없다 이 말이지. 그러니까…….”
아피스는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마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지켜보자고.”
* * *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이제 막 아이의 티를 벗은 한 명의 소년이 무릎을 꿇고 빌며 어떻게든 목숨을 구걸했다.
소년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푸욱-!
“꺼억……!”
하지만 그런 소년의 노력도 그저 잠시뿐이었다. 애원하는 소년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망설임 없이 소년의 몸에 자신의 손을 박아 넣으며 소년을 죽음으로 인도했다.
빌고 있던 두 손이 힘없이 떨어지고, 소년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수축하며 빛을 잃는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사탄은 소년의 심장을 뚫었던 손을 회수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사탄이 본 5지구의 풍경은 단탈리안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변해 있었다.
푸르던 하늘은 칙칙하고 어두운 잿빛으로 물들고, 만물이 자랄 수 있는 황토색 토양은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메마른 토양이 되었다.
그저 발을 대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고목처럼 쩍쩍 갈라지는 대지.
그런 대지 위에 지어져 있는 멸망 이전의 문명.
쩌적…… 화르르륵!
일구어 놓았던 5지구의 문명은 무척이나 강한 화마에 의해 그 흔적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5지구를 보고 있던 사탄.
“귀찮군.”
그는 조용히 뇌까리며 5지구의 풍경을 무미건조하게 쳐다보았다.
비록 계승자가 ‘단탈리안’에게 당한 뒤부터 쭉 쇠락의 길을 걸어오고 있던 5지구는 아마 이대로 놔두었다고 해도 멸망을 길을 걸었겠지만, 사탄은 그 시간을 단축시켰다.
그가 한 일의 결과물로 인해 화마는 문명을 먹어치우고, 대지는 생명력을 잃었다.
태양은 잿빛의 구름에 막혀 더 빛을 보내지 못하고, 문명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마지막 생명은 조금 전 사탄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로 인해 이루어진 완벽한 멸망.
하지만 사탄의 입에서 나온 감상은 무척이나 별 볼 일 없고 무미건조한 것이었다.
‘손해로군.’
사탄은 타오르는 문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실 그가 5지구를 멸망시키러 온 이유는 ‘신계’에 올라가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의 힘을 아주 조금이라도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탄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쯧,’
단탈리안이 다녀가고 난 뒤의 5지구에는 남겨진 것이 없었다.
“…….”
물론 단탈리안의 힘은 고스란히 사탄의 몸속에 들어 있었지만, 그런데도 사탄은 자신이 헛걸음했다는 생각이 들어 묘한 노기가 일었다.
사탄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리며 사고를 전환했다.
‘지금쯤이면 적당히 정리가 끝났겠군.’
2지구.
자신의 수하인 악마를 잡은 영혼이 있는 그곳을 생각하며 사탄은 검은 마력을 움직였다.
그의 몸속에서 빠져나온, 보기만 해도 불길해 보이는 검은 마력은 이내 어느 한 곳에 모여들어 빈 공간을 찢어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완전히 열린 균열을 보며 사탄은 생각했다.
‘2지구의 영혼들이 내 힘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그와 함께 사탄은 자신이 만들어낸 균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누나 괜찮아요!?”
검은 마법진이 사방에 퍼져 있는 상공, 에단은 자신의 오른 어깻죽지로 창을 찔러 넣는 가고일을 피해 몸을 이동했다.
에단의 시야가 한순간에 뒤바뀌며 다른 곳으로 몸을 피했지만 이내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점프, 또 점프.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수십 번의 이동으로 몬스터들의 공격을 일일이 피해낸 에단은 자신의 뒤에 업혀 있던 이로하를 불러봤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큭……!”
자신의 몸뚱이를 물어뜯기 위해 아가리를 벌리는 스몰 드래곤의 공격을 다시 한번 피한 에단은 이로하가 어느 정도 소멸시켜 놓은 마법진이 다시 재생되는 것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로하의 청염에 타올랐던 몬스터들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타오르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등 뒤에 있던 이로하는 기절한 듯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크에에엑!
“젠장…!”
다시 한번 더 이동.
에단은 점점 상공에 ‘점프’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을 보며 이를 악물고는 뇌까렸다.
“아무래도 내려가야……!”
에단은 아까부터 말없이 업혀만 있는 이로하를 생각하며 능력을 사용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려가지 마.”
“……누나! 괜찮아요!?”
이로하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말이 없었던 거예요!?”
“미안, 조금 전까지 어디를 갔다 와서…….”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에단은 이로하와 말을 하는 중에도 끊임없이 점프를 사용했다. 이로하는 에단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지금은 몬스터에 집중 좀 할게.”
이로하의 말에 에단은 묘한 궁금증이 튀어 올랐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고, 이로하는 상공을 가득 채운 몬스터를 말없이 바라봤다.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가고일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날개가 달린 괴물들은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날개를 휘적이고 있는 중이었다.
가고일은 들고 있던 무기를 던지거나 찌르고, 드래곤이나 와이번은 손톱이나 이빨로 목숨을 노린다.
그 이외에도 외형과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수백 가지 괴상한 몬스터가 이로하와 에단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로하는 자신에게 이름을 알려준 그녀가 되뇌라고 했었던 그 문구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하나를 구분하는 건 내 눈이다.”]
동시에 그 문구를 읊었다.
파아앗!
그와 함께, 이로하의 눈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로하의 눈은 붉게 바뀌었다.
처음, 일본에서 이로하가 능력을 개화했을 때 생겼던 그 눈이었다.
그와 에단에게 날아오고 있던 몬스터들의 몸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순간 잿빛의 구름이 불그스름한 빛을 띠며 세상을 붉게 물들였지만, 이로하의 눈은 붉은빛을 잃고 새롭게 바뀌어 나갔다.
그녀의 눈에 푸른빛이 깃들었다.
화르르륵!
그와 함께, 붉게 빛나던 세상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로하가 바라보고 있는 쪽의 검은 마법진 하나가 푸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청염은 마법진 안에서 빠져나오는 모든 몬스터들을 심판하듯 그들의 몸을 태웠고, 에단은 점프를 쓰는 것도 잊은 채 푸르게 타오르는 수백의 몬스터를 보며 전율했다.
그것도 잠시, 이로하의 눈은 푸른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눈에서 사라진 푸른빛.
그리고.
그녀의 눈이 쳐다보기만 해도 시력을 잃을 것 같은 백색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을 때.
에단은 타오르는 푸른빛을 넘어 백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는 백염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