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나 혼자 10만 대군 194화
58장 최후(4)
“아피스…….”
하리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상황은 아까와 같았다.
방패 너머에는 몬스터들이 어떻게든 방어막을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내 뒤에는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후…….”
하리남은 작게 한숨을 내쉬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만약 여기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을 미친놈으로 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지만 그런데도 그는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혹시나 길드원들이 도와주지 않을까 생각하고.
내 능력이 얼마나 더 버텨줄지를 가늠하며, 어떻게 해야 이 몬스터를 조금 더 오래 막아낼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하리남은 문득 자신의 앞에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오크를 보며 처음 그 남자가 했었던 말을 떠올렸다.
‘애송아, 네 능력은 막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말을 떠올리며, 하리남은 그 새하얀 공간에서 빠져나올 때 들었던 말을 떠올리고는,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같이 알려주었던 ‘능력’의 마지막 시동어를 조용히 읊조렸다.
“나는, 현신하는 자.”
[나는, 현신하는 자.]
분명 혼자 조용히 중얼거렸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는 웅웅거리며 주변의 공기를 때렸고, 그의 말은 사방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이 일순 웅장한 목소리에 문득 두려움을 잊고 목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하리남을 바라봤을 때.
그는 변하고 있었다.
방어막을 유지하기 위해 그의 몸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던 검은색의 연기와도 같은 오오라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던 방어막은 오오라가 사라짐에 따라 투명하게 변해갔다.
그에 따라 몇몇 시민들은 방어막이 사라진 줄 알고 비명을 질렀지만, 곧 시민들은 몬스터들이 어느 공간 이상 넘어오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아직 방어막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방어막이 투명해지며 몬스터가 더더욱 극성으로 변하는 동안, 하리남의 몸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두꺼운 플레이트 메일을 두르고 있던 그의 몸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그의 머리 위에는 검은색의 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분명 그의 몸을 가릴 듯 거대했던 방패는 그의 몸이 커짐에 따라 일반적인 방패의 사이즈 정도가 되었고, 그의 오른쪽 동공에는 고대어가 어지럽게 새겨졌다.
그리고.
수인으로 변한 하리남은 자신의 모습을 구경할 새도 없이, 자신의 크기에 비해 작아진 방패를 힘껏 땅에 내리쳤다.
꽝-!
방패가 땅에 꽂힘과 동시에 그가 쳐놓은 방어막 주변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갔다.
폭음을 내며 주변에서 터진 충격파는 방어막에 붙어 있던 몬스터를 한순간에 다진 고기로 만들었다.
다시 한번 방어막의 주변은 몬스터의 시체를 빼고는 무척이나 깨끗해졌다.
하지만 방어막 주변이 깨끗해지자마자 그 주변에 있던 몬스터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방어막으로 달라붙기 위해 움직였고, 하리남은 그런 몬스터를 보며 본능적으로 자신이 말해야 할 언어를 중얼거렸다.
“사자들은 그 뜻을 받들어라.”
[사자들은 그 뜻을 받들어라.]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국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현대에 쓰이고 있는 다른 언어도 아니었다.
분명 언어를 몰라 이해할 수 없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리남이 입을 열자마자 뇌리에 박히는 그 언어의 뜻에 시민들은 신묘한 느낌을 받았다.
하리남의 언어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푹! 쿠르르릉!
하리남이 펼친 방어막의 주변으로 창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라온 창은 달려들고 있는 몬스터의 몸을 관통했고, 덩치가 큰 몬스터는 땅속에서 솟아난 수십 개의 창에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방어막 주변의 땅에서 솟아난 창들은 곧 공중을 날아다니는 몬스터들에게 날아갔고, 그 안에서 미라가 나오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검붉은색의 모래를 흘리며 빠져나온 미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의 천으로 몸을 감고 있는 미라들은 마치 고대에서 입을 것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쥔 모래로 만들어진 창을 들고 주춤거리고 있는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고, 그와 함께 미라와 몬스터의 전투가 벌어졌다.
크기도, 외형도 다른 몬스터들이 달려드는 미라의 모습에 흠칫했지만 이내 미라들을 맞상대했다.
몸집이 거대한 몬스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미라들을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푹! 푸욱!
크헤에엑!?
마구잡이로 날뛰며 미라들을 박살 내던 트윈 헤드 오우거는 상반신이 터졌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오른쪽 머리에 창을 꽂아 넣는 미라를 보며 괴성을 질렀다.
쾅! 콰앙!
수백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고작 100명 남짓한 미라들을 숫자로 깔아뭉갠다.
미라가 내찌른 창에 웨어울프가 죽지만, 그 위를 타고 올라간 오크는 미라의 머리통을 글레이브로 내리찍었다.
다른 곳에서도 그와 마찬가지의 풍경이 일어나고 있었다.
미라들은 창을 휘둘러 확실하게 몬스터를 죽음으로 인도했지만, 몬스터도 마찬가지로 미라의 목숨을…….
푸욱!
……가져가지 못했다.
끄에에엑!!
머리가 터져 나간 미라의 창이 글레이브를 휘두른 오크의 머리통을 찌른다.
꼬리로 하반신을 터뜨린 미라의 창이 리자드맨의 심장을 꿰뚫는다.
제각각의 방법으로 전투불능에 가까운 상처를 입은 미라들이 제각각의 창을 움직여 몬스터를 죽인다. 그리고 복구한다.
머리가 터졌던 미라는 어느 순간 모래가 채워지더니 순식간에 머리를 복구했고 그것은 다른 미라도 마찬가지였다.
양다리가 부서진 미라는 순식간에 다리가 복구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놀의 골통을 찍어 눌렀고, 상반신이 완전히 사라진 미라는 고블린의 머리를 발로 터뜨리는 동안 상반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미라들의 전투를 바라보던 하리남은, 수인으로 변함과 동시에 자신의 손에 쥐어진 창을 바라봤다.
마치 지팡이처럼도 보이고, 창처럼도 보이는 기이한 모양새.
하리남은 창을 단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 창의 사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무척이나 기묘한 감각.
그는 창을 들어 올렸다.
그가 창을 들어 올리자마자 그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던 검은색의 오오라가 그의 손을 타고 빠져나와 기이한 창의 끝에 모이기 시작했다.
점점 오오라를 빨아들이며 크기를 불려 나가는 검은 구체.
하리남은 창끝에 모인 구체가 상당히 거대해질 때쯤, 검은 오오라를 내뿜는 것을 멈추었고, 곧 앞을 보며 중얼거렸다.
“태양신은 틀림없이 현신한다.”
[태양신은 틀림없이 현신한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하리남의 창끝에 모여 있던 검은 구체가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 * *
“내가 왜 여기에……?”
후카이 이로하, 그녀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그곳은 신전 안쪽이었다.
양쪽에서는 냇물이 신전 사이의 수로를 타고 흐르고 있었고, 신전 위에는 무척이나 밝은 빛이 태양을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풍경을 보면서도 이로하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나는 에단의 등에 업혀서 마법진들을 없애고 있었는데……?’
이로하가 그런 이상함을 느끼며 주변을 돌아보던 중,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보이는 것 같구나.]
“……!”
머릿속에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후카이 이로하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고, 그곳에서 그녀는 한 명의 여성을 볼 수 있었다.
붉은색의 원피스를 입고 마찬가지로 머리에는 붉은색의 브릿지를 달고 있는 여성.
이로하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그녀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로하의 말에 여성을 일순 아름다운 얼굴을 묘한 표정으로 바꾸더니 물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느냐?]
그녀의 말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이로하였다.
‘저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던가?’
이로하는 머릿속에 기억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여성은 짧게 침음성을 흘리곤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네 외신이다.]
그녀의 말에 이로하는 퍼뜩 고개를 올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외신…… 이요?”
[그래.]
“……어?”
[……?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라도 있느냐?]
그녀의 말에 이로하는 묘한 신음을 흘리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로하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후카이 이로하는 자신의 외신과 이야기해 본 적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외신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외신과 이야기하는 곳은 항상 외신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빛이 강한 곳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딱히 외모로 외신을 평가하는 건 아니었지만,
“……제가 듣던 목소리랑은 좀 많이 다른데요?”
[응?]
이로하가 의심하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목소리였다.
이로하는 처음 능력을 얻을 때도 그리고 그 이후에 능력을 얻을 때도 들었던 외신의 목소리는 저렇게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목소리가 아니라 굵고 엄격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로하를 보더니, 알겠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설마 이 목소리를 말하는 것이냐?]
“……! 그 목소리! 대체 어떻게?”
이로하가 놀라며 묻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간단한 이야기다. 네가 나를 인식하지 못하면 내 목소리가 이렇게 들리는 거지.]
“인식하지 못하면…… 요?”
[그래, 나는 진실과 정의를 관철하는 신. 그렇기에 그 ‘눈’을 가지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원래의 나를 볼 수 없지.]
“……눈?”
[그래, 내가 네게 준 그 눈을 말하는 거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이로하의 눈을 가리켰다.
“……그럼 지금까지는 왜 제가 외신님의 얼굴을 못 본 거죠?”
[간단하다. 아직 네가 나를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볼 수 없던 것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느냐? 내가 보인다는 건 네가 비로소 자격을 얻었다는 소리지.]
그녀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던 이로하는 다시 생각났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보다, 저는 왜 갑자기 여기에 온 거죠? 밖의 상황은……?”
[몇 번이나 겪어놓고 똑같은 것을 고민하는군. 걱정하지 마라. 늘 그래왔듯이 네가 나를 볼 수 있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다. 이전처럼 네 의식만 이곳에 와 있을 뿐이니까.]
신전의 좌에 앉은 그녀는 이로하가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 그럼 알려줄 것도 전부 알려준 것 같으니, 지금부터 네가 계승자 되기 전 풀어야 할 마지막 시험을 알려주도록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