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나 혼자 10만 대군 193화
58장 최후(3)
고풍스러운 도서관.
로우레테는 초조한 눈빛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수정구를 바라봤다.
수정구 안에서는 아비규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저기 박살 나 있는 건물, 하늘은 푸른빛 대신 지상에서 올라온 매연으로 인해 음울한 잿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무너진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는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화마가 있었다.
로우레테가 손가락을 휘둘러 몇 번이고 시점을 바꿔보지만, 상황은 전부 똑같았다.
“…….”
그리고 로우레테가 확인한 수정구의 마지막 장면은, 2지구를 빼곡히 덮고 있는 사탄의 검은 마력이었다.
‘큰일이군.’
마법진에 둘러싸인 지구를 보여주는 것을 끝으로 힘을 잃고 꺼져 버린 수정구를 보며 로우레테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 녀석은 대체 언제 오는 거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있는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틀락 나챠를 잡으러 간 뒤부터 2주 동안 아예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던 김우현.
물론 자신과의 계약 덕분에 김우현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2주 전에 도서관에 들른 흑의를 입은 남자의 말 때문에 김우현이 수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의 길드원들과 2지구의 녀석들이 어떻게든 몬스터를 제압하고 있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끌었다간 정말로 늦고 말 거라고, 로우레테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게 로우레테가 꺼진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우우우웅-!
“……!?”
김우현이 사라지고 나서 아예 사용할 일이 없던 차원 이동 장치가 제멋대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웅장한 소음을 내뱉음과 동시에 멋대로 작동하며 푸른 균열을 만들어내는 차원 이동 장치.
로우레테는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차원 이동 장치를 끄려 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차원 이동 장치를 통해 열린 균열을 바라봤다.
곧 푸른 균열에서는 웅 거리는 작은 소음과 함께 아틀락 나챠와 싸우러 갔을 때의 모습 그대로인 김우현이…….
“너무 늦었나?”
……돌아왔다.
* * *
처음 나를 보자마자 두 눈을 휘둥그레 뜬 로우레테는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내 진정하듯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늦었지만, 그래도 많이 늦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에 로우레테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했고, 곧 나는 로우레테의 앞에 있는 수정구로 현 세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설마…… 사탄이……?”
내 중얼거림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사탄이 한 일이다.”
“이런 미친……!”
그 녀석은 분명 나한테 시간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수정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로우레테는 곧바로 브리핑하듯 현 상황을 말하기 시작했다.
“현재 2지구는 네가 보는 대로 아비규환의 상태다. 사탄이 2지구 상공에 몬스터를 소환하는 마법진을 깔고 지상에는 인위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켜서 전체에는 몬스터가 깔린 상태다.”
“내 길드원들은?”
“네 길드원들은 무사하다. 오히려 네 길드원을 포함해 2지구에 있는 SSS급 헌터들이 어떻게든 몬스터를 막아내고 있어서 아직 정말 위험한 곳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로우레테는 수정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길드원들이 아무리 막는다고 해도 지금 2지구 상공에 있는 저 마법진을 없애지 않은 이상에야, 언젠가는 뚫릴 거다.”
“마법진?”
로우레테는 내 되물음에 답하지 않고 수정구를 조작해 지구 상공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검은색의 마법진을 보여주었다.
“네 길드원인 후카이 이로하가 능력으로 마법진을 없애고 있지만, 사탄이 만든 마법진을 태우는 건 그녀에게도 상당히 벅찬 일인 것 같더군.”
“…….”
로우레테의 말을 들으며 한동안 2지구 상공에 떠 있는 마법진을 바라보던 나는 곧바로 테이블 앞에 있는 횃불로 몸을 움직였다.
지금은 이렇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로우레테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횃불로 가는 나를 붙잡지 않고 말했다.
“지금 사탄은 멸망 직전인 5지구를 정리하러 갔다. 네가 사탄에게 온전히 총력을 기울이고 싶다면 사탄이 5지구에서 돌아오기 전에 이 사태를 정리해야 한다.”
“사탄이 돌아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2시간 정도, 아무리 길게 잡아도 5시간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곧바로 불타고 있는 횃불을 붙잡았고, 로우레테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그와 함께 내 눈이 다시 한번 하얗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진 김우현이 있던 곳을 바라보며 로우레테는…….
“……성공하기를.”
……조용히 성공을 빌었다.
* * *
아비규환이 된 의정부역 한복판의 공원.
“으아아아앙! 어떻게! 어떻게 해!”
“걱정 마! 엄마 괜찮으니까! 응!”
“아…… 사, 살고 싶어! 살고 싶다고……!!”
“제발, 제발……!”
의정부 공원 근처의 주차장에서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몬스터를 보며 많은 사람이 몸을 움츠리고 겁에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앞에는…….
“이런 젠장……!”
검은 오오라를 뿜어내며 방패를 든 하리남이 나직이 욕설을 내뱉으며 주변에 가득 차 있는 몬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다……!’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의정부에 도착해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던 중 갑작스럽게 일어난 몬스터들의 습격에 하리남은 급하게 능력을 사용해 사람들을 구했다.
쾅! 쾅! 쾅!
“쯧……!”
뒤쪽에서 느껴지는 울림에 하리남은 혀를 차며 자신의 능력, 카운터를 이용해 주변에 한가득 몰려 있던 몬스터를 대부분 베어냈지만…….
끼엑! 끼에에엑! 크르륵!
몬스터들이 쓰러지는 것도 잠시, 자신의 방어막 주변으로 달라붙는 새로운 몬스터들을 보며 하리남은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끝이 없군……!’
사람을 먹기 위해 방어막을 통과하려 몸을 비벼대는 몬스터들.
처음에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시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자 했다.
하나 몬스터의 숫자는 어째 몬스터를 처리하면 처리할수록 많아졌고 결국 지금에 와서는 사방에 달라붙어 있는 몬스터 덕분에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별문제가 없겠지만…….’
하리남은 복잡한 표정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시민들을 바라봤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지나면 위험하다……!’
그는 방어막 주변으로 진득하게 붙어 있는 몬스터를 봤다.
지금 당장 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방어막을 천년만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분명 외신에게 힘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에게는 엄연한 한계가 있었다.
몬스터가 이렇게 끝없이 달려드는 상황에서는 그 유지 시간이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길드원한테 기대를 걸어봐야 하나……!?’
순간 하리남은 자신이 속해 있는 길드의 길드원들을 떠올렸다.
길드원 중 당장 한 명이라도 지원을 와준다면 곧바로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테지만 이윽고 하리남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난리가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길드원들이 오지 않은 걸 보면…….’
아마 다른 곳도 지금 이곳과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하리남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리남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중…….
콰직!
하리남의 앞에 더러운 입을 벌리고 있던 몬스터의 머리가 부서졌다.
진득한 녹색의 피를 방어막에 묻히며 그대로 널브러지는 몬스터.
그리고 그 뒤로…….
“……?”
하리남은 자신이 다시 한번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왔군.”
그곳에서 그는 능력을 얻기 위해 몇 번이고 만났던 그 남자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
그는 수인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하리남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제가 왜 여기에?”
하리남의 말에 슬쩍 인상을 찌푸린 그는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남자의 말에 그는 무척이나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아니, 제가 이곳으로 왔다는 건 뭐…… 능력을 얻을 때 말고는 없어서 생각해 보면 당연히 그 결론이 나오긴 하는데…… 저는 마지막 파편을 아직 모으지 못했는데요?”
하리남이 의문을 가진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바로 파편.
하리남은 저번에 능력을 얻은 후로 그는 능력을 각성할 수 있는 파편을 얻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이 상황에 묘한 의문을 가졌고, 남자는 그런 하리남의 모습을 보곤 자신의 방패를 한번 땅에 찍고는 말했다.
“뭐, 네가 파편을 얻지 못하긴 했지만, 이제 슬슬 기다릴 수가 없어서 말이지.”
“……기다릴 수가 없다고요?”
“그래, 원래라면 네가 파편을 찾을 때까지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적당한 시련 하나 내리고 내 계승자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그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이어 말했다.
“사탄이 내 생각보다도 빠르게 2지구를 침략했더군.”
“……사탄?”
“설명해 주고 싶지만, 너도 알다시피 여기는 네 정신세계 안쪽이라 사탄에 대해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군, 그냥 최종 보스 같은 녀석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게 뭡니까.”
하리남이 힘이 빠진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그는 하리남의 투정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넘기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무튼, 대충 알아들었겠지?”
남자의 말에 하리남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대답했다.
“알아듣기는 했는데…….”
“했는데?”
“항상 생각하는 건데, 이렇게 날로 먹어도 되는 겁니까?”
하리남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에게 물었다.
물론 처음이나 지난번에는 파편을 가지고 있었지만, 분명 새로운 능력을 얻기 위해 시험을 치렀다는 녀석들과는 다르게 자신은 애초에 시험 같은 시험을 쳐본 적이 없었다.
맨 처음 능력을 얻었을 때도 얼렁뚱땅 넘어갔고, 두 번째 능력을 얻었을 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세 번째까지?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를 바라보자 그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뭐, 네가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보이는군.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너는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내 계승자가 될 조건을 전부 총족하고 있으니까.”
“……조건을 전부 총족하고 있다고요?”
그는 하리남의 말에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건…….”
그가 품속에서 꺼낸 것,
그것은 바로 하리남이 처음 각성했을 때 그에게 가져왔었던 검은 뿔이었다.
그는 그 뿔을 그대로 하리남 있는 곳으로 던졌고, 그 뿔은 하리남이 미처 잡으려고 하기도 전에 궤도를 틀어 그대로 하리남의 몸속에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그는 하리남을 보며 말했다.
“그래, 전부 총족하고 있지. 너는 ‘올곧은 의지’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게 무……!?”
남자의 말과 함께 갑작스레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것을 깨달은 하리남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남자는 무척이나 평온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잘 기억해라, 계승자. 내 이름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