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나 혼자 10만 대군 191화
58장 최후(1)
국제 헌터 협회 본관 2층의 한 회의실.
십수 명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테이블에는 두 명의 상위위원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한 명은 국제 헌터 협회의 상위위원인 T. 월터였고, 다른 한 명은 최근에 상위위원이 된 안나였다.
무거운 침묵.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T. 월터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무슨 말씀이시죠?”
“……그걸 내가 굳이 말해야 할 정도로 자네가 멍청한 것 같지는 않은데.”
월터가 노골적으로 언짢음을 보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씨커 길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잘 알고 있군.”
“죄송하지만 도대체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뭐?”
어처구니없다는 듯 되묻는 월터를 보며 안나는 팔짱을 꼈다.
“월터 님도 아시겠지만 씨커 길드에 속해 있는 길드원들은 한 명, 한 명이 과잉 전력입니다. 애초에 그 조그마한 땅 하나에 SSS급 헌터, 아니, 그 이상의 전력이 몰려 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제 헌터 협회에서 길드에 소속된 헌터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는 없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협회 쪽에서 그들을 강제로 끌어내자고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안나의 말에 월터는 노골적으로 찌푸린 인상을 펴지 않고 그녀의 말을 맞받아쳤다.
“그래, 분명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 하지만 결국 시민들을 이용해 협회가 씨커 길드를 움직이자는 소리 아닌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건 협박일세, 시민들을 가지고 씨커 길드를 협박하는 거라고!”
월터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지만 안나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월터에게 말했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뭐라고……?”
“말 그대로입니다. 만약 월터 님의 말대로 저희가 씨커 길드를 그렇게 움직이려고 한다는 증거는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월터 님.”
월터가 다시 한번 입을 열려는 것을 끊은 안나.
“월터 님이 씨커 길드의 길드장인 김우현 헌터와 친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씨커 길드를 감싸서는 안 됩니다. 그 헌터들이 모두 그 길드에 있는 건 과잉 전력이고, 그 전력들을 분산만 해놓는다면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계화 사태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다만 자네가 하려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거지.”
“…….”
월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안나를 마주 봤다.
“자네는 씨커 길드가 만만해 보이나?”
“질문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녀의 말에 월터는 대답했다.
“말 그대로의 질문이지. 만약 그런 식으로 씨커 길드를 끌어내려고 했다가 일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거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아주 조그만 단초를 제공할 뿐이니까요. 단초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불씨를요.”
“그런데도 만약 들킨다면?”
월터의 계속되는 물음에 안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만약 들킨다고 해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진 않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씨커 길드가 규격 외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길드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이계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들의 행보로 봤을 때 딱히 이 일이 들킨다고 해도 저희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겁니다.”
안나의 말에 월터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머리를 슬쩍 어루만졌다.
그런 월터의 모습을 바라보던 안나는 슬쩍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혹시나 월터 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 싶어서 와봤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 같군요. 하지만 월터 님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제 의견은 받아들여질 겁니다.”
안나는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긴 채 회의실 밖으로 나갔고, 월터는 그런 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씨커 길드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
월터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현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생각해 봤을 때 안나가 추진하려는 일은 그렇게 잘못된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 일어나는 이계화 덕분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국가와 길드들은 혹시라도 자신의 영토에 이계화 사태가 일어날까 싶어 헌터 원조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씨커 길드가 길드원 중 한 명의 도움을 받아 여기저기 원조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국의 주변국일 뿐, 서구 쪽은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씨커 길드를 그런 식으로 끌어내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월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월터가 씨커 길드의 길드장인 김우현과 친분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
월터는 김우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끄응…….”
김우현은 모르겠지만, 월터는 김우현이 한 일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어벤져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일어난 중국 측 인사와 러시아 국방장관…….’
물론 몇 개는 아직까지 그가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월터는 그가 이런 일을 벌였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상대를 어쭙잖은 수로 꿰어낸다?
혹시라도 들킨다면 국제 헌터 협회는 그 날로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이었다.
“후…….”
월터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절레 저었다.
안나가 아무리 이전 세력들을 흡수하며 빠르게 지위를 늘리고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자신의 지위가 높으니, 막아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일지는 미지수였다.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다니.’
월터는 며칠 전 회의에서 안나가 말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씨커 길드를 움직이면 협회 측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들.
분명 자신은 그런 방법보다는 돈이나 다른 협의를 통해 씨커 길드를 설득하는 게 옳을 거라고 주장했음에도 이미 협회원 대부분은 안나가 말한 이득에 눈이 먼 상태였다.
한동안 며칠 전의 일을 회상하던 월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의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정말 이도 저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로군…….’
그렇게 생각하며 월터가 회의실의 문을 잡은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
“……!?”
월터가 잡은 손잡이의 문밖에서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 *
“…….”
지구의 상공에 뜬 채 주변을 돌아보던 사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영혼의 급이 뒤죽박죽인 곳은 또 처음이군.’
사탄은 특이하다는 듯 지구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다른 지구의 영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찌꺼기들이 대부분이고…… 몇 명은 다른 지구보다도 월등히 높은 영혼을 가지고 있군.’
한동안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아래를 둘러보던 사탄은 이내 결정을 내린 듯 자신의 손을 폈다.
‘우선, 이 찌꺼기들을 일일이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걸리니…….’
그와 함께 사탄의 손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검은 마력 구체는 지구를 감싸듯 넓게 퍼졌고…….
‘미리 이곳에서 소환된 파편을 폭주시켜 정리를 좀 해놓을까.
우우우우우웅!
……지구 상공에 검은 마법진들이 만들어졌다.
엘리고르가 사용한 것보다도 무척이나 복잡해 보이는 마법진은, 사탄의 의지에 따라 순식간에 지구 전체를 덮어나갔다.
사탄이 만들어낸 마법진 안에서 곧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끄에에에에에!!
고블린, 오크, 놀과 같은 D급의 몬스터부터 시작해서 드래곤, 히드라 같은 SS급 이상의 몬스터까지.
그 이외에도 조금 전 사탄의 손에서 빠져나간 마력은 몬스터를 소환하는 마법진뿐만이 아니라, 현재 지구에 있는 던전을 모조리 폭주상태로 돌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탄은 다시 한번 마력을 사용해 자신의 옆에 균열을 만들어냈다.
‘5지구를 정리하고 오면 피라미들은 적당히 정리되겠군.’
간단히 생각을 마친 사탄은 균열 속으로 걸음을 옮겼고, 사탄이 들어간 뒤로 일정 시간 유지되던 균열은 힘이 다했는지 이내 사라져 버렸다.
* * *
크레엑!
꽈직!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김서윤은 자신의 앞에서 머리가 터져 도로에 누워버린 오우거를 뒤로하고 짜증 섞인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비규환의 풍경
하늘에는 몬스터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고, 지상에는 오우거를 비롯한 몬스터들이 거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칫……!”
꽈직!
김서윤이 순식간에 도약해 시민을 공격하려는 오크의 머리를 터뜨린다.
“가, 감사합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김서윤은 그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다음 타겟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바로 근처에 있는 다른 오크의 머리를 터뜨리고, 이쪽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고블린들에게 주차된 차를 집어 던져 한 번에 처리한 김서윤.
‘떡볶이 먹다가 이게 뭔 상황이야……!’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날뛰고 있는 몬스터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김서윤은 간만에 휴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왜 대체 간만에 놀기로 한 휴일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꽝!
김서윤은 앞으로 달려오는 예티의 배에 거대한 구멍을 뚫고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거리를 파괴하기 위해 각각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던 몬스터들은 김서윤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고, 그녀는 몬스터들의 피하지 않았다.
김서윤의 주먹 한 번에 수 마리의 몬스터가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힌다.
꽝!
또 어떤 몬스터는 그대로 머리가 터진 채 죽어버렸고, 또 어떤 몬스터는 김서윤이 내던진 차에 깔려 그대로 상체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김서윤은 불과 3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자신의 주변에 있던 수백의 몬스터를 정리하고, 거리 근처에 있는 빌라의 옥상으로 향했다.
“……세상에.”
그리고 곧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물론 처음 떡볶이집에서 나왔을 때도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은 깨달았지만, 빌라 옥상에서 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하”
그녀의 눈에 보이는 서울의 풍경은, 사람보다 몬스터가 훨씬 많은, 한마디로 던전 같은 풍경이었다.
‘내가 대체 뭔 죄가 있어서…….’
김서윤은 힘없이 고개를 절레 저었렸다.
최근 김우현이 편지 한 장만을 놔두고 없어진 뒤로 그녀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자신이 왜 스트레스를 받는지는 정작 본인도 잘 몰랐지만, 아무튼 아침에 사무소의 2층에 들어갔을 때, 김우현의 빈자리를 바라봤을 때, 그녀는 알게 모르게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튼 최근 들어 자신의 성격이 조금 난폭해진다는 생각이 들어 간만에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해서 혼자 놀러 나온 건데…….
“후우…….”
김서윤은 우울한 눈으로 몬스터가 가득한 서울의 풍경을 슬쩍 바라보고는, 고개를 한 번 내저은 뒤,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