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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0만 대군-190화 (190/202)

# 190

나 혼자 10만 대군 190화

57장 마지막 수련(4)

츠카가가각!

왼손에 쥐어진 검이 힘차게 횡으로 그어지며 앞에 나타난 형상을 베어낸다.

스각!

축을 트는 것으로 검을 길게 밀어내자 등 뒤를 노리던 기괴한 형상의 머리가 떨어져 나간다.

몸을 뒤틀고 주먹을 내지르고 검을 휘두른다.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할 새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틀어 형상의 공격들을 피해내며 공격을 이어나간다.

내 주위로 밀어닥치는 수십 개의 공격을 동화의 도움을 받아 밀어내고 튕겨내고 피해내면서, 형상의 개수를 줄여 나간다.

촤아아아악!

한 명, 또 한 명,

인간형인지 괴수인지, 그것도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인지 모를 형상을 베어내며 한순간 돌아온 생각.

지금 내가 이걸 어떻게 하고 있지?

푸욱!

“끅!?”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던 생각 덕분일까.

나는 정면에서 들어오는 야수 형상의 그림자에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고, 그 뒤로 곧바로 공격들이 이어져 들어왔다.

“끄으으!!!”

카가가각! 쾅! 까작!

고작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위태롭게 내 목숨을 조여왔다.

사방에서 공격들이 날아온다.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손이 내 목줄을 움켜쥐기 위해 짓쳐 들어오고, 땅속에서 기다렸다는 듯 가시가 튀어나온다.

등 뒤로는 거대한 뿔이.

양옆으로는 날카로운 쇠붙이와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우악스러운 손이 내게 향한다.

쾅!

공격들이 모여들며 한순간 대지에 거친 흙먼지가 터져 나갔다.

“쯧……!”

그리고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하늘로 뛰어오르는 것으로 형상들의 공격을 피해냈다.

형상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 위에 떠 있는 내게로 향하고, 나는 곧바로 형상들의 사이에 떨어져 내려 전투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조금 전의 실수로 확실히 깨달았다.

생각하고 행동하면 늦는다.

밀려 들어오는 형상의 공격을 쳐 내고 역으로 찔러 들어가며 나는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억지로 밀어냈다.

잡념이 끼어들어서는 이 전투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검을 어떻게 휘두를지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대로 피하고 검을 휘두르고 주먹을 휘둘러야만 이 그림자 형상들의 사이에서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렇게 그림자들을 죽여 나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촤아아악!

팔에 가시가 나 있는 그림자 형상의 복부에 칼을 밀어 넣고 힘차게 들어 올리자 두 갈래로 찢어지는 그림자.

그리고…….

“헉…… 헉…….”

나는 조금 전 봤던 풍경을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었다.

대지 위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그림자 형상들, 그들은 점점 분자 단위로 바뀌어 위에 떠 있는 일식에 흡수되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모든 그림자가 쓰러졌다는 것을 깨달은 뒤에야 나는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와 함께 한 쪽에 미뤄두었던 잡념이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이렇게 해서 정말 내 능력에 도움이 되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헤집어놓기 시작하는 와중, 자연스럽게 주저앉아 있는 내 앞에 나타난 그림자는 말했다.

“힘들지?”

“너, 일부러 그따위로 말하는 거지?”

인상을 찌푸리고 그림자를 바라봤다.

저번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었지만 확실하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확신했다.

이 새끼는 일부러 비아냥대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으르렁대며 말하자 그림자는 새삼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그렇게 화내지 마, 지금 네가 형상들을 죽인 것으로 수련은 전부 끝났으니까.”

“뭐……?”

수련이 전부 끝났다고?

“왜, 안 믿겨? 아주 형상 죽이는 내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더만.”

그림자가 이상하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나를 바라봤다.

“아니, 그게 맞기는 한데.”

“그런데?”

“아직 난…….”

특별히 깨달음을 얻은 게 없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처음 그림자를 상대했을 때도.

그리고 지금 수백 마리의 그림자 형상을 상대했을 때도 내가 얻은 것은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지독한 피로뿐.

혹시나 해서 상태창을 열어봤지만 새롭게 추가된 스킬이나 능력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

한마디로 지금 이렇게 굴러서 얻은 게 없었다.

“뭐, 대충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은 가네.”

그런 내 표정을 알아챈 것인지, 그림자는 나에게 한마디 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원자 단위로 분해되고 있던 그림자 형상들이 이미 대부분 사라져 일식에 흡수된 상태였고, 그 덕분에 대지는 주저앉아 있는 나와 그림자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솔직……!?”

그림자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린 그 순간, 나는 그림자의 손에서 길게 자라난 날카로운 무언가가 나를 향해 찔러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리로 따지면 1m도 되지 않은 짧은 거리에서 그림자의 손이 다가온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림자의 손이 일시적으로 느리게 보임과 동시에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의 생각이 들이치기 시작했지만, 곧 그것들은 한 가지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어찌 됐든 막아야 한다.

어떻게?

급한 대로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그 뒤에는 몸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뒤틀며 왼손에 있는 검을 들어 쳐올렸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뿐, 그림자의 손은 이미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고, 땅을 짚고 있던 내 손은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지금 내 상태로는 전 손을 막아낼 수 없었다.

카가가가각……!

그리고…….

꽝!

“……!?”

내 몸속에서 튀어나온 우악스러운 손이 그림자의 손을 그대로 후려쳤다.

그와 함께 튕겨 나간 그림자의 손.

“이래도 얻은 게 없어?”

그는 내 몸속에서 튀어나온 무척이나 거대해 보이는 그림자 손을 바라보더니,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건 대체……?”

내가 능력을 사용했나?

아니, 아니었다.

나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림자의 능력으로 조금 전처럼 방어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능력을 사용했을 때였고, 지금의 나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능력을 사용하지 ‘못’했다.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주 짧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능력을 끌어올릴 시간이, 정확히 말하면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내 가슴 위로 튀어나와 있는 손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자 그림자는 튕겨 나온 자신의 손으로 으쓱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뭐긴 뭐야, 네가 수련의 성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거지.”

“수련의 성과?”

“그래.”

그림자는 그렇게 긍정하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는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우리가 네게 왜 이런 수련을 시켰는지 알겠어?”

“…….”

“첫 번째는 바로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야. 물론 너도 능력을 사용하는 데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건 눈에 보여.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되지.”

그림자는 그렇게 말한 뒤, 내 뒤로 걸음을 옮겼다.

“고작 능력을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면 곤란해. 너는 네 능력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써야 하지. 예를 들면 조금 전처럼 말이야.”

“……조금 전처럼?”

“그래, 조금 전처럼, 너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공격이 날아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능력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거지, 그리고 우리가 이 수련을 시킨 두 번째 이유는…….”

“네게 ‘그림자’를 줘야 하니까.”

그림자가 말하려는 순간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흑의를 입은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영계에 있는 붉은 외성의 안.

‘이제 준비는 끝났다.’

아무것도 없는 외성에 홀로 앉아 있던 사탄은 이내 자신의 몸속에서 완전하게 합쳐진 단탈리안의 마력을 느끼며 생각했다.

물론 준비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원래라면 한 명도 잃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악마들은 전부 죽어버렸고 그나마 남은 단탈리안이 배신을 일으켜서 5지구도 제대로 멸망시키지 못했다.

그 덕분에 현재 사탄의 몸 안에 있는 힘은 그가 원하는 만큼은 모이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사탄은 만족했다.

‘이 영계를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힘만 있으면 된다.’

물론 힘을 전부 모으지 못해 소모는 엄청나겠지만, 영계를 여는 것으로 생기는 힘의 손실은 아직 남아 있는 지구들을 처리해 보충하면 된다.

‘그렇게 다시 힘을 채워 신계로 올라가면…….’

그것으로 끝이다.

‘전부 먹어치워 주지.’

사탄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며 자신이 신계에서 추방되었을 당시의 상황을 짤막하게 떠올렸다.

신계에서 다른 신들을 밟고, 고대신마저 죽이고 그 자리를 강탈하려고 했던 그때, 남아 있던 고대신과 외신들의 함정에 빠져 영계로 봉인되었던 그때.

“…….”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지는 그때의 내용을 곱씹으며 사탄은 비스듬히 앉아 있던 왕좌에서 일어나 붉은 외성의 밖으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뚜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외성을 빠져나온 그는, 외성 주변에 튀어 오르는 붉은 용암과 검붉은 빛을 발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무엇 하나 없이 검붉은색 물감을 치덕치덕 발라 놓은 듯한 하늘은 무척이나 칙칙해 보였다.

그리고 사탄은, 망설임 없이 칙칙해 보이는 하늘에다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사탄의 몸 안에서 칙칙한 검은빛의 마력이 빠져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내 사탄의 손으로 모여들어 검은색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탄은 자신의 손에 어느 정도의 마력이 모이자, 망설임 없이 칙칙한 하늘을 향해 마력을 쏘아 보냈다.

쿠구구구구구궁!

검은색 마력구는 사탄의 의지에 따라 칙칙한 하늘로 날아갔고, 이내 검은색 마력구가 하늘에 부닥침과 동시에 엄청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사방으로 튀어 오르던 용암들이 산맥의 위까지 튀어 올라 돌벽들을 녹이고, 검붉은 하늘에서는 검붉은 번개가 구름 사방으로 퍼지며 거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지와 하늘이 진동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한 하늘에서는 검붉은 하늘 대신 기묘한 보라색의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탄은 검붉은 하늘 대신 생겨나는 그것을 보며 웃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힘의 소모가 거대했지만, 그것은 아직 멸망시키지 않은 지구에 가서 채우면 그만이었다.

‘5지구와 2지구…….’

5지구는 아직 멸망하진 않았지만 단탈리안에 의해 사실상 정리가 거의 끝난 상태였다.

‘그러니, 2지구로 하지.’

그렇기에 사탄은 자신의 목적지를 2지구로 잡았다.

‘악마의 습격을 받고도 역으로 악마를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파편들…….’

그 정도면 영계의 봉인을 풀기 위해 사용했던 자신의 힘을 복구하기에는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 사탄은 2지구로 향하기 위해 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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