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나 혼자 10만 대군 189화
58장 마지막 수련(3)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 헌터 협회의 지하 회의실.
깨끗한 하얀색 벽지로 도배된 회의실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장 상석에는 국제 헌터 협회의 실질적인 권력자이자 헌터 협회의 상위의원인 ‘T. 월터’가 앉아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진중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협회원에게 눈짓했다.
협회원은 월터의 지시를 받자마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현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시작된 협회원의 브리핑.
“우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이계화 사태는 넘어가는 저번 달을 기점으로, 서서히 그 횟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에 와서는 전 세계에서 3~4번으로 굉장히 안정적인 숫자로 줄어들었습니다만…….”
협회원은 주변을 슬쩍 돌아보며 이어 말했다.
“그 여파라고 해야 할지, 이계화 사태의 위험도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어느 정도지?”
월터의 물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가 던전이 아닌 만큼 저희 협회 쪽 기술로 직접 등급을 매기지는 못했지만 헌터들의 사상자와 여러 가지 물질적 피해를 합산해 봤을 때, 위험도는 최소 2배 이상입니다.”
협회원의 말에 월터는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월터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그를 보며 질문했다.
“현재 S급을 비롯한 SSS급 헌터가 이계화 사태를 막는다고 했을 때 생존률은 어떻지?”
“평균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하루 평균 SSS급 헌터가 사망하는 일은 1일 기준 0.3명으로 상당히 높습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SSS급 헌터의 숫자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최근 이계화 사태와 함께 SSS급 헌터가 나타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터라…….”
“SSS급 헌터가 죽어도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운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협회원의 긍정.
이후에도 협회원은 현 이계화 사태로 인해 각 나라에서 일어난 피해와 더불어 그에 관련된 다른 내용을 브리핑했고, 곧 브리핑이 끝나자 월터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와 중동 지역 쪽은 완전히 괴멸 수준이라는 소리로군.”
“맞습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중동지역에는 SSS급 헌터를 보유한 국가도 무척이나 작고, 내전도 자주 일어나고 있어서…… 다른 지역에서 헌터를 원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른 국가 간의 헌터 원조는 조금 완화되었나?”
“그렇게 크게 완화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서유럽 쪽은 현재 상당히 안정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헌터에 대한 원조도 빠르고 서로서로 돕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동아시아 쪽은 다른 국가는 모르겠지만…… 한국 소속의 씨커 길드가 타 국가에 많이 원조해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씨커 길드라면 그럴 만하지.”
“확실히……”
협회원의 말에 회의석에 앉아 있던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던 중…….
“너무 힘이 한군데에 쏠려 있습니다.”
회의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입니다. 제 생각에 한국은 과잉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말에 한순간 회의실의 분위기가 정적으로 변했다.
“……뭐, 확실히 그렇기는 하지. 한국은 땅에 비해 상당히 많은 SSS급 헌터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다른 협회원이 은근슬쩍 긍정하는 투로 이야기하자 여성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한국에 소속되어 있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씨커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 SSS급 헌터는 일반적인 SSS급 헌터와 다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전까지 협회원이 서 있던 곳으로 움직였다.
그녀가 컴퓨터를 조작하자, 이내 영상 하나가 프로젝터에 나타났다.
그 영상에서는 씨커 길드 소속의 길드원들이 압도적인 능력으로 이계화 사태를 정리하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보이십니까? 그들은 다른 SSS급 헌터와는 다르게 한 명, 한 명이 이계화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남자 협회원이 물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저는 씨커 길드원들이 사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길드에 소속되지 않고 인류를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에 일순간 회의장이 술렁였다.
상석에 앉아 있던 월터는 브리핑 자리에 나가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그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안나 이라프.’
그녀는 3명의 상위위원 중 한 명이 죽은 뒤, 이번에 새롭게 뽑힌 상위위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상위위원에 뽑혔다고 해도, 협회 내의 힘은 월터에 비하면 무척이나 부족한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그녀는 무척이나 빠르게 자신의 라인을 만들어내고 있어 월터의 견제대상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는 와중에도 안나는 계속해서 다른 협회원들의 말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 당신이 한 말은 씨커 길드의 길드원을 입맛대로 휘두르고 싶다는 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데, 제 생각이 맞습니까?”
“자기 입맛대로 휘두른다는 부분은 틀렸지만 결국 맞기는 합니다.”
“미쳤군. 그림자 왕이 두렵지 않소? 게다가 우리 국제 협회는 씨커 길드를 강제할 권리도, 힘도 없소. 부탁이라면 모르겠지만.”
“들을 필요도 없는 소리를 하는군.”
순간적으로 안나를 향해 비난의 말이 쏟아졌지만, 그녀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무엇인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저희 국제 협회 직접 씨커 길드를 조종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오?”
남자 협회원의 말과 함께 그녀는 다시 한번 컴퓨터를 조작해 프로젝터의 화면을 바꾸었다.
“이건 뭡니까?”
“SSS급 헌터가 부족해 이계화 사태가 일어날 때면 무척이나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이게 씨커 길드원들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저희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이용해 씨커 길드에게 힘을 빌릴 생각이니까요.”
그와 함께 시작된 안나의 말이 회의실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나의 말이 끝났을 때쯤, 마침내 입을 다물고 있던 월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 당신의 말은 사람들의 여론을 이용해 씨커 길드를 이용하자는 거 아닙니까?”
“이용한다는 게 아닙니다. 인류를 위해서 잠시 그들의 힘을 빌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아무리 봐도 국제 헌터 협회가 사람을 인질로 잡고 씨커 길드를 협박하는 모양새가 될 겁니다.”
“말씀드렸듯, 저희 국제 헌터 협회는 ‘겉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움직인다고 해도 고작 뒤로 몇 개의 정보를 퍼뜨릴 뿐입니다. 그리고 그게 만약 성공한다면 협회 측에서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차라리 씨커 길드에게 부탁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월터와 안나의 논쟁을 듣고 있던 협회원 중 한 명이 질문했으나 안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들이 수락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만, 만약 씨커 길드가 부탁을 거절한다면 그다음에 씨커 길드를 움직이게 하는 건 그 배로 어려워질 겁니다.”
그녀의 말에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협회원을 보며 그는 티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후욱…….”
일식 현상의 뒤에 알량한 빛으로 밝혀지고 있는 주변에 보이는 것은, 이제 막 분자 단위로 변해 일식에 빨려들어 가고 있는 그림자들의 시체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그림자뿐이었다.
내게 당한 그림자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입을 열었다.
“좀 위태위태한 것 같더니 결국 성공했네?”
묘하게 장난스러운 어투로 웃듯 입을 여는 검은 그림자.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체 그저 거칠게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폐로 공기를 밀어 넣었다.
그림자의 능력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달려드는 그림자들을 상대로 검 하나만을 들고 치렀던 조금 전의 전투는 정말 끔찍했다.
사방에서는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는 것 같은 그림자들이 공격해 오고, 나는 최대한 등 뒤를 보호하며 그림자들을 처리해 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등 뒤를 보호하며 전투를 치러 나갔다고 해도 이 넓은 대지에서 그림자에게 등 뒤를 잡히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나중에는 그림자에게 둘러싸여 난전을 벌였다.
……물론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고작 부상만으로 끝난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는 거친 숨이 진정되자 피가 흐르고 있는 오른쪽 팔을 부여잡고 있자 그림자가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땠어?”
“……뭐라고?”
“말 그대로의 이야기야. 그림자들을 상대할 때 어땠느냐고 물어보고 있는 거지.”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며 사라지고 있는 그림자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질문의 요점이 뭐야?”
놀리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말 그대로 네 감상을 듣고 싶은 것뿐이야.”
“…….”
그림자의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으려다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무 생각도 못 했어.”
“정말?”
“너 같으면 사방에서 한 방만 맞아도 골로 갈 것 같은 공격이 날아드는데, 그 와중에 무슨 생각을 하겠냐?”
내 말에 그림자는 검은 팔로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었지만, 뭐 아무튼 좋아.”
그림자는 이내 턱을 만지고 있던 손가락을 이용해 딱 소리를 냈고, 그와 함께 일식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던 그림자들이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설마.”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내뱉었다.
“또……?”
“그럼 설마 수련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줄 알았어?”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며 큭큭 거리는 웃음을 내뱉었다.
“이런 씨X…….”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욕지거리와 함께 나는, 조금 전까지 전부 분자 단위로 해체되고 있던 그림자들이 다시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을 보며 묵빛의 검을 집어 들었다.
그런 그림자는 내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많아.”
“뭐?”
“뭘 그렇게 새삼스레 반응해? 수련이란 건 그런 거잖아? 단계처럼 서서히 난이도를 올려야 점점 네가 강해지는 거지.”
“그렇다고 해도 이건 좀……!!”
숨조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그림자를 바라봤다.
원래의 형체를 되찾은 그림자는 내 쪽으로 몸을 옮기고 있었고, 그중에는 조금 전에는 보지 못했던 형태를 띤 그림자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림자에게 말했다.
“하다못해 치료 같은 건?!”
“뭐, 내가 애초에 치료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런 능력이 없어서 말이야. 그래서 너를 치료해 주는 건 무리.”
그렇게 말하며 몸을 슬쩍 뒤로 빼는 그림자를 보며 나는 사정없이 인상을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