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나 혼자 10만 대군 188화
57장 마지막 수련(2)
고풍스러운 도서관.
레드카펫의 중앙에는 테이블이 있고, 그 카펫을 중심으로 책장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무척이나 거대한 느낌을 내는 그 공간 안에는 두 인영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이 도서관의 주인인 로우레테.
다른 한 명은 조금 전 갑작스레 도서관 안에 나타나, 로우레테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
묘한 침묵이 계속되던 와중, 마침내 로우레테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김우현은 현재 수련을 하는 중이라는 말인가.”
“그래, 내가 아까 보여줬듯이 말이야. 한 번 더 보여줄까?”
남자는 로우레테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의 앞에서 자신의 마력을 움직였다.
마치 김우현의 능력과 같이 새카만 심연을 연상시키는 마력은 곧 남자의 손 위에 응집되더니 곧 무엇인가를 비추었다.
-키에에에에에!!
-끄윽!?
그 검은 마력 안에서 비치는 김우현과 몬스터의 모습을 보며 로우레테가 인상을 찌푸릴 무렵, 그는 마력을 흩어버리곤 짧게 혀를 찼다.
“역시 잘못 생각했어.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너를 포함해 다른 녀석들을 한 번씩 만나고 오게 하는 거였는데,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그만…….”
그렇게 말한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로우레테는 짧게 생각했다.
‘우선 저 남자의 말대로 김우현이 죽지 않는 것은 사실 같은데…….’
로우레테는 김우현이 3지구에서 시체도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지 하루가 지났을 즈음 나타난 남자에게 김우현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뭐, 계약이 끊기지 않아서 죽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수련이라니…… 거기다가.’
로우레테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지?’
로우레테는 시간의 축마저 비틀어 온 세상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시간을 쏟아부어 왔다.
물론 새롭게 생겨나는 지식에는 아직 미진한 감이 있지만 적어도 그 지식이 과거의 지식이라면 반드시 로우레테의 머릿속에 있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는 어떤가?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외모부터 시작해, 입고 있는 옷, 행태와 언뜻 사용하는 마력을 생각해 보더라도 그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샤넬리오스의 또 다른 파편인가?’
그가 사용하고 있는 심연의 마력은 자신이 알던 신 중 샤넬리오스를 닮아 있었지만, 곧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샤넬리오스의 파편을 전부 모았다고 해도 이곳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도서관은 로우레테가 고등 술식을 몇 개나 겹치고 신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일종의 결계였다.
횃불 같은 자신이 직접 만든 아이템이 없다면, 이곳의 좌표를 확실히 알지 않는 이상, 설령 최상위 외신이라고 해도 이 도서관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대입해 봤을 때, 이 도서관에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온 그는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 결론이 난 뒤, 자신의 앞에 앉은 남자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던 로우레테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결국 그에게 물었다.
“네 정체는 뭐지?”
그녀의 물음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뭐, 너라면 대충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어.”
“……나라면?”
“그래, 너라면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 유감이지만 내 정체를 지금 여기에서 내 입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네.”
“……어째서?”
“여러 문제가 있거든.”
‘……여러 문제?’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고개를 숙이며 챙을 만지작거리는 로우레테의 모습을 잠깐 지켜보던 남자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에 로우레테의 시선이 다시 남자에게로 꽂혔다.
그는 흑의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한 장의 종이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것 좀 횃불 밖으로 보내줘. 내가 할 수도 있지만, 이 이상 힘을 쓰는 건 좀 아까워서 말이야.”
남자는 테이블에 손을 뗌과 동시에 검은 마력을 피워올렸다.
“아무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어차피 여기 온 것도 김우현이 무사하다는 것을 네게 알리려고 온 거니까, 느긋하게 기다리라고.”
남자의 손에서 시작된 검은 마력이 그의 몸을 덮어나가기 시작할 무렵.
자신을 바라보는 로우레테에게 남자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로우레테, 너무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성공할 것 같으니까.”
스으으으.
그와 함께 남자의 얼굴이 검은 마력에 덮였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마력이 흩어지며 남자가 있던 그곳에는, 레드카펫과 비스듬히 놓여 있는 의자만이 보였고 로우레테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이라고?”
도서관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 * *
씨커 길드사무소 2층 휴게실.
이제 막 점심이 되어가는 상황에 씨커 길드의 길드원들은 소파에 앉아 가운데에 있는 종이 한 장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가 지속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은별이 마침내 분위기를 깨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아냐가 내려와 보니까 이런 종이가 있었다는 거지?”
“네, 맞아.”
아냐가 단답으로 끊어서 말하자 그 옆에 잠잠히 있던 하리남이 책상 가운데에 놓인 종이를 들어 올려 그 내용을 읽었다.
“당분간 이쪽에 큰일이 생겨서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으니 내 걱정은 하지 마라…… 김우현…… 이거 정말 형님이 쓴 게 맞나?”
“뭐, 아냐가 처음 내려와 봤을 때 횃불 옆에 올려져 있었다니까, 형이 쓴 글이 맞지 않을까요?”
에단의 말에 하리남은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고, 이로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잠깐 나와서 얼굴이라도 비치면 걱정 안 할 텐데. 솔직히 우리가 길드장님을 걱정하고 그럴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요.”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3일 가까이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더니, 고작 횃불 안에서 나온 게 이 종이 쪼가리 한 장이라니…… 나와서 말해주든가. 스마트폰으로 카톡 하나 남길 수도 있을 텐데.”
이로하의 말에 맞장구를 친 김서윤이 기운이 빠진다는 듯 하리남이 들고 있던 종이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은별은 자신의 옆에 있던 작은 용, 크루아 쿠르아흐, 아니, 이제는 이름이 길다는 이유로 크루아라고 불리는 용을 바라봤다.
“크루아 님.”
[왜 그러나.]
“혹시 저 횃불 안에 들어갈 방법이 있을까요?”
이은별의 물음에 종이와 함께 소파 책상 위에 같이 놓여 있던 횃불을 바라본 크루아는 자그마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불가능하다.]
“왜 안 되는데요!?”
이은별의 옆에 있던 김서윤이 기습적으로 크루아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묻자, 그는 질색이라는 느낌으로 목을 뒤로 빼더니 입을 열었다.
[저 횃불은 분명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는 통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저 횃불의 주인에게 허락받지 않는 이상 저 횃불에 들어갈 수는 없다.]
“정말 허락받는 것 말고는 들어갈 방법이 없나요? 이를테면 샛길이 있다거나…….”
김서윤이 묻자 크루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만약 간단한 양방향 통로라면 억지로 마법을 주입해 통과할 수도 있겠지만, 그 횃불은 결계가 덕지덕지 칠해져 있어서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의 말에 이은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파에 기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서윤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크루아를 한 번 바라보고 이윽고 횃불을 바라보더니…….
“에이 진짜!!”
이윽고 거칠게 횃불을 집어 들고 탈탈 흔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 횃불 안에 들어가 있으려면 우리한테 제대로 설명이라도 해주던가! 이렇게 종이 한 장만 남기고 들어가 버리면 괜히 걱정되잖아!!”
김서윤은 김우현이 굉장히 얄밉다고 생각하며 횃불을 탈탈 털다가, 힘이 빠진 듯 횃불을 놔두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정마아아알……!!”
김서윤의 묘한 히스테릭에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횃불을 바라봤다.
그러던 중 하리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어디 가요, 오빠?”
김서윤이 묻자 하리남은 휴게실의 출구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일하러 가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어차피 이렇게 있어 봤자 형님이 돌아오지도 않을 테고, 우리는 형님 올 때까지 할 일이나 잘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하리남은 던전을 클리어하고 오겠다며 휴게실을 나갔고, 이윽고 다른 길드원들도 소파에서 일어났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휴게실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 * *
“흡!”
카가가각!
기형적으로 긴 팔을 가지고 있는 형체가 내 머리를 노리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막아낸 뒤, 곧바로 뒤에서 이어지는 곤충 형체의 공격을 피해낸다.
“쯧……!”
하나 그 뒤에도 곧바로 이어지는 늑대의 형태를 한 그림자의 공격에 나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차며 몸을 뒤로 내뺐다.
몸을 빼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정면으로 돌진해 뛰어드는 늑대 형태의 그림자.
나는 망설임 없이 늑대 형태의 그림자에게 칼을 찔러 넣었다.
부우욱!
마치 가죽을 찢어내는 소리와 함께 늑대 형태를 한 그림자가 서서히 소멸한다.
그 앞으로 긴 팔을 가진 그림자가 한 번 더 주먹을 휘둘렀고, 등 뒤에 있던 곤충이 다시 한번 역습을 시도했다.
양쪽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나는 몸을 숙여 긴 팔을 가진 그림자에게 파고들어, 내 이마에 나 있는 뿔을 그림자의 턱밑에 찔러 넣었다.
그와 동시에 칼을 역수로 쥔 나는 내 등을 향해 달려오는 곤충에게 칼을 찔러넣고는 그대로 비틀었다.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사라지는 그림자들을 본 나는 제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내뱉었다.
“허억…… 허억……!”
심장이 거칠게 뛰는 것을 느끼며 주저앉아 몸을 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좋아, 아주 잘 따라오고 있군.”
“이게 제 승률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기는 되는 겁니까?”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그림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뭐라고요?”
그림자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따지려 입을 열었지만 그림자는 내가 말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고작 이 정도로 네 승률에 도움은 안 되지.”
“그게 무슨…….”
“내가 처음 이 수련을 시작할 때 말했잖아? 초반에는 네가 적응할 수 있게 좀 숫자를 낮춘다고 말이야.”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이곤 말했다.
“그런데 이제 슬슬 10마리까지도 상대하는 것 같으니까. 이제부터는 ‘진짜’ 수련을 시작해야지.”
“……진짜 수련?”
그와 동시에 저 멀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림자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곧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미친……!”
수십 마리가 아니었다.
아무리 보더라도 최소 100마리는 넘어 보이는 그림자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경악하는 내 귓가로 웃음기가 섞인 그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가 진짜 수련이야.”
“……씨발.”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