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나 혼자 10만 대군 186화
56장 샤넬리오스(3)
푸른 달빛이 떠 있는 신전.
그곳에서 몸체가 희미하게 투영되어 보이는 로만을 바라보던 로우레테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내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고 애꿎은 마력만 날리고 있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왜 그렇게 된 거지?”
그 물음에 로만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긴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계승자가 죽었어. 덤으로 세계도 멸망 직전이고.”
“네가 그런 모습이라 대충 예상하기는 했다만, 벌써……? 분명 구슬을 만들 때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로우레테의 의문 섞인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로만.
“솔직히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서.”
“무슨 소리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니.”
“그러니까, 솔직히 나도 보기는 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잡혀서.”
“으음.”
로만은 잠시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리더니, 로우레테게 말했다.
“악마가, 악마를 죽였어. 정확히는 단탈리안이 아몬을 죽였지.”
“……? 뭐라고?”
“너도 못 믿겠지?”
로만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했다.
잠시 후 로우레테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 악마들이 네 계승자를 죽인 뒤에 내분이 일어나 서로를 공격했다, 이거야?”
“뭐, 우선 정황상으로는 그래. 하필이면 악마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내 계승자가 죽어버려서 이야기는 전부 듣지 못했지만…….”
그녀는 말을 늘이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악마 단탈리안이 아몬을 공격했어. 그리고 아몬을 죽이는 데 성공한 단탈리안이 아직 5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고 균열로 들어간 덕분에 나는 이렇게 몸을 유지하고 있는 거고.”
그렇게 말한 로만은 알 듯 말 듯 한 한숨을 내쉬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우레테가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그 단탈리안이라는 악마가 네 계승자를 죽이고, 뒤따라온 동료, 아몬까지 죽인 다음에 5지구는 멸망시키지도 않고 균열을 통해 사라졌다는 건가?”
로우레테가 자신이 들은 것을 확인하듯 묻자, 로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계승자의 영혼석과 악마의 영혼석도 같이 들고 사라졌지.”
“……정말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잡히는군.”
로우레테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듣기만 했을 때는, 단탈리안이 악마 진영을 배신한 것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데.’
순간 로우레테의 머릿속에 든 생각, 하나 그녀는 쉽게 확신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악마들과의 대치 상태를 이어오며 악마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는 소문은 들어보지도 못했으니까.
애초에 그들 위에는 사탄이라는 절대자가 있기에 아무리 내분이 있더라도 서로를 죽이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악마를 죽여봤자 결국 기다리는 것은 사탄의 철퇴일 테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단탈리안이 사탄을 배신했다?
“……알 수가 없군.”
고민 끝에 나온 결론에, 로우레테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그것뿐이었지만, 그 결론을 받아들이기에는 그동안 봐왔던 악마들의 모습이 걸렸다.
한참이나 고민에 빠져 있던 로우레테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군.”
그녀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로만.
“그래서,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글쎄, 정말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로우레테가 로만에게 묻자, 그녀는 자포자기한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계승자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내가 말해줬다시피 계승자는 이미 죽어버렸고, 녀석이 이끌던 녀석들까지 전부 죽어버려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
“물론 아직 내 계승자가 외부의 마물들을 막아낸 덕분에 세계가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계승자가 죽어서 카운트다운도 얼마 안 남은 마당에 다시 계승자를 찾아내긴…… 좀 힘들지.”
“한마디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해볼 수 없는 상황인가.”
“그렇지. 게다가 지금 네 눈에도 보이잖아? 내 몸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거.”
“계승자가 사라져 신계로 끌려가는 건가?”
“뭐, 사실 계승자가 죽었다고 끌려가지는 않지만, 5지구 자체가 너무 멸망에 가까워져서…… 마물들이 본격적으로 인간들을 사냥하기 시작하면 유지할 수 있는 신력이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뭐, 어떤 의미에서는 네 말이 맞지.”
로만은 마주 선 로우레테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제 슬슬 너희도 조심할 때라는 건 알지? 이제 5지구와 신계가 사라지고 나면, 남은 건 2지구뿐이야.”
“…….”
“너도 알지?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이 돌아갈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네 생각처럼 단탈리안이 사탄을 배신했다고 하더라도…….”
“아마 싸움은 피할 수 없겠지.”
로우레테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뭐라고요?”
되물음에 그는 대답했다.
“말했잖아. 네 승률을 1%라도 올리기 위해서 내 기억을 가지고 회귀했다고.”
“……어떻게 제 승률을 올리려고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너는 이미 내 혜택을 받았잖아? 뭐,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그는 나를 스윽 보곤 말했다.
“당장 신격 각성도 있고 말이야. 네가 그걸 배우지 않았으면 아마 사탄한테 비비지도 못했을걸?”
……확실히 맞는 말이기는 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거대한 능력인 신격 각성은 원래 회귀 전에는 보지 못한 스킬이었으니까.
확실히 신격 각성이 없었다면 괴신을 사냥하는 것도 불가능했을지 몰랐다.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요.”
“그렇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그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가 아까 말했다시피 네가 외신들을 전부 먹어치우더라도 사탄과 맞붙어서 이길 확률은 40% 정도밖에 안 돼.”
“……사탄이 그렇게 강합니까?”
내 물음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 면에서 보나, 가지고 있는 마력 면에서 보나, 그냥 괴물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지. 솔직히 지금 네 상태는 괴신들이 아니라 외신들과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지만…….”
“…….”
“사탄은 더 강해. 네가 어떻게 그 녀석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장담하지. 그 녀석의 강함은 네 상상 이상일 거다.”
그가 표정을 굳히고 무척이나 진지하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로우레테에게 들었던 사탄에 대한 지식이 흘러 지나갔다.
물론 그녀에게도 사탄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게다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강대한 힘을 지닌 악마들을 수하로 부리는 것만 봐도, 그 녀석이 얼마나 강할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순히 흥미 차원에서 예전에 한 번 로우레테에게 회귀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론상으로는 회귀가 가능하지만, 실제로 해내려면 신계에 있는 최상위 신에 필적하는 강력한 마력과 신력, 여기에 더불어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사탄에 관해 설명해 주고 있는 남자는 로우레테가 말도 안 된다는 그 회귀를 해낸 사람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으로 사탄이 강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제가 강해진다고 해도, 이거 승산이 있는 겁니까?”
저도 모르게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 남자는 슬쩍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있지. 승산은 언제나 있다.”
“……조금 전에는 힘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힘들지만 승산은 있다.”
“…….”
뭐,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20%의 확률만 있어도 승산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으니까.
남자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뭐,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다만, 너무 그렇게 절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상황을 보면 충분히 절망적인데요? 최적의 상태로 싸워도 승률이 40%를 넘길 수 없다고…….”
40%.
언뜻 보면 높아 보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질 확률이 60%라는 소리였다.
뭐, 그렇다고 사탄과의 전투를 피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 네 말이 맞지. 내가 말했듯이 네가 파편을 전부 모으고 최적의 상태로 싸운다고 해도 네 승률은 40%를 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굳은 표정에서 다시 유쾌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건 어디까지나 너 혼자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를 말한 것이다.”
“내가 혼자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
“그래, 네가 혼자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가 40%라는 소리지.”
그는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도와준다면 그 승률은 올라간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나게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 네가 온전히 내가 시킨 일을 전부 해낼 수 있다면…….”
남자는 계산하듯 슬쩍 눈동자를 굴렸다.
“50%…… 그래, 50% 정도까지는 승률을 올리는 게 가능하지.”
“50%…….”
나는 저도 모르게 남자의 말을 되뇌었다.
확실히 40%와 50%는 다르다.
그것이 고작 무의미한 확률을 계산해 내는 것뿐이더라도, 확실히 50%라는 확률은 내게 무척이나 유의미한 확률이었다.
적어도 이길 확률과 질 확률이 반반이라는 거니까.
“그 이상은요?”
“그 이상은…… 솔직히 아직 해보지 않아 모르겠다. 어차피 승률은 내가 시킨 일을,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앉아 있는 석상 앞에 와서 마주 앉았다.
“만약 네가 수련을 잘 따라오지 못하면 시간만 버리고 조금도 강해지지 못할 확률도 있다.”
“그래도 결국 해야겠네요.”
“사탄에게서 승률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면 해야지.”
“그래서,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남자는 묘한 얼굴로 다시 한번 나를 바라봤다.
“이것도 좀 의외군. 멘탈 회복이 조금 빠른데?”
“……제가 회귀하기 전을 보셨으면 대충 아실 텐데요?”
회귀 전에는 물론 이것보다 스케일이 거대했던 건 아니지만 크세즈베트와 싸우던 후반기에 가서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사방에서 이계화 사태가 터지고 크세즈베트는 SSS급 헌터를 죽이며 세계를 실시간으로 멸망시키는 그 세계에서, 나는 하루에도 많게는 수어 번 절망적인 전투를 치러봤다.
그리고 그런 전투 속에서 나는 멘탈이 깨져 우울해하는 시간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깨달았다.
우울해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절망적인 상황이 와도 나는 그 상황을 비관하기보단 어떻게든 그 절망적인 상황을 빠져나가려 노력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남자를 바라보자,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그는 얼마 있지 않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곧바로 시작하지.”
그와 함께 세계가 반전했다.